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92화 (192/361)

192. 파멸

"자, 여러분. 우리 지현 씨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바로잡혔네요."

[잘못된 것 중 하나?]

[뭐임 또 뭐가 있다고?]

[ㅁㅊ 권지현 같은 피해자가 또 있는 거임?]

"지현 씨 같은 피해자라기 보다는… 또 다른 부조리에 의한 피해자라고 해 두겠습니다."

최재훈이 이린을 쳐다봤다.

판은 깔렸다.

김경훈.

놈의 뒤에서 자신을 공격하던 놈.

혹은 년을 끌어낼 준비가 됐고, 이젠 무기만 준비되면 된다.

녀석의 숨통을 끊을.

하다못해, 이 15만의 피라냐가 달라붙도록 피를 낼 무기가.

그에 대한 이린의 대답.

"…."

미간을 구기는 것이었다.

이린은 긴가민가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무기를 하나 구하긴 했다.

허나, 이거면 충분할까?

지금 이 상황에서 판을 벌이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생사결이 될 것이다.

만약 적을 단박에 끝내지 못한다면, 녀석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칠 테고.

그 경우.

최재훈, 그의 방송에.

그의 인생에 어떤 피해가 갈까.

그녀는 최재훈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니 만큼,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하여, 그녀는 진심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재훈에게 일단은 여기서 물라나라 충고할 것을.

"저기, 선생님?"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이린은 자신을 부른 듯한 목소리 쪽으로 고갤 돌렸다.

토끼 탈을 쓴 괴인이 거기에 서 있었다.

"???"

"뭐야?"

"저 사람들이야?"

"뭔데?"

최재훈이 이린의 대답을 기다리며,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주변의 시선이 이린과 토끼탈에게 향했다.

이린은 당황했다.

그녀가 토끼탈을 쓰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그 토끼탈 자체에 놀란 게 아니라.

그 토끼탈의 의미를 알고 있어서였다.

대외 활동을 할 때 반드시 토끼탈을 착용하는 방송인.

PD.

"무슨… 일로?"

페카.

그녀와 이린이 탈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쳤다.

"이야~ 판을 아주 그냥 제대로 벌리셔가지고. 혹시 가능하면, 저희도- 아니, 저도 낄 수 있을까 해서요."

페카가 패드를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넘겨가며 이린에게 무엇을 보여준다.

화면이 넘어갈수록 이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이런 걸…."

미리 준비하고 있었느냐.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거든요. 어떻게. 협력하실까요?"

페카는 탈 안에서 씨익 웃었다.

"공공의 적을 둔 사람들끼리."

이린이 눈을 두어 번 정도 깜빡인 뒤, 고갤 끄덕였다.

"아, 좋습니당~ 메일 불러주세요."

그렇게 메일을 알려준 뒤.

이린이 최재훈을 쳐다봤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를 보며, 천천히, 아주 확실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러자 최재훈은 고갤 끄덕이며-

"자, 여러분!"

그렇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다시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부조리한 피해자가 누구냐! 방금 전 말씀드렸었죠? 이 인간."

최재훈이 넋이 나가 무대에 주저앉아 있는 김경훈을 가르켰다.

"…어?"

김경훈.

그가 몸을 흠칬 떨며, 최재훈을 올려봤다.

"리치 TV에서 이 인간 밀어주려고, 저 견제하고 있다고."

최재훈은 그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곤,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김경훈은 저와 같은 플랫폼에서 방송 시간대를 공유하며, 방송 캐릭터가 겹치는 스트리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방송을 시작한 이후, 평균 시청자가 급격한 하락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래서 김경훈을 저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자신과 동료들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제 동료인 권지현씨와 저를 성추행범과 성추행범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견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제가 리치TV에서 첫 동시 송출을 처음 시작한 날! 비정상적인 은신 현상이 발생하여 방송 진행에 큰 문제를 겪었었으며."

"제가 SGF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입장권-I를 구하기 위해 SGF 개장 삼 일 전 신청했던, 보통이면 하루 만에 처리 되며 반려되는 일이 없는 파트너십 신청이, 3일 동안 지연되다가 SGF 개장 당일날이 되기 직전에! 반려됐습니다. 마치 제 SGF 참가를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요."

