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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229화 (229/361)

229. 아침 식사 1

"일단 들어갑시다. 요리 식을라."

"이미 식었을 듯?"

"재은아, 원효대사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려라. 뜨겁다고 생각하면 뜨겁게 먹을 수 있다."

"겨우 아침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부터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야?"

"우리는 매순간 현실과 맞서 싸워 나가고 있어. 그 결과로 지금의 너가 있는 거야."

"오… 오빠 그거 좀 멋졌어… 그러면 결과가 쌉 오지니까 난 현실 담당 일찐인 건가? 앗 뜨거!"

"앗, 무슨 일이지!"

"후… 연습차 겨울 공기를 따듯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현실을 너무 쎄게 팬 나머지-"

"아이고야! 어디 데진 않았어!?"

"1도 화상 입은 것 같은데, 바로 1도 동상 걸리게 해서 바로 낫게 했어."

"오... 역시 내 동상."

"겨우 동상? 금상이라 부르도록. 아니, 챌린저상이 좋겠어."

"미안하다. 너가 다딱이인 관계로 다딱이상이 한계다."

"그럼 차라리 황상으로 해 줘."

"뭐? 빵상?"

"깨랑까랑?"

정말이지, 볼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비쥬얼만 놓고 보면 런웨이 위나 영화 스크린 속에서 주인공으로 존재해야 할 두 남매가.

눈 앞에서 정신나간 텐션으로 티키타카를 하는 광경은 말이다.

마치, S급 배우가 떡진 머리에 떡볶이 국물 묻은 티셔츠를 입고 엉덩이를 벅벅 긁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아참, 재은아. 아까, 엉덩방아 찧은 거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내 엉덩이, 깨져서 두 쪽으로 갈라진 것 같아."

"아이고… 어떡하냐. 오빠가 다시 본드로 붙여줄까?"

"제임스 본드로 붙여줘."

"아이고… 엉덩이에 뇌까지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나 보다."

"푸흡…."

"어~ 이린 언니는 예스잼이래~"

"아니, 이린 씨…."

"크흠… 기침한 겁니다."

"…어쨌거나. 지현 씨. 지현 씨도 괜찮으세요? 아까 그 사람 붙잡을 때 어디 안 다치셨죠?"

"예! 끄덕없어요!"

"언니, 그 헬창한테 옆구리 얻어맞았다면서요!"

"아이고, 괜찮으세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최재훈의 태도에, 권지현은 기쁨을 느끼는 한편 자존심을 자극받았다.

"넹! 끄덕없습니다! 그분, 운동 좀 더 하셔야겠던데요? 하하핫!"

"어라. 아까 언니 저랑 둘만 남았을 때, '헝헝, 너무 아팡, 갈비뼈에 금간 것 같앵'이라면서 울먹이지-"

"아아아아!!! 재은 학생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에베베베베~"

"아바바바바바!"

그렇게 다시 돌아온 최재훈의 집.

최재훈의 집에 있는 식탁은 직사각형의 식탁으로 기본적으로 4인용이었다.

넓은 쪽으로 두 명씩.

하지만 좁은 쪽에도 인원을 한 명씩 배치하면 아슬아슬하게 여섯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다소 좁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이런 평범한 식사는 북적거리는 느낌이 좋다.

"편히들 앉으세요."

"난 여깅."

최재훈의 말에 최재은이 위쪽 2인용 자리의 왼쪽을 차지했다.

최재은 공석

공석 ------- 공석

공석 공석

그렇기 시작되는 숨막히는 눈치 싸움.

두뇌 싸움.

어떤 자리에 앉아야, 최재훈 옆 좌석에 앉아 상대적으로 오붓한 식사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최재훈은 여동생 바보다.

그러니, 십중팔구 최재은의 옆자리에 앉을 터.

그에 따라, 위쪽 2인용 자리 왼쪽에 앉은 최재은의 옆자리.

2인용 자리 오른쪽의 옆자리인 오른쪽 1인용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여자들이 엉덩이를 움직이려던 찰나-

"그럼 난 재은 학생 옆에 앉아야디~"

권지현이 아무런 생각 없이 최재은의 옆에 앉았다.

모두가 최재훈이 앉을 거라 기정사실로 정해 놓았던 그 자리에 말이다

자신이 반드시 그 옆자리에 앉을 거라 생각했던 여자들은, 그녀가 최재훈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기회를 뺐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권지현에게 살기 담긴 시선이 다수 날아와 꽂혔다.

"엣…?"

영문을 모르겠다는 권지현이 당황했다.

결국 자리 배치는-

최재은 권지현

공석 --------- 방민아

제나 이린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자 여기요~"

최재훈이 먼저 밥을 일일이 퍼서 그녀들 앞에 대령했다.

