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97화 (197/361)

197. 대격변 5

오늘.

SGF에서 숨컷이 보여준 활약에서 드러난 그의 특징은 이러했다.

잘생겼는데 또라이임.

잘생겼는데 성격 털털하고 또라이임.

잘생겼는데 성격 털털하고 멘탈까지 좋은데 또라이임.

그렇다.

그의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 있는 '게임 실력'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보여줄 기회가 없었기에.

숨컷은 분명 단기간에 레오레 게이머로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에 대해 퍼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평소 커뮤니티와 인터넷 방송에 상주하는 이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때문에.

이번 SGF에서 유입된 2만 1천의 시청자.

이번 SGF에서 그를 알게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컷을 단순히 잘생겼는데 성격 털털하고 멘탈까지 좋은데 또라이인 남자로 알고 있었다.

레오레를 못하는 사람들도, 챌린저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안다.

사람을 보고 함부로 짖는 들개도 챌린저들에겐 감히 짖지 않는다. 아님 말고.

그렇기에-

"뭐야, 숨컷 3스테이지 도전한다는데?"

"엥? 방금 2스테이지 도전했잖아."

"아니, 벌써 끝냈다고 그걸?"

"2스테이지 착각한 거 아냐?"

"아닌데? 쟤네 2스테이지 수문장 맞는데?"

[얘 뭐야? 왤케 잘해?]

[??? 오빠 머야?]

[방금 상대방 애들 챌린저 맞지?]

[아 유입쉑들 ㅋㅋ벙찌는 거 봐라]

[이게 내가 학원 갈 시간 할애해서 방송 보는 숨컷이야 ^^]

[진짜 여러 의미로 정신나간 소리네요]

-챌린저 상위권 실력자를 양민 학살하듯 썰어버리는 숨컷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스테이지부터 도전자들의 경기가 중계된다.

그런데, 숨컷 팀이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경기보다 더 빠르게 경기를 끝내 버리는 기행을 저지른 탓에.

그들의 두 번째 최단시간 경기는 중계되지 못했고-

그 전말을 모르는 구경꾼들의 호기심의 몸집은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흐름이 바뀌는 걸 느낀 진행자가 진행 중이던 경기를 손절하고 바로 숨컷 코인에 탑승했다.

그들을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인, 3스테이지의 경기석으로 안내했다.

"아, 여러분! 오늘 세 번째 3스테이지 진출자가 등장했습니다! 최단 기록으로 3스테이지에 진출한 도전자는 놀랍게도, 그 숨컷 님입니다! 아니, 숨컷 님! 어떻게 이런 게임 실력을 숨기고 계셨나요!"

'안 숨겼는디.'

최재훈은 시큰둥한 말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근엄하게 따봉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크~ 이, 이! 반전 매력! 역시! 이래서군요! 저는 오늘 숨컷 님의 활약을 못 봤지만! 이것만 봐도, 왜 SGF전체가 숨컷 님께 열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적당히 하쇼 낯간지러우니까.'

이번에도 시큰둥한 말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근엄하게 반대쪽 따봉을 들어올렸다.

[이 새기 입 근질거리는 것 같은데]

[ㄹㅇ ㅋㅋ]

[힘 숨긴 적 없는데 힘숨찐 돼버렸내;]

"와아아아!!!"

"숨컷!!!"

"화이팅!"

"옆에 두 사람은 누구예요!?"

[그러게]

[ㄹㅇ 아니 쟤네 둘 실력도 ㅈㄴ 정신 나갔던데 머임?]

"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숨컷 님! 이 탈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실력자 분들은, 도대체 누군가요?"

최재훈은 이번엔 정말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제 친위대 팬 분들입니다."

"크~"

"와!!!"

두 친위대가 따봉을 올리며, 박수를 치며.

친위대답게 기가 막히는 추임새를 넣었다.

"아! 친위대 팬! 정예 팬! 역시! 숨컷 님 정도 되면 팬 분들 수준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올라가는군요!"

아니, 이 인간 도대체 왜 이러지.

최재훈은 똥꼬가 간질거리는 걸 느끼며, 어서 진행이나 하라 눈빛으로 그녀를 재촉했다.

"자, 그럼! 이렇게 되면!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데요! 과연! 챌린저 상위권에 해당하는 2스테이지의 수문장들을 탱크처럼 밀어 버린 우리의 숨컷 님과 그 친위대 여러분! 과연! 그 누구도 무찌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번 대회의 최종 보스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인가!"

우승자가 나올 수 없다 설계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만든 3스테이지 수문장.

그들이 숨컷 팀 앞에 섰다.

