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마이 숨컷
국내에서-
아니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인 TC1.
그런 팀의 주전이자, 국내 3대 원딜러 중 한 명.
거기에, 호쾌한 성격과 그에 걸맞은 시원시원한 미모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팬을 거느린 TC1 SIGHT.
그녀가 수만 시청자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대놓고 아는 척을 해 온다.
방송인은 유명세로 먹고 사는 만큼, 다른 유명인과의 인맥을 과시하는 것은 대개 플러스가 된다.
그게 TC1의 원딜러라면 말할 것도 없다.
최재훈은 아주 반갑게-
"오바 꽁쌈치인데."
오바 꽁쌈치라고 느꼈다.
이 상황은 그 대게 플러스가 되는 상황에 포함되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그러냐면.
[TC1 SIHGT : 깜짝 놀라는 거 봐라]
[TC1 SIHGT : 역시 귀엽다니까~?]
SIGHT가 숨컷을 아는 척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단순히 아는 사람을 넘어서.
친한 사람을 넘어서.
3자들로 하여금 둘이 이성적으로 싸바싸바가 있는 관계처럼 보일 여지가 다분할 정도로 거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 유명 여성 프로게이머와 요즘 한창 핫한 남성 방송인이 말이다.
스캔들이니 뭐니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아니 이 인간, 진짜 막 사네.'
최재훈은 즉시 수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시청자들의 방송을 확인했다.
최탱창은 당연히 이미 난리-
가 나 있지 않았다.
'아, SIGHT 선수. 오늘 경기에서 승리의 주역이라 할 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 당연히 좋지~ 우리 리포터 오빠는?'
'예? 아, 예~ 저도 당연히 좋습니다!'
'우리 TC1 이겨서? 아니면 내가 이겨서? 아니면, 나 인터뷰해서? '
'아, 어… 전부 다인 걸로….'
'아~ 이거 또 이겨서 기분 좋은데 우리 리포터 오빠가 마지막으로 끝장내 주시네~'
'아니 이 병- 현하야 뭐 하냐.'
SIGHT의 이러한 호쾌한(?) 성격과 행실은 적잖은 전례로 이미 유명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보통 같았다면-
[모임? 둘이 무슨 관계임?]
[속보) 숨컷 사이트 그렇고 그런 관계]
[속보) 사이트 속도위반]
[속보) 사이트 슈마허]
[속보) 숨컷+SIGHT =3]
[둘 사이에 벌써 다 큰 아이가 있다는 데 사실인가요?]
[다 큰 아이면 몇 살이누?]
[독립하면 다 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그럼 27살인데 아직 아이누]
[속보) 숨컷SIGHT 아이 27살 넘어]
[차현하 올해로 23살 아니냐?]
[얼마나 빨리 애를 낳은 거야 ㄷㄷ]
[-4살에 낳았네 ㄷㄷ]
[-4살이면 그건 차현하가 낳은 거라 볼 수 있냐]
[장르가 빡쎄지네 ㄷㄷ]
[속보) 숨컷 사실 SIGHT 친부]
[속보) 숨컷 SIGHT 합스부르크]
오해를 낳는 오해를 낳아 걷잡을 수 없는 산불 같은 상황이 되었을 테지만.
사이트의 이미지가 이미지인 만큼-
[저거 찐 sight임? ㅋㅋ]
[말하는 꼬라지 보니까 맞네 ㅋㅋ]
[저거 저거... 또 꼴값싸고 있네]
[체스마스터새기 한결같은 거 봐 ㅋㅋ]
[숨컷한테 찍접댄다 TC1 관계자들 불만 없제!?]
[TC1 관계자들 담당 일찐 ㄷㄷ]
그런 반응이 나온다.
저거.
또 저런다고.
[숨컷쉑 처음보는 사이트 맛에 정신 못차리는 거 보소 ㅋㅋ]
[표정 보소 ㅋ]
[ㅇ_ㅇ]
숨컷이 당황스럽겠다고.
최재훈이 우려하던, 귀찮은 상황과는 멀어 보였다.
그는 천년 감수하며 말했다.
"역시 귀엽다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누가 댁 귀염둥입니까."
-누구긴 우리 숨컷 씨지.
