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대격변 6
"여러분, 슬슬 배고프시죠?"
팬미팅의 마지막이 다가왔음이 느껴질 때.
"응? 갑자기요? 뭐, 슬슬 배가 고프긴 한데."
"제가 끝장을 내 드리겠습니다."
"오호, 이렇게 기대를 끝장을 내 주시겠다."
"오! 그러고 보니 마침 배고픈 것 같기도!"
"어, 그런데 두 분."
"음?"
"넵?"
"그 탈. 쓰고 먹을 수 있으려나요?"
아.
그렇게 잠깐의 침묵 뒤.
"정말 아쉽지만, 패스하는 걸로."
"저도, 너무 아쉽지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최재훈이 쩝 입맛을 다셨다.
"뭐, 두 분이 그렇다면 그러죠 뭐. 아깝네. 기껏 만들어 왔는데."
'만들어오다'
그 부분에 두 여자의 귀가 쫑긋거렸다.
"만들었다고요?"
"뭘, 말입니까?"
"씨티 락."
"응?"
"도시락이요."
"네? 아. 아~ 그건 좀~"
"하하하! 완전 웃깁니다!"
"하하하! 완전 웃기다잖아!"
그렇게 또 둘이 하이파이브를 짝-
"둘이 이럴 때마다 나 진짜 소외감 느낀다?"
그나저나 도시락이라.
인기 면에서나, 성적 면에서나 대한민국 레오레 프로팀의 1, 2위를 다투는 TC1과 BAY의 얼굴 마담인 둘이다.
오늘 SGF에서 있을 팀 공식 행사에 참가하기 전에 이성 스트리머의 팬미팅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기에 탈을 썼다.
그렇기에 아쉽지만 점심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시락이라.
이 남자의 수제 도시락이라.
두 여자는 고민했다.
저 제안에 응할까, 말까가 아닌.
탈을 쓰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탈의 입 부분에 구멍이라도 뚫어야 하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던 그때-
"아, 그러면 이렇게 하죠. 어차피 이제 팬미팅 마무리해야 하니까. 두 분, 도시락 받으시고 따로 드시는 걸로."
"아! 그러면 되겠네."
"오오, 역시!"
그렇게 그들은 주차장의 어떤 차로 향해, 트렁크를 열었다.
다음은 아이스박스를 열자, 정성스럽게 포장 된 도시락 네 개가 보였다.
최재훈은 그 중 한 개를 꺼내 뚜겅을 열었다.
"다라~"
호화로운 토핑에 눈이 멀 것만 같은, 찬란한 유부초밥이 낭낭하게 도시락을 채우고 있었다.
그 엄청난 퀄리티에 두 사람은-
"오…."
"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무엇이지. 이 에바가 쎄바와 쌈치를 후려치는 미지근한 반응."
"아, 아니. 난 또, 숨컷 씨가 직접 만든 도시락이었다는 줄 알고. 응. 좋지. 맛있지. 대왕 유부 초밥."
"아! 아닙니다! 좋습니다! 완전 기쁨다!"
둘은 숨컷의 이미지 때문에 그가 만든 도시락이라 하면 당연히 삐뚤빼뚤, 엉성한 그런 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퀄리티의 내용물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시판 도시락이라고.
"응? 아닌데? 직접 만든 건데요?"
"엥?"
"네?"
둘은 깜짝 놀라서 다시 도시락을 쳐다보고, 숨컷을 쳐다보고, 도시락을 쳐다보고.
"아니, 정말 숨컷 씨가 이걸 만들었다고?"
엄청난 의외.
그런 숨컷에게 이런 가정스러운 면이 있다니?
요리 잘 하며, 도시락까지 잘 만드는 남자.
그 이상적인 모습에 두 여자는 탈 안에서 새삼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하, 이거 또. 너무 완벽해도 죄라니까. 사람들이 나란 존재를, 어? 받아들이질 못해! 어쨌거나, 여기. 우리 데스베이더 씨 받으시고-"
최재훈이 도시락을 매우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김희은에게 건넸다.
"에헤헤. 잘 먹겠슴다!!!"
"그리고, 자 여기. 우리 포니 씨."
그리고, 김희은 때와 비교하면 약간 미지근한 자세로 차현하에게 건넸다.
"아니, 숨컷 씨."
"네?"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나 뭐 잘못했나?"
"예? 갑자기 왜요?"
