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딜 2
리치TV와 아메리카TV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GF에서 옐로TV가 멸망전을 개최를 발표하자마자 대항전 개최를 발표하여 응수할 계획이었는데.
이번 SGF에서 일어난 리치TV 비리 폭로 사태로 인해 그러기가 난처해진 것이다.
"이런 문제 소지가 있었으면 사전에 통지해주셨어야 할 거 아닙니까!"
아메리카TV 관계자측이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했다.
회의 자리에서 과연 어떨까 싶은 행위였지만, 리치TV에겐 발언권이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파트너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생긴 아메리카TV 입장에선.
깡 소주를 깐 다음 남은 공병을 저들의 머리로 격파한다 해도 무죄였다.
"원래는 이렇게 크게 될 일이 아니었는데…."
리치TV에선 이미 허나이의 비리를 눈치 채고 있었다.
즉,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방송인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그녀의 발상은 꽤나 매력적이었으며.
아직 크지 않아 영향력이 적은 스트리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그녀의 방식은 위험부담이 크지 않다 판단되었으니.
그런데.
하필이면 아직 크지 않았는데도, SGF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돼 버린 숨컷과 엮여 버린 것이다.
그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로 그의 엄청난 영향력뿐이었다.
"그 방송인 있잖아요, 숨컷."
그가 리치TV를 용서하고 대항전에 참가한다면?
맙소사.
비리로 인한 이미지 피해 회복.
엑소더스 저지.
대항전 개최.
그 모든 게.
상황이 더 이상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결된다.
그가 리치TV에 잔류하여 대항전에 참가해주는 상상을 한 회의 참가자들은 홀인원이라도 성공시킨 듯 모종의 쾌감마저 느꼈다.
"어떻게든 그 사람 붙잡아요."
리치TV의 본부장인 강선하는 바로 그 일의 책임자로 발탁된 것이다.
"허나이 그 새끼가 싸지른 똥을 왜 내가… 하."
숨컷이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접촉을 해야 한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
그런데, 그와 접촉할 방법이라곤 그의 미튜브에 적힌 비즈니스 용 이메일뿐이었다.
그가 리치TV에 가입할 때 제공한 개인정보, 휴대폰 번호로 접촉을 시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제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리치TV가 이번에는 제 개인정보를~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로 번진다면, 정말로 끝이다.
결국 그녀는 숨컷, 그리고 그의 크루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놓고 답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기다리는 와중에, 갑자기 숨컷이 옐로TV 이적을 발표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연락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내가 겨우 방송인 한 놈 때문에 이게 뭔….'
그렇게 그녀가 말라죽어가고 있을 와중.
-♪
"응?"
혹시나 몰라 숨컷의 방송을 팔로우 해 놓았던 게 알람이 울렸다.
그가 리치TV에서 방송을 켠 것이다.
그와 접촉할 방법이 생겼다고 좋아하기엔 일렀다.
그가 옐로TV 이적을 발표하기 위해 방송을 켰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
강선하는 떨리는 심경으로 방송을 지켜봤고-
안도했다.
리치TV를 버리고 옐로TV로 이적할 이유가 없는 삼피까지 두루 만족할 수 있는 방송 환경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리치TV와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접촉을 시도했다.
-리치TV 운영진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컷컷컷 크루원 세 분께서 쾌적하게 방송하실 수 있는 방송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조공까지 바쳐가며 말이다.
이 정도면 기분 좋게 대화에 응할 것이다.
그에 숨컷은-
"알겠습니다."
흔쾌히 응했다.
아까부터 협조적이기까지 한 숨컷의 태도.
강선하는 확신했다.
그가 이번 일로 옐로TV로 이적하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
리치TV에서 한 몫 크게 잡아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원한다고.
'이러면 일이 쉬워지지.'
방금까지만 해도 최재훈은 슈퍼 갑이고, 리치TV는 을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상황에서도 리치TV에 남길 원한다면, 반대가 된다.
관계는 최소한 동등해지고.
나아가, 역전된다.
강선하는 저 애송이를 능숙하게 다룰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숨컷과 강하선의 미팅은 서로의 기대 속에서 간단하게 성사됐다.
"어, 어떡하죠 페카 님?"
그에 당황한 김 팀장이 페카에게 물었다.
"우리는 화끈하게 천만 원 후원해 버릴까요?"
"…예?"
그러는 사이-
"그러면 여러분. 빠른 시일 내로 다시 방송 켜서 저희 입장 전해드릴 거니.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숨바]
[아 ㅋㅋ 적당히 밀당하고그냥 다시 옐로TV 기어오라고]
[우리는 배신자를 용서할 관용이 준비된 것 같다 조컷아]
[니가 엄컷이었던 시절을 기억해라...]
