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24화 (224/361)

224. D-42 생태계 교란종

최재훈이 이린의 사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었다.

그에 이린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그것은 울타리였다.

평소 이린이 방송인들에게 사심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들을 가두어 둔 울타리.

그게 허물어지고, 이린은 자각한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최재훈에게 갖고 있었던 감정을.

그에 이린이 가장 먼저 느낀 것.

자괴감.

그리고 반성이었다.

매니저가 방송인에게 사심을 느껴선 안 되는 이유가 뭔가.

그 순간, 매니저라는 직책은 방송인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니저라는 직책이 방송인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순한 목적을 가진 매니저는 본분에 소홀하여 방송인에게 피해를 줄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그에 이린은 자문해 보았다.

자신이 사심에 눈이 멀어 본분에 소홀하여 최재훈에게 피해를 줄 일이 있을까?

그에 자답했다.

추호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은 그런 한심한 이들과 다르다고.

그러니까, 그에게 사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그와 사적인 관계가 되길 바라도 되지 않을까?

괜찮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순간이었다.

방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제나가 최재훈을 바래다준다 했었다.

이는 크루원들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기회였다.

헌데, 자신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가며.

합리화를 하며.

그걸 망쳤다.

불순한 목적을 가진 나머지 본분에 소홀하여, 그에게 피해를 줘 버린 것이다.

"하."

이린이 자조했다.

자신이 경멸하던 부류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곤 말이다.

지금의 자신에겐 그에게 사심을 느낄 자격이 없었다.

그러니까, 자중하자.

그리고, 만회하자.

오늘의.

어쩌면 지금까지 저질렀을 실수들을.

초심을 되찾아 최재훈-

아니.

숨컷.

그를 보필하자.

그렇게 자격을 갖추자.

그의 매니저로서, 그에게 사심을 느껴도 부끄럽지 않을 자격을.

그녀는 오늘 SGF일로 산적해 있을 업무들을 떠올리고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던 그때였다.

-라톡!

"응?"

최재훈이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다.

문자.

이 시간에?

"누군가요?"

이린은 저도 모르게 캐묻는 듯 말하고는 아차 했다.

다짐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 재은이요. 뭔 쌉쇼를 하길래 이렇게 늦냐고 하네요."

여동생이, 성인 남성인 자신이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간다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상황에 오빠가 쓰게 웃었다.

어쨌거나 문자의 출처가 여동생이란 걸 알자 안도한 이린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이 붙잡는 바람에."

"에이 붙잡긴요, 제가 있고 싶어서 있던 거지."

그가 피식 웃었다.

이린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느꼈다.

참자.

참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어쨌거나, 이린 씨. 재차, 오늘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재훈 씨도요."

그녀가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와 악수하기 위해 벗었던 오른쪽 장갑을 다시 착용하려던 찰나-

"…."

그와 악수할 때 느꼈던, 그의 손 감촉이 떠오른다.

딱딱했다.

울퉁불퉁했다.

그리고, 차가웠다.

"…."

장갑을 벗고 있어서 차가워진 그녀의 오른손처럼.

그녀는 반대쪽 손을 바라보더니, 그 손의 장갑도 벗겼다.

그리곤, 두 손을 맞잡는다.

마치 악수하듯.

그러다가 오른손으로 자신을 얼굴을 쓰다듬는다.

무너진 울타리가 이린에게 최재훈을 향한 사심을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지만.

동시에, 그에게 갖고 있는 감정 또한 자각시킴으로서 그걸 힘들게 했다.

"느에헿…."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최재훈의 감촉을 느끼며.

그녀가 답잖게 칠칠치 못한 얼굴로.

칠칠치 못한 소릴 냈다.

* * *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장 목욕을 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단정하게 땋아 올린 머리는 풀린 뒤 아무렇게나 머리띠로 넘겨지고.

말끔한 정장은 목이 늘어난 흰 티에 색기 없는 흰 팬티가 된 탓에.

오히려 목욕을 하기 전보다 너절해 보였다.

그녀는 편집을 위해 오늘 SGF 촬영분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영상을 보는 그녀는 얼굴이 땡겼다.

그를 보고 있노라니 표정이 절로 풀리려는 걸 붙잡아 두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느에헿…."

칠칠치 못한 얼굴이 되어, 칠칠치 못한 소리를 낸다.

