255. ㅈㄱㅊㅇ 2
전야제의 마지막이 시작되기 이전.
다른 마지막이 먼저 찾아와 열기를 더해주었다.
바로 하이로드의 숨컷 챌린지, 그 대단원의 마지막이었다.
지난 며칠간 전야제의 열기에, 숨컷과 MK의 승부에 밀려 묻히긴 했으나.
썩어도 준치.
그래도 하이로드다.
거기에다가, 숨컷과 MK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 시간대.
숨컷 챌린지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그녀의 방송 시청자는 8만에 달해 있었고.
그런 시청자 앞에서 그녀의 숨컷 챌린지는-
"하, 아쉽네."
실패로 끝난다.
썩 충격적인 결과였다.
모든 이들이 성공하는 건 물론이며, 기록을 갱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은 역시-
[KKC NSC : WP]
[하 ^^ㅣ발 저 새끼가 끝까지 ㅋㅋ]
[아 저 짱깨새끼 진짜 찢어버리고 싶네ㅋㅋ(따구리 말하는 거 아님)]
[이건 솔직히 CSN없었으면도르 시전 가능한 거 아님?]
[솔직히 그건 맞지]
그 말대로, 그건 맞다.
숨컷 역시 대리들의 방해를 받으며 진행했었다곤 하나.
CSN의 방해에 비하면, 그 대리들의 방해는 애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만약 하이로드의 방해가 CSN가 아니라 그 대리들이었다면?
하이로드는 필시 성공했으리라.
하다못해 CSN에게 방해 받으면서도, 도전 시간을 늘렸다면?
혹시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냐. 실패한 건, 실패한 거지. 보니까 그 사람도 방해 받으면서 했더만. 혹시, 이거 지금 성공한 사람 나왔어요?"
[몇 명 나오긴 했음]
[거의 하루에 20시간씩 하면서 빡겜한 애들]
"그중에서, 저나 숨컷 님처럼 방해받은 사람 있어요?"
[가끔 저격당하긴 했는데 수준 다 거기서 거기인 년들이었음 ㅇㅇ]
"그렇죠? 보니까, 이게 숨컷 챌린지가. 큰 문제가 있어. 마치, 이거 성공하면 그 사람 넘어선다는 것처럼 돼 있는데."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게 말도 안 되는 게. 숨컷. 그 사람은 방해 없었으면, 4일 컷도 가능했을 거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로 채움으로써 당황을 표했다.
지금 가까스로 성공한 이들도 나름대로 솔랭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실력자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조차 7일을 전부 갈아 넣어서 겨우 성공했다.
그런데 4일이라니?
더욱이 당황스러운 건.
하이로드의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하이로드와 숨컷. 그리고 그들의 호적수인 CSN와 MK는 얼마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인가.
시청자들이 경외감마저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어쨌거나, 내가 숨컷 챌린지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숨컷, 그 사람. 괴물이야. 나보다 더해."
덤덤하게 내뱉어진 그 말은, 채팅창에 유례없는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ㅁㅊ]
[님보다 더 짱깨라는 건가요? ㄷㄷ]
[트루 참깨]
[아니 ㄹㅇ 님보다 잘하는 것 같다고요?]
[에반데]
현재 숨컷 챌린지에 실패한 하이로드의 상황.
그리고, 방금 하이로드의 발언.
그 두 가지가 맞물려,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이로드.
그녀는 지금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녀 이전에는 없었으며, 그녀를 위해 존재해 왔던 왕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그 자리에 숨컷을 공천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숨컷.
그는 페이스와 하이로드, 두 정점에게서 동시에 솔랭의 정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혈통 보소 ㄷㄷㄷㄷ]
[트루블러드 ㄷㄷ]
[ㄹㅇ 근본 그 자체네]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적법한 솔랭의 정점이 되었다.
채팅창은 물론이며, 그 시각 하이로드의 숨컷 챌린지 실패로 달아올랐던 커뮤니티가 다시금 숨컷의 이야기로.
[그러면 MK는?]
MK의 이야기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숨컷 요즘 MK랑할때 맨날 발리더만]
[ㄹㅇ ㅋ 정글빨로 계속 이기던데?]
[그건 머 어케 댄 거임?]
[인간 상성?]
[그거네 인간 상성]
[ㅇㅇ 점수 올리는 속도 자첸 숨컷이 더 빠르잖아]
"아 그거요."
큭큭큭.
그녀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머선일이고]
[현직 중국어사전입니다 중국인들은 울때 큭큭큭하고 웁니다]
[ㄷㄷ 함부로 울 수 조차 없는 중국]
[떼끼! 울면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산타할아버지는 못된 사람 아냐!]
[공안부 말한 건데요]
[헉]
[빅보이즈 얼웨이스 씨유]
[그래서 이 분 왜 갑자기 실성하셨나요]
[자신이 인정한 숨컷이 비열한 미제놈 밑이라 서러워서 그런거 아니실까요?]