[아니 근데 ㅋㅋ 옐로TV 갔으면 하다가도 옐수새기들 설치는 거 보니 또 리치TV에 남았으면 좋겠네]
[아니 그러네 옐로TV가면 저 새기들 깝치는 거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네 ㅋㅋ]
[우리도 리치TV 왔잖아 ^^ㅣ발련들아]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지 ㅋㅋ]
[이젠 니들이 술래야]
방송이 종료된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1억 정도 후원해 버렸으면 그냥 상황 종료됐을 것 같은데요?"
"그, 숨컷 님. 계속 여기 계실 건가요?"
"아, 네."
"그럼 저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김 팀장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별종의 말을 뒤로하고, 리치TV가 개입해 복잡해지고 커진 현 상황에 대해 윗선과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컷컷컷 크루와 페카만이 남았다.
"…."
"…."
페카가 컷컷컷 크루를, 숨컷을 응시했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에라도 말을 붙여올 듯 관심이 넘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다람쥐 탈의 무기질한 시선이 소름 끼쳤다.
최재훈 일행은 애써 무시했다.
"여러분, 그냥 기다리기도 뭐하니 저희도 커피 말고 뭐 좀 먹죠. 제가 살게요. 저 방금 100만원 벌었음. 시급 600만 원의 사나이임."
"하, 니 그래서 나보다 돈 많냐?"
"그건 뭐냐 도대체. '아냐, 내가 사줄게.'로 해석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러던가~"
"얘가 생각보다 샤이하다니까?"
최재훈이 귀엽다며 싱글거리자, 우쭐거리던 제나의 얼굴이 빨갛게 굳었다.
"재훈 씨! 재훈 씨는 뭐 드실 거예요? 초콜렛 케이크 좋아하세요?"
"제가 초콜렛은 그다지 안 좋아해서.
(초코크림슈크림 :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그러면날왜샀어?)
"크레이프 케이크로 하죠 뭐."
"오! 크레이프케이크!!! 저도 마침 크레이프케이크 시키려고 했었는데!"
"그래요? 그럼 전 치즈 케이크!"
"아! 생각해 보니 치즈가 더 좋겠다!"
"나도 단거 별로 안 좋아해. 치즈."
"아니, 니까지?"
"뭔 나까지야. 지 따라하는 줄 아나."
"그러면 저도 치즈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냥 커피 케이크으로."
"그럼 저도요!"
"아, 말 들으니 갑자기 땡기네. 나도 그냥 커피 할란다."
"카페인이 땡기네요."
"아니. 저기요, 선생님들. 좀 여러 가지 맛 사서 노나 먹지 이게 뭐 하시는."
그때, 페카도 커피케이크를 시켰다.
저 탈을 쓰고 도대체 어떻게 먹으려는 건가 호기심이 동했는데.
그냥 자신의 앞에 그대로 놔두고, 물끄러미 최재훈 일당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은 다람쥐가 선사하는 압도적인 불가사의와 소름끼침, 그리 인한 공포에 떨며 강하선을 기다렸다.
통화를 하러 간 김 팀장이 돌아오고 머지않아, 그녀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리치TV 본부장 강하선이라고 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강하선과 대면한 최재훈은 다소 놀랐다.
강하선의 태도 때문이었다.
숨컷을 '파악'하고.
자신이 그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판단한 그녀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태도는.
리치TV를 대표하는 그녀가 당연히 저자세로 바짓가랑이부터 붙잡을 줄 알았던 최재훈에게 발칙한 신선함을 선사했다.
애당초 옐로TV와 경쟁을 붙여서, 옐로TV의 지갑을 열게 할 생각으로 불러들인 거라.
형식적인 제 아무리 사과를 감동적으로 한다 해도 받아줄 생각이 없었는데, 대놓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아무리 열심히 구애해도 받아줄 생각이 없으면서, 구애를 안 하니 불쾌해 한다.
'이게 어장을 관리하는 어부의 마음인가?'
그렇게 어딘가 맹한 반응을 보인 최재훈을 보며 자신감을 공고히 하는 강선하.
그런 그녀의 시야에.
이런 공공장소에서 난데없이 다람쥐 탈을 쓰고 있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괴한.
근처에 앉아 있던 페카가 들어왔다.
'저걸 어디서 봤더라… 아.'
방송 관계자이니 만큼, 그녀는 곧바로 타 플랫폼의 거물인 페카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옆에 앉아 있는 일행이 옐로TV의 관계자라는 것과.
그들이 자신과 동일한 목적으로 숨컷에게 방문했다는 것 또한 알아본다.
'뭐지?'
여유와 자신감으로 평온하던 그녀의 강에 파문이 일었다.
숨컷은 리치TV에 잔류하길 원하고.
