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KCC CSN 2
<패배!>
하이로드의 화면은 한동안이나 그 창이 띄워진 채로 멈춰 있었다.
"…."
하이로드는, 그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패... 배..... 저 배는... 해로운 배다...]
[해로운 배? 해배? 패배? 배배...? 대배... 데베? 데베충들 쳐냇!]
[또 우리 잘못이노]
ㄴ강제 퇴장 당했습니다.
[게이야 우리는 '이기'야라고 말하지 '졌'야라고 말하진 않는다 이기]
ㄴ강제 퇴장 당했습니다.
[데베충들 의외로 승리의 화신이었고 ㄷㄷ]
[어쨌든 쳐내!!!]
[뭐든 매달아!!!]
[이판 인정 모대!!!!!!]
[세로로 엄상희를 완성하면 이번 게임이 무효로 된대요]
[엄]
[엄]
[상]
[니]
[엄]
[마]
[아니^^ㅣ발놈들아 그거 할 노력으로 엄상희를 했으면]
[선생님들 쌩쇼 그만 떨고 정식으로 청원 넣죠 이 화력이면 10만 서명 쌉가능]
[청원 넣는 김에 야수오 캐릭터좀 삭제해달라고 같이 넣자]
[요즘 우리 학교 학식 상태가 좀 안좋은데 이것도 좀]
[저 요즘 허리가 너무 아파요]
[무슨 절이냐고]
[수능 잘 보게 해주세요]
[ㄷㄷ 자식 둔 부모까지 보는 따구리 방송 클라스]
[내 이야긴데]
[그럼 ^^ㅣ발아 빌시간에 나가서 공부를 해]
[아니 내가 지력이 낮거든? 힘도 낮고 행운도 낮아 그럼 스텟이 어디에 갔겠냐? 당연히 신성력이지 이거 된다 함 봐라]
[일단 님 부모님 고결함 수치는 ㅈㄴ 높을것 같네요]
[망생의 부모님 ㄷㄷ]
[딱 봐라 3수엔 ㅇㅇ;; 세연대 붙는다]
[님이 재수 쳐서 대학가는 것보다 캐릭터 재생성해서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아니근데 이판 진짜 머임?]
시청자는 그런 하이로드를 보며 불타고 있었다.
하이로드를 그렇게 만든 게임을 보고 불타고 있었다.
하이로드의 숨컷 챌린지 2일차.
그녀가 현재에, 마스터에 도달하기까지 약 26전의 게임을 했으며.
24승 2패의 전적을 기록햇다.
시청자들도.
하이로드도.
그 전적에서 두 번의 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세 번째 패배를 아주 대수롭게 여기고 있었다.
이 직전 게임에서 무려 텔론 원탑인 셀리온을, 상성 상 아래에 있는 트위스트 페이트로 압살하는 가공할 만한 활약을 보여줘 방송이 열광에 도가니에 빠졌는데.
그 다음 판에 곧바로 허무하게 져 버려 찬물이 끼얹어져서?
아니.
2패까진 유지된 90%대의 승률이 3패부터는 망가져서?
이 또한 아니다.
하이로드는 이전 패배에서.
하이로드의 마스터 구간 대 패배를 가능케 하는 처참하리 만큼 끔찍한 팀원들의 무능함으로 인해 팀이 패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할 때와 변함없이 게임을 주도했다.
승리할 때와 변함없는 발군의 모습을 보이며.
그렇기에 승리할 때보다 더욱 빛났다.
난세에서 더욱 빛나는 영웅처럼.
패배하고 있는 하이로드의 팀에서, 하이로드는 홀로 이기고 있었고.
승리하고 있는 적팀에서, 하이로드의 상대는 홀로 지고 있었다.
패배했음에도 하이로드는 MVP였고.
주인공이었고.
피해자였다.
그렇기에 승리자였다.
그래서였다.
시청자들과 하이로드가 이전 패배에 태연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시청자들과 하이로드가 이번 패배에 태연할 수 없었던 건.
하이로드가 맞상대를 압도하고.
맞상대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팀들 사이에서 분전한다.