"어?"

최재훈은 그 중, 여러 의미로 익숙한 얼굴을 보고 반응했다.

저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아."

그때.

그러니까, 한예지와 캐삭빵을 뜰 때.

한예지를 지지했었던 김이지였다.

그러니까.

TC1 HATER 말이다.

"와!!!"

"김이지! 김이지!"

"살살해 기미자!"

[야 근데 이건 진짜 ㅋㅋ 아이엇 너무 꼬운 거 아니냐?]

[ㄹㅇ ㅋㅋ 우승 상품 절대 안 주겠다는 굳건한 의지 그 자체]

[이 정도면 그냥 약 올리는 거 아니냐?]

[야 그래도 혹시 숨컷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선 넘네 ㅋㅋ]

[아무리 그래도 TC1 출신 프로는 못 이기지 무자식아]

TC1.

그 엄청난 무게감.

게다가, 그녀의 다른 팀원들도 프로 출신 방송인들이었다.

최재훈이 최단시간 승리로 휘어잡았던 장소의 분위기가 어느새 깔끔하게 넘어가 있었다.

[얼마나 버틸지는 궁금하네]

[ㄹㅇ ㅋㅋ 그래도 숨컷이면 다른애들처럼 일방적으로 발리진 않을 듯]

그 누구도, 숨컷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그에 최재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최재훈이 알기로 헤이러는 서브 출신이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그래도 TC1 출신이다.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최재훈은 자신의 팀원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저, 위풍당당한 TC1의 서브 출신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 *

김이지.

그녀는 숨컷을 발견하곤 승부욕을 불태웠다.

한예지 사건 때.

저놈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욕을 봤던가.

그녀가 지지한 한예지가 추하게 몰락하자.

그 여파는 TC1의 이름을 등에 업고 항상 상승세를 타던 신입 방송인 김이지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날 이후, 그녀의 방송 생활은 잘 안 풀리기 시작했다.

반면에, 자신을 저렇게 만든 저놈은 요즘 그렇게 잘 나간다고.

부아가 치민다.

요즘 챌린저 1주일 컷에 성공하고 한창 실력으로 콧대를 세우고 다닌다던데.

이 자리에서 철저하게 짓밟아 주고, 생각했던 거랑 달리 별거 없다고 입 좀 털어 줘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지 까짓 게 아무리 잘 해 봤자지.'

"숨컷 씨."

"네?"

"화이팅."

김이지가 그렇게 말하며 숨컷을 보고 묘하게 웃었다.

얼핏- 아니, 대놓고 비웃고 깔보는 것처럼 보이며.

'어디 한 번 추하게 발버둥 쳐 봐.'

라는 말이 들리는 그 웃음에.

"에이, 저보다 헤이러 씨가 더 화이팅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최재훈 역시 똑같은 종류의 웃음을 돌려줄 뿐이었다.

"하."

김이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갤 가로저었다.

둘이 자리에 앉고 3스테이지의 벤픽이 시작된다.

"응?"

그러자 김이지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비죽였다.

상대팀 중 한 명이 원딜 캐릭터를 고른 것이다.

전설의 숲은 게임의 흐름이 빠르다.

그만큼, 대체적으로 초반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원딜을 고르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그런데 저걸 골랐다는 건-

"어이가 없네."

자신에게 전면전을 신청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TC1의 원딜러 출신이었던 자신에게 말이다.

"이야, 정신 나갔네."

"이지 씨 얕보이셨네~"

팀원들도 기가 찬다는 듯 반응한다.

김이지는 헛 웃으며 기꺼이 그 도전을 수락했다.

아무래도.

저놈이랑 뭐 해 보겠답시고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한심한 암사자 새끼가 자신한테 이겨서 뭐, 멋진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은데.

'어이가 없네.'

주제도 모르는 년.

철저하게 짓밟아 줄 따름이었다.

"여러분, 일단. 제 라인은 게임 끝났습니다. 미리 말해 둘게요."

"큭큭큭."

"저희도요~"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게임이 시작됐다.

김이지는 예정대로 상대팀 원딜러와 대면해, 라인전을 시작했다.

상대 원딜의 플레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허나, 대놓고 그녀를 가소롭게 여기고 있는 김이지에겐-

"어쭈, 꼴값을 떠네."

그렇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분전하며 자신과 막상막하로 가는 게 가소롭고, 또 같잖게 여겨진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그녀는 진심을 내기 시작했다.

"…?"

진심을 내기 시작했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

오히려 깨닫는다.

자신은 언제부턴가 밀리고 있었음을.

