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25화 (225/361)

225. 서열정리

사람을 가장 빡치게 하는 것.

그 사람의 숨기고 싶어하는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팩트 폭행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가장 빡치게 하면서도 쪽도 못쓰게 하는 것 또한 팩트 폭행이었다.

팩트 폭행을 당했다고 화를 내면 숨기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라고 밝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결과적으로, 팩폭을 당한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명 부들부들 상황이 된다.

"사심 갖고 우리 오빠랑 일하시나? 낄낄껄껄."

(이린의 구두 : 뭐야 지진이야!?)

(제나의 스니커즈 : 그런 것 같은데!?)

그녀의 신발들이 초고속미세 진동을 감지했다.

두 아싸가 인싸의 기습 팩폭에 정신을 못 차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아~ 농담이고~"

넉살 좋아 보이는 웃는 상의 인싸가 어느새 둘 사이로 다가와, 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일명 인싸동무.

인싸 동무가 인싸동무를 시전한 것이다.

숨 막히는 인싸력에 마비 증세마저 일으키는 두 아싸를 번갈아 바라보며 인싸가 말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우리 오빠한테 무슨 볼일이실까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삼백안과 특유의 분위기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자아냈다.

그에 마냥 난처하다던 두 여자의 태도가 급변한다.

인싸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상황에는 서툴렀지만.

이런 상황에는 익숙했다.

방민아 같은 '여자'가, '여자'와 관계를 형성할 것 같으면 으레 하는 일이었다.

기선 제압.

서열 정리.

"숨컷 님의 매니저로서 업무와 관련해서 상의할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이린이 말하며 어깨에 걸쳐진 방민아의 팔을 툭툭 쳤다.

정중하면서도 확실한 권고에 방민아가 씨익 웃으며 팔을 내려 놓았다.

툭.

"댁은 뭔데."

제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쳐냈다.

"우린 댁 말대로 같이 일하는 동룐데. 그러면 댁은? 댁은 뭔데 아침부터 남자 집에 이렇게 찾아왔어. 뭐, 약속이라도 잡았어? 약속은 이 인간이랑 했다는데."

낯선 적의 등장으로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하던 두 여자의 사이에 공동전선이 형성됐다.

'어쩔 수 없군, 이번만 임시 동맹이다!'

'난 아직 네놈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그런 자잘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온다!'

그런 대사를 삽입하면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방민아는 그런 둘을 실실 웃으며 바라봤다.

웃음기를 머금자 삼백안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진다.

지갑 상납 참기 LV.100쯤 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제나와 이린은 아무런 내색도 않았다.

살면서 기세 싸움으로 져 본 적이 드문 두 여자였다.

그렇게 한동안 숨막히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피식.

방민아가 마침내 마냥 살갑게 웃었다.

깔아 뭉개려는 듯 은근하고 음흉한 위압감을 거두며 말이다.

서열정리 시도 결과, 동등한 서열에 해당할 수준을 갖고 있다 판단한 것이다.

"아~ 이거. 그때는 내가 재훈 씨 일행으로 갔을 때 편집자 님이랑 삼피 씨가 외부인이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반대가 됐네? 이거 뭔가 싱숭생숭하구만. 억울하기도 하고. 반 갈라져서 베프 뺏긴 기분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남친?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이며 둘의 반응을 엿본다.

두 여자는 노려볼 뿐이었다.

방민아가 지갑을 꺼내게 하는 시선이었다면.

둘의 시선은 자리를 뜨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다른 종류의 위압감을 갖고 있었는데, 방민아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기며 능청스럽게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삼피 씨.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재훈씨 따라서 플랫폼을 옮길 생각을 다 하셨대. 완전 의리녀, 로맨티스트야? 아메리카TV에서 죽치고 있던 날 부끄럽게 만든단 말이지?"

"말 돌리지 말고, 그쪽 뭐 하러 온 거냐고."

그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손에 든 쇼핑백을 흔들었다.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바로 알아볼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별건 아니고. 우리 오빠한테-"

툭툭.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한다.

"제 마음 좀 표현하려고요. 솔직히, 마음만 같아선 매일마다 우리 오빠한테 이거랑-

팔락.

그녀가 반대쪽 손에 든 장미꽃다발을 꺼냈다.

"이거."

쇼핑백을 들썩인다.

"맨날 사 갖다 바치고 싶은데. 하, 로미오와 줄리엣. 아니지. 견우와 직녀. 응. 세계가 우릴 갈라놓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오빠한테 감사한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보답을 못하는 상황이 나오더라고요. 하,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뭐, 그것도. 이제 끝이긴 하지만. SGF 끝나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시간도 생겨서, 예. 이렇게 왔습니다."

인싸답게 말 할 기회를 줬더니 아주 청산유수로 내뿜는다.

그에 제나가 돌려줄 말은 아싸답게 실전압축되어 있었다.

"약속했어?"

"에이~ 약속이라니~ 우리 삼피 씨, 역시 선물 많이 안 줘 보셨구나? 선물은 서프라이즈죠~ 누가 선물을 어? 미리 통보하고 줘? 재미없지."

