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42화 (242/361)

242. KCC CSN 3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이로드가 나른한 듯, 사장님 의자에 몸을 기대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자세는 어딘가 딱딱하여, 긴장되어 보였다.

그래 긴장.

역시 최근들어 느껴본 적 없는 감정.

지금은 그것마저도 반가웠다.

<미니언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번 게임,

그녀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임했다.

머지않아 찾아오는 2레벨.

CSN의 2레벨 킬각.

과연 놀랍다.

하지만 이번엔 방심하지 않았기에, 죽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하이로드는 위화감을 느끼고.

깨닫는다.

자신의 플레이가 저번 게임과 다름을.

단순히 방심 여부의 차이라 보기엔 너무 클 정도로.

이는 방심을 했고 안 했고의 차이라기보다는.

알고 모르고의 차이라 보는 게 무방했다.

즉.

자신이 이번 게임에서 죽지 않은 건.

방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한 번 경험한 거라 더욱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덕분이었다.

학습하지 못했다면?

플레이는 이렇게 다르지도 않았을 것이며.

결국, 죽었을 것이다.

이가 증명하는 바.

저번 게임, 자신은 사실 방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게임에 임했고.

순수하게 CSN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CSN와의 게임을 통해, 무언가를 학습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발전했다는 사실이었다.

발전.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선명한 성취감과 만족감.

그만큼이나 선명한 고양감이, 쾌감이 일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호승적인 미소가 더욱 진해져.

마치, 자신의 유일한 절친을 아주 오랜만에 보아 반가워하는 듯한 표정이 된다.

그녀는 이론상으로만 생각해 두었다가, 아직까지 실전에서 사용해보지 않은 어떤 노림수를 시도해 보았다.

아니, 실천해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심리전을 기반으로 하는 이 노림수는.

하이로드 정도의 게임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당하는 수였기에.

잔챙이에는 반응하지 않고, 괴물에게만 반응하는 지뢰랄까?

그 지뢰에 CSN은-

"그렇지!"

반응했다.

그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환호했다.

이런 생동감 넘치며 격렬한 반응은, 하이로드가 어지간해선 보이지 않는 반응이었다.

그 때문이었다.

근처 방에 있던 매니저가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하이로드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바 문제는커녕-

하이로드는 방송을 진행할 때 누군가가 방에 들어오는 걸 질색한다.

헌데, 지금은 매니저가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열중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그런 하이로드를 잠깐 동안 쳐다본 뒤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이 분 텐션 왜 이럼 ㄷㄷ]

[아니 이거 텐션 보니까 ㄹㅇ 하이로드 아닌 것 같은데? (소름)]

[누군지 몰라도 따구리 몸에서 나와!!!]

[갑자기 언데드테일 브금 나오면서 PAPP추고 ㄷㄷㄷ 대서기관 등장하고 ㄷㄷ]

[와아아 시이이이이발 쌔앤즈 니가왜 거기서 처 기어 나와]

[와 근데 게임 수준 왜 이러냐 ㅋㅋ]

[ㄹㅇ 미드 둘이서 자강두천 찍네]

[저쪽 미드 ㄹㅇ 프로같은데?]

다소 일방적이었던 이전 게임과 달리.

이번 게임은 아주 치열하게 진행됐다.

기본적으로는 하이로드의 다소 향상된 경기력 덕분이었다.

그녀가 방심 여부와는 별개로.

그녀는 이번 게임 2레벨 깜짝 솔킬에 당하지 않았고.

게임에 임하는 자세도 훨씬 더 적극적이게 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로.

게임은 차차 기울기 시작했다.

바로, 팀의 기량 차이였다.

팀의 기량이 비슷했었던 저번 게임과 달리.

이번 게임에선, 하이로드 팀의 기량이 확연히 뛰어나 보였다.

그를 증명하듯.

게임이 팽팽하게 진행되던 와중, CSN의 팀원이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하이로드는 당연히 그걸 놓치지 않는다.

그 실수를 파고들어, 틈을 벌린다.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태풍이 되어 다른 이들을 집어삼킨다.

CSN는 용케도 태풍을 벗어났으나.

게임은 크게 기울어 버린다.

그럼에도 해결책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이로드가.

하페가 적팀의 미드일 때는 아니다.

CSN이 분투한다.

허나, 그녀 혼자서 팀원들의 부진함을 메꾸면서도.

격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하페의 운영까진 막을 수 없었다.

사면초가.

결국-

옆방에 있던 매니저는 한 번 더 격한 소란을 들었다.

"그렇지!"

짝!

하이로드가 포효하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는 소리였다.

<승리!>

[캬 ㅋㅋㅋㅋㅋㅋㅋㅋ]

[??? : 그래도 나한텐 안 된다]

[팀 차이 믿고 깝치던 텔론 컽!]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따구리!]