"아니, 시발 뭔."

둘의 캐릭터 상성은 동등햇다.

후차례 픽인 김이지가 그렇게 의도했다.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고 완벽하게 압살할 요량으로.

그런데- 도리어 밀리고 있다.

변명의 여지없이.

"아, 지랄하지 마-"

그녀는 진심을 다하기로 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하지만 세 번째 진심을 다했음에도 변하는 건 없었고 결국엔-

<선취점!>

"…."

그녀의 넋이 나갔다.

그녀는 TC1 출신이었다.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TC1의 원딜러 출신.

그리고, 그녀는 서브였다.

단 한 번도 TC1 SIGHT에게서 주전을 뺏어오지 못한.

그래서 제 발로 나간.

<아군이 죽었습니다.>

<아군이 죽었습니다.>

"…."

"아니…."

이어서 들려오는 팀원들의 패전 소식.

분명 그녀들은 엄청난 실력자였다.

솔로 랭크 게임에서도 두 자릿수 랭킹 안에 거뜬히 들 실력자.

하위권 팀이지만, 분명 1군에 속하는 프로팀 출신.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그들의 상대 중 한 명은, 국내 삼대 정글러 중 최고라 여겨지는 김희은이었고.

그들의 상대 중 한 명은, 이러한 비정규 게임에선 누구를 만나도 이길 자신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시청자들은.

관객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엔 김이지의 팀이 승리할 것을.

그러나.

언젠가부터 숨 막히는 긴장과 침묵이 감돌고 있던 현장에, 방송에.

그 두 글자가 떠올랐다.

<패배!>

그리고-

"""""와!!!!!!!!!!!!!!!!!!!!!!!"

"""""

폭발했다.

이것도 대회라고.

최재훈, 그리고 두 여자는 아주 만족스럽게 관객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만끽했다.

* * *

우승 상품인 한정판 굿즈를 수령한 최재훈.

"그래서, 그 레오레 모든 유저에게 지급되는 '특별 상품'이 뭡니까?"

최재훈이 묻자 대회의 담당자는 답했다.

"오늘 SGF 마지막 공식 행사 때 알게 되실 겁니다."

"아니-"

시발, 또야?

도대체 SGF 마지막 공식 행사 때 무슨 개지랄이 일어나는 것이지?

데스윙 깨어나서 날라다니고 대격변이라도 일어나나?

갑자기 페카가 떠올라 울컥한 그는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하며-

"여러분, 어쨌거나. 성공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특별 상품을 받으며 미소 지을 때, 저를 떠올려 주세요."

공식 방송의 카메라를 향해,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너구리에 다시마가 두 개 들어있으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순살 시켰는데 뻑살이 있으면 당신인 줄 알겟습니다]

[그건 욕이자너]

기존 시청자 빼곤, 모두 최재훈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줬다.

[와 ㅁㅊ 얘 진짜 겜 ㅈㄴ 잘했구나]

[못하는 게 뭐냐 숨컷아... 누나 너무 설렌다]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와아아아!!!"

"아참, 저희 두 팬 여러분들도요!!"

"와!! 데스베이더! 데스베이더!!!"

"포니! 포니!"

그렇게 최재훈은 자신을 새로 알게 된 이들에게 숨컷의 정체성, 게임 방송인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가 또 한 번 일으킨 태풍에, 시청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방송도, 팬미팅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와 근데, 데스베이더 님. 정글도 기가 막히게 하시대요?"

"하하, 당연하죠!"

"나는!?"

"아이, 말할 것도 없지. 우리 포니 씨. 아니, 그 사람을 실력으로 찍어누르대? 당신 정체가 뭐야?"

"크, 내 정체가 뭐긴! 당신 팬이지!"

"크~"

"캬~"

숨컷, 김희은, 차현하.

이 말도 안 되는 전력의 트리오는.

SGF의 온갖 게임 이벤트를 휩쓸기 시작했다.

모든 이벤트 기록들이 그들의 기록으로 갱신되었고.

모든 이벤트 우승자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됐다.

어느 시점을 기하여.

SGF에서 숨컷과 데스베이더, 포니 트리오를 모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진성 겜창인 김희은과 차현하, 그리고 숨컷에게 이 팬미팅은 상당히 즐거운 것이었다.

마음 놓고 사람들 앞에 서 본 게.

그리고 순수하게 게임을 즐겨본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그런 팬미팅이,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걸 느낀 둘은.

아주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 만큼, 오늘 팬미팅에 참가해서 다행이라 여겼고.

오늘.

그 '제안'을 반드시 성사시킬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마침내.

마지막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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