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01화 (201/361)

201. 이사영

대한민국에 한 전문 투자자가 있었다.

전문 투자자이기 이전엔 전문 게임 방송인이었던 그녀의 투자 활동은.

옛날 호기심에 헐값으로 사 두었다가 깜빡하고 있었던 데이터 쪼가리 무더기가, 황금 무더기로 둔갑하고 나서부터다.

가상화폐라는 이름의 데이터 쪼가리가 말이다.

그녀는 가상화폐를 운용하여 투자를 시작했다.

그녀의 행운을 배 아파하던 이들에겐 참으로 기꺼운 일이었다.

졸부가 주제도 모르고.

행운으로 거저 번 돈, 머지 않아 다 잃고 길바닥에 나앉으리라.

그들이 예견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그 기대는 맞아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투자 과정을 방송으로 중계했다.

중계 방송 첫 날.

그녀는 무려 3억을 잃었다.

다음 날에도.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손실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았다.

그녀의 행운을 배 아파하던 이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그녀가 멈추지 않기를.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종적을 감추었다.

방송인으로서, 방송을 그만둠으로써.

당시, 그녀의 남은 자산은 여생을 놀면서 호화롭게 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않되!!!!!!!!]

[파산 보여주고 가!!!]

[파보가 ㄷㄷ]

[아 조금만 더 버텼으면 떡상인데 ㅋㅋ]

[ㄹㅇㅋㅋ 판도라 상자에 희망 하나 딱 남았는데 이걸 빤스런치네]

[쫄보따리 쫄쫄따]

그녀를 시기하던 이들은 비웃으면서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녀석이 다 잃는 걸 보고 다시 그저 그런 방송인으로.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가상 화폐와, 주식의 선물과 옵션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투자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익히 알다시피.

선물과 옵션 시장은 제한이 없는 이익을, 그리고 손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서.

그녀 같은 애송이 졸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아수라장.

도박판이었다.

그들은 확신했다.

그녀가 이번에야 말로 끝날 것이라고

그녀의 소식은 그 이후로 단절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친했던 방송 동료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인간 뭐 하고 지내느냐.

어떻게 됐느냐.

"그 사람이 어떻게 됐냐면…."

[???]

[아니 뭐 어떻게 됐는데 ㅅㅂ아]

[말을 해요]

[후두암이 재발해 버린 사람]

그 방송 동료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돌릴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녀가 마침내 귀환했다.

귀환한 그녀는 더 이상 애송이 투자자가 아니었다.

졸부도 아니였다.

[속보) 라이오 워렌 버핏이랑 사우나 풀코스]

[속보) 라이오 자산 3000조 돌파]

[속보) 라이오 김해 토지 풀매수하고 영주로 등극]

[속보) 라이오 달 인수 이제 밤에 자려면 라이오한테 비용 지불해야]

[속보) 라이오 초사이언4]

[라이오새끼 어디까지가 진짜여]

[김해 영주님이 니 친구냐?]

초대형 졸부였다.

동시에, 초대형 개인 투자자였다.

RAIO, 이사영.

240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가 금의환향 후에 가장 먼저 진행한 사업.

다름 아닌 옐로TV 인수였다.

그녀는 간단히 옐로TV의 최대 주주로 거듭났다.

그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액수를 투자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방송 플랫폼을 손에 넣기 위해 말이다.

무모한 행위.

그녀가 선물 시장에 진출했을 때처럼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허나, 옛날처럼 그걸 단순히 졸부의 어리석은 만용이라 단정 짓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는, 혹한다.

가상화폐와 주식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투자자인 그녀의 선택에.

도대체 옐로TV에 뭐가 있길래?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녀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계획과 비전이 있는 건가?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는 이사영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그에 그녀는 답했다.

"낭만."

"네?"

"돈 충분히 벌었으니까, 이젠 낭만을, 어? 추구해야하지 않겠어?"

"아핰핰, 미쳤나봐."

초대형 졸부의 정신나간 기행.

낭만.

옐로TV의 재건.

나아가, 부흥.

그걸 위한 수단으로, 이사영은 엘로TV에 채워 넣은 자신의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지시했다.

기성 방송인들을 영입해 오라고.

리치TV가 자신들에게 그랬었듯.

이는 당연히 복수-

때문만은 아니다.

리치TV가 선례로 증명했다.

시청자들은 플랫폼이 아닌 방송인들에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어.

