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Sㅜㅁ컷 2
"아, 맞다. 오빠. 잠만."
"응?"
"오빠 지금 그거, LKL팀들한테 바로 거절한다고 보내려는 거지."
"응, 그런데?"
"그거, 만약 오빠 방송인으로 참가 못할 때 대비해서. 혹시 모르니까 남겨두는 게 낫지 않아?"
"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훗."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못된 생각이다 재은아. 우리 때문에 마지막까지 방송인 안 구하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우리가 '어 통과댔음, 안 함 수고링.' 하면. 그 사람들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야지, 재은아."
"내 알 반가?"
"음, 오빠가 널 잘 키운 건지 잘못 키운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재은아, 뭣보다 그거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최재훈이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오빠, 반드시 참가할 거거든."
귀를 후비적.
코를 후비적.
"아, 예."
"너무한다 진짜, 오빠 울려야지 속이 풀리겠니."
최재훈은 권지현의 물개박수 소리를 그리워하며 핸드폰을 두드렸다.
[최재훈 : 아 네 머그컵 님]
[최재훈 : 마침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팬미팅2 : 아 ㅎㅎ]
[팬미팅2 : 네 ㅎㅎ 접니다 머그컵]
그렇게 답장을 보내자마자, 원래의 우쭐 모드로 돌아온다.
최재훈은 저걸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하나 고민했다.
[최재훈 : ㅋㅋ 다시 생각해도 얼떨떨하네요]
[최재훈 : 머그컵님이랑 ㄷㄷ]
이 정도면 되려나.
[팬미팅2 : 맞습니다!]
[팬미팅2 : 엄청나게 특이한 경우입니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저 채팅이, 그녀 특유의 말투로 자동번역이 되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희은 : 재훈 씨는 엄청 운이 좋으신 검다!
"음…."
"너 지금 그거 누구랑 카톡하는 거야?"
"머그컵."
"미-친. 구라? 봐바."
"안돼, 임마. 중요한 얘기 중임."
"이씽."
여동생의 반응을 보니까 엄청 운이 좋은 거긴 하나 보다.
오빠로선 잘 와닿지가 않지만.
김희은 : 그래서 말임다!
김희은 : 그때 말씀 드린 거
김희은 : 준비되셨슴까? ㅎㅎ
난처하다.
나를 자신의 광팬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기고만장한 사람을 어떻게 퇴짜를 놓아야 하나.
방송인으로서 따로 대회에 참가할 거라, 솔직하게 말하는 게 베스트긴 한데.
김 팀장과 자신의 대회 참가 여부를 개최 직전에 결정하기로 한 시점에서.
이미 결정된 양, 참가한다고 함부로 발설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희은이 이 일에 대해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최재훈은 그걸 고려해서 문자를 보냈다.
* * *
"희은아, 이 사람이 진짜 니 광팬이라고?"
그녀의 곁에서 빼꼼, 김희은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던 한시영 감독이 못미덥다는 투로 말했다.
방금 전.
미희은은 한시영에게 멸망전에 관해 숨컷의 확답을 받을 수 있겠냐 물어봤고.
김희은은 가능하다 했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그도 그럴게, 그는 자신의 팬이었으니까.
그냥 팬도 아닌 광팬!
평소,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능청스러운 숨컷이다.
그런데-
김희은은 당시 자신이 마스크를 벗고 정체를 밝혔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을 보자, 답지 않게 당황해서는 눈치를 보기 바빴던 그의 모습을.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그가 자신의 앞에서만 팬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김희은은 엄청난 우월감과 우쭐함을 느끼며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팬미팅2 : 숨컷 씨 접니다! ㅎㅎ]
[팬미팅2 : 지금 대화 가능하시죠?]
그는 예상 대로, 자신이 문자를 보내자 마자 확인했고.
곧바로 답장을-
"광팬이라기엔, 답장이 좀 늦는데?"
"이건 답장이 좀 늦는 수준이 아니라 그거잖아."
역시 빼꼼, 상황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한마디씩 보냈다.
연락처도 알겠다, SGF 이후 줄곧 접촉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먼저 행동을 취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문자를 보낸 순간 신나서 답장을 보냈어야 했을 텐데.
그런데, 한참 동안 답이 없다.
소위-
"읽씹이네, 이거."
그렇게 불리는 행위.
