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무림 고수 2
수년 간 중국과 한국 동시 솔랭 1위을 놓쳐본 적이 없는.
HIGHROAD.
어둠의 페이스라 불리는 그녀, 오상정이 귀환을 준비한다.
"와난~"
그녀는 중국 시청자들에게 한동안의 작별을 고한 뒤, 방송을 종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 뒤, 뒤에 있는 널찍한 퀸사이즈 침대에 눕는다.
"아."
그러자 잊고 있던 게 떠오른다.
숨컷.
그녀가 특정 유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그 특정 유저가 눈여겨 볼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 경우였다.
자타공인, 솔랭의 정점에 있는 그녀의 기준에서 말이다.
그러니만큼,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녀가 VPN을 통해 아이피를 우회하여 한국 검색 사이트에 접속한 뒤, 특정 유저를 검색하는 것은 말이다.
가장 먼저 표시되는 검색 결과.
다름 아닌 텔론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었다.
다른 검색 결과들 또한 마찬가지.
"뭐야, 이게."
비쥬얼 때문에 영락없이 모델일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방송인인 이 남자가 바로 숨컷이란다.
그녀가 실소를 흘렸다.
'그럼 그렇지.'
1주일 만에 플래티넘에서 챌린저 도달.
오상정은 대수롭지 않은 일 취급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이기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알기로.
프로들을 포함시켜도,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듣도 보도 못한 남성 플레이어가 해낸다니?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남자'라면 모를까.
그러니 응당 그녀는 그러한 결론을 내놓는다.
그저 이 남자가 잘생긴 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을 극성팬 중 한 명이, 극성을 부린 것일 뿐이라고.
내 방송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인을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곧바로 흥미가 식은 그녀가 인터넷을 이리저리 떠돌다 미튜브로 접속했다.
미튜브에 접속한다는 그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는.
엄격한 검열정책에 따라 미튜브를 차단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엄연한 일탈 행위였다.
"응?"
그녀가 깜찍한 스릴을 즐기며 미튜브를 둘러보던 그때.
실시간 급상승 채널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숨컷.
그녀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해당 채널에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상.
"뭐?"
그 미션.
1주일 만에 플래티넘에서 챌린저 도달하기 미션에 대한 영상이었다.
뭐, 이 사람이 미는 밈이나 낚시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영상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1주일 만에 플래티넘에서 챌린저를 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
멈춰 있었던 그녀의 흥미와 관심이 작동한다.
그녀가 즉시 숨컷의 영상 목록을 확인했다.
SGF 텔론 코스프레 영상을 비롯하여.
인기 영상 대부분은 그의 외모가 부각되는 영상이었다.
그 외에는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모아 자극성을 극대화시킨 매드무비.
도움이 안 된다.
그녀가 찾는 영상은, 숨컷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영상이었다.
하루에 도대체 영상이 몇 개나 올라오는 거지.
구독자가 이것밖에 안 되는데 벌써 편집자를 여럿 쓰나?
구독자에 비해 조회수가 잘 나오네.
그러한 감상을 느끼며 채널을 뒤지고 있자니 머지않아 발견한다.
재생 목록 - 게임 플레이 풀 영상.
빙고.
그녀는 조회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해당 재생 목록의 영상들 사이에서.
미션 당시, 챌린저 구간에서의 게임을 골라 재생했다.
영상을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이 머지않아 구겨진다.
그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여기서 이런 판단을 한다고?
이런 플레이를 한다고?
왜?
영상 속 숨컷이 납득이 안 되는 플레이를 거듭했다.
그녀는 의문을 품고 다른 영상을 확인한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떠오른 이채가 더욱 진해진다.
"타임 앤드 포빌라 듀오를?"
솔로 랭크에 한에서는 어지간한 프로들 이상 가는.
그녀가 인정하는 솔랭 실력자 중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한 둘이었다.
그리고, 그 둘은 그녀가 생각하는 '1주일 만에 플래티넘에서 챌린저에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력자'이기도 했고.
숨컷은 그런 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플레이를 거듭하며.
어떤 의미에서 납득이 안 되냐 하면.
어떻게.
이 남자가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건지가 납득이 안 됐다.
어떻게 알고?
레오레라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이거니와.
솔랭에 대한 이해도가 극에 달해야 가능한 판단과 플레이였다.
그녀가 알기로 그런 조건을 두루 만족하는 이는 한국 레오레 판 전체를 통틀어도 열 명이 채 될까 말까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우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우연이 계속되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사실이고, 실력이었다.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확실한 근거랑 기준을 갖고있음을.
그러니까.
이 '남자'가.
한국 레오에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솔랭 실력자임을.
'1위에 도전한다라….'
이 정도면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힘들 것이다.
1등은 나다.
페이스가 변덕으로 참전을 결정해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다른 영상들을 확인해 나갔다.
하지만.
그의 수준을 인정하자, 그의 플레이는 더 이상 놀라울 게 없었다.
자신은 치밀한 운영으로 게임을 차근차근 확실하게 쌓아가는 스타일이고.
