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빨대 3
암살자 챔피언의 암살에 의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플레이어의 반응으로는 크게 세 가지다 있다.
-아아악! 시발 깜짝이야 하느님 세상에 존나!
놀라거나.
-아니 뭐 이런 쓰레기 게임이 다 있지? 밸런스 시발 진짜.
화내거나.
그 중 마차의 반응은 세 번째였다.
"…어?"
[... 어? ㅋㅋㅋ 캠이 안 켰는데도 표정이 보이네]
[화상 지원 ㄷㄷ]
[이 새기 얼굴 상상하면 안구에 화상 입어서 화상지원인가요]
[안 그래도 얼빠진 련이 거서 또 얼이 빠져버리네 ㅋㅋ]
가장 최상위격의 반응인, 얼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녀가 빨대라는 특성상 캠을 켜지 않았음에도.
지금 그녀의 시청자들은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았다.
빨대 중에서도 스테인레스 빨대 급은 되는 마차의 입장 상.
그녀의 방송은 꽤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 중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그녀를 욕하기 위해 온 이들이었다.
그녀들은 이때다 싶어 풍악을 울렸다.
[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렙 솔킬 ㅋㅋㅋㅋㅋ]
[얘 지금 숨컷한테 솔킬 따인거 맞지? ㅋㅋㅋ]
[니가 텔론 하라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그거자너 ㅇㅇ;; 지 장례 방식 정하는 거]
[??? : 매장으로 해 드릴까요 화장으로 해 드릴까요]
[??? : 텔론장으로 해 주게]
[그냥 항문개장 같은데 ㅋㅋ]
[라임살려서 대장개장 으로 하죠]
[무슨 간장게장도 아니고]
[와 간장게장 아시는구나! 어떤 소설에서 주인공이 여동생의 계좌를 차명계좌로 이용할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양심에 찔려서 간장게장으로 부르는데!]
[저건또 뭐야 ㅅㅂ]
[좀 닥쳐 씹덕년아 그런 듣보소설을 누가 본다고]
숨컷을 그의 방송이 아닌 이 방송을 통해 보고 있는 그녀들 대부분은.
이번에 그를 '텔론남'으로 처음 알게 된 이들이었다.
아주 일반적인 사고관을 가진.
그렇기에 일반적인 선입견과 편견이 가진 그녀들에게.
성격 털털하고 게임 좋아하는 미남 방송인과, 게임 잘하는 남자를 결합시키기란 의외로 힘든 일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게임 실력은 그저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런 숨컷에게 죽은, 자타공인 고수에 속하는 챌린저인 마차에 대한 조롱은 거셌다.
그렇게 따지면 숨컷 또한 마차와 동격인 챌린저 유저였지만, 그런 것 따윈 얄미운 빨대를 욕하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니 신경 쓰지 않는다.
[괜히 빨대나 하고 있는 이유가 있네 ㅋㅋ 숨컷한테도 질 정도면]
[ㄹㅇ ㅋㅋ]
[아니 이건 빨대질도 제대로 못하는 거잖아 ㅋㅋ]
[빨대질을 하려다가 오히려 빨래질을 당하누]
[보골보골보골보골(빨대로 못빨고 오히려 불어서 기포 올라오는 소리)]
[보골보골보골보골(그나마 잘하는 게 게임뿐인 빨대색 남자한테 발리고 거품무는 소리)]
[에휴 그냥 접어라 ㅄ아 ㅋㅋ]
그렇게 숨컷에게, 남자에게 졌다며 마냥 낄낄대며 욕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 또한 이었다.
[방금 머임?]
[저게 죽는다고?]
[숨컷 뭐 한 거임?]
상대적으로 게임을 보는 안목이 높아.
마차가 죽은 게 마냥 그녀가 한심하다는 것 뿐만은 아님을 알아보는 이들이었다.
[머 어케 디진거? ㅋㅋ]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알고 싶었다.
WQ패시브 콤보가 완성되는 텔론의 2레벨의 폭딜, 그로 인한 깜짝 솔킬각은 워낙에 악명 높다.
하지만 스테인레스 급 빨대, 챌린저 빨대로서.
챌린저 600점과, 800점 계정을 보유한 최상위급 미드라이너인 그녀였다.
여느 챌린저들이 그렇듯.
