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Sㅜㅁ컷 1
"깜빡하고 있었네."
"뭘?"
최재훈이 문자를 확인하곤 중얼거리자, 목욕을 하고 나온 최재은이 그걸 이어받았다.
"뭐냐면- 아니, 이 정신 나간 가시내야."
"뭐지. 귀여운 여동생이 뭘 깜빡한 건지 물어본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빵댕이 흔들면서 목욕해 가지고 기모찌 스텍 낭낭하게 적립했는데, 갑자기 맘이 팍 상해부러쓰."
"아니, 니 오빠가 그렇게 빤스 바람으로 싸돌아 댕기지 말랬지. 어? 애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사스럽게."
최재훈이 말하듯.
목욕을 하고 나온 최재은은 빤스 바람에 달랑 목에 수건을 하나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애면 남사스러운 게 아니라 여사스러운 거 아닌가? 하하."
"하하. 최 여사 쌉소리 집어치우고 찌찌나 가리지."
"죄송한데, 최 남사. 여기 대한민국이에요. 민주 공화국이라고요. 저는 찌찌를 가리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쪽은 그거에 대해서 뭐라 하실 자격이 없어요."
"이쪽이 니 오빠고, 집 주인으로서 삼시 세끼 맥여주고 재워주고, 니가 입고 있는 빤스랑, 니가 입는 옷이랑, 신발, 양말, 샴푸, 비누. 다 오빠가 해 준 건데. 그래도 자격이 없어?"
"죄송한데, 사람의 주권은 재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냐? 진짜 이게 우리 대한민국이 수호하고자 모든 걸 바친 민주주의의 실체냐? 오빠 그냥 월북할까?"
"올 때 메론얼음보숭이."
"생각해 보니, 재은아. 그냥 오빠가 최재훈국의 독재자가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옷 입는다, 실시."
"시룬뒈~"
"마이너스 5천."
"뭐지, 그 영문을 모르겠으나 쌉 불안한 거 하나만큼은 분명한 수식은."
"일단, 니 용돈과 관련된 수식이긴 해."
"하하, 방금 내가 한 말을 똥꾸멍으로 들었나보군 쌉재훈. 나 자랑스러운 독립투사들의 후손 최재은의 주권은 푼돈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마이너스 5만."
"아니! 왜 갑자기 5만인데!"
"물기부터! 물기부터 닦고 입어라, 임마. 감기 걸려! 진짜. 하 진짜, 이 가시나 때문에 못살겠다."
"이씽."
"다음은 바닥 닦고! 빅풋도 아니고 그냥 온 집안에 발자국을!"
"헝힝."
그렇게 여동생을 반쯤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오빠는 다시 문자를 확인했다.
[팬미팅1 : 숨컷 씨 어떻게 지금 이야기 되시나?]
[팬미팅2 : 숨컷 씨 접니다! ㅎㅎ]
[팬미팅2 : 지금 대화 가능하시죠?]
팬미팅1, 2.
차현하와 김희은의 문자를 본 최재훈은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팬미팅 당시, 둘에게 받았던 제안이다.
'레오레 시즌 종료 뒤 2주 뒤에 있을, 아이엇 신작 게임 첫 공식 이벤트 대회에 자신의 팀과 함께 참가.'
정황상 언급한 이벤트 대회는 멸망전이라 보는 게 맞았다.
최재훈은 문득 든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 옐로TV 3대장의 이적- 아니, 귀환과 함께 발표된 멸망전의 상세 공지.
거기에서, 현재 상황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확인했다.
>LKL팀은 최소 두 명의 방송인을 포함해야한다.
"이거 때문이었구만."
차현하와 김희은- 아니지.
TC1과 TEAM BAY를 비롯한 LKL팀들은 자신에게 멸망전 참가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조건을 제시했다.
이런 빅 이벤트에 LKL팀과 참가할 수 있는 기회.
원래 같았다면, 방송인에게 도리어 대가를 요구해도 될 판이다.
그런데 오히려 상당한 엄청난 조건을 제시해온 이유.
-방송인의 레오레 티어는 골드 이하로 제한되며, 남성 방송인의 경우엔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방금 규칙의 해당 조항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임계에는 성별과 관련된 한 가지 속설이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게임을 잘한다.
아니, '여자'가 '남자'보다 게임을 잘한다.
최재훈은 이 속설에 대해서-
솔직히 말해 긴가민가했다.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명백한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잘하는 '여성'플레이어가, '남성'플레이어보다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게임에 있어서 성별에 따른 실력차이가 존재하는가, 라는 매우 복잡하고도 민감한 논제와는 별개로 매우 단순했다.