"그리고, 또 하나. 제가 방송 인생을 걸고 1주일 기한 챌린저 도전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대리 게이머들의 악의적인 개입이었는데. 이 또한, 김경훈이 사주한 것이라 봅니다. 제가 미션을 실패하면 방송을 그만둬야 하니까요."

"따라서, 저는 이 자리를 빌어, 특정 스트리머와 유착 관계를 맺고, 해당 스트리머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스트리머를 견제하는 리치TV 특정 관계자에게 공식적으로 해명과 사죄를 요구합니다."

중간 중간, 논리의 비약이 존재한다.

증거도 없다.

심증은 많지만, 물증이 없다.

보통 이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필요한 건 물증이었다.

[아 맞다 그랬었지 참]

[와 ㅋㅋㅋㅋㅋㅋ 진짜 개썩었네 리치TVㄹㅇ]

[저런 쓰레기들이 대표 크루인 플랫폼 답다 ㅇㅇ;]

[아 ㅋㅋ 리수새끼들 ㅂㄷ거리는 거 보소]

[역시 아메리카TV가 답이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 조컷쉑 옐로TV 배신하고 간 곳이 리치TV ㅋㅋㅋㅋㅋㅋ]

[조컷아 뭐랬냐 ㅇㅇ;; 옐로TV 있으랬잖아 업보다]

[아무리 그래도 옐로TV는 좀;]

[쓰레기장이나 화장실이나 ㅋㅋ]

[응~ 느그 리치TV는 가스실이잖아~]

[ㄹㅇ ㅋㅋ 옐로TV는 플랫폼이 망하지 방송인들을 잡아다 족치진 않지]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믿는다.

신도와, 김경훈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더욱 강하게.

방금 전 최재훈이 권지현과 함께 보여준 감동적인 퍼포먼스.

지금 그의 주가는 천장을 뚫고 있었다.

반면에 리치 TV-

[그러고 보니 빅가이즈 이 새끼들 리치TV에서 밀어주던 새끼들 아니냐?]

[ㅇㅇ 맞음]

[?? 그냥 잘나가서 밀어준 거 아님?]

[ㄴㄴ ㅋㅋ 얘네 옜날에 별로 안 컸을 때부터 밀어줬음]

[ㅇㅇ 리치TV 플랫폼 내전 같은거 할 때 훨씬 좋은 선택지 있는데 걔네보다 훨씬 네임밸류 딸리는 빅가이즈 튀어나오고 그랬음]

[ㄹㅇ?]

[야 그러고 보니 빅가이즈 애들은 은신 당한 적 있냐?]

옆 집에서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구린내가 가만 보니 시체 냄새 같기도 하다.

숨컷이 옆 집 주민을 살인자로 지목하자, 적극적으로 찬동한다.

진행 기간 동안 업계와 세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SGF.

그런 SGF에서 성난 민심이 리치TV를 향했다.

그러니 리치TV는 그들을 달리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있나.

원하는 것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실례합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인파를 뚫고 스태프에게 향했다.

아주 절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아주 여유로운 얼굴을 한 최재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무대 아래에 있는 그녀가 최재훈을 올려다 보았고.

무대 위에 있는 최재훈이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이내, 그녀의 얼굴에 다 숨기지 못한 적의가 새어나왔다.

이 새끼다.

최재훈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최재훈은 자신을 노리던 사냥꾼의 뒤를 잡은 맹수처럼 힐쭉 웃었다.

여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 *

허나이는 파트너십 심사라는 창구에 앉아 리치TV에 유입되는 스트리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마음에 드는데 덩치가 조그마하면 빅가이즈라는 우리 안에 집어넣어 직접 관리했고.

마음에 드는데 덩치가 크면 자신을 리치TV의 유일한 친구로 여기도록 했다.

허나이는 리치TV의 대기업 스트리머 상당수를 관리.

그러니까,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리치TV는 기업 특성상, 업무 대부분을 스트리머와 연계해야 했다.

즉, 리치TV 대외적 업무 대부분은 허나이를 통해야 했다.