그게, 하이로드가 패배하는 게임의 기본적인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게임.
하이로드는 트위스트 페이트를 선택했다.
그에 상대방 미드는, 텔론으로 응수했다.
이번에도 셀리온인가?
아니었다.
채팅창이 [ㅋ]로 도배됐다.
당연하다.
막 셀리온의 텔론이 무참히 짓밟히는 걸 구경하고 온 마당인데, 마스터 구간대의 텔론이라니?
그 [ㅋ]는 멸시보다는, 가소로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청자들이 보기엔 'LV.100 - 텔론의 정점 셀리온' 이라는 보스 몬스터를 잡았더니.
'LV. 10 - 응애 나 아기 텔론 나도 하페랑 떠 볼래' 라는 잡몹이 나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런데.
그 응애텔론이 하페를- 솔킬을 따 버렸다.
텔론의 깜짝 2레벨 킬각.
셀리온이 해내지 못한 그것을, 응애텔론은 해낸 것이다.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연이다.
방심했다.
고로 무의미하다 여긴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일반인이 프로 상대로 조금 더 앞에서 달려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저 솔킬로 앞서나가는 것도 잠시, 곧바로 따라잡히리라.
시청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하이로드는 그런 시청자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아니, 응애텔론.
'KCC CSN'가 그 믿음을 강제로 박살냈다 해야겠다.
하이로드와 CSN의 격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벌어져.
CSN가 하이로드를 확연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CSN가 하이로드 상대로 스노우볼을 굴린 것이다.
스노우볼이란 곧 옳은 선택을 거듭해 나간다는 것인데.
레오레에서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란, 곧 상대방과의 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즉.
CSN는 하이로드를 상대로 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즉.
하이로드는 패배했다.
팀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패배.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않는다.
만약 상대가 듣도 보도 못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자타공인 텔론의 정점이자, 랭킹50IN인 셀리온이었다면?
그래도 다르지 않다.
하이로드는 자타공인 솔랭의 정점이었다.
솔랭에서 하이로드의 팀이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이로드가 패배하는 일은 없어야했다.
상대방이 페이스가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그게 하이로드 팬들의 지론이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페이스인가?
그럴 리가.
[이판 팀 상태 ㅈㄴ 안좋네 ㅋㅋ]
[적당히 좀 쳐 대주지 ㅄ들]
[정글새낀 왜 미드 한 번을 안 옴?]
[마스터 버러지새기들 ㄹㅇ ㅋㅋ]
[그러는 선생님은 티어가?]
[무지개 별 장갑]
[뭔디]
결과적으로 그론 결론이 나온다.
하이로드가 패배한 건.
팀이 부진했기 때문이고.
그러한 팀의 부진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즉.
하이로드가 아닌 팀탓이다.
하이로드가 패배했을 경우의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
말없이 <패배!>창을 바라보다, 확인을 눌러 그걸 없앤 하이로드는 그런 반응에-평소처럼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는 평소처럼 무언으로 긍정하는 것-
이 아니었다.
하이로드가 평소 자신의 패배를, 시청자들의 팀탓을 무언의 긍정으로써 부정하는 것은.
추악한 현실 회피가 아닌, 정말로 자신의 실력이 아닌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진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상대방의 강점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게 불가능했다면.
개선도 학습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 여기 최고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으리라.
그녀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게 된 건.
못하게 된 건.
정말로 자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 가는 플레이어를 어느샌가부터 만나지 못하게 되어서였다.
심지어 페이스, 그 사람조차도.
솔랭에선 자신에겐 안 될 정도였으니.
그 사람은 솔랭을 잘하는 게 아니라, 프로 게임을 잘하는 것이었으니.
솔랭에선 프로 열 명이 모여도, 솔랭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하이로드가 솔랭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우위에 있다 인정하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무언의 긍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닌.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것이다.
지금 상대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느꼈기 때문이다.
솔랭에서 최소 자신과 동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누구지…?'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이들을 꼽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간 자신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이들.