명확한 통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게이머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전체적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니.
고실력 게이머의 비율 또한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레오레 유저들에게.
레오레를 잘하는 '남자'가 많은가? 라고 질문하면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그 범위를 명확히 하여.
다이아몬드 티어 이상의 '남자'가 많은가? 라고 하면, '다이아는 그래도 꽤 있지'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마스터 티어 이상의 '남자'가 많은가? 라고 하면, '마스터부터는 좀 적어지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돌아올 것이며.
그랜드 마스터 티어 이상의 '남자'가 많은가? 라고 하면, '적지'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고.
그리고, 챌린저 티어 이상의 '남자'가 많은가? 라고 하면, '있나?' 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그런데 최재훈.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
LKL 관계자들이 파악하기로, 국내엔 약 10명의 남성 챌린저가 존재하며.
그 중에서, 최재훈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이는 세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허나, 그 조차도 최재훈과 같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재훈은 이번 멸망전에서 LKL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였다.
그게 LKL 관계자들이 그의 행보뿐만이 아니라.
플레이까지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최재훈이 막 1주일 챌린저 미션을 성공했을 당시.
그가 영업용 이메일을 일임한 이린의 말에 의하면, LKL 모든 팀들로부터 멸망전 참가 제안이 왔었다.
당시에도 꽤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왔는데, 최재훈은 한 번 튕겼다.
그러자 챌린저 1주일 미션에 SGF까지 끝난 지금.
안달이 난 LKL 팀들은 훨씬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왔다.
'응? 그러고 보니까.'
최재훈은 저격 이벤트 당시 프로들이 참가했었다는 소문이 돌고.
프로로 추정되는 이들과 만났었던 걸 떠올렸다.
실제로, 팬미팅에서 1, 2위를 차지하여 팬미팅에 참가한 이들은 다름 아닌 SIGHT와 MUGCUP이었다.
그리고 그 둘은, 멸망전 참가를 제안했다.
'LKL 팀들이 나랑 팬미팅이 아니라, 미팅을 하려고 이벤트에 참가했던 건가? 그러면 FACE 대신MUGCUP이- 아니지, SIGHT가 나온 것도 설명이 되네.'
1등은 비록 FACE가 했지만, 그녀는 입장상 팬미팅 참가가 불가능했고.
하여, 같은 팀인 SIGHT에게 양도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FACE가 자신에게 미쳐서 팬미팅에 참가하려고 하는 팬이라니.
아닐 줄은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못을 박으니 또 아쉽다.
좌우지간, 지금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SIGHT가 대변하는 TC1, MUGCUP이 대변하는 TAEM BAY.
LKL의 양대 산맥인 둘을 비롯해서, LKL팀들 전체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이것이… 페이스가 사는 세계인가….'
한때 프로였던 최재훈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이 있을까.
자신에게 구애하는 LKL 10팀 중 사이에서, 한 팀을 고르는 것보다 더한 영광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최재훈 : 아닌데요)
개 쌉 유감스럽게도 최재훈은 그 영광을 만끽할 수 없었다.
그는 LKL팀의 일부가 아닌.
컷컷컷 크루로서, 방송인으로서.
멸망전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최재훈은 TC1과 TEAM BAY가 제시한 조건을 다시금 확인해 보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조건.
다름 아닌 심사에 따른 프로 or 전속 스트리머 활동 기회였다.
TC1과 TEAM BAY에서 프로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라니.
옛날, 프로를 도전할 당시의 자신이었다면 눈이 돌아가서 모든 걸 때려 치고 당장 올인했겠으나.
지금은 놀라우리만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자신은-
인터넷 방송인으로서의 생활에 생각 이상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최재훈은 다시 대회의 룰을 확인했다.
이 룰이면-
'혹시 이거, 우승 가능한 거 아닌가?'
대회는 레전드 필드 출시 후 2주 뒤에 개최되는데.
2주면, 전문성이고 체계성이고 뭐고 없다.
그렇기에 규칙도 제한도 없다.
최재훈이 빛을 발하는 환경이었다.
그가 정점으로 있는 솔로 랭크 게임처럼.
아마도, 게임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레전드 필드의 첫 공식 대회에서.
LKL 10팀, 최고들을 밟고 올라가 우승한다.
"오우, 야."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반드시, 멸망전 참가 조건을 만족하여.
참가한 뒤.
최고가 되어 보리라.
그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 보냐."
그때.
기특하게도 무려, 옷을 입고 자신이 남겨 놓은 물 발자국을 지운 대견한 여동생이 말을 걸었다.
"멸망전?"
그리고 레전드 필드.