그렇기에,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게 아니었나?
그런데 저것들이 왜 여깄지?
자신의 가설과 충돌하는 상황에 그녀는 고뇌했다.
그렇게 짧지만 폭풍처럼 몰아친 고뇌 끝에.
그녀의 강은 평온을 되찾았다.
다시금 여유과 자신감으로.
'잘 안 됐구만.'
그게 그녀가 현 상황을 정리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옐로TV가 숨컷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서로의 이해가 맞물리지 않았고.
그렇게 대화가 결렬되어, 숨컷은 결국 리치TV에 남기로 결정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지금 상황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가 여유롭게 김 팀장을 바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며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래서, 무슨 일로 뵙자고 하신 건지?"
그때 숨컷이 입을 열었다.
"아. 이야기에 앞서, 이번에 컷컷컷 크루 세 분께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하여 리치TV를 대표하여 사과드립니다. 약속드리건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강하선은 숨컷에게 말한다.
상대방에게 사죄를 표하는 게 아니라 어르고 달래듯.
"이렇게 숨컷 님께 자리 내주십사 부탁드린 건. 숨컷 님께서 방송에서 말씀하신, 컷컷컷 크루 세 분 모두 쾌적하게 방송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저희 리치TV를 한 번 더 고려해주실 것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리치TV에서 세 분들께 전폭적인 지원을 드릴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강하선은 능숙하게 말을 이어가며, 숨컷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어떠신지요?"
강하선에겐 꽤 많은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허나, 그녀가 제시한 조건은 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강하선은 그가 리치TV에 남길 원한다는 점을 이용해, 협상을 주도해 나갈 작정이었다.
최재한 적은 비용을 들여, 그를 손에 얻는 것이다.
그런 조건에, 숨컷은 만족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
쉽구만.
강하선이 속으로 아주 흡족해하며,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리라 확신한 그때였다.
"실례합니다!"
김 팀장이 끼어들었다.
숨컷의 만족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고, 행여 그가 넙죽 리치TV 잔류를 결정하기라도 할까봐.
최재훈의 의도대로 말이다.
"숨컷 님, 아까 말씀드린 조건 말인데요."
"아니, 지금 뭐하십니까? 지금 저희 이야기하는 중이잖습니까?"
강하선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따지고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저희가 먼저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거 경우 없는 사람일세?!"
"숨컷 님, 죄송합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 예…."
최재훈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답하며 생각했다.
'개꿀띠.'
그녀들이 지갑을 털기 시작했다.
아니.
털리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으로. 저희, 옐로TV에서 전속 계약을 제안 드리고 싶어서요."
모든 플랫폼엔 보편적으로 전속 계약의 성격을 띠는 파트너십 계약이 존재하지만.
이는 사실 계약보다는 약속에 더 가까웠다.
계약서가 없다. 계약금도 없다. 그렇기에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시피 하다.
유일한 요구조건인 단독 송출을 어기면, 파트너십이 해제되고 마는 정도.
반면에 지금 김 팀장이 제안한 전속 계약은, 정말로 계약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계약금 제시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분명 그러했다.
김 팀장이 최재훈에게 계약금을 제시했다.
"허억."
권지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하, 미친."
제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액수였다.
절박함이 실감되는 액수.
'제기랄.'
아무리 숨컷이 리치TV 잔류를 원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 정도 액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하선도 더 이상 팔짱끼고 여유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도 꽉 동여맸던 주머니의 주둥이를 확 풀었다.
김 팀장과 같은 카드를 꺼내들었다.
제나와 삼피가 눈빛을 보내왔다.
'재훈 씨!!!'
'뭐 하냐.'
빨리 받아들이라고.
응당 그런 반응이 나오는.
지금의 최재훈에겐- 과분한 액수였다.
그래.
'지금의'
미튜브 구독자 20만을 앞두고 있으며.
평균 시청자가 5천인 최재훈에게 말이다.
이는 그가 고작 한 달 만에 이루어 낸 커리어였다.
지금의 최재훈이, 내일의.
다음 주의.
다음 달의 최재훈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양 플랫폼에서 제시한 계약기간은 년 단위였는데.
그 계약이 진행되는 동안, 최재훈의 몸값은 어떻게 될까.
계약금은 그게 반영된, 기업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불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였다.
그리고 최재훈은.
당연히 그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이 계약은 컷컷컷 크루가 아닌, 자신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었다.
이걸 받아들이면, 향후 크루의 관계가 애매해지게 된다.
그러니-
"죄송해요, 아무래도 계약서는 좀 그렇네요. 지금 제가 계약서 쓰면-"
그가 특유의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너무 밑지는 장사 같아서."
그러니까.
다른 거 내놔 봐.
나 데려가고 싶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명확히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