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95화 (195/361)

195. 대격변 3

코스프레 대회에서 신도가 갑자기 권지현 씨에게 현실 계삭빵을 신청한 게 나와 김경훈+허나이의 현실 계삭빵으로 이어지게 된 건.

매우 갑작스럽고 또 극적인 일이었다.

마치 탈모처럼.

그 누구도 자신에게 탈모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하듯.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야 했다.

그런데.

페카, 저 인간은 마치 이런 일을 다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아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때마침 개입하여,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준비해온 듯한 치밀한 자료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지금 내 눈에 저 인간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보스를 잡았더니 대뜸 아군들 뒤통수치고 '후후 저 대신 고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보스의 심장을 쳐먹더니 지가 보스몹이 되어서 2페이스를 진행시킬 음흉한 실눈 캐릭터처럼 보였다.

분명 내 적이었던 김경훈, 신도, 허나이, 외 등등은 계삭빵에서 져서 게임이 끝나고.

리치TV도 내게 섣불리 헛짓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저 인간이 저렇게 떡하고 버티고 있으니,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뒤통수가 시려웠다.

마치 뒤통수에만 집중적으로 탈모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휑한 두피로 혹한의 겨울을 헤쳐나가는 우리네 민머리맨머리맨들맨들빡빡이들의 심경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풍성충일지라도 매우 왕성한 남성 호르몬을 보유 중인 상남자로서 언제 탈모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나 최재훈.

가능하다면 평생 탈모어의 심경을 느끼지 않을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이 탈모어의 심경을 체험하는 이 끔찍한 상황을 당장 끝낼 생각이었다.

저 인간이 어떠한 경위로 그런 자료를 미리 준비하고 지금 상황에 때마침 개입하게 됐는지.

납득을 안 할 수가 없는 논리적인 설명으로 나를 설득시키기 전까진.

이 세상의 모든 걸 의심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그러면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랑 바닷물들은 다 흘러내려서 우주로 떨어져야지.

격파 완료.

준비 완료.

어디 한 번 날 납득시켜 봐라.

[웃음 참기 LV.100 이걸 보고 안 웃으면 당신은 진정 싸이코패스]영상을 클릭하기 전의 비장함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인간은-

"오늘, SGF 마지막 공식 행사 때 알게 될 겁니다."

의미심장하게 말하곤.

더더욱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 순진무구해 보여야 할진데, 더는 없을 정도로 수상쩍어서.

소름끼치기까지 하는 저, 해맑게 웃는 토끼탈을 뒤집어쓰고 말이다.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을 하든 빈틈을 찾아내 의심하리라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렇게 대놓고 수상함을 더하자, 오히려 당황스럽다.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벼르고 있는데 한 번만 설득해 보면 안 돼?

진짜 조금도 납득 안 할 자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그 무슨 일이, 무슨 일인지 지금 설명해 주시라고요."

"에이~ 그러면 재미없죠."

"아닌데? 완전 재밌을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공중제비가 절로 나올 것 같은데?"

탈 안에서는 실실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씩씩하시다니? 이야~ 역시."

'호오, 역시 이 정도로는 끄덕 없는 건가? 그렇다면-'

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 싸이코패스 새기, 이때다 싶어서 날 갖고 놀고 있다.

신도를 무찌르고 배운 두 번째 필살기, 즙 짜며 '이 사람이 절 막 주물렀어요'를 시전하려는 충동을 참고 있던 찰나.

"아무튼, 걱정! 니은! 그 무슨 일, 숨컷 선생님께도 좋은 일일 거니까."

단언한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설득 당하려는데-

"아마도."

피식 웃으며 덧붙인다.

"아니, 걱정을 안 시키고 싶으면!"

"핰핰핰핰!"

[숨컷쉑 발리누ㅋㅋ]

[선생님의 걸출한 또라이력도 진또배기 싸이코패스 앞에선 빛을 바래는군요]

[??? 니들 이 사람 암?]

[이 토끼탈 아까부터 누구임?]

[유입쉑들 이걸 모르누 ㅋㅋ]

[??? 나 리치TV 2년차인데 이런 애 첨보는데?]

[당연하지 ㅋㅋ 옐로TV PD니까 유입련아 ㅋㅋ]

[저기요 개또라이신가요 여기 리치TV인데요]

[느그 ㅈ망플랫폼으로 꺼져]

[어~ 느그 리치TV 불타고 있어~]

[어~ 느그 옐로TV는 이미 불타서 판잣집에 살고 있어~]

[어~ 그거 사실 니 아빠야~]

[어 자세히 봐바~ 니 엄마야~]

[토론 수준 숨막히네 ㄷㄷ]

[아니 그래서 ㅅㅂ 누구냐고 이 토끼련]

최후에 등장했지만 여러 의미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씬 스틸러.