자신의 라인에 오는 챔피언들에 대해 기본 이상으로 숙지하고 있었다.
주류 챔피언인 텔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욱 많이 숙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녀는 텔론을 어느 정도 잘 다루는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텔론의 숨컷이 마냥 가소로웠고.
손바닥 위에 갖고 놀 자신이 있더랬다.
그런데 2레벨 타이밍인 지금.
그녀의 화면은 지금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대체 뭔….'
2레벨이라 화면은 금방 빛을 되찾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굳은 상태로 되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라인에 복귀하며 방금 전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텔론의 2레벨 킬각은 드래곤X이도 아니고, 엑조디X도 아니며, 데X노트도, 즉사치트도 아니다.
그냥 2레벨 찍어 놓고 '너 주겅'하면 죽는 게 아니라 마땅한 밑작업.
그러니까, '각'이 필요하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모든 '각'을 경계하고,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자신이 아는 모든 각을 경계하며 내주지 않았는데도, 자신은 죽었으니까.
이는 숨컷이 자신은 보지 못하는 각을 봤다는 소리였고.
그건 자신이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려던 숨컷이, 오히려 자신보다 몇 수는 위에 있다는 방증이었는데-
'말도 안 되지.'
여러 이유로 숨컷을 자신의 밑이라 판단한 그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고로, 그녀는 길을 돌아가 그런 결론을 내린다.
'방심했어.'
너무 얕봤다며-
'꽤 하네.'
"이 사람 아주 허수는 아니네~"
선심 쓰듯 숨컷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해 준다.
이는 정말로 그를 인정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중학생이 초등학생이랑 싸우다가 코피가 터져 놓곤-
'야, 저 새끼 태권도 검은 띠임. 진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수준을 띄워줌으로써 자신의 부진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솔킬 따여 놓고 뭔 ㅋㅋ]
[님도 허수네요 원래 허수아빈데 아비없는 소릴 해서]
[어허 ㅋㅋ]
[쿨한척 역겹고 ㅋㅋ]
그 누구도 동조해주진 않았지만 상관없다.
빨대로 성공한 그녀는 남들의 눈치 따윈 정말로 엿도 신경 안 쓰는, 자기합리화와 정신승리의 화신이었다.
피라미들의 욕설론 그녀의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멘탈에 기스도 낼 수 없었다.
정신승리를 마친 그녀가 여유를 되찾고 빨대의 본분을 다한다.
숨컷을 도발한다.
-003002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 클났네 ㅋㅋ
-003002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퍼블 먹고 나한테 지면 쪽팔려서 어떡하냐 ㅋㅋ
"큭큭큭큭큭, 참나."
그에 최재훈은 정말로 우습고 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마차의 저런 뻔뻔한 태도 때문이라기 보다는.
너무 익숙한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적대하는 놈들마다-
1. [남자가 뭔 ㅋㅋ]
2.
[이게 왜 죽지?]
3. [물론 내가 방심해서지 ㅋㅋ]
4. [이제 안 봐준다 뒤졌다 ㅋㅋ]
이 원 패턴을 답습하는데.
'무슨 로켓단도 아니고….'
지긋지긋할 정도다.
'뭐, 그래도.'
자신이 랭킹 1위를 찍음으로써 확실하게 증명하면, 그의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깨끗하게 말소될 것이다.
그리고 랭킹 1위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 빨대들 다 꾸겨서 쓰레기통에 깔삼하게 슛을 조져 버리면 플래~챌 1주일 미션 프로 버스 설부터가 종식이 될 텐데.
당장 그것만 해도 저런-
[팀][지야] : 오 ㅋㅋ 재훈이
[팀][르칸] : 누나들 버스태워주려고 애 쓰누 ㅋㅋㅋ
그리고 이런 놈들에게 얕보이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함마저 느낀 최재훈은 언제나처럼 가소롭다며 피식 웃어줄 수 있었다.
"그렇지. 퍼블 따인 것보다 그게 당연히 더 쪽팔리지. 구구 절절 맞는 소리만 하시네."