"아니, 날 대할 때랑, 저분 대할 때랑 왠지 온도차이를 느껴서."
"아."
최재훈은 그제야 자각한다.
자신이 '페이스'를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더 신경을 쓰고 있었음을.
이는 차별이 아닌 편애에 가까웠다.
차현하를 대함에 소홀히 했다기보단, '페이스'를 대할 때 더 힘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도 은근 그렇게 느낌]
[차별 당하기 전문가인 본인이 보기에도 빼박임]
[아빠 왜 쟤한테만 고기 더 많이 줘?]
[무뚝뚝한 애인 줄 알았는데 걔 앞에선 잘 웃더라...]
[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
[국내 차별 당하기 전문가 갤러리]
[PTSD를 자극한 죄]
"아, 미안해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섭섭한 생각하게 해드렸다면, 정말 죄송해요."
그저 사태를 수습하려는 얄팍한 의도가 아닌, 진심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과에.
둘은 되려 송구스러워진다.
"아, 그! 죄송함다! 제가 괜히 친하게 굴어서…."
"아, 아녜요. 내가 너무 쪼잔하게 굴었네."
그나저나.
도대체 왜 저도 모르게 차별을 했을까.
사람들이 그 이유에 추궁하다 보니-
[야 그러고 보니 이 둘 프로 아니냐?]
[그러게 겜 ㅈㄴ 말도 안 되게 잘하더만]
[?? 먼 소리임]
[이거 팬 미팅 모집할 때 프로 참가한다는 이야기 있었음]
[합리적 의심 조져본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그에.
차현하는 떠오른다.
처음, 그가 데스베이더에게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고 황송해했던 태도.
그 이후, 그가 데스베이더를 태하는 매우 정중한 태도.
그리고, 저격 이벤트 때 느꼈었던 프로들의 개입.
그렇게 한 가지 가정에 이른다.
숨컷은 데스베이더가 프로인 줄 알고 있다.
혹은, 프로라 추정하고 있다.
그게 편애의 원인이라고.
그러자, 탈 안의 차현하는 자신감 넘치는 호쾌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자그마치 TC1의 주전 원딜러인 SIGHT였다.
프로가 가산 요소가 된다면, 가장 많은 점수를 받는다 자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이 들어 말했다.
"숨컷 씨."
"네?"
"그, LKL 보시나?"
"LKL이요?"
"네. 좋아하시는 팀 있나 해서."
탈 안에서 김희은의 귀가 쫑긋거린다.
"아, 예. 있죠. 당연히."
"오 어딘데요?"
그러자 최재훈은 피식 웃었다.
"말해도 모르실 걸요?"
"에이~ 제가 명색-"
에 프로인데라고 말하려던 차현하의 입이 멈췄다.
"명색?"
"명색이, 챌린저인데~"
"맞슴-니다! 저도! 어지간한 팀은 다 압니다!"
"그래요? 그러면, NSC라고 아세요?"
그녀들의 한쪽 눈동자에 NSC가 그려졌고, 반대쪽 눈동자엔 ?가 그려졌다.
탈 위로도 그게 보였다.
"에이, 그 봐. 모른다니까."
"아니, 풀네임이 뭔데요?"
"네버 스탑 챌린지."
"처음듣는데?"
"???"
"중국 2부 팀이에요."
"중국 2부팀이요?"
"와우, 취향 보게. 2부팀인 것도 그런데, 무려 중국 2부 팀이라고? 국내에 TC1이라는 어마무시한 팀을 놔두고?"
TC1은 세계 최고의 인기 팀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자신의 팀이 언급될 줄 알고 미리 어깨에 힘을 집어놨었던 차현하가 허탈해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BAY니 TC1이니. 국내에 좋은 팀이 얼마나 많은데!"
김희은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우리, 데스베이더 님 같이 엄청난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영광, 또 영광입니다. 그, 혹시….
-그… 손 좀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기운 좀 받게.
그가 자신이 'BAY MUGCUP'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자신을 각별하게 잘 대해 주는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당연히 'BAY'가 언급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네?"
"그러면, 다음으로 좋아하는 팀은?"
"어디십니까!?"
[얘네 텐션 왜 이래 ㅋㅋ]
[사상 검증 수준인디?]
[아니 얘네 ㄹㅇ 프로인 거 아님? ㅋㅋ]
[아니 그러고 보니 잠만 얘 포니 목소리랑 말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러게 ㅅㅂ 뭐였지]
뭔가 묘하게 흐르는 분위기.
