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아침 식사 2
"항상… 좋았어…."
제나가 터질듯 붉어진 얼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기어들어가서, 최재훈은 끝내 듣지 못했다.
"뭐라고요?"
"…됐고. 이거, 니 반찬 없으니까 좀 먹으라고. 우리한테 다 줘서 부족하잖아."
그에 최재훈은 그녀를 보며 눈을 껌뻑이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그리곤 입을 벌리며 말했다.
"아."
그게 무슨 제스쳐인지는 명확했다.
"…."
입을 앙 다문 제나의 얼굴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움직여 제육볶음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젓가락이 최재훈의 입에
툭-
결국 닿지 못했다.
그녀가 고기를 그의 그릇에 내던진 뒤 굴에 숨듯, 식탁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 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최재훈이 실실거리며, 마지막 남은 밥과 그녀가 준 제육볶음을 먹었다.
그렇게 식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와 관련 없는 모든 걸 잊을 만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그런 식사가 끝나자, 잊었던 게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최재훈이 타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또 한 번 오두방정을 떤 방민아가 운을 뗐다.
"이번에 옐로TV에서 개최하는 멸망전으로 아주 그냥 난리가 났잖아요? 그걸 보고 저희 아메리카TV쪽에서도 질 수 없다고 느꼈는지, 대규모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거든요."
"그 뭐지, 대항전이랬나요?"
"네, 네."
"이름만 들어보면 대회에 참가하는 플랫폼이 아메리카TV 하나가 아닐 것 같은 느낌인데?"
"오오~ 역시~ 우리 오빠, 날카로워~?"
"예에~ 베이지 않게 조심하라고~?"
툭- 하고 주먹을 맞부딪힌 뒤 말을 잇는다.
"오빠 말대로. 대항전, 이름 그대로 다른 플랫폼이랑 대항하는 대회거든? 그리고 그 상대 플랫폼은-"
"아마도 .리치TV겠고."
이번에도 날카로운 최재훈.
허나 방민아는 이번엔 난처한 듯 쓰게 웃었다.
"앗…."
권지현-
"그쪽, 이번에 이야기 못 들었어?"
그리고 제나가 반응했다.
"에이~ 당연히 들었지."
"그런데 그런 제안을 한다고?"
"솔직히, 저도 망설였어요. 그런데, 아메리카TV쪽에서 나한테 이야기를 하더라고. 오빠한테 한 번 이야기나 꺼내 달라고."
제나가 비죽였다.
"그렇지. 클라이언트한테 점수 따는 거, 중요하지. '남의 입장'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에이~ 사람을 뭘로 보시고, 섭섭하네."
제나는 비죽, 방민아는 실실.
서로가 일단은 웃고 있었지만, 두 여자의 눈빛은 최재훈의 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날카로웠다.
"제가 오빠한테 이 이야기 전달해야겠다 생각한 건, 아메리카TV에서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아서예요. 오빠 사정 다 아는데도, 오빠한테 한 번 이야기는 꺼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방민아가 진지하게 그렇게 얘기하니, 제나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다.
이 이상 끼어드는 건 되려 최재훈의 의사를 무시하는 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이린이 끼어들었다.
그녀가 패드를 조작한 뒤 최재훈에게 보여주며 운을 뗐다.
"리치TV에서도 같은 용건으로 연락이 오긴 했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건 메일이었다.
송신자는 리치TV, 예의 본부장인 강선하였다.
그녀는 아주 정중하게 운을 떼며.
가장 먼저 이번 비리 사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지.
그리하여 얼마나 개선하였는지 보고하여 재차 반성과 사과의 의지를 보였다.
그리곤 현재 리치TV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기업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외부인에게, 기업의 사정을 외부인에게 곧이곧대로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에둘러 말했으나.
최재훈은 그 안에서 리치TV가 이번 엑소더스 사태와 옐로TV의 부상으로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읽어냈다.
현재 리치TV는 비리 사건으로 악화된 여론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여론 악화에는 비리 사건의 피해자를 대표하는 컷컷컷 크루의 이적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때문에, 행사를 개최하여 거기에서 컷컷컷 크루와 문제를 잘 해결했음을 공개적으로 알려 여론 반전을 꾀하고 싶다.
그걸 위해서라도 이번에 개최할 대항전에 컷컷컷 일행을 섭외하길 원하며.
상당히 높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으니 한 번 더 미팅 자리를 갖길 원한다.
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재훈이 고민 뒤 말했다.
"일단 이게, 여론 반전을 위해서라곤 하는데. 보니까, 원래 대항전 개최 자체가 옐로TV 멸망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그에 이린이 눈을 한 번 꿈뻑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오, 그럼 내가 잠깐이지만 우리 갓집자 님이랑 같은 수준이 된 건가?"
최재훈이 씨익 웃었다.
그에 이린이 "느에헿."표정이 풀어지려는 걸 참고.
차분한 웃음을 돌려줬다.