그러다 어떤 장면에서 문득 영상을 정지시켰다.

최재훈의 모습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정지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캡처하려고?

왜?

편집에 필요 없는 일이잖아.

그녀가 사심을 억누른다.

실패했다.

결국 캡처를 찍는다.

그리곤 그걸-

바탕화면으로 설정한다.

"…."

그렇게 저지르고 나니, 과연 이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를 향한 사심을 억누르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반성하며 다시 바탕화면을-

"아니지."

되돌리려다가 생각한다.

자신은 최재훈, 숨컷의 매니저이자 편집자다.

대표적인 업무로는, 그의 영상을 편집하는 것.

그의 영상에서 최대한 그의 매력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걸 위해,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배경화면은, 그걸 위함이다.

그렇게 배경화면을 그대로 놔둔 이린.

그녀가 그 배경화면을 응시한다.

배경화면 속 최재훈과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내친 김에, 모든 모니터의 배경화면을 각기 다른 최재훈의 사진으로 바꿔 놓았다.

그렇게 최재훈으로 도배 된 자신의 영역을 바라보더니-

"느에헿…."

답잖게 칠칠치 못한 표정이 되어.

답잖게 칠칠치 못한 소리를 흘린다.

-♪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최재훈이었다.

이린이 곧바로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전화를 받는다.

"예, 숨컷 님."

아까의 느에헿 거리던 목소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한다.

-아, 이린 씨 밤 늦게 죄송해요. 헉, 씨밤이라 한 거 아님.

그에, 이린은 또 다시 얼굴이 칠칠치 못하게 풀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는다.

-다른 게 아니라. 재은이 이 자식이 카드를 잃어버려서요.

-헝헝헝 용돈 5만원 깎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근데 얘가 차 타기 전에는 갖고 있었거든요? 차 내린 뒤에는 바로 집이고. 그래서, 혹시 이린 씨 차에 두고 내리지 않았나 해서요.

"아, 예. 안 그래도 따로 챙겨 뒀습니다. 나중에 돌려 드릴 테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에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의젓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이린.

"…느에헿."

참고 있었던 근육이 단번에 풀린다.

최재은이 카드를 놓고 내린 덕분에 그와 대면할 명분이 생겼다.

아니.

아니지.

카드가 분실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으면 그의 여동생이 크게 난처했을 테니까.

자신이 기분이 좋은 건, 그 때문이다.

"크흠."

헛기침을 한다.

마치 스스로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그리곤 다시 영상을 훑어보는 걸 재개했다.

"어…."

그러다가, 그 장면이 나온다.

'여자 친구 사태'

결국 최재훈에겐 연인이 없고 헤프닝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그녀는 무심결 떠올린다.

그가 연인이 있다고 했을 때의 그 심정을.

그에게 언제든지 연인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떡하지.

'…뭘?'

뭘 어떡하잔 말인가.

그에게 연인이 생기는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은 그의 편집자일 뿐이다.

아무런 상관도 없다.

'…아니.'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상관이 있다.

그는 방송인으로서 성공했으며, 그 성공가도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가 얻게 될 명예와 돈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런 돈과 명예를 갖게 될 그에게 접근하는 이들의 의도가, 감정이.

과연 순수할까?

아니.

필시 불순할 것이다.

그의 진짜 매력에 대해 잘 알까?

아니.

필시 모를 것이다.

자신과는 달리 말이다.

그런 이들이 최재훈의 연인이 된다?

그는 필시 불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불행은, 그의 방송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매니저로서 그렇게 놔두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

그때, 어떠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자신이, 그의 연인이 된다면?

그러니까, 사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매니저로서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와 연인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아니, 그러면 또 사심을 억누른다는 다짐이-

"하, 도대체 이게 무슨…."

그렇게 혼자서 난리를 피우고 있노라니 자괴감을 느낀다.

일이나 하자.

그녀가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머지않아, 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무표정한 걸 넘어서 기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 되어 편집을 진행한다.

* * *

그녀는 SGF에서 틈틈이 패드와 노트북으로 편집을 위한 밑작업을 해 두었었다.

그게 원래부터가 엄청난 그녀의 작업 속도에 더해져.

편집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진행됐다.

다수의 모니터에 각기 다른 편집 현황이 표시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편집이 일단락되자.

레전드 필드.

리치TV.

옐로TV.