쿵!

쿵!

하이로드의 심장이 격렬하게 뛴다.

이 게임은, 하이로드의 진정한 승리라 볼 수 없었다.

하이로드는 팀의 기량 차이로 인해 자신이 승리한 거란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밀어닥치는 승리의 쾌감!

또 느끼고 싶다.

하이로드는 곧바로 대기실로 향해, CSN에게 말을 걸었다.

[DAORAW : 텔론 바로 큐 ㄱ]

그에, 텔론 대신 아까 후원으로 텔론의 존재 사실을 알린 시청자가 대신 답한다.

[… : 얘 한국말에 대답 안 해요]

"뭐?"

[… : 한국어 못한대요 ㅋ 지 중국인이라고 영어로 해야 듣더라고요]

"중국인?"

[아 그러고 보니 쟤 중국 프로란 이야기 들었음]

[? 누가]

[셀리온 방송 본 애들한테서]

[중국 프로 누구?]

[그냥 중국 프로래]

[중국 프로 궈우낭 ㄷㄷ]

[그냥 카더라고만 니는 셀리온 방송 본 애들이 페이스가 중국인이라 하면 믿을 거임?]

[ㅁㅊ페이스 중국인이었음?]

[이게 뭔]

[야 근데 전적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슈퍼계정 + 마스터티어까지 양학인거 보면 프로 맞긴 한듯?]

[전판도 그렇고 이판도 그렇고 잘하긴 하더라 ㄹㅇ]

[하긴 팀 차이 난다고 해도 프로 정돈 돼야 하이- 따구리 이기지]

[햇갈리는데 그냥 이 분 하이따구리라 부르죠]

[하이따구리~ 신나는 음악 틀어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어로 하셔야 합니다]

[워썅빠하따구리하오 신나는 음악 하오]

[인종차별적인걸]

[아니 근데 중국 프로면 따구리랑 아는 사이 아님?]

[그러게 따구리 중국 프로 대부분이랑 아는 사이잖아]

그러던 그때 텔론이 말하길-

[KCC CSN : 텔론 큐 ㄱ? 미안하다 이해 불가능한 한국어 번역기 사용하다 영어에 감사하다]

[아니 ㅋㅋ 저게 뭐야 ㅅㅂ ㅋㅋ]

[어이가 없네 ㅋㅋ]

[누가 봐도 짱콘데 ㅋㅋ]

[따구리님 사상 검증 함 가죠 ㅋㅋ]

[홍콩 프리 시켜 보죠 ㅇㅇ;]

[그거 시키면 이 사람도 큰일나는데요 ㅋㅋ]

[아 ㅋㅋ본점 철거 당한다고 ㅋㅋ]

[아 ㅋㅋ;;]

[이거 그냥 영어 말고 중국어로 말 걸어보면 되는 거 아님?]

[외지에서 동포 상봉 ㄷㄷㄷ]

[근데 이 사람도 중국어 못하잖아 ㅋㅋ]

[한국어밖에 못하는 중국인 두 명 ㄷㄷ]

"오빠~"

하이로드는 마이크를 끄고 매니저를 호출했다.

"이거, 내 말 좀 중국어로 번역해서 채팅에 쳐 봐."

그녀는 다시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너 중국 프로라는데, 맞아?"

[DAORAW : 너, 중국 프로라는데 맞아? (중국어)

[캬 ㅋㅋ 모국어 ON]

[? 이 사람 중국어 못한다며]

[??? : 오빠~]

[아 ㅋㅋ 그거때문에 마이크 끈 거였누]

[아 근데 ㅋㅋ 짱코쉑 암말도 못하쥬? ㅋㅋ]

[ㄹㅇ ㅋㅋ 영어 말고 친절하게 중국어로 해 줬는데 왜 암말도 못하냐고]

[짱코쉑 컽!]

채팅창에 CSN에 대한 비웃음으로 도배되던 와중이었다.

[KCC CSN : 비밀 (중국어)]

"오?"

[오?]

[머야 ㅋㅋ]

[아니 저거 ㅋㅋ 누가 봐도 해석기 돌렸네]

[ㄹㅇ ㅋㅋ 한 단어만 툭 내뱉는 거 보니 빼박임]

[문장으로 하면 어설퍼서 바로 들키자너 ㅇㅇ;]

"그러면 중국인인 건 맞아?"

[KCC CSN : 그것도 비밀 (중국어)]

[오 이번엔 좀 긴데?]

[머임? ㄹㅇ 중국인인가 본데?]