그는 과감한 암살과 로밍으로 게임을 뒤흔드는 스타일로서.
서로 상이했으나, 또 근본적으로는 같았다.
그는 자신과 유사한 판단과 플레이 기준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솔랭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비교하기가 쉬웠다.
평가하기가 쉬웠다.
이 사람은, 자신의 하위호환이다.
이 사람의 판단은, 플레이는.
전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
그게 그녀가 숨컷의 미션 당시 플레이 영상 대부분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마지막 게임, 단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미 타임 앤드와 포빌라 듀오.
LKL 1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상대한 게임을 확인했다.
그 이상 가는 게임이 나올 리가 없는데, 더 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영상을 하나 남겨 놓고 그만두자니.
그녀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모니터의 각도를, 책상과 의자 사이의 거리를, 마우스와 키보드 사이의 거리를.
게임 환경을 자와 각도기를 사용해 일일이 세팅하며.
기존에 사용하던 마우스가 고장 났는데 새로 구하려 하자 단종 되었다는 걸 확인하곤 거금을 들여 주문제작을 한 그녀의 병적으로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이미 유명했다.
이미 흥미와 관심이 소진된 그녀는 차게 식은 태도로, 의무적으로 마지막 남은 영상을 재생시켰다.
따분하다는 얼굴로 영상을 빠르게 훑어나간다.
그러다-
"어?"
멈추고, 다시 세밀하게 관찰한다.
상대방 진드라.
상태가 이상하다.
어떻게 이상하냐면-
너무 잘한다.
그녀가 분석한 바.
숨컷의 라인전 능력은 S급이었다.
프로를 기준으로 해도 말이다.
그런 숨컷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리 상성 상 진드라의 아래에 있는 텔론이라 해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진드라에 대입시켜 보았다.
불가능하다.
저 정도로 숨컷을 물어붙일 순 없을 것 같다.
이번엔 자신을 텔론에 대입시켜 보았다.
텁.
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
그렇게 그녀가 내린 결론.
저 진드라는 완벽하다.
진드라로 보여줄 수 있는 100%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알기로.
그게 가능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페이스….'
페드라.
그건 하나의 재앙이었다.
만나면 압도적인 격차에 벽을, 한계를,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미드 라이너들의 재앙.
그녀는 다시 흥미에 불이 붙는 걸 느꼈다.
그녀 숨컷의 입장에 이입해 보았다.
자신이 텔론일 경우, 어떻게 해야 페드라에게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
그 해답은 곧바로 나왔다.
팀 차이.
탑과 봇에서 무언가를 해 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게.
팀의 버스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숨컷.
그는 과연 어떨까.
"응?"
그렇게 기대로 눈을 반짝이던 그녀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숨컷의 플레이가 이상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나쁜 의미로 납득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의 끝은-
[선취점!]
최악이었다.
진드라에게 선취점을 줘 버렸다.
이젠 저건 아무도 못 막는다.
그녀는 끝까지 숨컷의 플레이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실망하고, 기대를 거두었다.
그가 부활하기 전에 영상을 종료했다.
그가 자신에게서 1위를 쟁취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숨컷의 플레이로 인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텔론의 입장인 경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팀에게 기대는 것 외에 마땅한 방안이 없다고 판단한 게임에서.
그가 오히려 능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팀들을 이끌어나가고, 결국엔 캐리를 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말이다.
* * *
오상정이 중국 솔랭 1위를 달성한 다음날 아침.
그녀는 이미 한국에 도착해 있었다.
"오빠, 사람들 이미 왔다 간 거지?"
"어~"
강남구 XX동에 위치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일실.
그녀는 주기적으로 사람을 시켜 관리를 해 놓은 그곳에 몸만 가져가서 곧바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 됐다.
"…."
그렇게 그녀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 마자 한 일.
곧장 컴퓨터 앞으로 향해.
모니터의 각도,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의 거리.
의자의 높이 따위를 온갖 도구를 이용해 병적으로 확인해가며 세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뒤.
그녀가 특유의 사장님 의자에 앉아,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끌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 보기도 하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고 난 뒤에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갤 끄덕인다.
비로소 오랜만에 고향집에 돌아온 사람의 얼굴이 된다.
컴퓨터를 켠 그녀는 곧장 또다른 고향인, 레오레 한국 서버에 접속했다.
다음은 또 또 다른 고향, 한국 방송 플랫폼에 접속하려니-
"하."
기분이 착잡해진다.
그녀의 방송 생활은 옐로TV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지금은 호야TV에서의 활동이 주고, 옐로TV에서의 활동은 취미가 되어버렸으나.
그녀는 아직도 옐로TV를 고향으로 느끼고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런 옐로TV는, 점점 무너져가는 중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얼마나 더 상황이 안 좋아졌을까.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옐로 TV에 접속했다.
"…?'
그리고 당황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판자촌이, 신축 빌딩이 되어 있었다.
-따라다란단~
그녀의 머릿속에 한 BGM이 재생되었다.
옛날, 참가자의 집을 대신 리모델링 해 주는.
러블리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의 BGM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