향후 핵심 무대가 될 그것들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할 경우 확실한 도움이 되어줄 수 있도록.

미리 자료를 만들어 둔다.

다음은 업무용 이메일 확인.

과연.

업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SGF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만큼.

많은 업무 관련 문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이게 다 자신의 방송인을 향한 찬사나 다름없다.

'자신의' 방송인?

"…느에헿…. 아, 진짜 왜 이러는 거지. 정신 차리자."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집중한다.

"이 업체는… 아냐."

업무 관련 문의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로 나뉜다.

합방 관련 문의, 미튜브 합동 컨텐츠 문의, 개인 광고 문의, 그리고 행사 섭외 관련 문의.

그녀는 독보적인 정보력으로 세밀하게 메일들을 분류해 나갔다.

걸러야 할 일거리.

괜찮은 일거리.

그녀가 생각하기에, 최재훈은 괜찮은 걸 넘어서 '아주 좋은 일거리'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대부분의 메일을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아주 좋은 일거리에 해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머지않아 오게 될 테니.

평범한 강도의 업무는 살인적인 속도와 능률로 소화하자,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가 된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 있었다.

그리고.

편집이 끝나 있었다.

그녀가 영상'들'을 순차적으로 채널에 업로드했다.

-♪

숨컷의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이들의 핸드폰에 알림이 온다.

그 중 몇은 채널을 확인하고-

"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SGF영상이 벌써 올라오다니?

게다가-

"와, 이 사람. 편집자 몇 명을 굴리는 거야?"

많다.

아직 소형 채널인데 벌써 편집자를 여럿 쓰는구나. 무리 아닌가? 투자 많이 하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게다가-

영상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엄청나다.

이런 편집자는 한 명 구하기도 힘들 텐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구한 걸까.

"진짜 물 들어올 때 노 제대로 젓네."

어제 SGF에서는 다양한 일이 있었고, 그 만큼 화제가 되었다.

물이 들어온다.

아주 방대하게.

그 방대한 물줄기에서, 혼자서 노를 젓는 게 가능할까?

그걸 이린은 기형적인 업무능력으로 해낸 것이다.

영상들은 즉시 입소문을 타고 퍼진다.

어제 SGF를 가지 못하거나, SGF 방송을 보지 못해.

SGF 영상이 올라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그들에게 드디어 양질의 SGF 영상이 나타났다.

그것도, 어제 SGF의 중심이었다고 하는 숨컷의 영상이.

조회수와 구독자가 폭증한다.

머지않아, 실시간 인기 채널에 숨튜브가 자리했다.

"후…."

이린은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하암."

일어나서 기지개를 피는 둥의 스트레칭을 하자, 집중하느라 잊고 있었던 피로가 몰려든다.

슬슬 잘까.

"…아니야."

물은 아직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지금은 잘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커피와 도시락을 주문한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악착같이 업무를 이어나간다.

-라톡!

"응?"

그때 도착하는 문자.

그녀는 업무를 볼 때 모든 라톡 알림을 꺼놓는다.

방해 받아 집중이 깨진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는 기분 좋게 업무를 중단하고 문자를 확인했다.

그녀가 알람을 꺼놓지 않는 유일한 대상이 숨컷이었기 때문이다.

숨컷이 보낸 문자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안에는 그가 차려 놓은 아침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

그 아침상에, 권지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 있었다.

꿀잠을 자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개운한 얼굴을 한 권지현이 말이다.

그를 위해 밤새 일한 자신은 이렇게, 도시락이나 먹고 있는데.

"…."

[이린 : 아무리 같은 크루원이라지만 이성 방송인과 그렇게 가깝게 지내시는 건 과연 어떨는지 심히 저어되네요

"아니야…."

충동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사심으로 최재훈과의 개인 채팅방에 작성한 문자를.

이린은 고개를 내저으며 삭제했다.

그가 어떤 방송인이랑 가깝게 지내든, 그건 그의 자유가 아닌가.

하지만.

그 방송인이 여자라면?

이린은 방금 했었던 생각을 이어간다.

최재훈.

그의 성공을 노리고 접근할 속물들.

이린은 방송인으로서 그 속물들로부터 최재훈을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가 알기로 권지현은 그런 속물-

이 아니었다.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성장 가능성 또한 높고-

'….'

그녀는 거기에서 생각을 멈추었다.

더 생각하기 싫었다.