당장에라도 '앗, 제가 도와드릴게여!'라고 말하며 일어설 것 같은 권지현을, 여자들은 살기 담긴 눈빛으로 포박했다.

당연한 듯이 이런 걸 맨날 누리는 권지현과 달리.

지금의 상황은 여자들에게 드문 기회였다.

아까부터 최재훈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차려추는 아침상을 차려주는 상황이라니.

여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들은 그걸 만끽하고 싶었다.

"됐다."

그렇게 여자들의 밥상에 잡곡밥 + 제육볶음 + 오징어 된장국 + 브로콜리 볶음 + 오이소박이라는.

기호는 물론이며 영양 밸런스까지 고루 챙긴 아주 이상적인 조합의 집밥상이 차려졌다.

"이야, 혹시 몰라서 많이 만들어 두길 참 잘했어? 그나저나. 아침에 푸아그라에 캐비어 얹어 드실 것 같은 능력자 분들한테 너무 소박한 밥상은 아닐까 걱정되네?"

그가 자신의 밥상을 차린 뒤 그제야 능청을 떨며 자리에 앉았다.

그를 보며 미소 지은 여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밥상에 들렸다.

그렇게 그녀들은 당황했다.

다른 이들의 제육볶음과 국이 담긴 그릇은 푸짐한데 반해.

그의 두 그릇은 거의 비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오기로 되어 있었던 멤버였던 권지현과 이린이었다.

그렇게 네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뒀는데.

거기에 예정에 없었던 제나와 방민아가 추가되어 아슬아슬하게 모자라게 된 나머지.

자신의 것을 덜어 그녀들에게 배급한 것이다.

"재훈 씨…."

여자들이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이린의 말에 최재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저 간 보면서 많이 먹어 가지고. 그리고, 여러분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니까. 전 신경 쓰지 말고들 드세요."

그에 여자들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갔다.

평소 실없기 그지 없는 그가 가끔 이렇게 보여주는 성실한,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의 파괴력은 거의 반칙 수준이었다.

성공한 인생을 살아오며.

하루에 수백만 원을 벌어도.

한 끼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방문해도 별다른 감흥을 못느끼게 된 그녀들이었는데.

밥 한 끼에 이렇게 감동을 받는 게 얼마만일까.

이게 집밥의 힘인가?

여자들은 촌스럽게 괜한 소리해서 그의 배려를 무의미하게 하는 대신,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술을 들었다.

"오오옹!"

가장 먼저 권지현이 감탄을 흘렸다.

"재훈 씨! 이 오이소박이 제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것도 잘 하시는구나!"

"그거 시중 제품인데."

"재훈 씨가 제일 맛있는 걸 골라왔나봐요!"

"직원 분이 골라준 건데."

"재훈 씨가 잘 보관했나 봐요!"

"음, 듣고 보니 내가 대단한 것 같기도."

"맞아요, 맞아!"

최재훈이 수긍하자 권지현이 짜자자자자짝-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 죽는다.

경지를 넘어 세뇌에 가깝게 된 칭찬.

그런 권지현을 보는 최재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웃었지만.

어쨌거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걸 본 다른 여자들도 질세라, 열심히 음미하기 시작한다.

"으음?"

다음은 방민아였다.

"아니, 오빡!"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뭐야, 머리카락이라도 나왔어요?"

"이거 머약!"

"뭔지 몰라도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진정해."

"왜 맛있어!?"

그러고 보니, 방민아는 최재훈의 수제 요리를 먹는 게 처음이었다.

그녀 또한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재훈의 이미지를 토대로 그가 요리에 서툴 것이라 예상했다.

'오오? 비쥬얼은 의외로 멀쩡하네?'

그러니만큼 더욱 깜짝 놀란 것이다.

"아니, 오빠! 요리는 또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네?"

"후… 아지매, 실망스럽군."

"헉, 내가 오빠를 실망시키다니."

"잘 생각해 봐. 내가…."

최재훈이 잠깐의 뜸을 들인 뒤, 더는 없을 정도로 진중하게 말했다.

"나 최재훈이 뭔가를 못한다면. 그게 더 어이없는 일이 아닐까?"

"크~"

"갈채하라."

짝-짝-짝-짝-

방민아가 젓가락을 입에 물더니 큰 동작으로 갈채하기 시작했다.

"인정!!!"

짜짜짜짜짜짞.

질세라, 권지현이 물개박수를 친다.

"…."

"…."

이린과 제나는 그걸 먼 곳 쳐다보듯 바라봤다.

그녀들은 도무지 저기 저세상의 텐션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오빠, 근데 진짜, 진심, 오빠가 요리까지 잘하면 도대체 난 어떡하라는 건지, 난 모르겠다. 이렇게 매력이 넘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도대체!"

