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91화 (191/361)

191. 바로잡기

"하, 저거 뭐야?"

"웬 토끼?"

"방송인인가?"

"누군지 알아?"

"글쎄."

지나가던 행인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그 관심의 대상인 여자는 행인들의 말대로 토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토끼 탈을 뒤집어 씀으로써 말이다.

[ㅋㅋㅋ 듣보쉑]

[아니 그래도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건 좀 에바네 ㅋㅋㅋ]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미튜브를 안 하니까~"

그녀는 방송인이었지만.

SGF의 관람객들이 자신이 야외 활동을 할 때 착용하는 토끼탈을 썼는데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자, 그러면 다음엔 뭐 어디를 가 볼까나~"

그때였다.

[야 근데 조컷쉑 ㄹㅇ 난리났네]

[ㄹㅇ 리치TV 제대로 엎을생각인것 같은데]

[혹시 리치TV로 간 것도 사실 내부에서부터 무너트리려고? ㄷㄷㄷ]

[젠장 믿고 있었다고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갑자기 왤케 따듯해지지?]

[저 새기들 행복회로 불타고 있자너 ㅇㅇ;]

[어쩌면 내가 오늘 아빠 생일파티에 불참하고 방송보고 있어서일지도 모름]

[앗뜨거]

[저년이 범인이었네]

[난로형 효녀 ㄷㄷ]

아까부터 코스프레가 쩌느니 뭐니 하면서 꾸준히 언급되던 숨컷이.

또 한 번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아니 여러분~ 왜, 또 왜. 숨컷 선생님이 또 무슨 일인데요?"

[회장 중앙에 있는 메인 스테이지 가 보셈]

"지금 거기서 코스프레 대회 진행 중이라면서요. 알아요. 봤어, 아까. 잘 어울리시던데, 텔론 코스프레."

[아니 영혼 없는 거 봐]

[레즈야...]

[아니 코스프레 얘기 아님]

"그럼 뭔 얘긴데요?"

[조컷쉑이 리치TV 대표 크루랑 리치TV 싸잡아서 저격했음]

[리치TV가 어떤 스트리머 밀어주려고 자기 저격하고 있대 ㅋㅋ]

"…뭐라고요?"

탈 안에서 그녀의 표정이 심상찮게 굳었다.

그녀가 곧바로 방송과 커뮤니티를 확인하며 사건의 전말을 확인했다.

그리곤-

"오호라~"

탈 안에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러분, 잠시만요~"

그녀가 잠시 방송 보이스 송출을 중지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하염없이 울리다, 겨우 연결된다.

-왜, 무슨 일이야. 나 바빠.

사투리 섞인 무심한 목소리에, 페카가 말헀다.

"선생님. 지금, 리치TV 그분들 관련해서 준비 중인 거 있잖아요. 그거."

-아, 그거는 나 말고 김 팀장한테 이야기를 하지 왜 바쁜 사람을 붙잡고-

"아니, 중요한 일이라 그러지."

-뭔데?

"이거, 지금. 숨컷 그 사람이 판 제대로 깔아 놨거든요?"

-…뭐?

페카는 현재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그래서. 뭐. 어쩌자고.

"그거, 지금 터뜨리죠?"

-지금?

"안 그래도, 이번 SGF에서 쇼부 치려고 했잖아요."

-….

잠시 뒤.

통화를 끝낸 페카는 패드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 *

현재 SGF 공식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 무려 15만 명.

그들은 모두 어떤 방송인의 시청자였고.

극소수의 극성팬을 제외하면 평범한 시청자들이었다.

'얘 아니면 싫어 나죽어 빼애애애액!!!' 수준으로 방송인에게 열광해서가 아니라.

그저, 당장 방송인이 보여주는 모습이 모든 방송인을 통틀어 가장 취향에 맞아서 방송을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

그렇기에 그들은 방송인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면 언제든지 정을 뗄 수 있었고.

다른 방송인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언제든지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지금.

김경훈과 신도는 추악한 본성을 드러냈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두 방송인을 매장시키려고 했다.

그것도, 무고한 여성을 성추행범으로 모는 형태로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용인되지 않으며, 용서되지 않을 행위.

크루원들은 그런 행위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참했다.

반면에 숨컷.

자신의 힘 없는 사람을.

그런 부당하고 큰 힘을 가진 세력들로부터 지켜냈다.

그게 시청자들의 눈에 최종적으로 비춰진 김경훈과 신도, 그리고 그들의 크루의 모습이었다.

흡사 괴물과 영웅.

시청자들이 그들에게서 정을 떼고 숨컷 쪽에 붙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이... 얼빠진 련들... 현실에서 마피아를 처하고 있네]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녁은 어두웠습니다]

[뭔디]

[이 얼빠진 련들아 뭐? ㅋㅋ 진짜 무고한 신도가 당하는데 가만히 두고볼 수가 없어?]

[무고한 신도에서 무고가 무친 고자련 맞나요]

[확실하다면서 증거도 없었누?]

[보니까 지들 크루장 편 들려고 그런 것 같은데 ㅋㅋ 무섭네]

[ㄹㅇ ㅋㅋ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수십만명 앞에서 성추행범 만들어보리기]

[빅가이즈 이렇게 안 봤는데 더이상 못보겠다]

[나도 이렇게 안 봤다(그냥 안 봤다는 소리 ㅎ)]

[시발했다 사랑년아...]

[제가 지금까지 구독하고 도네한 거 환불해 주세요]

[김경훈 최근1달동안 도네한거 다 내가 부캐로 쏜 건데 그거 환불해주셈 안해주면 무슨무슨 죄로 고소함]

[이 정도면 사기 죄 맞지 ㄹㅇ ㅋㅋ]

[김경훈 신도 진짜 싸이코패스새끼들 개무섭네]

[poss3301 : 미래의 내 남친도 저런 새끼들일까봐 무섭네;;]

[wodms18 : 위로하자면 걱정마셈 님은 미래에도 남친 없을 거임]

[poss3301님의 귓속말 : 와! 위로! ^^ㅣ발련!]