이미 고착화 되어 있는 인터넷 방송 시장에 끼어들어 세력을 확보하는 데에 그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다른 방송인들을, 주로 리치TV의 방송인들을 옐로TV에 들어오느냐였다.

이제는 명실공히 게임 방송에 한해서는 국내 최대 방송 플랫폼이 돼 버린 리치TV에서.

이제는 명실공히 망할 날만을 기다리는 퇴물이 돼 버린 옐로TV로.

불가능한 일이다.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옛날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옐로TV가 아직, 명실공히 국내 최대 게임 방송 플랫폼이었던 시절.

그리고.

리치TV가 명실공히, 이미 고착화 된 한국 인터넷 방송 시장에 무모하게 끼어드는 신규 플랫폼이었던 시절.

옐로TV에서, 리치TV로 방송인들이 대거 넘어가는 엑소더스 사태가 있지 않았던가.

지금 이사영이 꾀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첫 번째는, 리치TV가 옐로TV 방송인들에게 명확한 비전과 대우를 약속했기 때문이었으며.

두 번째는, 옐로TV가 기존 플랫폼에 대한 불신, 불만 때문이었다.

현재에 대한 불안과 변화에 대한 기대.

두 가지가 두루 충족되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 그걸 그대로 답습하면 된다.

는 게, 이사영의 판단이었고.

실제로 시행하였다.

그렇게, 변화와 기대를 이끌어냈다.

레전드 필드 첫 공식 대회이자 대형 이벤트인 멸망전을 수주한 것이다.

리치TV와 아메리카TV라는 쟁쟁한 경쟁자가 있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느냐.

그 둘이 과연 가만히 지켜만 봤을까?

가만히 지켜만 봤다.

옐로TV는 대회 수주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사영은 그 투자를 '낭만딜'이라 표현했고.

다른 이들은 그 투자를 '미친짓'이라 표현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리치TV와 아메리카TV는 옐로TV와 경쟁하기에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옐로TV와 대등한 위치에서 소모전을 해 줄 필요가 말이다.

옐로TV와 아무리 거액과 정성을 들여.

LKL프로들이 포진된 상징적인 공식 대회를 개최한다 해도.

결국엔 다 망해가는 플랫폼.

자신들이.

그러니까, 리치TV와 아메리카TV가 연합하여 플랫폼 대항전 따위를 개최해 대항한다면?

할 만하다.

적은 비용을 투자해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보아, 옐로TV의 공식 대회를 묻어버릴 수 있다.

다시 기어 나와 파이를 차지하려는 옐로TV와 함께 말이다.

그게 리치TV와 아메리카TV가 임시 협정을 통해 내놓은 판단이었고.

그렇기에, 옐로TV에게 첫 공식 대회를 기꺼이 내주었다.

그로 인해 낭패를 보게 된다.

옐로TV가 리치TV의 불안을 이끌어낸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리치TV의 비리 자료를, 외부자인 페카에게 시켜 때마침 폭로함으로써.

이는, 숨컷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큰 효과를 거두었고.

그렇게 단번에 불미스러운 논란을 일으킨 플랫폼으로 거듭난 리치TV는 대회를 개최하기 곤란한 입장이 돼 버렸다.

아주 큰 기대와, 아주 큰 불안이 만족된 것이다.

-아유~ 그 사람이 복덩이긴 하네, 응?

SGF가 끝난 직후, 이사영은 페카와의 통화에서 아주 흡족한 심정을 내비추었다.

"내가 뭐랬어요. 그러니까 옛날에 붙잡자고 했잖아."

-아니, 그때 붙잡았으면 이번 일이 안 일어났을 거 아냐.

"어? 그러네? 뭐 어쨌든. 지금이라도 모셔옵시다."

-아니, 뭐. 그건 당연한 소리고. 방송인, 많을수록 좋으니까. 아, 잠깐. 설마 '그거'로 데려오자는 건 아니지?

"맞는데요?"

-아, 그건 모르겠네. 본부장, 팀장이랑 상의해 봐.

"아니, 날 왜 계속 일에 끼우는 거야?"

-그 뭐냐, PD 대표해서, 어? 우리 운영진이랑 소통을 하자는 거지.

"참나."

아주 큰 기대와, 아주 큰 불안이 만족되었다.

리치TV에 엑소더스가 일어나려는 낌새가 보인다.

그렇게 모든 일이 만사 잘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옐로TV는 레전드 필드와 멸망전 개최 발표에 맞춰.

