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02화 (202/361)

202. 딜 1

"음~"

뭔가 애매하고 또 의미심장한 반응.

"…어찌. 그러면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아니, 그… 페카 님의 의견을…."

"아. 아~ 제가 뭐라고 제 허락을. 김 팀장님이 원하는 대로 진행 하셔야죠. 저는 그걸 따를 뿐입니당~"

"아, 예!"

김 팀장은 어느새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일개 방송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딱히 위화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리고 페카.

그녀가 기억하기로 숨컷.

그는 리스크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과할 정도의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자신감과 대담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행보가 그걸 증명한다.

그는 매번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기꺼이 최대한의 리스크를 감수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익을 거둬냈다.

김 팀장의 말대로다.

지금 상황에선 자신이 갑이고 두 플랫폼이 을이란 걸 알아도 뜻대로 행동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숨컷.

그라면 어떻게 할까.

'이번엔 또 어떡하시려나?'

그녀가 탈 안에서 한쪽 입꼬리를 흥미로, 반대쪽 입꼬리를 기대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김 팀장과 페카는 숨컷과 권지현, 기왕이면 확실하게 기폭제가 작용하도록 아예 컷컷컷 크루를 불러들여 이적을 제안했다.

준비해 두었던 조건을 제시하며

"명확하게 어떤 지원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먼저, 세 분 모두와 즉각적으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해 드리겠습니다."

파트너십 계약이 체결되면 최재훈이 그토록 갈망하던 구독 시스템 도입과, 이모티콘 판매 기능이 활성화되며.

후원 정산 수수료가 소폭 삭감된다.

본래, 파트너십 계약 체결을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방송 시간을 채워야 했는데.

이를 생략하고, 곧바로 원활한 활동을 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거기에, 향후 6개월 동안 후원 수수료와 구독 수수료 완전 면제에. 최소 하나 이상의 프로모션 혹은 PPL 계약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오오~"

'그거'가 아닐 뿐이지.

이는 옐로TV가 보편적인 기준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이었다.

최재훈을 비롯한 네 사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 팀장이 자신감에 넘쳐서 말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조건이 아닐는지."

"그러게요. 엄청나네요."

"그렇다면?"

김 팀장은 느꼈다.

예감이 좋다고.

됐다고.

그렇게 확신을 갖고 숨컷의 대답을 채근했다.

그러자, 그가 운을 뗐다.

"잠깐, 저희 끼리 상의 좀 해 봐도?"

"아, 예 물론이죠."

그렇게 그들이 자리를 비우자, 김 팀장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페카를 쳐다봤다.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네요."

-내 말이 맞지?

"그러게요~?"

페카는 탈 안에서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잠시 뒤.

숨컷 일동이 돌아와 말했다.

"일단은 거절하겠습니다."

"…예?"

자신만만하던 그녀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굳었다.

"아니… 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안 어울리게, 최대한 정중하게 웃으며 그 표정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일이니만큼. 고민할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아서요. 신중하게."

그런데 말이 정중이지, 내포하는 메세지는?

지금 상황에서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해석하자면 그러했다.

-니 더 있잖아. 나 간 좀 볼 테니까, 그 동안 눈치껏 테이블 위에 올려 놔라

"…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지금, 업계 상황이랑 분위기가 어떤지 아시는지요?"

-지금 니가 지금 간 볼 처지냐?

"아유, 모를 수가 없죠."

-4달라.

"그런데도, 고민이 더 필요하실까요?"

-진심이냐?

"예, 아무래도."

-4달라.

이미 무언가가 짚이는 바가 있어 그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십중 팔구 '그것'과.

멸망전과 관련되어 있는 거겠지.

김 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이 남자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페카는 그에게 '그것'을 주자고 했다.

하지만 김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분명 지금 엄청난 화제와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이는 SGF 종료를 기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거품 빠지듯 빠르게 사그라들 것이다.

멸망전이 시작될 당시.

그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옐로TV의 사운이 담긴 일이다.

최선의 최선을, 만전의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멸망전이 시작될 당시 그러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김 팀장이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고 연락 주시길."

-어디 한 번, 끝까지 가 보자고.

지금 시청자들은 그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그는 시청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지금 당장 옐로TV로 이적할 건지. 아닌지.

후자를 대답할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한다.

하지만.

그에겐 말할 이유가, 명분이 없다.