[중국인인 건 비밀이라고 중국어로 말하누 ㅋㅋㅋ]

[데베충 아니라고 말하는데 끝에 이기야 붙이는 격이고 ㅋㅋ]

지금 하이로드의 머릿속에선 검색기가 맹렬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CSN와 일치하는 특징을 가진 중국 플레이어를 대조 검색 중이었다.

그러나 하이로드의 데이터베이스에, CSN로 추정되는 중국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로드가 중국에서 한가닥 하는 기성 플레이어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녀는 아마도 신예 플레이어가 아닐까 싶었다.

[근데 슈퍼 계정 있으면 프로 아님?]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몰라도.

중국에선 슈퍼 계정을 얻기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돈만 좀 있으면 된다.

하이로드는 중국인 레오레 플레이어만이 알고 있는 그 속사정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CSN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

하이로드는 CSN의 정체도 물론 궁금했지만.

가장 큰 의문은 따로 있었다.

하이로드는 그걸 말했다.

"오늘, 더 할 거야?"

[KCC CSN : 원한다면 니가]

[KCC CSN : 사실을 고백하다 나 너 저격하고 있는]

그 대답에 하이로드가 크게 반색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KCC CSN : 물론 그만둔다 너가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괜찮지. 계속 해."

[KCC CSN : 사실 계속 할 생각이었다 너가 허락하지 않아도]

"참나. 이거 웃긴 년이네. 아, 아니. 이건 치지 마. 그러면, 바로 큐 돌려. 이 판, 복수해야지?"

하이로드는 현재 숨컷 챌린지 도전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 CSN이 저격하면, 승률이 크게 떨어져.

도전에 크게 제동이 걸릴 터였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그녀에겐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KCC CSN : ㅋㅋ 복수는 무슨 (중국어)]

[KCC CSN : 팀 차이만 아니었어도 니 이판 나한테 졌어 (중국어)]

[KCC CSN : 전 판 처럼 ㅋㅋ (중국어)]

"큭큭큭큭큭."

[ㄷㄷ 따구리 선생님 기분 좋으신 거 무야]

[저 친구 마음에 드시나 보네 ㄷㄷㄷ]

[머선129]

[나 이 사람 누구랑 대화하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거 첨 보네]

"그럼 이것만 마지막으로 묻자."

"니."

"이번 한국 서버 1위 도전 하냐?"

CSN는 잠깐 동안 뜸을 들인 뒤 답했다.

[KCC CSN : 이번 한국 서버 1위가 나인 건 맞을 거임 ㅋ(중국어)]

하이로드가 아주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DAORAW : 헛소리 하고 있네 (중국어)]

[DAORAW : 바로 큐 돌려라(중국어)]

[DAORAW : 아 맞다]

[DAORAW : 친구 요청 걸어 봐(중국어)]

[DAORAW : 니 저격 성공률 높이게 (중국어)]

그녀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린다.

이내-

띠링!

친구 요청이 온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곧바로 요청을 수락한 뒤.

게임 서칭에 시작했다.

[선생님 근데 쟤 방플하는 거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방플 아니에요. 방플 하면 다 티가 나는데, 저 사람은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잘해. 진짜, 말도 안 되게."

[ㅁㅊ;;]

[그 정도임?]

[선생님 그럼 쟤가 셀리온보다 잘하나요?]

"비교할 걸 비교해요. 저 사람 한국인에 방송 조금만 더 시작했으면 셀리온 그 사람, 지금처럼 못 컸을 걸요?"

그 추측은 사실이었다.

숨컷은 셀리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1세계에서 셀리온이란 플레이어는, 그저 그런 텔론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숨컷이라는 그림자에 묻힌.

[아니 ㅁㅊ 그 정도야?]

[와 ㄷㄷㄷ]

[쟤 누군지 알아보시겠음?]

"아니, 그건 모르겠네."

[따구리 선생님 그러면, 쟤가 어느 정도로 잘하는 건가요?]

"어느 정도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번 시즌 1위랑 2위. 저랑 쟤일 겁니다. 누가 1위인지는 장담 못하고요."

어딘가 들떠서 한 그 말을 해석하자면 이러했다.

하이로드가 공인하길.

정체불명의 중국인 KCC CSN는, 하이로드와 동급의 실력자인 것이다.

그 엄청난 발언에 채팅창이 폭발했다.

그러던 와중 올라오는 채팅.

[선생님 그럼 숨컷은요? 사람들 이번에 숨컷 vs 선생님이 라이벌 경쟁 구도로 갈 거라 생각하고 있던데요]

"숨컷이요?"

그에, 하이로드의 눈동자가 우측 상단으로 굴러갔다.

그러고 보니.

숨컷.

그도 신예 플레이어에.

텔론을 주로 다뤘었지.

설마-

'에이.'

그럴 리가.

그녀는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거둔 뒤, 헛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난 솔직히, 그 사람 조금도 신경 안 쓰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