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33화 (233/361)

233. 숨컷 챌린지 2

자고로 특별할 정도의 성공을 거둔 이들이라면, 특별한 버릇이라 기벽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것 하나 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

어떤 최고의 투자자인 누구는 조에 달하는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그날 아침 증시 시장의 추이에 따라 아침 메뉴를 프렌차이즈 햄버거집에서 고른다.

어떤 최고의 격투기 선수는, 경기 시작 전 화를 끌어올리기 위해 매니저에게 어릴적 자신의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욕해 달라 부탁하고.

어떤 최고의 보디빌더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들 수 있는 무게의 한계를 들어 올려 본다고 한다.

하이로드의 경우엔 줄자와 각도기를 동원한 mm단위의 컴퓨터 세팅이 있다.

그러한 그녀의 세팅은 아주 유명했고, 어느 날 팬들 사이에서 그런 의문이 제기됐다.

[저새기 사실 컨셉일지도 몰라]

[ㄹㅇ ㅋㅋ 좀 오바긴 해 겜하다 말고 응? 좀 이상한데? 아 역시 이러면서 키보드 1mm정도 움직이는데 ㅋㅋ]

[인간 줄자냐고 ㅋㅋ]

[wodms18 : 인간 늘자도 있냐ㅋㅋ?]

[^^ㅣ발개ㅈ같은소리좀할래진짜?]

[wodms18 : 너무하네]

[이새기 몰래 틀어놓으면 100% 눈치 못챔 헵시 극혐한다는 새끼들 눈감겨놓으면 코크콜라랑 구별 못하는 것처럼]

[구별 할 수 있는데 또 또 ㅋㅋ 깝친다]

[눈 감으면 다른 감각이 활성화돼서 오히려 더 잘 아는거 아님?]

[그럼 키스할때 눈감는것도 그런 원리임?]

[키스가 뭔데 씹덕련아]

[ㄹㅇ ㅋㅋ 지만 아는 얘기하네 ㅈ같게 ㅋㅋ]

[키스할 때 눈 감는 거 니 얼굴 가까이서 보는 거 극혐이라 그렇겠지 ㅋㅋ]

[사람 얼굴 보기 싫다고 눈 감고 다니면 님은 살면서 한번도 눈 뜬 사람을 못 봤을 텐데요]

[아니 그런데 이 새기 ㄹㅇ ㅋㅋ 키보드 1mm는 ㅅㅂ ㅋㅋ 10cm바꿔놔도 100% 모름]

하이로드가 완벽을 떠는 건 컨셉이다.

그녀가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컴퓨터 세팅도, 모르는 사이에 바꿔 놓으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시청자들은 하이로드의 매니저인, 일명 '오빠 매니저'에게 부탁한다.

직접 검증해 달라고.

매니저는 재미있어 보여 그 제안을 수락했다.

만우절.

매니저는 만우절 장난으로써, 그녀의 키보드와 마우스 패드를 아주 살짝.

툭, 하고 움직였다.

수치로 따지면 5mm 정도.

시청자들이 기대에 차서 하이로드의 반응을.

그가 컨셉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는 걸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삐뚤어져 있어."

허무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하이로드는 자리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는 즉시 눈치 채고는.

줄자와 각도기를 가져와 다시 세팅했다.

그에 시청자들은-

[주작이네]

[ㄵ]

[아 오빠~ 에바잖아]

당연히 매니저가 하이로드에게 언질을 주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뭐? 무슨 일이야."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여 놓은 게 매니저라는 사실을 깨달은 하이로드.

이런 일에 극도로 예민한 그녀가-

제목 :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월급 감봉당했어요 ㅠㅠㅠㅠㅠㅠㅠ

내용 : 여러분들 때문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잔인하기 그지없는 형벌을 내린 게 알려지자.

주작 논란은 단번에 일축되었다.

그녀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컨셉이 아님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성향은 생활 방식에도 고스란히 녹아나왔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기상과 취침 시간.

삼시 세끼를 먹는 시간과, 커피를 먹는 시간을 모두 정해 놓고 그를 철저히 준수했다.

그녀가 이를 어기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사장님 저녁 준비 됐어요~"

하이로드의 매니저, 팬들 사이에서 '매니저 오빠'라 통하는 그는.

하이로드의 방송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을 보조한다.

그에는 식사 준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하이로드는 시계를 확인했다.

평소의 저녁시간인 오후 7시 정각에서 몇 초가 흘러 있었다.

"벌써?"

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드문 일이었다.

그런 반응은, 시간에 쫓기는.

여유가 없는 이들이나 할 법한 반응이었으니.

이처럼, 지금 그녀에겐 평소와 같은 절대적인 여유가 없었다.

현재 방송 켠 지 7시간 째.