그로 인해 그는 머지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리석어서 사태 파악을 못하는 것이든.

배짱을 부리는 것이든.

그때가 되면,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계획에 지연이 생기겠지만, 괜찮다.

'그것'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이 정돈 감수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최재훈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덜 내려는 쪽과.

더 받아내려는 쪽.

둘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하, 일이 복잡해지네요."

김 팀장이 쓰게 웃으며 페카에게 말했다.

'저 사람 왜 저런대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하, 그러게요~"

페카는 그런 그녀가 마치 호러 영화의 조연이라도 되는 양 쳐다봤다.

흥미진진하게,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한다.

"어…?"

그때, 김 팀장이 어딘가를 쳐다봤다.

숨컷.

자리를 뜨는 줄 알았던 그가, 그의 일행과 함께 카페의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일행 중 한 명이었다 편집자가 카메라를 그에게 향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숨하~"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마치, 김 팀장과 페카가 보란 듯 대놓고.

"…저게 뭔."

그런 그를, 김 팀장은 얼이 빠져서 쳐다봤고.

그런 그들을, 페카는 핸드폰에 숨컷의 방송을 켜놓곤.

가상의 팝콘을 아그작거리며 관전하기 시작했다.

* * *

"제 1회 공식 컷컷컷 회의를 개시하겠습니다."

"와~"

짝짝짝.

김 팀장과 페카에게 제안 받은 직후.

그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일행과 구석자리로 향한 최재훈이 말하자, 권지현만이 진심을 담아 호응한다.

둘은 최재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번마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라도 보는 양 진심으로 환호하는 권지현의 텐션을 도무지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평소처럼 무뚝뚝하고, 시큰둥하게 가만히 있는다.

그 모습은 권지현, 최재훈과 상반되어 괜히 미적지근하게 느껴졌다.

"무엇이지? 이 썰렁한 반응은. 우리 컷컷컷 크루는 나랑 지현 씨 단 둘 밖에 없는 건가?"

"헉, 저랑 재훈 씨랑 단 둘이라니…."

그런데 권지현이 되도 않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곤 더욱 신나서-

짜짜짜짜짜짝-

박수를 재봉틀 돌아가듯 치자.

둘은 다른 의미로 텐션이 달아올라 짝! 짝! 신경질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무안해져서 툭 내뱉는 제나.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지랄인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일단, 넌 어때? 니 의견이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내 의견이?"

의문으로 미간이 찌그러지길 잠깐.

"왜, 나 없는 곳에선 방송 못할 것 같냐?"

그녀가 한쪽 입꼬릴 끌어올리면서 우쭐거렸다.

"…."

그에 반응해 줬어야 할 최재훈이 그저, 깜빡깜빡.

멍하니 그녀를 응시하자.

"…."

"…."

분위기 상 그녀만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다.

이상한 사람은 맞는데, 더 이상한 사람이.

"아니, 뭐. 꼬우면 말로 해."

그녀가 뾰루퉁해져서 소심하게 말하자.

최재훈이 그제야 짓궂게 웃으며 말한다.

"아니, 맞아. 니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거. 나랑 지현 씨는 이적할 이유가 충분한데, 너는 이적할 이유가 따로 없잖아."

제나가 잠깐의 고민 뒤 말했다.

"상관 없어."

"아니,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거여?"

"뭔. 어제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야."

그녀가 보기에.

리치TV는 이대로 최재훈이 옐로TV로 이적한다면, 그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추락할 게 분명했다.

그 사이, 옐로TV는 계속해서 치고 올라올 테고.

옐로TV로 이적하면 당장은 손해일지도 모르지만, 방송 생활을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게 정답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정말로.

"지금,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조금이라도 빨리 옐로TV가서 먼저 자리 잡는 게 좋을걸. 저쪽에서 내건 조건 있으면 그게 더 쉬워질 거고.

"저도, 제나 씨랑 같은 생각이에요! 지금 딱 저 조건 받아들이고 옐로TV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 조건 받아들이자는 게 두 분 의견이네요?"

"그렇지. 니는?"

"재훈 씨는요?"

"저는-"

피식 웃으며.

"조금, 아쉬운데."

* * *

"조금, 아쉬운데."

"뭐?"

"아쉽다뇨?"

"이렇게 쉽게 옐로TV 이적하는 거요. 지금 저희 입장 생각해 봐요."