최재훈은 탈 너머에서 답을 촉구하는 뜨거운 눈빛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페이스'. 그녀를 한 번 본 뒤-
사실 그는 TC1을 좋아한다기 보단, 페이스를 좋아하는 거였으나.
그게 그거니, 그렇게 답했다.
"TC1, 좋아합니다."
[아 맞다 얘 ㅋㅋㅋ]
[얘 SIGHT 아님? ㅋㅋㅋ]
그 말과 채팅이 동시에 나왔고-
"그렇지!"
차현하가 호쾌하게 말 탈을 벗으며, 고갤 흔들어 눌린 단발머리를 찰랑거렸다.
그리곤, 품에서 파란색 머리띠를 꺼내 멋들어지게 앞머리를 넘기며-
"당연히 TC1이지! 아, 이거, 또. TC1이 끝내 버렸구만!"
트레이드 마크인 이마의 흉터를, 호쾌한 분위기를 가감 없이 뽐냈다.
이린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으며 눈썹과 입꼬리를 반달모양으로 만들었다.
[아니]
[??????????????????????????]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SIGHT였어?]
[와 정신나갔네]
[아니 언니가 왜 거서 나와]
거물, 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엄청난 인물의 등장에 채팅창이 폭발했다.
TC1 SIGHT라니!
하물며, 그런 SIGHT가 숨컷의 열성팬으로서 정체를 숨기고 팬미팅에 참가까지 했다니!
내일이면- 아니지.
이 방송이 끝나자 마자, 커뮤니티에 또 하나의 대형 떡밥이 투척될 예정이다.
안 그래도 이미 숨컷과 관련된 리치TV의 비리로.
그리고 숨컷이 참여할 레오레의 프로젝트로 불타고 있는 커뮤니티에!
또다시 숨컷과 관련된 초대형 떡밥이 말이다.
오늘, 커뮤니티가 숨컷에 의해 그야말로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TC1의 관계자들의 뒷골과 같이.
그녀의 분위기파적인 성격이 또 일을 내 버렸다.
고생하는 건 언제나 TC1 관계자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현하는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 중이었다.
숨컷은 페이스를 염두하고 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아니 뭔…."
그녀의 등장에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놀란다.
그도 그럴게.
그녀 또한 다른 선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실례가 될 위대한 게이머였으니까.
"어때요. 서프라이즈? 그렇겠지. 숨컷 씨 기쁘다니까 나도 기쁘네! 하하, 이거 보람을 느끼는구만!"
어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최재훈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그녀는 매우 흡족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최재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거, 사정이 있어서 얼굴 열심히 숨기신 것 같은데. 그렇게 함부로 까발려도 돼요?"
"아, 뭐. 안 될 거 있어?"
"있을 것 같은데."
"아, 괜찮아 괜찮아!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할 것 같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거지! 숨컷 씨가, 내 열혈 팬이라는 거!"
이야기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지.
최재훈은 구태여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더는 없을 정도로 만족스럽고 또 기뻐 보이는 저 기분을 망치기엔 뭐했고, 무엇보다.
그는 실제로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를 존경했다.
TC1 SIGHT 정도 되면, 존경이 그만큼 커서.
팬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쨌든. 뭐라 해야 하지. 영광이네요. SIGHT 님 같은 분이 제 팬이시라니까."
"암. 영광이겠지. 어때요. 나도 손 한 번 잡아줘? 기운 좀 줄까?"
"하."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자, SIGHT는 자신의 흔적을 묻히기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그의 손을 문질렀다.
그 행동은 얼핏 보면 추접스럽다 오해 받기엔 딱이었지만.
그런 불순한 의도를 느끼기엔, 그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호쾌했다.
양손으로 손을 비비는데, 마치 불을 피우는 것 같았다.
저기요.
뜨거운데요.
"아, 어쨌든. 여러분. 혼란스러운 와중에, 오늘 팬미팅 방송.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기존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와 주셔서 감사하고. 새로운 시청자 여러분들,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컷!"
[숨바]
[아니 근데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얼얼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컽!]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그 즉시, 차현하는 도시락을 열어 유부초밥 한 개를 호쾌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음!!! 음믐믐!! 마딛네!!! 마딨어!!! 내 열혈 팬 분이 만들어 준 유부초밥! 아주 좋구만!"