"그러는 댁은, 역시 선물 졸라게도 많이 줘 봤나 보네. 딱 봐도 남자들 졸라게 울려 봤겠어. 이제는 뭐, 그 사람 울릴 차례고?"

"제가요? 오빠를요?"

그 말에 처음으로 방민아가 불쾌한 듯 정색을 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넉살 좋게 실실 웃으며 말한다.

"에이~ 제가 우리 오빠를 어떻게 울려요. 응? 솔직히, 울리고 싶어도 못 울릴걸요? 울면 내가 오빠 때문에 울지."

"참나. 어쨌거나 결국 약속도 없이 대뜸 찾아왔다, 이거네?"

"아~ 저 슬슬 섭섭해지려 해요? 왜 그렇게 날 쳐내려고 해, 응? 사람 많을수록 시끌벅적하고 좋잖아요? 아니면, 저 혼자 아메리카TV 사람이라 배척하는 거예요?

저 그래도, 우리 오빠랑 지현이. 이렇게 셋이서 베프 먹은 사인데~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내가 왜 우리 오빠 만나는데 두 사람 허락을 받아야 되지?

두 사람, 그냥 우리 오빠 직장 동료 같은 거잖아요. 직장 동료 사생활에 신경 쓰는 거, 그거 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내가 둘 보다 우리 오빠 먼저 알았고-"

그녀가 도발하듯 피식 웃었다.

"더 친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나의 표정이 썩어들며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자 이린이 차분하게 입을 연다.

"같은 크루도 아닌 다른 플랫폼의 여성 방송인이, 남성 방송인의 집에 드나든다는 사실이 퍼지면. 양쪽 모두에게 곤란한 상황에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러면, 같은 플랫폼에 동료면 뭐. 법적으로 가족이 되나? 문제는 플랫폼이 다르고, 크루가 다른 게 아니라 성별이 다른 것 같은데. 내가 오빠 집에 들락거리는 게 문제면. 두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도 문제 아닌가?"

"…."

"…."

"…."

세 사람의 시선이 맹렬하게 교차했다.

그때였다.

"아니, 아가씨들."

위쪽, 최재훈의 집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꿀이라도 발라져 있어요? 왜 안 올라오시고들 거기에서."

시선을 향하자, 상체를 쑥 내민 최재훈이 거기에서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태양이 뜬 듯 셋 사이에 차갑게 흐르던 긴장이 단번에 녹아내렸다.

여자들의 얼어 있던 표정과 같이.

"이린 씨랑 제나 씨 슬슬 오실 때 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만. 여기서 정모를 하고 계셨네."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제나가 그제야 문자의 답장을 확인해 보았다.

[제나 : 아침 먹으러 간다]

[최재훈 : ㅋㅋ 맡겨 놓으셨나]

[최재훈 : 뭔 수금하듯 ㅋㅋ]

[최재훈 : 올 때 메론나]

"참나."

그녀가 피식하고, 평소의 조소- 이상의 어떠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악!"

방민아가 앞장서 계단을 올라갔다.

"아지매, 제가 왜 그쪽 오빠냐니깐요."

"아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이거나 받아~"

그녀가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하, 아니 뭔 꽃다발을."

여자에게 아침부터 장미 꽃다발을 받는 상황이라니.

최재훈이 그걸 받아들며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리는 걸, 여자들은 다소 다르게 해석했다.

손이 가벼운 두 여자의 얼굴이 패배감으로 젖었고.

그 얼굴을 본 방민아의 얼굴이 우월감으로 젖었다.

"역시, 오빠도 남자는 남잔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좋아해요? 제가요? 아니 선생님, 이거 일단 받으니까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이거, 도대체 어디다가 쓰라고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이거 비누로 만든 꽃이라거나, 사실 돈으로 접은 꽃이라거나. 그런 깜찍한 반전이 존재하나요?"

"아니~?"

"아이고야. 그럼 이걸 도대체 어디다가 쓴대."

"그걸 왜 여자인 나한테 물엉~"

"보니까, 꽃이 주제에 허벌나게 비싸더만. 이걸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어? 꽃이 필요 없었을 걸? 지금 내 얼굴이 활짝 피어가지고."

"에이~ 알지. 내가 오빠 마음 다 알지~ 이거, 받아바~"

방민아가 쇼핑백을 건넨다.

그러자 최재훈이 표정을 구겼다.

난처하다는 듯.

"에이, 이건 좀…."

형식상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껄끄럽다는 표정.

그런 성실한 반응에 방민아는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말한다.

"아 됐으니까, 빨랑 열어 보기나 해바바! 응?"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들어갑시다들."

"응? 나도 들어가도 돼~? 나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왔는데? 선물만 주고 갈랬는데?"

"그러면 너무 정 없잖아. 어떻게, 두 분. 괜찮으세요?"

아니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예~"

신난 방민아를 위시한 세 여자가 최재훈의 집에 들어섰다.

그러자, 왜인지 잔득 언짢아 보이는 최재은이 그녀들을 맞이했다.

"어, 재은 학생! 오랜만이에요!"