옐로TV와 리치TV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저거에 만족하는 건 조금 아깝지 않나, 싶어서요."

"고작 저거라니, 뭐. 현찰로 10억이라도 내놓길 바라는 거야?"

"그러면 진짜 간장샤워 하면서 머리 빡빡 밀 자신 있다."

"아니, 하지 마라. 진짜로."

"재훈 씨! 안 돼요!"

"재훈 씨, 그건 좀…."

"…아니, 이 사람들 날 어떻게 보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지. 뭐, 아무튼."

최재훈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언급했다.

멸망전.

"아이엇 신작 첫 공식 대회에, LKL 선수들 참가까지. 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빅 이벤트가 될 것 같은데. 거기에, 우리 크루 참가하면. 만약 우승까지 하면, 난리가 나지 않겠어? 상금 같은 건 둘째 치고, 홍보 효과가 아주 그냥."

"뭐, 그렇겠지. 그런데 멸망전 얘긴 갑자기 왜 하는 건데. 나가고 싶으면 나가면 되는 거잖아. 보니까, 방송인들도 참가 가능하더만."

"제나야…."

"뭐."

"너가 개최자면, 그런 대회에 아무 방송인들이나 끼워 넣겠니?"

"신작을 선보이는 아이엇에게나, 다시 플랫폼을 재부흥시키려는 엘로TV에게나.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만큼, 최대한 높은 급의 방송인을 데려다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LKL 선수들을 섭외한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고요."

이린이 대신 끼어들어 답했다.

"바로 그거죠."

"재훈 씨 말씀은, 저희가 참가하고 싶어도 못 참가할 확률이 높다 이거죠?"

"바로 그거고-"

"…그래서, 지금 니가 옐로TV 안 가면 망하니까. 그거 빌미로 자리 하나 내달라고 하게?"

"바로 그거지."

"와… 저는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요! 역시 재훈 씨!"

짜짜짜짜짜짜짝-

"아! 좀! 정신 사나워 죽겠네, 빠순이 자식아."

"헝."

"…뭐.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네. 그러면, 그렇게 하던가."

그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예정이신지요?"

이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나가 고갤 끄덕이며 이어받는다.

"니 말 들어보면. 최소 구독자 100만은 넘어가는 것들로 꽉꽉 채울 것 같은데. 우리 같이 어중간한 것들이 대놓고 자리 내놓으란다고, 곱게 내놓겠어?"

"그… 지금 옐로TV에선 재훈 씨가 반드시 옐로TV에 와 주셔야 하니까,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재훈 씨께서 그걸 직접 요구하시면. 향후 옐로TV와의 관계가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저쪽에서 알아서 내놓게 해야 된다는 거네."

"그러면, 어…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번 튕기면 되려나요?"

딱.

최재훈이 손가락을 튕구며 권지현을 가르켰다.

"정답."

"와!"

짝짝짝.

"하, 이 물개 새끼 어떡하냐 도대체. 뭐 어쨌거나, 그러면 되겠네. 니쪽에서 한 번 튕기면, 저 쪽에서 줄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거, 말입니다만…."

이린이 복잡하다는 얼굴로 말한다.

"제 생각엔. 안 통할 것 같습니다."

"응? 뭐. 뭔데."

"어… 왜 안 통하신다는 거죠?"

"옐로TV로 이적하기 전까지, 재훈 씨께서 방송을 켜신다면 반드시 그런 질문이 올 겁니다. 옐로TV로 이적 안 하냐고. 아니, 사실 질문보다는 비난조로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리치TV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 많은 사람들은 재훈 씨께서 당연히 옐로TV로 이적해서 사건을 종결시킬 거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직 옐로TV로 안 가고 뭐하냐?

"리치TV의 관계자인 허나이는 스트리머와 유착해서 지현 씨와 숨컷 씨를 성추행범과 그 옹호자로 만들려 했고. 리치TV는 허나이와 스트리머들을 방관했습니다.

시청자들도 그걸 알고 있고요. 결국, 재훈 씨께선 옐로 TV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명분이나 근거가 없는 겁니다. 거기에 사람들은 의문을 느끼고, 불만을 갖게 될 겁니다. 재훈 씨께서 SGF에서 끌은 관심만큼의 불만이 말입니다."

그런 연유로.

숨컷은 옐로TV의 제안을 거절했을 경우 입장이 난처해진다.