우물거리며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연식 끄덕인다.
"하, 참나."
최재훈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실실 웃을 뿐이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김희은은 엄청난 상실감과 충격에 잠겨 있었다.
아니.
아니.
아니었어?
내 팬인 거?
"아, 맞다. 숨컷 씨."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한 번씩 쪽 빨곤 말했다.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겠어?"
"할 얘기요? 예, 뭐."
"어 여기선 좀 그런-"
그녀가 김희은을 보더니.
"에이, 모르겠다. 보니까 저 친구도 프로 같던데."
그녀가 핸드폰을 조작했다.
오늘 장소에서 만나기 위해 교환했던 라톡 아이디로, 무언가를 보냈다.
"어… 이게 뭡니까?"
그건 계약서의 양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 쪽, TC1에서 숨컷 씨한테 제안하는 조건."
"…조건이요?"
"놀라지 말고 들어. 조만간 아주 끝장을 내 버리는 이벤트가 열릴 건데! 거기에서 무려! 숨컷 씨가 우리 팀이랑, 숨컷 씨가 사랑해 마지않는 TC1이랑 같이 끝장을 내놓을 수 있는 거지! 심지어! 그러면 거기 적혀 있는 그 조건, 숨컷 씨가 다 가져가는 거고!"
어때!? 라는 표정으로 묻는데.
최재훈은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라 영혼 안 담긴 "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휴즈 이벤트는 뭐고.
TC1가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최재훈은 조건 중 하나에 눈이 갔다.
'TC1 전속 스트리머 계약'
"세상에…."
"그렇지! 세상에지! 우리가 한 식구가 된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네!"
"아니, 아직 결정 안 했는데요."
"아하하! 친구, 부끄러워 하는 모습도 사랑스럽구만!"
"워메. 불 같은 아가씰세."
아니 그나저나-
최재훈은 그렇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 끝장을 내버리는 이벤트라는 게 뭔데요."
"아, 그거-"
잠깐의 고민 뒤 말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오늘 SGF 마지막 공식 행사 보면 알게 될 거야."
"아니, 또 그 새끼야?"
"하하하!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또 그 새끼지! 이야~ 오늘 팬미팅 나오길 진짜 잘했네. 숨컷 씨!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숨컷 씨는 어땠어?"
"예, 뭐. 저도. 재밌었네요."
최재훈의 진심 어린 대답에, 그녀가 유쾌해 죽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
그럼 이만.
함믐믐믐~♪
그녀가 입 안에 주먹밥 한 개를 더 털어놓곤 콧노랠 부르며 자릴 떴다.
마치 폭풍- 아니, 파이어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하…."
이린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시군요."
"그러게요."
그러던 그때였다-
"숨컷 씨."
"응?"
다스베이더가 부들부들 떨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팬인 거, 아니셨슴까?"
"네?"
"왜 사람 햇갈리게 그러심까… 너무하심다…."
뭐지 또 이건.
아주 난리가 났구만.
파이어 토네이도 피했더니 이젠 쓰나미야?
최재훈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뇌를 굴렸다.
(초코크림슈크림 : 나 뇐데 날 먹어라.)
'모야, 이건 또 시발. 저리 꺼져.'
최재훈은 결국 본능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뭔지 몰라도, 저 선생님 팬 맞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게이머가 선생님이신데."
"…."
데스베이더가 잠깐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역시, 그랬슴까!"
그녀가 데스베이더 탈을 벗으며- 짜잔. 소리가 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어때!?
어때!?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는데-
그 순간.
최재훈은 시간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 생각했다.
'시발, 누구세요.'
그는 다른 프로게이머는 몰라도 페이스, 김이리의 얼굴은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자기가 페이스인 줄 알았던 사람은, 페이스가 아니었음을.
그러던 그때.
그의 본능이 지시했다.
좋아하라고.
안 그러면 분위기 곱창난다고.
"와!!!!!!!!!!! 와!!! 역시!!!"
"하하하핫!!! 그렇슴다! 바로 점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뇌 : 얘 도대체 누군데 그러냐?)
'몰라 시발.'
'도대체 누구세요'가 계속 입술을 두드렸지만.
팔짱을 끼고 세상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이는 그녀를 보니,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숨컷 님, 아니 숨컷 씨- 아니지. 이름이 어떻게 되심까!?"
"저 최재훈- 입니다."