그 두 가지에 여동생은 한껏 들떴다.
LKL 팀들이 참가하는 레전드 필드의 첫 공식 대회에 대한 관심을 아낌없이 표출했다.
오빠로서 여동생 앞에서 으스대지 않을 수가 없는 각이었다.
"오빠 LKL 팀들한테서 이번 멸망전 참가 제안 왔다?"
"어~ 그래~"
"맞아, 사실 구라임"
"미친- 어딘데? 어디서 왔는데?"
"TC1이랑 팀 BAY. 아니지. LKL팀 전체한테서."
"구라~"
"맞아, 사실 구라임"
"아니 미친, TC1이랑 팀 베이에서도 제안이 왔다고!?"
"재은아. 도대체 니 대화 체계는 어떻게 돼 먹은 거냐? 오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있잖아. 오빠 방송 마지막 부분에서-"
"아, 나 안 봤음. 보다가 재미없어서 다른 거 봄."
"실화냐, 재은아? 그냥 오빠 가슴에 말뚝을 박지 그러냐?"
"아니, 그래서 뭔데. 방송 마지막 부분에 뭔 일이 있었는데."
"그 팬미팅 참가자 두 사람이 SIGHT랑 MUGCUP이었더라고."
"엥? 으엥!? 실화야!? 아니, 미친, 대박. 그 두 사람이? 아니, 그걸 왜 지금 알려주는데!!! 헤어지기 전에 바로 알려줬어야지!"
"미안하다, 오빠가 잘생기고 돈 잘 벌고 게임도 잘 하는데 예지 능력은 없다."
"아니, 아… 싸인. 뭐 싸인이라도 받은 거 있어?"
"그 두 사람을 팬으로 거닐고 있는 거물, 숨컷의 싸인은 어떠니?"
"받아서 팔아도 돼?"
"그러면 가치가 떨어져서 안 돼."
"아니, 그래서. 어떡할 거야? 난 솔직히, 페이스보다 머그컵이 좋더라."
"개 쌉 렐알못 다딱이답구나."
"네 다음 1557~"
"재은아, 밖에선 그 말 조심해라. 오빠라서 참았지, 뒤통수로 소주병 격파하는 수가 있어.'
"아니, 그래서. 어느 팀 갈 거냐고."
"아무 팀도 안가."
최재은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얼빠진 것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이 새기 진짜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표정에 다 나와 있어요."
"아니, 근데. 뭐임? 왜 안 간다는 건데? 아. 아이씨, 이 새기 또 구라 쳤네."
"그게 아니고 임마, 잘 생각해 봐. 오빠가 TC1이나 팀 BAY, 둘 중 하나에 들어가면."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팀들을 적으로 만나서 이길 수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최재은이 한 쪽 새끼손까락으로 귀를 판 뒤, 후.
반대쪽 손의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판 뒤, 띵.
그리곤 피식 웃었다.
"아, 예."
"정말, 오빠의 마음을 효율적으로 난도질하는 방법을 아는구나 동생아."
정말 LKL의 강호들을 무찌르고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갈 생각이었던 오빠는 조금이지만 정말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것도 그건데, 재은아. 오빠가 누구냐."
"일단 욕밖에 안 떠오르긴 해."
"방송인 임마. 오빠가 LKL에 끼어서 참가하면, 방송인으로 참가를 못하잖아. 크루원들이랑 같이. 그러니까, 방송인 자격으로 참가할 거야."
"뭔데. 오늘 3대장으로 스타트 끊은 거 보니까 라인업 오질 것 같던데. 옐로TV에서 오빠 같은 허접을 거기에 껴준대?"
"그때 가서 보고 얘기하기로 했는데, 오빠는 될 것 같다. 오빠가 한 달 만에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한 달 뒤면, 거기 낄 급은 돼 있지 않을까?"
"아, 뭐. 그래. 힘 내 보렴. 음… 근데 몬가… 몬가 아쉽네. 오빠 따위가 팀 BAY랑 같이 게임할 수 있는 기횐데."
"재은아, 다른 팀이어도 싸인은 받아다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오빠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오빠 화이팅!"
"물."
물 대신 중지를 받은 오빠는 직접 물을 떠다 마신 뒤.
정황상, 필시 멸망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연락했을 두 여자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찰나-
[팬미팅2 : 숨컷 님 ㅎㅎ...?]
[팬미팅2 : 저 김희은]
[팬미팅2 : 머그컵인데 ㅎㅎ;]
아까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이 몸께서 친히 행차하셨거늘.'이라고 말하는 듯한 위세는 어디가고.
쭈구리가 된 그녀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