"밥이나 드시면 될 것 같아요."

"하… 부럽다 진짜. 오빠 와이프 될 사람이."

방민아가 툭하고 내뱉은 말에 여자들이 흠칫 떨었다.

"그렇지. 전생에 우주를 구했을 사람이지. 아마도 아이언우먼의 환생이 아닐까 싶어."

"오빠, 그래서 그런데. 오빠는 어떤 여자가 타입이야?"

"타입?"

최재훈의 눈동자가 우측 상단으로 향했다.

"글쎄요. 딱히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응? 어? 오빠, 설마…."

방민아가 경악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여자 만나본 적 없어?"

데이트 할 시간에 게임 하면 레벨이, 어!?

데이트 할 돈으로 치킨 사 먹고 과금하면, 어!?

그 배에 달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겜창에게 연애 따윈 사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에겐 연애를 할 여유가 없었다.

이성에 한창 관심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부모가 부쩍 바빠져 신경 쓰지 못하는 집안일을 대신 책임져야 했고.

자취하고 나서는, 집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최재훈의 경우에는 게임이었고, '최재훈'의 경우엔 공부였다.

연애와 이성 따위에 할애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이성과 연애에 대한 관심과 점정이 희미해졌다.

그 과정에서 이성에게 둔감해져, 자신에게 호감이 있었던 여자들이 꽤 있었던 것도 모르고.

최재훈은 본인이 여자와 접점이 없는 이유가 언젠가부터, 본인이 겜창아싸찐따에 매력적이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 방민아의 말을-

'알라깔라~ 재훈이 연애 한 번 못해 봤대요~'라는 팩폭으로 느끼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팩폭 당한 사람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였다.

"못 만난 게 아니라 안 만난 건데~?"

부정하며 허세부리기였다.

"왜냐~? 우리 재은이 먹여 살리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거든. 사실, 재은이가 내 여친임. 안 그래, 자기?"

최재훈이 그렇게 말하며 최재은을 바라봤다.

그에 최재은은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닫았다.

-우우욱!

그렇게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를 향해 최재훈은 말했다.

"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하지 말라고!!!!! 개역겨워!!!"

"자기 쑥스러워 하는 거야?"

"꺄아아아악!!!"

"히히히, 쑥스러워 하긴."

"정신나갈것같애!!!"

그런 둘을 옆에서 바라보는 그녀들이 '자기야'라는 호칭에 가슴이 한 번 뛰었고.

그가 연애 경험이 전무하다는 고백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요즘 시대, 여자가 남자에게 연애 경험이 없기를 기대하는 게 고리타분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 되었다곤 하나.

여자들이 그에 대해 환상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재훈 그가 원체 잘난 것도 있고.

그가 여자들을 마치 동성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도 있고.

그녀들은 최재훈이 연애 경험이 없을 거라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당연히, 여자를 한 무더기로 울렸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

'최재훈의 첫 여자'라는 업적이 그녀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반짝이는 걸 넘어서 타올랐다.

그렇게 눈을 불태우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곤, 그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

자리에서 유일하게 제나만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모처럼 최재훈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이거 어떻게 만들었냐.

원래는 아침을 어떻게 보내냐.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어냐.

따위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 대해 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만 달싹이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안 들키게 힐금힐끔 최재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그가 반찬이 모자라 밥만 끼적거리는 것을 가장 먼저 보게 됐다.

그녀가 아주 잠깐의 주저 끝에, 자신의 제육볶음이 담긴 그릇을 툭하고 무심하게 그의 자리 쪽으로 밀었다.

"응?"

그걸 본 최재훈이 무슨 의돈가 싶어 제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언짢은 것처럼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분명 평소완 묘하게 다른 그 표정이, 쑥스러워하는 표정이라는 걸 알지 못한 최재훈은 아, 하고 말했다.

"미안해, 그가 다예요 제나 씨."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자신의 호의를 표현하는 행동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

귀가 빨개지기 시작한 그녀가 말했다.

"니 먹으라고."

"응? 저요? 아, 입에 안 맞으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나가 황급히 반박했다.

이쯤이면 의도를 알아주길 바랬지만, 최재훈은 그녀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

우물쭈물하던 그녀의 얼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빨개졌을 때 그녀는 말했다.

"좋아."

'응?"

"좋다고, 니 요리…."

"오, 그래요?"

이야, 오늘 요리가 잘 되긴 했나 보네. 아니면 제나 씨가 많이 배가 고프던가. 처음으로 합격점 받았네?"

최재훈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여전히 제나의 의도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의 붉기와, 목소리의 크기가 반비례했다.

"아니…."

"응?"

"항상… 좋았어…."

제나가 이제는 거의 터질듯 붉어진 얼굴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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