<승리!>

[와 역시 ㄷㄷ 하센세]

[하센세는 누구야 ㅋㅋ 따구리 이름에 하가 안 들어가는데 ㅋㅋ]

[아 ㅋㅋ 따선생 겜하는 거 보니까 왠지 중국의 어떤 분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ㅋㅋ;]

[하이로드 선생님... 거기선 잘 지내고 계시죠?]

[뒤졌냐고]

[어허 신토불이 한국 플랫폼인 옐로tv에서 그런 짱깨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그분 한국인 아니었나요?]

[누가 그 사람 코피 흘리는 거 봤는데 춘장처럼 검은 피가 나온다지 뭐예요]

[김치찌개 대령하니까 밥상 엎으면서 짬봉 국물 가져오라고 하는것도 봤음 ㄷㄷ]

[ㅉㅉ;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따구리로 갈아타야지]

[ㄹㅇ ㅋㅋ 따구리 겜하는거봐 그 짱깨보다 잘할듯]

[걍 학살하네 ㄷㄷㄷ]

[12승 무패가 말이 되나 ㅋㅋㅋ]

[중간에 트롤까지 만나서 질 판이었느데 걍 머리끄댕이 쥐어잡고 승리 맥여버리는 거 ㄷㄷ]

[??? : 너네는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어]

12승 무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초조했다.

그도 그럴게-

숨컷의 첫날 기록은 37승 2패.

즉 +35승이었다.

지금 흐름은 하이로드가 느끼기에도 절호조였다.

그런데도, 숨컷의 성적을 따라잡으려면 그 절호조를 14시간이나 더 이어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이로드는 <승리!>창이 떠오른 게임에서 나오고.

곧바로 게임 서칭을 시작했다.

"아, 맞다."

저녁 먹을 시간이지.

그렇게 게임 서칭을 취소했는데-

"…."

'한가하게 저녁 먹고 있을 시간이 있나?'

지금부터 최대 14시간, 최소 12시간 이상은 더 해야 하는데?

숨컷의 첫날 기록을 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저도 모르게 다시 게임 서칭을 시작했더니-

[그러고 보니 하이- 따구리 선생 저녁 먹을 시간 아님?]

[그러게]

[근데 겜 서칭 시작했는데?]

[아 ㅋㅋ 따구리 저녁 먹을 시간을 니들이 어케 알아 ㅋㅋ 이 사람은 저녁 안 먹고 계속 방송한다고 ㅋㅋ]

[ㄹㅇ ㅋㅋ 7시 땡치면 저녁 먹으러 가는 '그 새끼랑'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고민하길 잠깐.

그녀가 게임 서칭을 취소했다.

[???]

[아]

[ㄵ]

[^^ㅣ발 니들이 하도 그 짱깨 얘기해서 따구리한테 옮았잖아]

[따구리 몸에서 나와 이 짱깨년아!!!]

[짱깨 귀신 퇴마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퇴마 주문을 외쳐주세요!]

[지금 니가 뺏은 몸의 주인인 따구리가 프리홍콩을 지지한다는 걸 알고 있냐!?]

[따구리에겐 공짜로 받은 티뱃 여우 모피 코트가 있으며 심지어 즐겨입습니다]

[워샹빠니씨팔개씨팔르마맘마 (대충 따구리를 돌려달라는 중국어)]

[역겹다 빵즈 새끼들은]

[속국 새끼들은 주제를 모르나?]

[효과 오지는 거 봐 스플뎀 팍팍 들어가네]

"하…."

불현듯 솟아오르는 회의감이 한숨이 되어 흘러넘쳤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되짚어 보았다.

숨컷에게 괘씸죄에 대한 처벌로 그의 챌린지를 망치겠다는 결정.

그걸 위해, 챌린저의 기반이 되는 그의 기록을 철저히 부수겠다는 결정.

그 결정에 따라 자신은 그의 1일차 기록부터 갈아엎고자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로 중요한 건가 싶다.

자신의 컨디션.

스케쥴.

규칙을 어겨가면서 이룰 만큼 말이다.

이 1일차 기록이라 해 봐야, 결국은 전체 기록의 일부일 뿐이다.

전반전에서 1골을 먹혀도 후반전에서 2골을 넣으면 승리하듯.

자신은 결과적으로 그의 챌린저 기록인 7일을 하루… 아니, 최대 2일까지도 앞당길 수 있다.

전반전에.

1일차 기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때쯤이었다.

하이로드의 고집.

그러니까, 완벽주의적 성향이 목소리를 냈다.

지금의 너가 있는 건 내 덕분이다.

그런 내가 보기에, 방금 너가 내린 결론은 나약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러니 때려치워라.

항상 여유 넘치는 나긋한 태도에 가려져 있었지만.

하이로드는 승부욕과 향상심이 강했다.

폭발적이게 야성적으로.

그래야 그런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솔랭의 정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솔랭과 관련된 최고의 기록은 모두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설령, 그게 의미 없을 전반전 1골 짜리 기록일지라도.