이상하다.
기세등등하던 그녀가 소침해져서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낸다.
[팬미팅2 : 숨컷 님 ㅎㅎ...?]
[팬미팅2 : 저 김희은]
[팬미팅2 : 머그컵인데 ㅎㅎ;]
그에 팀원들이 푸핫, 웃음을 터뜨린다.
"아니, 저기요. 저 김희은인 머그컵 씨. 뭐하세요."
"머그컵 씨, 숨컷이 니 광팬이라면서요. 관심도 없는 것 같은데요?"
"혹시 미친듯이 패서 광팬인 거냐?"
"방금 그게 다 망상이었냐… 레전드다 진짜 희은아. 좀 소름끼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하, 새끼. 니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렇게 사냐. 니 좋다는 남자들이 널렸는데. 정신 차려."
"이씨…."
그녀들이 한마디씩 거둘수록 그녀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그러던 그때였다.
[최재훈 : 아 네 머그컵 님]
[최재훈 : 마침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드디어 답장이 왔다.
"오오오!"
"왔다!"
냉랭했던 팀원들의 분위기가 급격히 달아올랐다.
그에 김희은은 다시 우쭐해지며 문자를 보낸다.
[팬미팅2 : 아 ㅎㅎ]
[팬미팅2 : 네 ㅎㅎ 접니다 머그컵]
"아니, 이 새끼 도대체 뭐 하냐!?"
"아니, 김희은인 머그컵 씨!!! 적당히 좀 하세요! 저희가 다 쪽팔리니까!"
"아무리 봐도 광팬은 닌 것 같아."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숨컷이 자신의 광팬이라는 김희은의 발언이 신빙성을 잃어갔다.
그러던 그때-
[최재훈 : ㅋㅋ 다시 생각해도 얼떨떨하네요]
[최재훈 : 머그컵님이랑 ㄷㄷ]
"아니?"
"뭐야?"
뭔가 의미심장한 발언.
쭈우우우욱-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김희은의 어깨가 승천하는 소리였다.
[팬미팅2 : 맞습니다!]
[팬미팅2 : 엄청나게 특이한 경우입니다!]
[팬미팅2 : 재훈 씨는 엄청 운이 좋으신 겁니다!]
[팬미팅2 : 그래서 말입니다!]
[팬미팅2 : 그때 말씀 드린 거]
[팬미팅2 : 준비되셨습니까? ㅎㅎ]
그녀는 그렇게 신나서 문자를 작성한 뒤.
우쭐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 같은 얼굴로 팀원들을 쳐다봤다.
'어떻슴까?'
그런 말이 들리는 표정.
팀원들은 죽빵이 마려웠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
한시영이 기대에 찬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어?"
실망한다.
돌아온 답장에.
[최재훈 : 그]
[최재훈 : 일단 죄송합니다]
[최재훈 :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최재훈 : 힘들 것 같습니다]
TEAM BAY에겐 참으로 유감인 일이었으나.
TEAM BAY의 선수들은 기꺼이 그 유감을 이겨내고, 재밌어 뒤지겠다는 얼굴로 김희은을 바라봤다.
그녀의 코와 어깨가 납작해지는 걸 지켜보기 위해.
"…."
그녀가 당황하여 곧장 답장을 보낸다.
김희은 : 왜 그러심까?
김희은 : 뭐가 문젬까?
김희은으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방송인이었고.
방송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팀BAY가 그에게 한 제안은 따내고 싶어 미칠지언정.
거절할 수는 없는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랑 같이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을 가장 존경하는 게이머라고 했는데.
그런 자신과 공식 대회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최재훈 : 아 문제라기 보다는
최재훈 : 따로 이유가 있어서요
김희은 : 무슨 이유임까?
최재훈 : 아 ㅎㅎ;; 말씀드리기에 좀 뭐한 이유라서
이런 제안을 거절해야 하는 이유.
자신에겐 말 못할 이유.
딱 하나 짚이는 게 있었다.
"차현하."
김희원이 중얼거렸다.
차현하가 정체를 공개했을 때.
그녀는 최재훈에게 무언가를 제안했고.
그 제안은 정황상, 자신이 한 제안과 같은 제안일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팀이 TC1이라 했던 게 떠올랐다.
최재훈.
그는 차현하를- 아니.
TC1을 택한 것이다.