그 둘이 연인이 되는 게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사심 대신에 또 다른 진심을 문자로 보냈다.

[이린 : 부럽네요]

[최재훈 : 네?]

[이린 : 그런 가정식이요]

[이린 : 저는 요리를 잘 못해서]

[이린 : (사진)]

[이린 : 이런 걸]

[최재훈 : 아 ㅋㅋ 부러우면 와서 바꿔먹으시던가]

그 문자를 본 이린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상쾌한 아침.

식탁에 앉아 있는 자신.

그리고, 주방에서 자신을 위한.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하고 있는 최재훈의 모습이.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매니저인 자신이 그와 아침을 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

그때 최재은이 놓고 간 카드가 떠오른다.

거기에, 오늘 SGF에서의 일로 보여줘야 할 자료와 보고해야 할 정보가 많았다.

이거면 자신이 그와 대면해야 할 명분-

아니.

이유로는 충분했다.

잠시 뒤.

최재훈이 옐로TV와의 미팅을 위해 그녀를 호출했다.

밤을 꼬박 지새운 그녀는 주저 없이 그 호출에 응했다.

* * *

최재훈이 옐로TV에서의 첫 방송을 끝낸 저녁.

준비를 마친 이린이 그에게 문자를 보냈고.

어찌저찌, 그녀의 의도대로-

아니지.

어쩌다 보니 아침 약속이 성사되었다.

* * *

다음날 새벽.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최재훈의 집으로 향했다.

좋은 소식이다.

어제, 권지현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내세운 탓에 무리를 하다가 밤을 새 버렸다.

이는 그녀가 아침 식사에 합류할 확률이 낮아졌음을.

동시에 자신과 최재훈이 단 둘이서 식사를 할 확률이 높아졌음을 의미했다.

그게 좋은 소식인 건-

사람이 많이 어수선하면 보고하고 자료를 설명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사고의 소유자에서 이제는 거의 자기합리화의 화신이 된 그녀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가 거주하는 빌라에 들어서-

"…어?"

려던 찰나였다.

"…."

"…."

제나.

그녀와 마주쳤다.

권지현이 빠져서 숨컷과 단 둘(최재은은 애완동물 느낌)이서 식사할 생각에 설레던 두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와락 구겨졌다.

"…댁 뭐야. 뭔데 여깄어?"

"…숨컷님께 보고 드리고 설명해 드려야 할 자료가 있어서요. 어제, 저녁에 약속을 잡았습니다만. 삼피 님도 약속이 있으셨나요?"

"어, 어? 약속? 뭐, 그렇지?"

일방통보 후.

거절할까봐 답장도 확인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제나가 찔려서 삐질거렸다.

그에 뭔가 켕기는 게 있다 판단한 이린이 그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려다 만다.

그녀는 최재훈의 동료로서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자신에게 그녀를 평가할 자격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성으로서 최재훈을 만나러 온 것이라면?

최재훈의 조건을 노리는 속물이라, 매니저로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면?

'….'

아니.

그녀의 성격은 아주 많이 상당히 개성적이었으나.

최재훈, 그의 조건만을 노리고 접근할 속물이 아니었다.

설령 그의 조건만을 노리고 접근한다 해도.

그녀의 외모와 능력이면, 최재훈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최재훈에게 해는 안 될 대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둘이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숨컷과 가질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았으니.

뭐, 어쩔 수 없다.

권지현이 없다는 걸로.

경쟁자가 한 명 빠졌다는 걸로 만족하자.

더군다나-

'그래도 제가 이 사람 보다는….'

'그래도 내가 이것 보다는….'

둘이 속으로 서로를 아싸라 만만하게 보고, 식탁에서 대화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앞장서시길."

"댁이 말 안 해도 그럴 거였어."

여유롭게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최재훈의 집 아래층이 도착하자.

"…."

"…."

"응?"

자리에 서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선객이 그녀들을 맞이했다.

두 아싸가, 낯선 이를 보며 벙찌고 있자니.

"보자… 삼피 씨랑… 재훈 오빠 편집자셨나?"

인싸가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왔다.

호피 코트를 걸친 그녀가 선글라스를 들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우리 오빠 집에는 웬 일이시래? 이분들. 사심 갖고 우리 오빠랑 일하시나?"

인싸가 넉살 좋게 껄껄낄낄 웃었다.

인싸 알레르기에 두 아싸의 표정이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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