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선택의 기로 2
레전드 오브 레전드.
언젠가부터 게임계라는 왕국의 왕좌는 당연하다는 듯 레오레 차지가 되어 있었다.
홀로 온라인 게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잡아먹는 괴물.
숫한 경쟁작들이 레오레의 독재를 끝내기 위해 도전했다.
대부분은 실패했지만 더러 그 가까이에 다가간, 심지어는 정말로 레오레를 꺾을 뻔한 게임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레오레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명성은 옛날만 못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점유율이 30%대까지 하락했다.
점유율 30%대란 수치를 감히 하락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하는 건 과연 어떨까 싶었지만.
그 전이 50%이라는 엄청난 수치란 걸 감안해야한다.
게다가.
그마저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락하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레오레가 왕좌에서 축출당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뒤를 따라오는 신흥 강자들에 의해.
아이엇은, 일찍이 그걸 예견하고.
대비를 시작했다.
아이엇은 레오레의 하락세에는, 시대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변화라 함은 바로 유행의 변화였다.
레오레가 등장할 당시엔, 한창 AOS장르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 유행은 레오레의 흥행으로 격렬하게 타올랐으며, 그렇게 지금은 다 타올라 재가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타오르기 시작한 유행.
레오레의 뒤를 추적하는 신흥 강자들.
바로 '배틀 로얄'이었다.
AOS가 유행하던 시절.
게임계의 전통 강자이던 허리케인 사에서도 출사표를 던졌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AOS를 자신들의 IP로.
그러니까, 자회사 대표 게임들의 캐릭터로 만들겠다 선언한 것이다.
레오레 이전 대한민국 전통 놀이로서.
대 프로게이머의 시대를 열었던 스타 오브 워.
그리고, 전세계 수험생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린 월드 오브 워와 레아블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명작의 영웅들을, AOS에서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다?
업계는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드디어, 레오레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그렇게, 허리케인사가 야심차게 내 놓은 AOS.
'시공의 균열'은-
폭망했다.
[와 ^^ㅣ발 캐비어 푸아그라 트러플로 죽을 써 놨네]
[아니 저 IP로 말아먹는 게 더 힘들것 같은데]
[어케했노 시발년ㄴ들아진짜]
게미어들은 빡치는 동시에 경악했다.
허리케인사의 IP로 만든 AOS게임을 말아먹는 건, 물 먹다가 체해서 죽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걸 해내고 만 것이다.
게이머들은 오히려 불가능한 일을 해낸 허리케인 사에게 경의를 표했다.
모든 게이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시공의 균열은 실패한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듯, IP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현재.
게임계에서 가장 강력한 IP를 꼽으라면, 단연코 레오레였다.
레오레의 복슬복슬한 너구리 군인의 위상은, 이제 전기를 내뿜는 노란색 쥐를 위협할 정도다.
그런 레오레의 영웅들로.
지금 한창 유행 중인.
아무런 특징 없이 밋밋한 군인들로 플레이해도 마냥 즐거운, 배틀 로얄 장르를 플레이 할 수 있다?
"소개합니다!"
SGF 1일차 마지막 공식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섹스코의 중심에 위치한 메인 스테이지.
그곳의 거대한 스크린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한다.
몇 년 전 언급되었다가 이후 아무런 소식도 없어 불발된 줄만 알았던.
모두가 고대하고 있던 그 게임의 트레일러 영상이.
플레이 영상이.
거대한 스크린을 수놓는다.
이윽고 영상이 끝나고-
-레전드 필드-
아이엇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
레오레 IP를 사용한 배틀 로얄 신작의 이름이 스크린에 새겨졌다.
배틀 로얄 장르에 유저 파이를 빼앗길 바에.
차라리 우리가 먹어 버리자.
AOS와, 배틀 로얄.
게임계를 양분하는 장르를 다 자신들이 차지해서.
아예 독점해 버리자.
그게 아이엇이 내놓은 결론이었다.
그렇게 '레전드 오브 레전드 리마스터'에 이어, '레전드 필드'가 공개되었다.
"""""""""으아아아아악!!!!!!!!!!!!!!!!!!!!!!!"
""""""""""
관객들은 고함에 가까운 환성으로 회장 안을 가득 채워 쩌렁쩌렁 울렸다.
시공의 균열 때와 같이.
"레전드 필드와 기존 배틀 로얄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게임에 대한설명을 이어나가던 진행자의 말을-
"언제 나와요!!!!!!!!!!!!!!!!!!!!!!!!!!!!!!!!!!"
반쯤 정신이 나간 관객이 끊는다.
그 무례함은 곧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개발자가 웃으며 기꺼이 응답했다.
"레오레의 시즌이 종료되고 다시 시작되기까지의 공백. 그 공백 동안의 씁쓸함을 달래주기 위해-
"설마!!!!!!!!!"