전부 틀렸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 이유는, 순수하게 웃겨서였다.
그녀 역시 전해 들었다.
숨컷이 MK를 상대로 거듭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그럴 리가 없는데?'
그에 의문을 느끼고 조사한 바.
"하."
남들은 읽어내지 못한 숨컷의 노림수를 읽어낸다.
그의 의도를 읽어낸다.
그는, 지금 자신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사냥감을 살찌우고 있던 것이다.
하이로드가 보기에 MK는 자신보다 급이 낮을지언정,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독보적인 수준의 솔랭 플레이어였다.
자신과 숨컷 CSN, 그리고 MK.
이렇게 넷을 4대 솔랭 플레이어라도 엮어도 될 만큼.
그런 MK를.
숨컷은 살찌우기 위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하이로드는 생각한다.
자신에게도 저런 게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하다.
하이로드에겐 저런 불안정하고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플레이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플레이 성향상의 차이다.
그의 플레이 성향은 CSN와 비슷했다.
그래서 하이로드는 의심했더랬다.
숨컷, 그가 CSN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중에 만나면 알게 되겠지.'
현재로서 확신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뿐이었다.
숨컷이 자신에게 있어 전에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나오지 않을, 높은 목표이자 매력적인 사냥감이라는 것.
하이로드는 숨컷을 사냥했을 때의 성취감을 상상하곤 쾌감에 전율했다.
그 순간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 숨컷을 더욱 빛내준다.
그걸 위해서였다.
자신의 왕좌를 숨컷에게 잠깐이지만 내어주는 것도.
"확실하게 말해 둘게. 이번 시즌 주인공."
그리고-
"숨컷, 그 사람이야. 앞으로 그 사람이 뭘 보여줄지. 특히, 이번에 뭘 보여줄지."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하이로드는 MK와 숨컷에게 밀려 있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전야제'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야제가 끝나는 순간 다시 축제가 시작되며, 그 축제의 주인이었던 하이로드와 숨컷과 MK 중 한 명이 공동 주인공이 될 터였다.
그런데 지금 하이로드가 그 공동 주인공 자리를 내려놓았다.
하이로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자신의 사냥감을 빛내기 위해 그 엄청난 관심을 양보하는 것은.
그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은.
그렇게 숨컷은 유일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 숨컷과 MK중, 누가 최초 전 1위를 차지하는지 승부가 판가름 나는 전야제의 마지막 날.
이례적인 관심이 향해진다.
숨컷과 MK의 방송 시청자 수의 합이, 페이스의 시청자를 앞질렀다.
지금, 대한민국과 북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레오레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둘의 마지막 대결에 향해져 있었다.
[이봐 MK 오늘도 팀운 쓰레기라 숨컷한테 지면 어떡할 거야?]
MK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한국 서버가 나 견제하려고 수작질 부리는 거라 봐야지."
[크 ㅋㅋㅋ]
[그렇지 ㅋㅋㅋ]
[그 정도면 합리적 의심이지]
[아니 사드가 왜 우리한테 작동하냐? 동맹국 아니였어? ㅋ]
그게 현재 여론이었다.
숨컷의 승리를 부당하다 느낄 정도로, MK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MK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발표한다.
"그래서 말인데 친구들. 어제, 아주 흥미로운 일이 있었거든?"
그녀가 레오레 친구창에서 누군가와 주고받은 대화 내역을 보여주었다.
그 누군가는-
[오 뭐야]
[숨컷이네?]
그리고 그 대화 내역은-
[뭐임?]
[듀오?]
"어. 듀오. 숨컷, 이 친구가 말하길. 지금 상황이 억울하대나?"
[억울하다고? 지가? ㅋ]
[이건 뭐 미국인이 인디언들한테 이곳은 풍수지리가 왜 이렇게 구리냐고 징징대는 꼴이구만]
[하여간 역겨운 미국놈들 ㅋ]
[그 새끼들 나루토 표절해서 러시모어산 만들 때 알아봤어 ㅋ]
[현실판 나뭇잎 마을이 따로 없구만]
[그래서 그 비열한 미국놈이 뭐라든?]
미국인들이 물었다.
"자기가, 계속 정글 빨로 이기는 것 같이 비춰지는 게 불만이라지 뭐야."
[세상에]
[염치라는 게 있는 건가?]
[설마 숨컷 그 친구 뭐 그리 뻔뻔해? 한국 사람이라는 게 북한 사람이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네 또]
[아 이건 너무 인종차별적이었나?]
[당연하지 북한엔 컴퓨터가 없다고]
[아 ㅋㅋ]
[그래서 불만이라서 뭐 어쩌재?]
[꼬우면 정글러 바꿔서 해 보자고 말 해 보지 그랬어]
"아.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어."
[오?]
"다들 이 친구 기억하지?"
MK가 누군가를 듀오로 초대한 뒤, 그녀를 소개했다.
[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저 친구 그 친구잖아]
[아 기억 났다]
[숨컷의 정글러]
숨컷이 MK와 만난 게임.