옐로TV측에서도 그걸 알고 있을 공산이 높아, 최재훈이 짐짓 튕겨도 통하지 않을 공산이 높다.

지금 최재훈도 옐로TV와 리치TV 만큼이나 상황에 쫓기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는 옐로TV에게 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을이기도 했다.

"듣고 보니…."

"하, 씨. 존나게 복잡하네."

"그럼, 어떡하죠…?"

"어떡하긴. 그냥 주는 대로 쳐 먹어야지."

그런 결론이 나오자, 가만히 듣고 있던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여러분. 저희에게 명분이 없긴 왜 없습니까."

그가 제나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제나가 딱딱한 온기에 도리어 급속냉동 되어 굳어 버렸다.

"뭐, 뭐하냐…?"

드물게 극도로 당황한 제나.

그녀를 두고 말한다.

"우리에겐 얘가 있잖습니까."

* * *

[숨하]

[왔누]

[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열어]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아빠오늘점심뭐야?]

방송을 시작함과 동시에 미어터지는 채팅창.

그렇게 단번에-

2만에 이르렀다.

"아니 시청자가 5천에서 요만코롬늘어버렸다고라파덕 시청자앵님들 공중제비 한 사발 돌리겠읍니다."

라고 좋아하기엔.

지금 상황이 상황이었다.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러자-

찰랑!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하 옐로TV 언제감?

기다리던 말이 나온다.

이린이 예상했던 대로.

'왜 아직도 안 갔냐?'에 가까운 늬앙스.

채팅창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옐로TV 말이죠."

페카를 보고, 따라서 숨컷의 방송을 켜서 지켜보던 김 팀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이렇게 바로 방송을 켜 주다니.'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김 팀장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그만큼, 피차 무의미하게 손해 보는 시간이 줄었으니.

그때, 숨컷이 입을 열었다.

"아, 옐로TV에 언제 가느냐. 사실.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방송을 켠 겁니다. 여기-"

이린이 최재훈의 눈짓에 따라 권지현과 제나를 차례대로 화면에 담았다.

"보시다 시피. 저희 컷컷컷 크루원들끼리 이적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모였으며, 지금 결론이 나왔습니다."

리치TV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심사숙고 해보기로요.

그 말에, 채팅창에 갈고리가 도배된다.

[??? 웬 심사숙고]

[ㄷㄷㄷ 숨사숙고]

[숨사숨컷]

[뭔 숨사숨컷 아니 ㅆㅂ 어떤새끼야 나까지 햇갈리잖아]

[뭐였지? 숨컷숨컷?]

[내 뇌에서 나가 숨컷!!!!!!!!!]

[아니, 숨사숙고할 게 있음?]

[그니까]

[니는 몰라도 니 크루원 성추행범 만들려 했던 플랫폼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음? ㅋㅋ]

성추행 누명.

여자라면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그 주제가 언급되자.

채팅창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격해진다.

[설마 니 리치TV 시청자들 아까워서 그러는 거임?]

[에반데]

[자존심도 없음?]

[설마 시청자들 아까워서 이러는 거임?]

[아니면 뭐 간이라도 보는 건가?]

하나둘 불만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산불이 번지듯, 퍼져나간다.

[아 좀 닥쳐봐 유입새끼들아]

[아 ㅋㅋ 니들이 뭔데 옐로TV 가라마라야 ^^ㅣ발]

[아 근데 옐로TV 가는 게 맞긴 해 ㅋㅋ]

[배신의 배신이었던 거임 엌ㅋㅋㅋㅋ]

[BBAB]

[속보)숨컷 배신 신기록 달성 ㄷㄷ]

[1달도 안 돼서 2연 배신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기존 숨컷의 시청자들이 열심히 분위기를 수습하려 해 보지만, 안 된다.

유입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대로 놔두면 겉잡을 수 없게 될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옐로TV 이적 사실을 밝히는 것 뿐이었다.

김 팀장이 여유롭게 방송을 지켜보는 가운데.

[아니 도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거임?]

[니도 그렇고 권지현도 그렇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잖아]

기다리는 말이 나오자 최재훈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고 지현 씨도 그렇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 도대체 왜 고집을 부리느냐. 맞습니다. 저와 지현 씨는 리치TV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리치TV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면 여아만 있는 건가요?]

[EU가 없다고요? 여기 나치가 승리한 세계선인가요?]