"조만간 종료될 레오레 시즌 종료에 맞춰 출시될 예정입니다."
끔찍한 기다림이 겨우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고함으로 회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스크린에 날짜가 표기된다.
레전드 필드가 출시되고, 약 이 주 뒤.
<멸망전>
"레전드 필드 멸망전이, 시작됩니다! 이 멸망전에는 어떤 분들이 참가해 주시냐!"
스크린에 익숙한 이름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바로, LKL의 팀들이었다.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페이스!!!!!!!!!!!!!!!!!!!!!!"
"머그컵!!!!!!!!!!!!!!!!!!"
"TC1! TC! TC1"
"BAY!!!!!!!!!!!"
"차현하!!! 숨컷이랑 잘 놀았냐!!!"
"아, 끝장났지!"
선수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멸망전 참가에 대한 포부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계속해서 절정을 갱신했다.
관객들은 이제 거의 울부짖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습니다! 저희 대한민국 LKL의 자랑인 선수들께서, 레전드 필드 플레이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위해! 레전드 필드의 첫 공식 대회가 될 멸망전을 빛내 주실 예정입니다. 멸망전엔 선수 분들 외에도, 다양한 분들이 참가해 주실 예정이며!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추후-"
옐로TV.
스크린에 그 글자가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옐로TV에 공지될 예정이며. 멸망전 진행 또한 옐로TV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SGF 첫날 폐장 직후.
레전드 필드와, 레오레 리마스터, 그리고 멸망전에 대한 키워드들이 검색어 순위를 독차지했다.
그 중.
1위는 옐로TV였다.
* * *
옐로TV의 대표 교체.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통한 환경 개선.
방송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대대적인 지원 약속.
그리고, 단언컨대 근래 들어 최고의 화제 게임이 될 레전드 필드의 첫 공식 대회, 페이스를 비롯한 LKL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멸망전 개최.
SGF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옐로TV의 부상이 시작됐다.
그건 현재 비리로 불난리가 난 리치TV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었다.
방송인들과 시청자들이 안 그래도 리치TV에 실망과 회의를 느끼고 있는 와중.
비슷한 성향의 다른 플랫폼에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이 일련의 사태는, 스트리머들에게 진지한 고려를 이끌어낸다.
제목 : 야 이러다가 또 엑소더스 일어나는 거 아님? ㅋㅋ
내용 : 분위기 심상찮은데?
ㄴ : 엑소 누나가 왜요
ㄴ 글쓴이 : 저도 몰라요 ㅅㅂ아 엑소더스 얘기하는 거니까
ㄴ : 야르릉 야르릉 야르릉 대
ㄴ : 엑소더스가 뭔데 씹덕아
ㄴ : ㄹㅇ ㅋㅋ 이름도 개씹덕같네
ㄴ 글쓴이 : 에휴
ㄴ : 엑소더스 = 대량 이탈 현상
ㄴ : 그럼 탈모들은 머리털 엑소더스임?
ㄴ : 탈모는 그냥 탈모예요 괜히 멋진 이름 붙여주지 마셈ㄴ : 인성 엑소더스;
옐로TV 이적에 대한 고려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니.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창 떠오르는 태양인 리치TV에서, 한창 지고 있는 태양인 옐로TV로 이적하는 걸 고려하다니.
그만큼.
어제 SGF에서 일어난 리치TV 비리 폭로와, 멸망전 개최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런데도 방송인들은 선뜻 옐로TV 이적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게.
옐로TV가 아무리 명확한 비전을 보여줬고.
리치TV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들.
규모, 이미지, 인지도.
모든 면에서 옐로TV가 크게 뒤쳐졌으며.
옐로TV 또한 방송인들을 차별하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리치TV가 망한다는 보장도, 옐로TV가 흥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리치TV가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옐로TV가 흥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스트리머들은 아주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러던 그때.
최재훈.
권지현과 함께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향후 방침을 논의 중이던 그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아, 선생님~
특유의 콧소리 섞인 천진난만한 목소리.
어제, 연락처를 교환한 페카였다.
최재훈은 통화 시작도 전에 진이 빠지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요, 에이~ 아시면서.
"…에이~ 모릅니다."
-핰핰핰, 그러면 기꺼이 설명해 드려야지. 선생님, 지금 리치TV 분위기 아시죠?
"예, 뭐."
-저희 옐로TV 상황도 아시겠고요?
"…예, 뭐."
-그거 때문입니다. 그 일과 관련해서 진지하게 제안드릴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그게, 전화로 하기엔 좀 장황하고, 복잡하고, 긴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지금이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최재훈 또한 시간에 쫓겨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은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러면 지금 만나시죠."
-아, 좋습니당~
약속 장소를 상의하고-
-아참, 선생님.
"예?"
-가능하시면. 크루원 분들이랑 같이 와 주시겠어요?