"내가 무슨 공공재여? 왜 우리 숨컷이야."
-그럼 마이 숨컷?
"미쳤나 봐."
-나는 마이 숨컷한테 미치고, 마이 숨컷은 나한테 미치고?
"마이 숨컷으로 밀고 가는 거 봐라. 댁한테 미치는 건 모르겠고, 지금 댁 때문에 미칠 것 같긴 해. 아니 근데 이거 뭐야. 뭔데 자연스럽게 보이스랑 채팅으로 대화 나누고 있어. 레오레에 언제 음성채팅 기능이 도입된 거지?"
-당연히 방송 보고 있지~
"여러분, 얘 좀 봐요. TC1 팀 이름 달고 저격하는데 졸라 당당해."
-팬 서비스가 아주 끝장나지?
"끝장내 버리고 싶네."
-아~ 그건 걱정 하 덜덜 마~ 난 이미 마이 숨컷한테 끝장나 버렸으니까 -아참 이거 다른 팬들한텐 비밀이야?
-내 열혈 팬인 마이 숨컷한테만 특별히 해 주는 거니까
"지금 2만 명 넘게 보고 있는데요."
-아, 그러면 '우리들' 만의 비밀인 걸로 하자고 여러분 오케이?
겨우 채팅만 보고 있는데도.
음성 인식을 넘어서, 화면 인식까지 된다.
탈을 벗은 뒤 고개를 홱홱 흔들어 단발머리를 찰랑거린 뒤.
푸른색 머리띠를 꺼내 앞머리를 과감하게 넘겨 올려, 번개가 내려치기라도 한 듯한 흉터가 새겨진 이마를 시원하게 공개하곤.
씨익, 눈과 입을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하하핫!"
웃는.
호쾌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
[이 새기 도대체 왜 안 짤리는 거냐 ㅋㅋ]
[엄마가 TC1 구단주라던데?]
[내가 듣기론 서울시장이라던데?]
[내가 듣기론 미국 대통령이라던데?]
[내가 듣기론 천룡인이라던데?]
[천룡인이자 미국 대통령이자 서울시장 ㄷㄷㄷㄷㄷㄷㄷㄷ]
[왜 안 잘리긴 ㅋㅋ 쌉.잘.하.니. 까]
[그것도 그건데 ㅋㅋ]
SIGHT의 이러한 행실과 태도가 큰 문제나 논란으로 번지지 않은 이유.
그녀가 TC1 SIGHT로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선수로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서 그렇다.
허나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분위기였다.
워낙에 미녀라 그런 걸까.
아니면, 시원시원한 성격 때문에 그런 걸까.
그녀가 남자들에게 치근덕대는 모습은, 당사자나.
보는 3자들로 하여금, 전혀 불쾌한 인상을 주지 않았다.
간혹 있잖은가.
대놓고 성 드립을 쳐도 추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마냥 재밌는 부류.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SIGHT는.
마지막으로.
말로는 남자들 줄 세워놓고 울릴 것 같이 굴면서도.
실제론 스캔들 한 번 안 내는 언행불일치적으로 성실한 행실.
[와 근데 얘가 이렇게 대놓고 찍접대는 건 첨 보네]
[어 그러게 ㅋㅋ 생각해 보니 이 새기 이렇게 찾아가서 대놓고 찍접댄 적은 없는 것 같네]
[의외로 순정파인 새끼 ㄷㄷ]
[조컷한테는 '진심'인 거냐?]
[TC1 SIGHT를 '진심'으로 만드는 남자 ㄷㄷ]
[근데 뭐임 이 둘 친해 보이는데 친분 있음?]
[열혈팬이란 건 뭔 소리임?]
그렇게, 사이트의 저격은.
찝쩍거림은.
부작용 없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거리낄 건 없었다.
사이트가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기꺼이 받아줄 따름이다.
"아니 근데 뭔 계속 열혈팬 타령이야. 누가 봐도 그쪽이 내 열혈 팬이구만."
-나 당연히 마이 숨컷 열혈팬이지
-마이 숨컷은 아냐?
차현하는 일전에 최재훈에게, 그의 팀인 NSC다음으로 좋아하는 팀을 물어봤고.