"어쨌거나. 제가 이 대항전에는 안 나가는 게 맞겠네요? 제 목표는 멸망전에 참가하는 거니까."
멸망전 참가에 실패하면 그때 가서 참가- 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이린이 고갤 끄덕였다.
"멀리 보신다면 그게 맞겠죠."
"우리 아지매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나 최재훈, 아무래도 리치TV와 아메리카TV를 멸망시킬 작정인 것 같은데?"
(웃음)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에 방민아가 실실거리며 말했다.
"아니, 오빡! 나 실직자 만드려고!? 너무해! 나 책임져 줄 거야!?"
"아지매 정도면 내 방송 조수로 써줄 수 있긴 해."
"오, 나쁘지 않은데? 임금은 어떻게 돼?"
"최저시급."
"숙식은?"
"골판지랑 진짜라면 순한맛. 4대 보험 대신, 4대 때려줄 수 있음."
"맞는 부위 고를 수 있어?"
"니가 이겼다."
방민아가 큭큭대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말 나온 김에, 나도 진짜 옐로TV 이적 각 잡아 봐? 오빠, 내가 옐로TV 가면 크루 부회장 자리 주는 거 맞지?"
"준다면 줄 수는 있는데, 부회장직에 너무 많은 기대를 바라진 마. 우리 지현 씨는 칸이고, 제나 씨는 엠페러니까. 나는 황제고. 삼두정임."
"그럼 나도 껴서 사두정으로 하면 되지."
"나럼 나도 껴서 사오정!"
"재은아, 방송인만 낄 수 있는 데야."
"나도 방송인인데?"
"니 유일한 시청자가 오빠 스토커인데, 정말로 너를 방송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응!"
"좋은 눈을 하고 있군 애송이, 장차 꽤 쓸만해지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기는 너 같은 하꼬가 들어올 곳이 못 된다. 가라. 더욱 강해져서 돌아와라."
"크윽, 오늘의 치욕. 잊지 않겠다."
"그리고, 아지매. 아지매 오면 든든하긴 하겠는데, 그래도 오라곤 못하겠네."
"왜에~"
"리치TV랑 옐로TV는 성향이랑 시청자층이 엇비슷해서 이적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아메리카TV는 아니잖아."
"하, 그렇긴 해~"
방민아가 진심이 어느정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그러면 오빠 대항전 참가 못 하는 거지? 아쉽네. 지현이랑 삼피 씨까지 껴서 넷이, 재밌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대항전 이야기가 끝나고-
"아, 맞다. 오빡! 나 그거 들었어요! 이번에, 좋은 일 하신다면서요!"
"이번에 하는 좋은 일이라고? 뭘 얘기하는 거지. 나는 하루에도 좋은 일을 오조 오억 개 정도는 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헷갈린다고?"
"크, 역시~ 그렇지. 우리 오빠한테 한 달 수익 기부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 그걸 얘기하는 거였나. 그렇지. 나한테 그 정돈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 근데, 오빠. 진짜 대박이던데? 하루 만에 2100만 원을 모금했다면서요!"
"아참, 숨컷 님. 여기-"
이린이 자료를 건넸다.
어제, 방송의 파급 효과로 인한 변화를 정리한 자료였다.
대표적인 변화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이번 SGF에서 숨컷을 알게 된 이들은 대부분 그를 그저 '텔론남', 잘생긴 남자로 알고 있었다면.
이번 챌린저에서 하루 만에 100점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후두려 맞은, 특성상 상대방에 대한 평가에 아주 인색한 빨대들이 일제히 찬양함으로써.
게임 실력을 제대로 검증한 것이다.
레오레 유저라면 이제 그 누구도 숨컷이 남자라서 못한다고, 그의 실력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그의 실력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여기를 보시면-"
이린은 숨컷 미튜브 채널의 영상을 두 종류로 나눠놓았다.
하나는 그의 게임 실력을 주로 어필한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캐릭터성을 주로 어필한 영상이었다.
게임 영상의 경우엔 게임할 때 그의 플레이를 조명하는 것이고.
캐릭터 영상의 경우엔 게임할 때 그의 리액션이라던가 반응을 조명한 것이었다.
최재훈 채널의 인기 영상은 대부분 후자였으며.
조회수 또한 후자가 상대적으로 더욱 높았다.
헌데.
어제 방송이 끝나고 게임 영상들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최재훈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라 여기는 게임 실력이 드디어, 외모와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받고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방증이었다.
슬슬 외모의 힘에 취해가고 있던 최재훈이 최근 들어 받은 인정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인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정받은 것.
바로 인성이었다.
여지껏 기부 목적의 모금 방송을 진행한 방송인들은 많았다.
하지만.
최재훈처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시기에.
한 달 동안 대대적인 컨텐츠를 진행하며 후원받은 돈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그런 엄청난 규모의 기부를 계획한 방송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러한 그의 미담은.