[닥쳐요 미친놈들아 제발 분위기좀 시발]

[그니까 ㅋㅋ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 왜 남아 계시냐고요 ㅋㅋ]

"저와 지현 씨는 여러분의 말대로, 리치TV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최재훈의 눈짓에, 카메라가 제나를 비췄다.

"삼피 씨는 아닙니다."

[???]

[뇌없페 쉑이 왜]

"저와 권지현 씨는 리치TV에게 심대한 정신적 피해를 받았으며. 리치TV에서 쌓은 기반도 그렇게 크지 않기에, 선뜻 옐로TV행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피 씨는? 저희 둘과 달리 리치TV에게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희 둘과는 달리 리치TV에서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엄청난 기반을 쌓아 올리신 분입니다.

저희 둘과 달리 리치TV에서 떠날 이유도 없고, 떠날 경우 피해가 막대하죠. 그런데도, 흔쾌히 저와 지현 씨와 같이 옐로TV라 가주신다 하셨습니다."

[ㅁㅊ]

[뇌없페쉑 뭔일이고]

[아니 이 새끼 숨컷 만나고 ㄹㅇ 사람됐네]

[아니던데 숨컷 앞에서만 사람이더라]

[ㄷㄷㄷㄷㄷ 숨친개 컷련사]

[그럼 가면 되는 거잖아]

"그럼 가면 되는 거잖아, 라고 하시는데. 말씀드렸다시피. 그 경우엔, 삼피 씨는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저희가 옐로TV에서 시간을 갖고 심사숙고하기로 결정한 건.

저희 컷컷컷 크루는 저와 지현 씨, 삼피 씨. 셋으로 이루어진 크루이며, 서로가 끝까지 같이 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타협안을. 좋은 방송 환경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 명이 모여서 시청자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크루원들끼리 서로를 위해 기꺼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양보한다.

동료애.

그 순수한 미덕 가득한 모습이,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ㅇㅇ;]

[ㄹㅇ; 이게 동료지]

[ㄹㅇ; 맨날 유사 동료 새기들만 보다가 얘네 보니 갑자기 기분 훈훈해지네]

그들의 격정을 누그러트렸다.

[야 그러고 보니 지금 얘네 ㄹㅇ ㅋㅋ 입장 까리하네]

[ㄹㅇ 옐로TV가면 리치TV 그대로 터지는 거 아님?]

[얘네 남으면 옐로TV 가려고 각 잡고 있던 애들 다 애매해 지고]

[아 ㅋㅋ 불쌍한 척 하더니 슈퍼 갑이였냐고]

[거 ㅋㅋ 옐로TV랑 리치TV 보고 있는 거 아니까 입찰좀 때려 보거라]

[ㄹㅇ ㅋㅋ 우리 컷컷컷애들이 가주면 니들은 뭐 해 줄 건데 아~]

[금송아지 세 마리 대령해라 ㅇㅇ;]

그렇게 삼피의 입장을 이용하는 최재훈의 노림수는, 완벽하게 먹혀들었고.

최재훈.

그는 더 이상 상황에 쫓기지 않게 되었다.

순수한 갑.

누구 말마따나, 슈퍼 갑이 되었다.

"…."

결국엔 자신이 갑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방송을 보고 있는데 한 순간에 순수한 을로 거듭났다.

김 팀장이 넋이 나가서 눈을 꿈뻑였다.

그때-

찰랑!

-리치TV 운영진 님이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숨컷 님. 저는 리치TV 본부장인 강하선이라고 합니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런 식으로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또한, 이번 사태에 리치TV를 대표하여 심심한 사과 말씀 전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숨컷 님께서 말씀하신, 컷컷컷 크루원 세 분께서 쾌적하게 방송하실 수 있는 방송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니 ^^ㅣ발 장문 미쳤나]

[100만원이잖아]

[ㅁㅊ]

[겨우 심심한 사과?]

[ㄹㅇ ㅋㅋ 재밌는 사과정돈 돼야지]

[ㅁㅊ 본부장이 뜨네]

[본부장이면 높은 거임?]

[BONE 부장 ㄷㄷ]

[네크로맨서 ㄷㄷ]

"이야, 이거. 아끼려다가, 밑천까지 탈탈 털리게 생겼는데요. 우리 어떡하죠, 팀장님."

그렇게 말하는 페카는, 실실 쪼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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