어긋난 스케쥴, 컨디션은.

규칙은.

언제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애초에,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규칙 아니었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규칙을 깬다면, 그것 또한 규칙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녀는 다시 게임 서칭을 시작했다.

[오]

[속보) 퇴마 성공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프리 따구리!]

[어감좀 어케 해봐]

[크 따구리가 그 짱깨보다 방송 잘하네]

[ㄹㅇ ㅋㅋ지금 이 흐름에 저녁먹으려고 방송 끊으면 그게 프로 방송인이냐고 ^^ㅣ발]

[그 짱깨가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는 따구리가 방송의 신이며 솔랭의 신이다]

[방솔신 ㄷㄷ]

"오빠~ 오늘 저녁 먹기 간단한 걸로 갖다 줘. 햄버거라던가."

하이로드가 마이크를 끄고 말했다.

매니저는 방금 그녀에게 식사를 하라고 했었다.

지금 거실의 식탁 위에는, 그가 막 차린 저녁 식단이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오늘은 양식을 먹는 날이었기에 그에 따른 철저한 양식이.

햄버거를 갖다 달라는 건 양식은 맞았지만

그가 정성스럽게 차린 요리를 모두 버리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 알았어."

하지만 매니저는 군말 없이.

아니, 군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흔쾌히 답했다.

그러한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인한 헛수고가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매니저는 하이로드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많이 준다.

월급을.

이런 자잘한 일 따위에도 저렇게 해맑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벤픽이 시작됐다.

하이로드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선택하려다가 멈춘다.

그녀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플레이 스타일에도 역시 반영된다.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은 빈틈없이 완벽한 '운영'이었다.

비유하자면 돌탑을 쌓을 때, 평평한 돌만을 골라 수평으로 안전하게 쌓는 식이었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반면에 숨컷.

그는 플레이 스타일은 예측하기 힘든 변칙적인 '암살'이었다.

돌의 모양은 상관없이 그저 가장 높은 것들을 쌓는 식.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 때문이었다.

하이로드가 '절호조'라 느꼈음에도 숨컷보다 속도가 뒤쳐지는 것은.

숨컷은 39전 37승 2패를 기록했다.

하이로드는 39전 전승을 기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다행히 이 구간대에서는 플레이 스타일에 약간 변화를 줘도 폼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플래티넘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꽤 높은 티어였지만.

1위가 기본 전제인 그녀에겐 정말,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로 수준 낮은 구간이었으니.

하이로드는 고민했다.

자신도 하이 리스크에 하이 리턴 플레이 스타일로 임시 변경해야하나.

그렇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전승은 힘들 것이다.

아마, 37승을 달성할 동안 반드시 2패는 하겠지.

숨컷보다 조금 늦으면서도.

그와는 같은 성적인 것이다.

"…."

이른바 하위호환.

결국 그녀는 생각을 다잡았다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로.

오래 걸릴지언정.

그를 확실하게 압도하자고.

하이로드는 자신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트위스트 페이트를 선택했다.

[캬 하페 ㄷㄷ]

[아니 근데 이 구간에서 하페를 꺼낸다고?]

[하페가 아니라 따페요]

[숨컷 챌린지 중이자너 ㅇㅇ;]

[플래티넘에서 진심을 다하는 랭킹 1위 같은 플래]

[원래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자너 ㅇㅇ;]

[wodms18 : 그럼 팔자는?]

[토끼는 울고 있다]

[wodms18 : 토끼들아 토끼어~]

[아 저 ^^ㅣ발련 아까부터 꼴받게하네 진짜 현피깔래?]

[wodms18 : 자신 있어? 나 다리 긴 태권도 빨간띠야]

레오레에선 '질 판'이라는 개념이 있다.

팀 게임 특성상, 개인이 아무리 분발해도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지금 게임처럼.

게임 극 초반부.

인베 과정에서 하이로드를 제외한 이들이 전멸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조졌다리 ㅋㅋㅋ]

[인생 망했네]

[다 죽고 미드만 살았네 ㄷㄷ 뻐큐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질 때 되긴 했어]

[이판은 걍 놔주죠 ㅇㅇ;]

이번 게임.

그냥 보내주자.

그런 의견이 나온다.

하이로드가 39전 전승을 목표로 설정한 건, 숨컷의 기록을 철저하게 부수기 위함이다.

이번 게임을 패배해도.

나머지 게임에서 전부 승리하면 38승 1패로, 마찬가지로 숨컷의 기록인 37승 2패보다 높으니 전승 그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흠…."

보아하니 힘든 게임이 될 게 분명했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힘을 빼면 좋지 않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하이로드의 뜻이 한쪽으로 기우려던 찰나-

[wodms18 : 근데 숨컷은 30승까지 0패긴 했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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