미리 포섭해 둔 이전, 리치TV의 비리에 의한 피해자들의 옐로TV 이적을 공론화 했다.

기세를 타서 엑소더스가 시작되도록, 기폭제를 작동시킨 것이다.

끝났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나지 않는다.

리치TV 비리 폭로, 옐로TV 멸망전 개최에 이어서 기폭제가 터졌는데도.

스트리머들이 결정을 못 내리고 머뭇거린다.

[야 너도 옐로TV 가냐?]

"쓰… 그게…."

[???]

[이걸 고민한다고?]

"아니, 내가 벌써 그 이야기를 꺼내기엔 좀 뭐한 것 같아서."

[뭐가 뭐해]

[무가무해]

"아직 그 두 분이 가만히 계시는데, 내가 두 분 보다 먼저 옐로TV로 넘어간다고 하면. 그 뭐랄까-"

너무 약아 빠져 보이잖아.

숨컷의 덕을 확실히 본 부작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리치TV 비리에 의한 피해자로 숨컷과 권지현에 너무 강하게 부각되어 버려.

그로 인해, 옐로TV에서 미리 포섭해 둔 이전 리치TV 피해자들의 이적이 기폭제로 작용할 만큼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스트리머들은 숨컷과 권지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엑소더스가 시작돼야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난처할 따름이었다.

"이젠 어떡해. 그분들 이적하는 거 기다려야 하나?"

-지금 기다릴 새가 어딨어. 몰아 붙여야지.

"그러면요?"

-그 사람이랑 친분 있지?

"그럼~ 세상에서 제일 친하지~"

-그럼 잘 말해서 데려와 봐. 김 팀장이랑 같이.

"또 내가?"

-그쪽이랑 일면식이 있잖아.

"아니 이거, 너무 공짜로 부려먹는 거 아니야?"

-나 때문에 돈 많이 벌어 놓고.

"하~ 째째해서 진짜. 그래서. '그거'제안해요?"

-김 팀장이랑 상의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에엥~? 왜요?"

"지금 그분의 입장 때문입니다. 그분도 지금 급할 겁니다. SGF에서 한창 관심을 끌어서 들어오는 물에 노를 정어야 하는데. 자신을 매장하려 했던 플랫폼에서 계속 방송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당장 이적을 하고 싶을 텐데.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로 이적을 하느냐고.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예전에 아주 좋은 상황에서 아메리카TV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저희 옐로TV를 통해 리치TV로 진출하는 걸 택했더군요.

본인의 성향을 리치TV와 옐로TV에 맞다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리치TV랑 저희 옐로TV 분위기를 고려하자면. 별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도, 선뜻 옐로TV 이적을 결정할 겁니다."

"흠~"

페카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뱉으며 김 팀장을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다람쥐 탈을 쓴 괴짜, 플랫폼의 대표 방송인으로서 비공식 자문인 그녀의 반응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낀 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예?"

"제가 보기엔, 그분. 아실 것 같은데."

자기가 을이 아니라 갑인 걸.

"갑… 을이요?"

"그분이 리치TV에 잔류하겠다 하면 저희는 큰일 나는 거고, 그 분이 옐로TV 오겠다 하면 리치TV가 큰일 나는 거잖아요?"

"아. 무슨 말 하시는 지 알겠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설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득 조금 더 보겠다고 중간에서 간보는, 그런 판단을 하진 않을 거니까요."

리치TV 관계자는 스트리머와 유착하여 그와 권지현을 성추행범과 옹호자로 만들어 매장하려 했다.

리치TV는 그걸 묵인했다.

그런 일을 당한 와중 번듯한 대체 플랫폼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곧바로 이적을 하지 않고, 리치TV에서 간을 본다?

그에겐 '명분'이 없었다.

리치TV와 옐로TV사이에서 간을 볼 명분이.

그렇기에.

그가 리치TV와 옐로TV 사이에서 간을 본다면.

사람들은 곧바로 그가 입장을 이용해 더 많은 이득을 얻어내려는 걸 알아챌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크루원을 성추행범과 그 옹호자로 만들어 매장시키려 했던 리치TV에 남아서 말이다.

그러한 모습이, 시청자와 동료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독하다.

계산적이다.

영악하다.

십중팔구 그렇게 비추어질 텐데.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 사실을 알 터.

"음~"

그런데도 페카의 반응은 애매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