시청자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이 사람에게 향했다.

"어… 숨컷 씨 아시는 분이세요?"

지현 씨도 마찬가지.

그때였다.

토끼탈이 지현 씨에게 향하더니-

"아이고, 지현 씨!"

덮치듯 다가가 지현 씨의 손을 와락 잡았다.

"어… 반갑, 습니다…? 누구…."

"이런 비극이 있나!"

"아, 감사합니당…."

"잘 해결돼서 진짜! 다행이네요."

"아, 예…."

[아 ㅋㅋ 찐따쉑 모르는 사람이 친한척하니까 바로 뇌정지 오는 거 바]

[이런 비극이 있냐는데 뭐가 감사하냐고ㅋㅋ]

[ㄹㅇ ㅋㅋ 감사하단 말 미리 써서 진짜 감사하다고 해야 할 때 할 말이 없잖아]

"앞으론, 정말 좋은 일만 생기실 겁니다!"

그렇게 몰아친 뒤-

"어! 삼피 씨 아니세요."

다음은 제나였다.

아까부터 석연찮던 제나의 표정이 마침내 와락 구겨졌다.

그 표정에선 생리적인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쟤가 설사 위에서 살사댄스 추는 바퀴벌레를 봐도 저런 표정은 안 나올 것 같은데.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한 인간이었다.

"저희, 이렇게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우리가 만나서 반가울 사이였나?"

"아니!? 아니었나요?! 그러면 뭐,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되죠 뭐! 이렇게 만난 김에."

페카가 손을 내민다.

제나는 가만히 그 손을 쳐다봤다.

꺼지라는 듯.

하지만 토끼는 묵묵히.

묵묵히, 제나를 바라본다.

무기질한 탈의 눈동자로.

제나가 마지못해 악수를 받아들이자 손을 위아래로 격하게 흔든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친구.

그 단어에 제나가 마침내 질색팔색을 하며 손을 뺐다.

"하하핰 수줍어하신다!"

[아니 ㅋㅋ 삼피 이 사이코련도 쪽도 못쓰네]

[우리 리치TV 또라이들 수준 이것밖에 안 댔냐 ㅇㅇ;;? 한 명한테 줘털리누]

[위기의 리치TV를 구할 마지막 희망]

[김경훈이랑 신도 다시 데려오죠]

[아 ㅋㅋ 걔네는 못이기지]

[아니 근데 삼피랑 얘는 아는 사이 같은데?]

지현 씨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어… 두 분은 이분이 누군지 아세요?"

아, 그러고 보니.

지현 씨는 이 사람과 접점이 없다시피 하지.

시청자들도 궁금해 하는 것 같고.

나눈 눈으로 물어봤다.

말해도 되냐고.

끄덕.

"여러분, 이 분이 누구냐면 어떤 분이 말했다시피 옐로TV PD시고요. 페카, 라는 분인데. 아캡, 이라고 하면 아는 분들 더 많을 것 같네요."

[아캡? 어디서 들어봤지]

[ㅁㅊ 그 아마추어 탑 원탑?]

[아 ㅋㅋ 얘가 걔임? ㅋㅋㅋ]

[그 사람 방송도 했었음?]

[ㄹㅇ 나 왜 첨보지]

[이 사람 미튜브도 안 하잖아]

내가 채팅창 반응을 보여주자, 신나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치TV 여러분~ 그리고, 숨컷 선생님 따라서 리치TV 가신 우리 옐로TV 시청자 여러분~"

착각일까.

나와, 날 따라온 옐로TV 시청자들을 언급하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니 ^^ㅣ발아 왜그래 무섭게]

[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워아빠나이사람무서]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

아무래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저희도-"

이번엔 이 사람이 제 쪽 채팅창을, 그러니까 옐로TV쪽 채팅창을 보여줬다.

[숨하]

[아 ㅋㅋ 조컷쉑 오랜만에 보누]

[잘 지내니...?]

[전 남친 만나는 기분이누]

[선생님의 역사에 '전'남친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나요?]

[응~ 니 아빠~]

[어... 엄마?]

[가족상봉 ㅆㅆㅌㅊ]

[모녀가 옐수 ㄷㄷ]

[조컷아... 우린 이렇게 잘 지내니까 우린 신경쓰지 말고... 리치TV에서 빨리 망하렴...]

[우리들 버리자마자 그렇게 잘나가는 건 ^^ㅣ발아 상도덕이 너무 쳐없는 거 아니냐?]

"하."

여전하다는 생각에 절로 나오는 헛웃음.