"재훈 씨라도 불러도 되겠슴까!? 아, 저는 편하게 희은 씨라도 불러도 됨다! 너무 어려워하지 마시고 편하게! 전 괜찮으니까!"
그녀가 선심을 쓰는 것처럼 우쭐거렸다.
"아, 예 그럼. 희은 씨."
"아, 아핫! 아핫핫핫핫! 재훈 씨, 재훈 씨!"
"네, 네."
"이것 좀 봐 주시겠슴까!?"
그녀도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라톡!
SIGHT 때와 비슷한 게 왔다.
"이게 뭔지…."
"아까! SIGHT가 말했던 거랑 비슷한 검다! 무려, 저랑! BAY MUGCUP이랑!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
그녀가 숨컷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헤실헤실 웃었다.
"저 있다고,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됨다. 제가 잘 챙겨 드릴 테니까! BAY 숙소도 구경시켜 드리고! 아! 맞다! 제 유니폼 갖고 계심까!?"
"어… 아뇨!"
"앗! 어쩌다가!"
"그러게요! 도대체 왜 나한테 희은 씨의 유니폼이 없는 거지!? 이 세상은 왜 이리도 부조리한가!"
"아아앗!!! 그러면 제가 나중에 따로 하나 챙겨 드리겠슴다. 무려! 제 싸인 유니폼으로! 아니지! 하나래! 여러 장 챙겨 드리겠슴다!"
어때!
그런 표정이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와!!!!! 데, 박!"
"그리고 그 뭐지, 뭐지… 아. 혹시 또 뭐 갖고 싶으신 거 없슴까!? 꼭 구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아쉽게 못 구한 제 굿즈!!!"
"그러게요!!! 그런 거 엄청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기억이 안 나네!"
"앗!!! 그러면!! 제가 다 챙겨 드리겠슴다!"
"다요!?"
"넵!"
"와우! 리을리!?"
최재훈은 연기에 심취해 저도 모르게 공중제비를 돌아 버릴 뻔했다.
그런 정성이 전해졌는지.
김희은의 어깨는 점점 더 거대해져갔다.
그녀의 우쭐거림이 하늘을 뚫으려 하고 있었다.
천원돌파 우쭐라간이 되려 하고 있었다.
"아참! 참고로, 저 모든 팬 분들한테 이렇게 다 잘 해 드리는 거 아님다!"
"앗!?"
"하지만, 재훈 씨는 특별하니까! 특별히! 따로 챙겨 드리는 검다!"
또 날라 온다.
그 표정.
어때!? 라는 표정.
"끼요오오오옷!!!"
최재훈이 맥시멈 환희를 표현했다.
"그렇슴다! 그러니까! 다른 팬 분들한테는 비밀임다! 아시겠슴까!?"
"여부가 있겠슴까!"
"하, 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팬 한 분만 챙겨 드리면 안 되는 건데!"
"어떡하지!"
"그러니까, 재훈 씨! 행운이신 줄 아시는 검다!"
"이렇게 되네!"
"제가 이렇게 잘 대해 드리는데도, 저 선택 안 해 주시면 저… 실망할 검다! 재훈 씨한테 실망할 검다! 꼭! 기다리겠슴다!"
그렇게 그녀는 엄청난 속도의 달리기로 순식간 멀어-
"아! 깜빡했슴다!"
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 도시락을 챙겨 들곤-
"이거! 잘 먹겠슴다! 좋슴다, 이런 거! 저 좋아함다! 자주 보내주셔도 될 것 같슴다!"
이번에야 말로 순식간에 멀어졌다.
"…."
숨컷은 기진맥진해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이린이 격려하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게요."
최재훈을 일단 도시락을 꺼내 이린에게 건넸다.
흠믐믐믐.
그리곤 그녀와 같이 주먹밥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일단, 그놈의 공식 행사 때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확인하자고.
거기서 도대체 뭔 개지랄이 일어날 예정이길래.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부터 확인하자고.
뒷일은 그 때가서 생각하자고.
겨울의 냉기가 태양을 더욱 빨리 꺼트렸다.
아직 시간이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검게 물들어가는 하늘.
마침내, 그놈의 공식 행사가 시작된다.
SGF는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대격변이 시작됐다.
* * *
SGF가 종료되고 며칠이 지났을까.
아침 루틴을 마친 최재훈.
그가 방송을 켜기 위해-
옐로TV로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