* * *
최재훈은 제나, 권지현, 이린과 함께 약속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아, 선생님~ 여기예요~"
그러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페카가 손을 들며 부른다.
"…미친년, 진짜."
제나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SGF 같은 공식 석상이나, 방송 중이 아닌데도.
페카가 탈을 쓰고 있는 탓이었다.
이번엔 다람쥐 탈이었다.
큰 앞니와 무기질한 눈이 소름끼치게 소름끼쳤다.
최재훈과 제나는 가기 싫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그녀의 자리에 다가갔다.
"응?"
페카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또 다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숨컷 님, 맞으시죠? 전 옐로TV에서 이번, 멸망전과 레전드 필드 프로모션을 총괄하게 된 김 팀장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갑자기 웬 거물?
최재훈은 무의식적으로 옆의 페카를 쳐다봤다.
다람쥐가 실실 쪼개고 있었다.
쪼개 버리고 싶네.
"아, 예. 반갑습니다. 방송하는 숨컷, 최재훈이라고 합니다."
"권지현 입니다."
"삼피, 제나 웨스트."
"숨컷 님 편집자인 이린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통성명을 끝내고 마주앉았다.
이린만 혼자서 옆 좌석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자, 그럼."
팀장이 아닌 페카가 입을 열었다.
"컷컷컷 크루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 리치TV에선 스트리머들이 진지하게 옐로TV 이적을 고려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저희 옐로TV는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죠."
옛날과 같다.
한 쪽에선 엑소더스가 일어나려 하고 있으며, 다른 한 쪽에선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직접 개입해 주도할 정도로.
"저희 옐로TV에 실망하고 떠나셨던 PD 여러분이, 다시 옐로TV로 돌아와 주길 말이죠. 그런데, 이 분들이 한 발자국 앞두고 망설이고 계셔서요. 저희가 여러분께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드린 건,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들께서 그분들의 등을 떠밀어 주는 역할을 맡아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등을 떠밀어요? 뭐 어떻게. 빌딩으로 데려가서?"
"오~ 그것도 나쁘지 않죠."
"…."
농담을 받아쳤을 뿐인데 최재훈은 소름이 돋았다.
"어쨌거나, 저희가 총대 메고 이적이라도 하라는 소린가요?"
최재훈이 이야기 하자, 탈 안에서 "오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선생님? 이야~ 역시, 눈치가! 맞습니다."
"왜 하필 우리한테?"
제나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일단, 첫 번째는. 당연히, 여러분들이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스트리머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 말고."
"입에 발린 소리라뇨! 숨컷 씨는 요즘 가장 핫한 신인 방송인이시고. 제나 씨는 워낙에 유명하시고. 우리 지현 씨도, 가능성이 창창하시고!"
"두 번째 이유는 뭔데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의 지금 이미지 때문입니다."
그때, 김 팀장이 끼어들었다.
"이미지요?"
"김경훈, 신도, 빅가이즈 크루, 허나이. 숨컷 님께서 이 사람들을 묶어서 정의 짓는다면, 뭐가 될까요?"
"어…."
최재훈이 고민 끝에 최적의 표현을 선정해내, 그걸 말한다.
"개 쌉쌉십새끼들?"
"…."
그에 김 팀장이 당황하고, 옆에서 페카가 큭큭거렸다.
"앗, 죄송합니다. 너무, 격식 없었네요."
"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숨컷이 저런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도.
실물로 보니 더 미모로 저런 구수한 말을 하니 저도 모르게 당황해 버린 것뿐이었다.
크흠.
김 팀장이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리치TV의 비리."
"네?"
"사람들이 느끼기에, 저 사람들이 상징하는 바입니다.
컷컷컷 크루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에게 공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공격 당하셨었죠."
"그런 저희 컷컷컷 크루 이미지는 '리치TV 비리에 의한 피해자'를 상징하고. 그런 저희가 옐로TV로 이적하면 상징적인 이미지가 부여돼서,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이거네요?"
짝짝짝.
페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정~ 확 하십니다. 이야, 선생님! 제 마음을 그렇게 어떻게 잘 아세요!"
"모르는데요. 아니 진짜, 니 마음은 세상에 존나 모르겠어요."
"하하핰, 쑥스러워 하신다!"
"전 지금 무서운데요, 너 때문에."
"큭큭큭, 뭐 어쨌거나. 숨컷 선생님. 컷컷컷 여러분?"
페카가 진지해진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하실까요? 약속드리는데. 이번 일로 옐로TV에 와 주실 경우- 아니지, 돌아온다고 해야 할까요?"
"나 집에 감."
"아핰핰! 미안해요! 미안해!"
"와 주실 경우 뭐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씀 드릴려 했습니당~"
"…잠깐, 저희끼리 상의 좀 해 봐도?"
"아, 예 물론이죠."
그렇게 컷컷컷 크루와 이린은 잠깐 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숨컷.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