방민아가 살갑게 인사했지만-

"허니뱅 씨, 아직도 우리 오빠랑 연락해요?"

드물게 진중한 태도의 최재은이 그녀에게 거부감을 표했다.

다른 여자들은 하나 같이 쑥맥이라 오빠에게 안전(?)할 것 같고, 방송 동료라 어쩔 수 없다 쳐도.

남자 꽤나 울려보았을 거라 추정되는 방민아가 오빠에게 접근하는 게, 여동생은 영 불편했다.

'오.'

여동생!

두 여자가 난생 처음으로 여동생에게 기대란 걸 느꼈다.

"우리 재은 학생, 아침부터 기분이 왜 그렇게 안 좋으세요?"

"왜겠어요?"

그런 최재은에게.

빙만이는 쇼핑백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글쎄요. 왜일까. 모르겠네. 뭐, 그래도. 새 옷 입으면 그나마 기분 전환이 좀 되지 않을까요?"

"필요 없습니다."

곧바로 그렇게 말하려던 최재은의 눈이, 방민아가 꺼낸 무언가.

포장된 티셔츠에 고정된다.

그러더니 반짝인다.

패션에 관심이 있지만, 아르바이트 월급 전액을 가족의 빠듯한 살림을 보태기 위해 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멀리하는.

그녀가 환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명품 브랜드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티셔츠였다.

"내가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았냐면. 허니뱅 씨- 아니지, 우리 민아 언니 본지가 너무 오래 돼서 그랬지!"

"오, 그래? 재은 동생이 날 기다렸구나!"

"오늘도 안 오면 나 진짜, 울려고 했어…."

"내가 그럴 줄 알고 오늘 딱 맞춰서 왔지!"

"얼른, 드루와요! 내가 언니 주려고 다 요리해 놨으니까!"

"오, 재은 동생이 요리를? 뭘 했는데요?"

"밥솥 코드 꼽았어!"

"오, 대단한데~?"

"…."

"…."

두 여자가 자신이 몇 주 동안 공략하려 시도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한 최재은 공략을, 저 여자가 38초 만에 끝내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다.

인싸는 항상 아싸들에게서 중요한 것을 앗아가고 절망감을 주기 마련이었다.

"응?"

그때 최재훈이 이린을 보고 그런 소릴 흘렸다.

이린은 드물게 정장 바지가 아닌, 정장 치마에 검은 스타킹 차림이었다.

그녀가 썩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최재훈이 좋아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기분 전환 겸 입어 보았다.

하지만 방송인인 그가 불편해 하면 안 되기에.

절대로 사심에서가 아니라, 매니저로서 물어본다.

"이상한가요?"

아주 무표정하고 태연하게.

그에 최재훈은 잠깐의 고민 뒤-

척.

"우리 이린 씨, 뭔들 안 어울리실까."

따봉을 들며 말했다.

거기에서 진심을 느낀 이린이 생긋 웃으며 차분하게 고갤 끄덕였다.

얼굴에 힘을 잔뜩 주고 말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느에헿."하고 칠칠치 못한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제나는 그런 이린을 지나쳐서 집에 들어가면 될 걸, 괜스레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마치 줄을 서듯.

이린이 들어가자 입구에서 그녀들을 맞이하던 최재훈의 시선에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향한다.

"응?"

제나는 가만히, 삐딱하게 서 있었다.

나름대로 자세를 잡은 거다.

오늘, 그를 위해서 한 특별한 스타일링을 강조하기 위해.

쑥스럽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언짢은 표정을 한 제나가 최재훈에게 톡 쏘아붙였다.

"뭘 봐."

두근.

두근.

"아니, 안 들어와요?"

"…."

그럼 그렇지.

제나가 낙심하며 집에 들어섰다.

그때-

"근데, 제나 씨. 오늘 어디 가시나?"

"뭐?"

"아니, 오늘 패션이."

마냥 불쾌하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둥하니, 기대로 찬다.

"내 패션이 뭐. 꼽냐?"

"아니."

무호흡으로 틱틱대는 그녀를 보고 최재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귀엽네.

그 소릴 담아낸 제나의 귀가 단번에 뜨거워졌다.

"안 들어올 거예요?"

"니가 말 안 해도 들어갈 거니까 다물어."

"참나."

끌끌대는 최재훈을 뒤로하고 들어선 그녀가 난생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소 편협한, 그래서 이분적인 성관념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그 표정을 본다면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남자'의 얼굴을.

혹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그러던 그때였다.

"아, 맞다."

최재은에게 어깨 안마를 받고 있던 방민아가 말했다.

"오빠."

"왜요, 아지매."

"저희 팀 들어올래요?"

* * *

최재훈이 집 앞 계단에서 아래층의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모자에, 후드에, 마스크에.

얼굴을 완전 봉쇄한.

그럼에도 작은 얼굴과 커다란 눈을, 미모를 다 숨기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여성.

그녀가 위층에서, 그런 최재훈을.

그런 여자들을 몰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향한 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누군가가 문 너머에서 조그마한 구멍, 외시경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징…."

권지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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