그 중에서, 텔론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그런 실력자가 튀어나왔다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허나, 없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희박하다.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정말로 이 판은 팀의 부진함을 비롯한 외부적 요인 때문에 진 거라 생각하는 게 합당할 만큼.
실제로, 자신은 텔론의 최고수 다음으로 웬 듣도 보도 못한 이를 만나서 긴장이 풀리고 방심을 하긴 했었다.
결국 하이로드는 자신의 승패 여부 판단에 대한 결정을.
KCC CSN의 실력에 대한 인정을 보류하기로 한다.
하이로드가 특히나 거슬리는 <패배!>창을 확인한 뒤, 곧장 게임 서칭을 시작한다.
그녀는 왜인지 안달이 났다.
조급하고, 근질거리는 느낌.
<게임을 수락했습니다.>
그때-
찰랑!
-따구리중독자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어 ㄷㄷ 따구리님 저 적팀으로 걸린 것 같은데 지금 여기 아까 그 텔론 있음
쿵!
하이로드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트위스트 페이트를 선택했다.
텔론을 한 번 들른 뒤에 말이다.
노골적인 메세지.
그에 KCC CSN은-
[오 ㅋㅋ]
[걔 맞나보네 ㅋㅋ]
[리벤지전ON]
[가즈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응답햇다.
상대팀에 텔론이 등장했다.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님아 텔론한테 전판 트페 어땠냐고 한 번 물어보셈
하이로드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자신이 최고였다.
그렇기에, 페이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자신에 대한 평가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에 대한 텔론의 평가를 흥미진진하게 기다리는 그녀가 있었다.
찰랑!
-따구리중독자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지가 만나 본 트페 중에 제일 잘한다는데요?
그 극찬에 하이로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았기에.
뭐지?
그러면 나는 무슨 반응을 기대했던 걸까.
그때.
찰랑!
곧이어 이어진 말에.
-따구리중독자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어 ㅋㅋ;; 그래도 자기한텐 안 된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로드.
비로소 그녀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아주 만족스러운.
동시에, 호승심 넘치는 미소를 그렸다.
이래야 이길 맛이 나지.
경쟁할 맛이 나지.
'경쟁?'
아.
그래.
그녀는 저번 게임의 승패 여부 판단을 보류했다.
CSN의 실력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그러나,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저번 게임의 승패 여부를.
CSN의 실력을.
그런데도 부정한 이유.
경쟁심 때문이었다.
지기 싫다는 경쟁심.
얼마 만일까.
이 게임을 하면서 이리 생생한 감정을 느껴본 게.
그녀는 아주 기나긴 세월 동안 경쟁자가 없는 절대적인 최고로서 군림해 왔다.
그렇게 나긋함이 몸에 배었다.
여유로움이, 몸에 배었다.
나긋함과 여유로움.
이는 따분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그녀는 따분함에 절은 것이다.
옛날의 그녀는 지금과 달랐다.
지금처럼 여유롭고 나긋하지 않았다.
너그럽고 관대하지 않았다.
깐깐했다.
유치했다.
악착같았다.
혈기 넘쳤다.
그녀의 감정은.
열정은.
이 경쟁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에 거세당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거세당한 감정이, 열정이.
비로소 되살아났다.
평소, 하이로드는 게임에서 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엔 자신이 최고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하지만 저번 게임.
게임에서 패배한 하이로드는, 아주 신경 썼다.
시청자들 말대로 방심했을 지도 모른다느니.
팀 차이일지도 모른다느니.
열심히 자신의 패배를 부정했다.
결국엔 자신이 최고일 거라는 확신이 깨진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경쟁자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경쟁자를 만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심장이 빠르게 뛰며.
호흡이 가팔라지며.
혈류가 몸을 격렬하게 헤집는 것을 느꼈다.
투쟁심으로 인한 고양감.
그 고양감은 언젠가부터-
1위를 달성해도.
하루에 수억을 벌어도.
한 끼에 수백 만 원에 달하는 식사를 해도.
수십억에 달하는 차를 사도.
수백 억에 달하는 건물을 사도.
느끼지 못하는-
쾌감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이로드가 나른한 듯, 사장님 의자에 몸을 기대는 자세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