SGF에서 권지현을 두둔함으로써 이미 한 번 주목받았던 그의 인성.
그리고, 하루 만에 2100만 원을 모금했다는 엄청난 성과와 맞물려.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기-"
이린이 새로 보여준 자료.
제목 : 인기 방송인 '숨컷' 공익을 위한 기부 목적의 장기간 모금 시작한지 하루만에 2100만 원 모금에 성공해-
제목 : 텔론남 숨컷, 마음까지도 미인!? 부정적인 인터넷 방송 이미지 개선에 나서나?
제목 : 하루 만에 2100만 원! 인기 인터넷 방송인 숨컷日 : "아까워 죽겠네."
"잠깐, 이상한 거 하나 끼어 있는데."
다소 낯부끄러운 내용까지 있는, 바로 어제 기부와 관련된 기사 자료를 모아 놓은 것이었다.
최재훈은 멋쩍음을 느끼면서도, 감회가 새로웠다.
기사라니.
커뮤니티 사이에서 화제시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이 살면서 기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최재훈은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기사.
제목 : 숨컷, 선의의 물결 일으키나? 동료 인기 방송인들 그의 모금에 동참.
"아, 맞다. 두 분. 왜 그러셨어요. 이런 거, 안 따라와 주셔도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누가 니 때문에 한다냐? 자의식 봐라."
최재훈이 흐뭇하게 웃었다.
"재훈 씨, 저도 하루 만에 300만 원이나 모았어요! 재훈 씨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하죠!?"
"아유, 말이라고. 우리 지현 씨, 재훈 씨만큼 대단합니다. 아니, 재훈 씨만큼이 뭐야. 재훈 씨보다 대단해. 전 솔직히 빨대들 지갑 털어서 이 정도 번거거든요. 그런데? 순수한 모금만으로 300만 원 모았다? 크~"
최재훈이 진심어린 감동이 느껴지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진짜, 지현 씨.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진심으로. 아, 고마운 건 아닌가?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차라리 그거 저한테 몰래 주시지. 그러면 진짜, 어?"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헤헤헤헤헤."
기대하던 그대로의 반응, 칭찬에.
권지현의 얼굴이 마치 칭찬 받고 방실거리는 골든리트리버같이 되었다.
"하, 겨우 300만 원?"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제나가 말했다.
"가소롭네. 야, 나한테도 한 번 물어봐봐. 얼마 모았는지."
"이야, 역시 제나 씨! 1억이라니! 역시, 저보다 많이 모으셨을 줄 알았습니다!"
"…."
최재훈의 짓궂은 태도에 한껏 의기양양했던 제나가 뚱한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아, 농담. 농담. 제나 씨, 얼마나 모으셨는데요?"
"…600만."
그녀가 뚱하니 툭 내뱉자, 최재훈은 그녀를 달래듯 훨씬 과장되게 그녀를 추켜세워 줬다.
제나는 틱틱 댔지만 중간중간 미처 숨기지 못한 수줍은 미소가 새어나오는 걸 숨기지 못했다.
최재훈이 자신보다 성공하면 그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하여, 그의 성공을 두려워하던 제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그에게 인정받는 상황을 즐겼다.
"하, 뭐야. 나만 혼자 칭찬 못 받는 이 박탈감, 이 소외감 뭐야! 나도 이거 동참해야 하나?"
"그러면 저도…."
"아, 두 분 정말. 괜찮아요. 응? 이러지 마. 나 사실, 기부하는 거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 돈, 차라리 날 줘."
최재훈의 열성적인(?) 만류에, 결국 최재훈 일행의 기부는 세 명 선에서 끝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다시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 모금이 마지막에 가서 얼마나 모여 있을지.
그리하여 어떠한 파급 효과를 낳을지.
멸망전.
최재훈은 거기에 더욱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아, 맞다. 오빠. 그러고 보니, 오빠 1위 도전한다면서? 백지수표 벌칙 걸고."
"아, 예."
"오빠 진짜 대단하긴 한데…."
그녀가 다소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어?"
"후, 방민아. 날 믿지 못하는 것인가?"
"방민아!!! 실망이야!!!"
권지현이 으르렁거렸다.
"워, 워, 진정해. 아니~ 나야 우리 오빠 실력 누구보다 믿지! 잘 알지! 그런데, 그 사람 있잖아."
"그 사람?"
하이로드.
그녀가 그 이름을 언급했다.
언젠가부터 한국과 중국의 공동 솔랭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던, 솔랭의 신화.
절대자.
"그 사람, 오늘부터 방송 켜고 도전 시작한다는데. 괜찮겠어?"
그에, 최재훈이 씨익 웃었다.
"그렇지. 슬슬 달릴 줄 알았지."
"응?"
달가울 수가 없는 그 엄청난 경쟁자의 개입을 도리어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그 반응에, 그녀들이 당황스러워하던 그때.
그는 말했다.
"어디, 빨대 좀 낭낭하게 꽂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