최재훈은 그에 TC1이라 답했다.
그러자 차현하는, '그러면 내 열혈 팬이네?'라는 기적의 결론을 내놓았고.
최재훈은 그걸 딱히 정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혈팬은 아닌데-"
그 만큼 존경하기 때문이었었다.
한때 프로로서 최고를 꿈꾸었으나 실패한 최재훈에게 있어.
TC1 SIGHT.
세계 최고의 팀인 TC1의 주전으로서.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포지션 플레이어인 그녀는.
최재훈에게 눈부실만큼 빛나는 존재였다.
"열나게 존경은 하지."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현하는 물론이며 시청자들까지 그 대답이 귀에 박혔다.
프로게이머를 좋아한다도 아니고, 존경한다니.
게임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확실하게 와닿는 말이었다.
엄청난 게임실력보다도 말이다.
최근, 숨컷의 게임 실력이 화제가 되며 그의 게이머로서의 면모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럼에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컷을-
'아, 그 잘생겼는데 게임까지 잘하는 애?'
라고 느끼고 있었다.
잘생긴 남성 방송인으로서의 면모를 주로.
게임 방송인으로서의 면모를 부로 느끼는 것이다.
'텔론남'을 먼저 알고 '숨컷을'알게 되었기에.
사실, 이번에 SGF로 새로 알게 된 이들 뿐만이 아니다.
숨컷, 그가 아무리 게임을 잘해도.
게임 잘하고 성격 좋은 남성 방송인이라는 이미지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 발언으로 보여준 게임을 향한 순수한 감정.
게이머로서의 진실된 모습.
방송을 보고 있던 이들에게, 숨컷의 게이머로서의 면모가.
게임 방송인으로서의 면모가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그들에게 숨컷은 더 이상 '그 잘생긴데 게임도 잘하는 애'가 아니었다.
'게임 방송인 숨컷'이 되어 있었다.
숨컷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표정이 다소 바뀌었다.
게이머로서, 게이머로 느끼게 된 숨컷과 더욱 가까워진 거리감만큼.
차현하 또한 마찬가지.
숨컷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머금은 이채가 더욱 선명해졌다.
"어쨌거나. 아줌마. 왜 저격하신 건데요."
-마이 숨컷 보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거, 마이 숨컷 타령 좀 그만 하쇼. 나 비싼 남자야."
-나 돈 많다고~?
"그건 좀 로맨틱한데."
-비싼 남자랑 돈 많은 여자 이거 완전 천생연분 아닌가~?
이내, 사이트의 말이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므로.
그녀는 게임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전에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왜 저격을 했냐면
-마이 숨컷한테 뭐 선물로 줄 게 있어서지
"얼마?"
"하하핫."
차현하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린 뒤 자판을 두드렸다.
-얼마가 뭐야
-나랑 결혼하면 내 돈 다 마이 숨컷 거야
"오케이, 나중에 돈 필요하면 연락할게. 그래서, 선물이 뭔데?"
자심 뒤 차현하가 마지막 채팅을 쳤다.
-이 판 이겨면 알려줄게
이내-
[근데 사이트 숨컷 ㅈㄴ 팬인 것 같은데 1위 도전하는 거 도와주려고 일부러 져주려는 거 아님?]
[일리있어]
[삼사는 어딨음?]
[몰라 일팔아]
[꺼무위키/숨컷/논란/접대게임]
그런 소리가 나올 때 즘이었다.
바텀에서 아군의 패전 소식이.
<더블 킬!>
사이트의 압도적인 승전 소식이 들려왔다.
차현하가 숨컷에게 일부러 져 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인이기에.
시청자들의 생각대로, 차현하가 정말로 그런 일을 할.
그런 일이 가능할 인간이었다면.
그녀는 지금의 자리,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뭐야 사이트 ㅋㅋ]
[이악물고 겜하네 ㄷㄷ]
[1100점을 그냥 힘으로 밟아버리네;]
[선물 주기 존나싫나봐 ㄷㄷㄷ]
[ㄹㅇ ㅋㅋㅋ]
구구절절한 설명 따윈 필요 없었다.
사이트는 플레이로써.
자신이, 챌린저 1100점 대.