게임을 캐리해서 숨컷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정글러를 그렇게 불렀다.
"숨컷이 제안하더라고. 마지막 날은, 서로 '숨컷의 정글러'랑 듀오해서. 동일한 조건으로 붙어 보자고."
[진심이야?]
[숨컷 그 친구 정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 : 흠, 묘수로군]
[우리야 좋지 ㅋㅋ]
[젠장 MK 너만 믿는다 이번 기회에 한국 친구들한테 제대로 보여주자고]
시청자들은 MK를 우물 안 개구리라 치부했었으나.
그녀가 한국 서버에서 '가능성'을 보이자 진심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북미 서버의 대표로서, 한국 서버에 깃발을 꽂기를.
그리하여, 북미 서버가 3대 롤 서버 중 가장 수준 낮은 곳이 아님을 증명하기를.
한국과 중국 다음 서버라는 선입견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북미 레오레 유저는, MK 한 명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들 동의하는 거지? 좋았어."
그렇게 그녀는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며, '숨컷의 정글러'와 듀오를 형성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녀의 '억울함'은 나날이 늘어갔고.
그에 따라, '자신감'또한 늘어났다.
거듭 정글 차이로 패배하는 이 억울한 상황에서.
'정글만 바꿔주면 이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증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자신은 숨컷을 상대로 최초 전 1위를 쟁취해낼 것이다.
그럼으로써, 확신하리라.
자신이 원하는 바.
페이스의 인정을 얻어내는 게 시간문제임을.
그런 기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로, 숨컷에게 연락한다.
-난 준비 끝났어
-그쪽은?
이내 돌아오는 답장.
-나도 준비 끝
-그럼 이제 가 보자고 ㅋ
"큭."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숨컷과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상상한 MK가, 숨컷에게 애잔함마저 느끼며 게임 서칭을 시작하고 머지않아서였다.
[어 잠깐]
[어이 MK]
[숨컷 듀오 뭔가 이상한데?]
"뭐?"
숨컷의 듀오에 문제가 있다 지적하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발견한 MK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게임 서칭을 취소했다.
그리곤 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숨컷에게 채팅을 보냈다.
-내 시청자들한테 듣자 하니
-그쪽이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는데
-뭐 하자는 거야?
-개수작?
-무슨 개수작?
-듀오한테 장난질 쳤다는 거 들었어
-장난질?
-아 ㅋ
-딱히 문제 없지 않아?
-뭐?
그러고 보니.
시청자들은 숨컷의 듀오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지.
정확히, 뭐가 문제가 있다곤 말 안 했다.
그러고 보니-
'설마-'
'숨컷의 정글러' 중에 '프로'도 더러 존재했다.
'이 정신 나간 것이 프로라도 데려온 거야?'
그녀가 분개하고 있던 때였다.
찰랑!
-SOOMCUT FAN 님이 10$를 후원했습니다.
=[CLIP 영상]
현재, 숨컷 방송의 클립 영상이었다.
그 영상엔, 게임 서칭 준비 중인 숨컷과 그 듀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MK는 곧장 그 듀오의 정체를 확인했고-
"…어?"
당황했다.
그 듀오는 '프로'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숨컷의 정글러'도 아니었다.
바로, 'MK의 정글러'.
MK가 주장하길.
숨컷과 MK가 조우한 게임에서, 게임을 캐리하여 숨컷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숨컷의 정글러'와는 반대로.
그런 '숨컷의 정글러'에게 압도당해, 자신에게 패배를 가져다 줬다고 주장하는.
[정글차이]를 외치게 만드는 형편없는 정글러였다.
서로 '숨컷의 정글러'를 끼고 겨루자고 해 놓고, 그런 'MK의 정글러'를 데리고 있는 것이다.
MK가 [ㅈㄱㅊㅇ]를 외쳤던 게임의 정글러가 고스란히 바뀐 상황.
MK는 한 편으론 당황스럽고, 한 편으론 기가 차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고.
-설마 못 구한 거야?
숨컷의 정글러를 말이다.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숨컷은 그에 답하길-
-무슨 소리야?
-지금 구했잖아
-뭐?
다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했더니-
찰랑!
-숨컷 님이 18$를 후원했습니다.
=[CLIP 영상]
영상 안에서 숨컷.
최재훈.
그가 말한다.
"나랑 팀 되면, 그게 숨컷의 정글러지. 별거 있어?"
지난 며칠 동안, 'MK의 정글러'가 참으로 많이도 생겼다.
숨컷은 그 치욕적이고도 억울한 오명을 손수 벗겨줄 생각이었다.
그들 또한 '숨컷의 정글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정말로 '정글차이'였던 건지, 응? 한 번 프루브 해 보자고."
MK는 그 모습을 넋이 나가서 바라보다가 말했다.
"…뭐라는 거야?"
최재훈, 그가 너무나도 당연한 듯 한국어로 말했기에.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극적인 피날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