"이렇게- 저희들이 숨컷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 나는 좆망플랫폼 안 그리워~"

[십련이 ㅋㅋ]

[조컷아... 우리한테도 순정이라는 게 있다 니가 그걸 무시하면 마]

[니 방송 망하는 그 자리엔 우리가 있을 거란 것만 알아 둬라 ㅇㅇ;]

[어~ 이제 느그 리치TV도 ㅈ망하기 직전이야~]

[ㄹㅇ ㅋㅋ 보니까 곧 리치TV에서 '리치TV'당할 각이더만 ㅋㅋ]

[??? : 한 번 더 날 동료로 넣어줘!!!]

[추하게 정지 당하고 도망쳐오면 그땐 안 받아준다 조컷아 좋게 말할 때 지금 와라]

"어~ 리치TV 망하면 가도 아메리카TV를 가지~ 좆망 플랫폼은 안 가~"

"아이~ 너무하신다~ 뭐, 그래도-"

핸드폰을 거두어 가며-

"사람 앞길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번에도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어쨌거나, 선생님. 여러 모로 감사했습니다. 두 분이랑, 리치TV 시청자 여러분들도, 반가웠습니다."

그리곤, 자리를 떠나며-

"조만간 다시 봐요."

여지껏 가장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찝찝함은 줄었다.

사건이 일단락되었다는 실감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비로소 이번 사건의 수확을- 시청자를 확인한다.

십 수만으로 정점을 찍었던 SGF 채널의 시청자 수는- 거품은.

빠른 속도로 꺼져갔다.

그렇게 대회가 끝났을 때엔 5만 명으로까지 줄어 있었고.

그런 채널에서 다시 분리된 내 방송의 시청자는-

<시청자 25, 706명>

무려 2만 5천을 돌파했다.

얼핏 보면 방금 전 난리를 피운 것 치곤 많이 아쉬운 성과지만.

지금, 리치TV가 불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랑 불구경인데.

이 수천 명은 그 중 하나인 불구경을 제쳐두고 숨컷 구경을 하러 온 것이다.

SGF때 반짝하고 들렸다가 사라지는 시청자가 아닌, 실제 시청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수천은 실전 압축 시청자라고 할 수 있었고, 분명 유의미한 성과였다.

[야 그래서 이제부터 머하냐? ㅇㅇ]

든든함을 느끼고 있자니 떠오르기 시작하는 채팅.

그러게.

"자, 그러면. 지금부터 뭘하-"

[야 근데 팬미팅은 어케 댐?]

"는 지는 당연히 정해져 있죠? 자, 팬미팅 재개하겠습니다!"

[? 뭘 재개해요?]

[아니 그러고 보니 팬미팅 중이었네 이 새기 ㅋㅋ]

[알고 계신가요?) 방금 여러분이 본 건 코스프레 대회였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건 팬미팅 방송입니다]

[코스프레 없는 코스프레 대회... 팬미팅 없는 팬미팅 방송...]

[얼탱이 없는 방송인...]

[이 새기 표정 보니까 까먹고 있던 것 같은데?]

"죄송한데, 음해하지 마십쇼. 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우리 두 팬 분을 잊은 적이 없으니까."

[숨컷 (태어난지 30초 됨)]

[숨아가는 아가야... 아가리해야돼...]

[응애하지 말라고 하는 숨아가 ㄷㄷ]

[매 순간마다 새로 태어나는사람]

[ㄹㅇ; 인생 리셋시켜버리고 싶네]

[(손 들고 질문하는 이모티콘) 선생님, 그런 새기가 두 사람 놔두고 코스프레 대회에 참가하시나요?]

"그런 새기니까, 코스프레 대회에 참가한 겁니다. 잊으셨어요? 이거, 두 분이 원해서 참가한 거야. 니들하고."

[바늘이요? (니들과 NIDDE이 같은 발음인 걸 이용한 말장난 ㅎ)]

[저거 옐수임]

[아 무슨소리야~ 우리 리치TV 동상들 해~]

[아~ 괜찮으니까 옐로TV 언니들 해요~]

[우애좋은 자매 ㄷㄷ]

방금 그런 개난리가 일어났었는데 채팅창의 분위기는 준수했다.

방송인이 덕이 많고 귀여운 여동생까지 뒀으면 뭘 해도 중심이 유지되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객석에서 재은이가 보였던 것 같은데.

오빠 걱정돼서 부리나케 달려왔다가 해결되니 아무 말 없이 사라지다니.

너무 멋진 거 아니니 재은아.

사내새끼들이 가만 안 놔둘까바 오빠는 걱정이다.

-라톡!

그러던 그때- 라톡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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