'어째서…?'
그래도 자신을 제일 존경한다 하지 않았었나?
그녀는 격렬한 고뇌 끝에 결론을 내린다.
차현하든 TC1이든, 무슨 짓을 한 거라고.
김희은 : 설마 이미 팀에 들어가신 검까?
최재훈 : 그건 아닌데...
"휴."
뒤에서 한시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직 기회는 있다.
김희은 : 그러면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 해 주시면 안되겠슴까?
음.
그렇지.
아마도, 이거 제안하기 위해 팬미팅에 참가했었을 텐데.
이렇게 문자 딸랑 보내서 거절하는 건 상도덕이 많이 없는 짓이지.
최재훈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김한희, 그 인간 진짜 너무하네…."
자세한 일정은 향후 결정하기로 하고 대화가 일단락되자.
TEAM BAY의 감독인 한시영이 TC1 감독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기어코 여기에서까지 다 해 쳐 먹어야 만족스러우시겠다.
TEAM BAY의 에이스인 김희은도 TC1을 떠올리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얻어낸 시간동안 반드시 그의 마음을 돌리리라.
TC1에서 다시금 뺏어 오리라.
김희은과의 대화를 마친 최재훈은 다음으로-
"뭐, 봤으니까 언젠간 답장 보내겠지~"
김희은에 비해 차분하게,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던 차현하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TEAM BAY숙소에서 일어났던 일이 반복된다.
"응?"
당연히 그가 수락할 거라 여겼던 차현하의 예상을 깨고-
[최재훈 : 죄송합니다]
"풉."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라면서요."
"이건 좋지 않네요."
"아니, 뭐지?"
차현하 역시 당황스러워 한다.
그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레오레 방송인이, 이러한 빅 이벤트에서 TC1와 함께 참가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말이다.
방송인으로서 참가하려고?
아, 이건 아니다.
TC1이 알기로는, 이번 멸망전 참가 방송인들은 최소 구독자 100만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숨컷의 구독자는 20만 안팎이었고.
차현하 :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김희은 때와 같은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말 못할 이유가 있다고.
'도대체 뭐지?'
그러다 떠올린다.
다른 LKL팀들의 개입을.
그리고.
자신 말고 또 한 명의 팬미팅 참가자.
그녀가 은연중에 데스베이더 탈 너머로 내비췄었던 특유의 말투.
"김희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TEAM BAY에서 최재훈을 채간 것이다.
그게 차현하가 내린 결론이었다.
왜?
TC1의 팬이라 하지 않았나?
내 팬이 아니었나?
어째서 TC1대신 TEAM BAY를?
무슨 수를 썼겠지.
차현하 : 이미 팀에 들어가셨어?
아직.
다행히 아직 기회는 있다.
차현하 : 혹시 만나서 이야기 가능하신가?
최재훈은 데자뷰를 느끼며 승낙했다.
"하, 팀 베이가 말이지."
김한희 감독이 한시영을, TEAM BAY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차현하가 김희은을 생각하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LKL의 양대산맥인 두 팀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옆동네에서 잘 놀고 있는.
서로에게 있지도 않은 숨컷을 쟁탈하기 위해.
* * *
"재훈 씨, 오늘 화이팅!"
짜짜짜짜짜짜짝.
"지현 씨도요. 화이팅!"
최재훈이 SGF 이적 발표를 한 다음날.
드디어, 두 번째 처음의 시간이 다가왔다.
옐로TV에서의 두 번째 시작.
최재훈은 문득 옛날이 떠올랐다.
방송에 대해 알아보곤 아무것도 없이 다짜고짜 처음 방송을 켰던 그때를 회상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10분이 넘게 하염없이 시청자를 기다렸다.
그렇게 처음으로 들어온 시청자는-
"아."
실컷 까기만 하다 기념비적인 첫 미션금을 꿀꺽하고 빤스런 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다.
그런데도 만감이 교차한다.
마치, 게임을 한 번 클리어하고 2회차를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시작이라는 건 같지만, 시작이 달랐다.
당장 다음 달의 집세와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액의 방송 장비들이 갖추어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을 켠 뒤 5분이고, 10분이고.
첫 시청자들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문 너머로, 쌰따를 올리는 순간 꾸득꾸득 밀려들어올 시청자들이 느껴졌다.
최재훈은 피식 웃으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