[숨컷님 오타나셨어요 구질구질 처맞는 소리가 맞는 것 같아요]
[빨대새끼 ㅈㄴ 추하네 ㅋㅋ]
[아이스아메리카노 전문점 스타벅 출신 빨대 답게 쿨하고 찐한 거 보소 ㄷㄷ]
[쿨찐 ㄷㄷ]
[펀쿨섹이 아니라 퍽쿨찐 ㄷㄷ]
[아니 근데 방금 진짜 숨컷 뭐한 거임?]
[ㄹㅇ 어케 딴 거임?]
[빨대새끼 방심하고 있어서 운 좋게 얻어걸린 거 아님?]
[챌린저를 운 좋게 얻어걸려서 따? ㅋㅋ]
[숨컷 ㅈ댔네 ㅋㅋ 그 운을 챌린저 잡는데 썼네]
[ㄹㅇ ㅋㅋ 로또샀으면 1등각인데]
[얘 대리 받은 거 아니었음?]
[모르겠네]
최재훈은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 게임을 병행했다.
마차의 카타린나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덕분에 텔론의 체력과 마나는 만전에 가까웠다.
이거면 상대방 정글이 근처에 있다 해도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최재훈은 마차가 복귀하기 전에 느긋하게 미니언들을 모두 처치하여 라인을 정리한 뒤 기지로 귀환했다.
그제야 라인에 복귀한 카타린나.
두 번째 라인에서 사망한 그녀는 골드를 모으지 못해, 딸랑 포션을 두 개 더 사왔을 뿐이다.
반면에 최재훈.
세 라인 CS를 놓치지 않고 모두 챙긴 뒤 귀환하면 롱소드 한 자루를 살 돈이 모인다.
거기에 선취점이 더해져서, 롱소드 두 자루.
"마차 님, 듣고 계시죠. 이 소리?"
찰랑.
찰랑.
아이템을 구매하는 소리.
"이 두 검의 이름을 각각 닉네임, 변경권으로 짓겠습니다. 왜냐? 템 없이 맨몸으로 쳐 맞아 보면 닉네임이 마차가 아니라 미쳐가 될 거거든 . 무료 닉네임 변경권 간다, 딱 기다려라."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 기본 아이템에 해당되는 롱소드.
그 두 개 차이.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다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프로 게임에서 이러한 구도가 나왔다면 그 게임의 해설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이거! 이제 미드 혼자서 안 돼요!
-이건 카타린나가 페이스라도 사려야 합니다! 아니면 정글 부르던가! 그거 아니면 답 없어요!
마차는 챌린저의 해박한 게임 이해도로써 마찬가지로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저격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플레이 스타일과.
숨컷에게 돌려주겠다는 집념이 더해져-
[팀][카타린나] : 정글님 미드 지금 노플이니까 함 잡죠 ㄱ
정글을 채근한다.
[팀][에이코] : 지금 동선 애매한데
[팀][카타린나] : 저만 믿고 ㄱㄱ
[팀][카타린나] : 지금 아니면 안 됨 바로 와요
끈질기게.
정글은 마지못해 그녀의 말을 따른다.
정글의 입장에선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선취점 딴 스노우볼 굴리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느라 빈틈이 나올 것.
이라는 게, 마차의 근거였다.
에이코가 텔론의 사각을 어슬렁거리며 기회를 엿봤다.
그러던 그때-
"어?"
에이코를 플레이하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흘렸다.
텔론이 라인전을 하며 포지션을 옮기는 과정에서.
무방비하게 자신 쪽으로 다가오게 됐다.
[팀][카타린나] : ㄱㄱ
명백한 습격 기회.
하지만 에이코는 왠지 등골이 서늘했다.
지금 이 곳은 동선 상, 적 정글이 올 수 없는 위치인데도.
정글러의 직감이 그렇게 말한다.
이성과 직감의 충돌.
에이코가 그 두 가지 중에서 결정을 내리려던 찰나-
뾱!
"아, 씹."
무언가가 날아와 꽂혔다.
길고 우람하며 아주 많이 아픈 그것은-
"니덜리가 시발 왜 여깄어-"
니덜리의 투창이었다.
에이코의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저 텔론의 무방비한 행동은, 완벽할 정도로 감쪽같은 연기였던 것이다.
시야가 없는 그림자 너머에서 표범이 된 니덜리가 도약하며.
연기를 멈춘 텔론이 돌변해선 호다닥 달려와 벽을 뛰어넘으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