랭킹50IN 대 게임에서 진심을 다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자신이 왜 국내 3대 원딜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그녀를 상대하는 최재훈의 말수 또한 집중을 위해 자연스레 줄어든다.
오늘 방송을 시작하고.
게임을 시작하고 숨컷 방송의 오디오가 최초로 비었다.
시청자들을 그걸 문제삼지 않는다.
[와 겜 수준 뭔데 ㄷㄷ;]
안 그래도 수준 높은 랭킹50IN 대의 게임이.
숨컷과 TC1 SIGHT.
각 팀의 구심점으로 인해 한 층 더 높아졌다.
그 게임은 오디오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컨텐츠가 되었다.
하이로드와 대결하는 경우에는.
같은 인간끼리 기술을 겨루는 대련 같았다면.
이 SIGHT와의 대결은.
마치, 거대 괴수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솔랭에 특화되진 않았으나 순수 기량으로.
기술이 아닌 순수한 힘으로 압도해 오는 괴물.
페이스를 상대할 때 받았던 느낌과 유사하다.
숨막히는 압박감.
그러나.
페이스 때와 비교하면 널널할 정도다.
이는 SIGHT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 보단.
포지션 다른 탓이 크다.
페이스 때는 괴물이 같은 라인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어 그만큼 난항을 겪었지만.
지금 그 괴물은, 자신의 라인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압박감이 덜하다.
그만큼 게임을 풀어나가기도 수월하다.
그렇다면.
하이로드 때와 비교하면?
마찬가지.
적어도 솔랭에선, 특수한 경우의 페이스를 제외하고 하이로드보다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승리!>
그럼에도.
하이로드와 게임을 진행하던 마스터 구간에 비해, 게임의 전체적인 수준이 월등히 높아서 그런지.
[와 ㄷㄷ 이 게임 보니까 하이로드랑 CSN하던게 걍 소꿉놀이 같아 보이네 ㅇㅇ;]
[소 꿉?]
[소를 훔치는 놀이인가요]
[아니 근데 ㄹㅇ ㅋㅋ 이판보면 페피셜이 맞는 것 같은데?]
[ㄹㅇ 숨>하>CSN가 맞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게임은 시청자들에게.
하이로드 VS CSN의 대결보다도 수준 높게 비춰진 것이다.
그러니까.
숨컷이, 그 둘보다 말이다.
페이스의 발언에 큰 힘을 실어주는 게임.
그것만으로도 SIGHT의 저격은 최재훈에게 충분한 선물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되었는데.
[그래서 선물 뭐냐 ㅋㅋ]
[선물 딱대]
진짜 선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최재훈이 기분 좋게-
"하…."
짐짓 지친 듯 한숨을 내쉬며 운을 뗐다.
"아니, 이 인간 선물 주기 진짜 싫었나본데? 이 악물고 게임하는 거 봐. 개 힘드네 진짜. 아니, 왜 이렇게 잘해. 1위 도전하면서 한 게임 중 가장 힘들었네."
힘들었다는 표를 왕창 내며, 사이트를 띄워 줬다.
현 사이트의 실력을 추켜 세워주는 건.
곧 그녀를 상대로 승리한 자신을 추켜 세우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ㄹㅇ;;; 목숨 걸고 겜하더라]
[선물이 집문서라도 됐나본데 ㄷㄷ]
[아니 근데 ㅋㅋ ㄹㅇ 빡겜하는 SIGHT 어케 이겼누 야발년ㄴ아]
[해석 = 이렇게 잘하는 SIGHT 이긴 나 개쩔지?]
최재훈이 뜨끔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와중.
사이트가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럴 리가~
-사실
-선물 그거 게임 이기든 지든 주려 했어~
"에이~ 지니까 또, 또, 어? 구질구질하게~"
-에이 왜 그래~ 마이 숨컷~
-나 기좀 살려 줘~
"아, 오케이. 그런 걸로 해 줄 테니까. 빨리, 어? 그 선물인지 뭔지나 줘 봐요."
-크~ 역시 마이 숨컷
-성격까지 사랑스럽다니까?
-그런 마이 숨컷한테 줄 선물이 뭐냐?
그때.
찰랑!
역대급으로 묵직하게 영롱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