허나이의 의도대로 그녀는 리치TV의 가장 커다란 대외적 출입구가 되었고.

그에 걸맞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스트리머들이 참가하는 행사에서 항상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게 되는 이유였다.

그녀는 SGF에 참가한 리치TV의 부스 책임자로서 다른 업체의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있었다.

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 잠시만요."

한창 진행 중인 미팅.

미팅 상대인 게임 업체의 홍보 담당자가 열성적으로 이어가던 일 얘기는-

진동하는 핸드폰에 의해.

그걸 받는 허나이의 손짓에 의해 너무나도 덧없이 깨졌다.

상도덕을 완전히 무시하는 무례.

하지만 그 규모가 변변찮은 게임사의 직원인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을 실행하기 위해선 허나이의 도움이.

정확히는 스트리머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

허나이 또한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급한 용무라."

그녀는 덧없이 멀어지는 허나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저 인간에게 불행한 일이길

그리고 그 기도는 먹혔다.

"뭐…?"

전화는 김경훈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내용은, 그가 코스프레 분장실에서 숨컷과 있었던 일이었다.

현재 SGF의 페이스로.

업계의 이목을 한몸에 끌고 있는 숨컷이, 김경훈이 저지른 짓을 알게 되었고.

그 배후에 리치TV 관계자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됐으며.

선전포고를 했다.

한 마디로, 중대 사태였다.

"경훈아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라고, 목구멍을 때리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기로 했다.

치정싸움이나 하고 있기엔 당면한 문제가 너무나도 컸다.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숨컷.

그를 처리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하지만,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성장한 그는.

SGF에서 그 성장세를 유지하며, '말도 안 되는 영향력'을 손에 얻게 됐다.

그 영향력은 SGF가 끝나는 동시에 사라지겠지만.

김경훈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숨컷은 이번 SGF 안에 사달을 낼 게 뻔했다.

SGF에서 건들기가 힘든데, SGF에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

탁.

탁.

탁.

그녀가 초조함에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째각.

째각.

째각.

어디선가 타이머의 초침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아."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성장해.

'말도 안 되는 영향력'을 갖게 된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그 '말도 안 되는'이라는 부분을 노리는 것이다.

최재훈의 '말도 안 되는'성장 속도에.

뷰봇(프로그램으로 시청자 수를 조작하는 행위).

그걸 심어 놓는다면?

그러니까.

그의 과거 방송 기록에서, 뷰봇 사용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의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와.

그를 통해 얻은 '말도 안 되는 몸집'은.

오히려 그의 약점이 될 것이고.

그렇게 그는 무너지겠지.

"뷰봇 터트리기 전에 한 번 흔들어서 확실하게 하자."

신도가 코스프레 대회에서 권지현의 성추행 건을 다시 들춰내 그와 같은 크루인 숨컷을 흔든 다음, 뷰봇으로 마무리.

완벽하다.

허나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만사가 잘 풀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즉시 실행했다.

"어, 김 팀장."

그녀의 사람인.

엔지니어 팀원에게 연락하여, 숨컷의 시청자 기록에서 뷰봇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조작 자료를 요청한다.

그런데.

갑자기 또 걸려오는 전화.

불안한 예감이 들었고, 역시나였다.

신도.

그가 폭주한 것이다.

그로 인해 완벽한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실.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숨컷.

단 한 번도 그들의 예상 안에 갇혔던 적이 없었던 그를 상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그를 상대로 싸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승리하기란.

"…."

점입가경.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SGF 공식 채널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허나이의 표정은 차츰 사색으로 물들어갔다.

김경훈과 빅가이즈가, 숨컷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리고 있었다.

숨컷이 둘의 영향력을 흡수해서, 절대로 감당 불가능한 존재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때-

흠칫!

때마침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가 왔다.

무대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김경훈은 당연히 아니다.

"…."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하곤-

"하. 여보세요?"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요청한 자료 만들어 보냈으니 확인하라는 엔지니어 팀원의 연락이었다.

젠장.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렇게 긴장을 놓았을 때.

드르륵-

한 번 더 진동하는 휴대폰.

마침내, 그녀의 표정이 완전하게 썩었다.

"…예,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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