슬로우 채팅과 도배가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 시키는 채팅 갱신 속도.

그들은 채팅의 내용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저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엿 된 건지.

15만에 달하는 비현실적인 수의 시청자가, 그들을 규탄하고 있었다.

최재훈에게는 더없이 통쾌한 장면이었지만, 그는 그걸 멈추려 한다.

동정심이 생겨서, 혹은 이제 용서가 되어서는 물론 아니다.

[진짜 방송 켰다는 알람 오기만 해 봐라 ㅋㅋ]

[해명이랍시고 변명방송 키는 순간 진짜 ㅋㅋ]

[더 추해지지 말고 그냥 그대로 떠나십쇼]

[고짐고]

저들은 이미 시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15만 시청자가 자신의 편이 되어준 상황을 그런 놈들을 패는 데 사용하는 건 엄청난 낭비였다.

최재훈은 현재 상황을 더 유용하게 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어!!! 페이스다!!!"

최재훈이 화들짝 놀라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뭐? 페이스?"

[우리린?]

그러자, 가해자들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던 시청자들의 관심이 페이스에게 향했다.

장소에 있는 모든 관객과, SGF 카메라가 최재훈이 가리킨 곳을 향했다.

거기엔,

"뭐!?! 어디!?"

라고 말하며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페이스 따윈 없었다.

"여기!"

그때, 최재훈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어느새 페이스가 있는 곳을 가리켰던 검지를 자신에게 향하며, 반대쪽 손으론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가 위풍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 페이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야이!!!"

"오바지!!!"

[무하는 새기야 이거]

[남자 페이스 ㅇㅈㄹ ㅋㅋ]

[남자의 페이스가 맞긴 하네 ㅇㅇ;]

[ㄹㅇ 좀 맞긴 해야겠는데]

[이 새기 갑자기 또 왜 이럼 ㅋㅋ]

[지랄병ON]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ㄷㄷ]

관객들이 방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채팅창의 기세는 방금 전보다 더 폭발적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최재훈은-

[아니 근데 이 새긴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이 ㅈㄹ 이네 ㅋㅋ]

[ㄹㅇ;; 1류 그 자체]

[이게 챌린저의 멘탈인가? ㄷㄷ]

[누가 챌린저임? 이 사람 챌린저임? ㄷㄷ]

[와 남자 챌린저 ㄷㄷ]

[나 얘 여친인데 ㅇㅇ; 멘탈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또라이인 거다]

[ㄹㅇ 힘들때 웃는 게 1류지 힘들때 미친듯이 웃는 건 그냥 미친 거지 ㅇㅇ;]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니까-

[야 근데 좀 괜찮냐?]

[ㄹㅇ;; ㅈㄴ 놀랐을 텐데]

[그니까 갑자기 저 새끼들 시청자 몰려와가지고 ㅈㄹ해서]

[숨컷님 죄송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신도가 시켰음 암튼 내 탓 아님]

[용서안해주면 이번 아빠 생일 안 챙김]

[와]

[사과의 의미로 숨컷 시청자로 갈아타서 구독 박는다 ㅇㅇ;]

[숨컷 님 멘탈 괜찮으신 거죠?"

상황을.

무려, 15만에 해당하는 시청자들을 주도한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방송인일지라도 힘들 일이었다.

최재훈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이유.

현재 그의 입장 덕분이었다.

그는 코스프레 대회에서 7만 명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대형 BJ 방민아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리치TV 유명 스트리머인 삼피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김경훈과 신도, 그들의 크루라는 리치TV의 거대한 적폐세력으로부터.

힘없는 동료 스트리머를, 더는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에서부터 구해줬다.

시청자들은 지금 그에게 엄청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비록, SGF 공식 채널을 떠나면 흩어질 관심이었으나.

적어도 SGF 공식 채널 안에 있는 지금 만큼은, 진짜였다.

최재훈.

지금 그가 가진 영향력은 허상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영향력.

최재훈이 그걸로 가장 먼저 하고자 한 것-

"아, 괜찮습니다. 저는 이츠 퍼킹 오케이합니다. 그러니까 저 말고-"

"어…?"

“진짜 힘드셨던 분 격려해 주세요.”

그가 뒤에 서 있던 권지현을 학대당해 상처 입은 새끼 강아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카메라 앞으로.

"아시는 분은 아시겠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리치TV에서 방송하시는 권지현 씹니다. 원래는 여기 있는 분들 다 알 정도로 유명해졌어야 할 사람인데. 옛날에, 한창 날라 다닐 때. 신도, 저 새끼가 성추행범이라는 누명 씌워 가지고 시궁창으로 떨어트려서, 지금까지 빛 못 보고 정말로 힘든 시간 보내온 분이십니다."

[아니 오빠 그럼 우리들이 시궁창 쥐라는 거야?]

[시궁창단 ㄷㄷ]

[저기요 죄송한데 시궁창단 이미 있어요]

[장혜환이 ㅈ으로 보여!?!]

[표절에바지]

[흐애]

다소 느려진 채팅 속에서 권지현 방송 시청자들의 채팅을 발견한 최재훈.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지현 씨 방송 시청자 여러분들. 지현 씨 믿어주셔서. 덕분에-"

최재훈이 말하다 말고 바톤을 넘겼다.

그 이상 말하는 건 주제 넘는다 생각한 걸까.

괜찮은데.

정말로.

어쨌거나,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사람이 하려던 말대로.

자신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믿어줬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들을 위해 당당하게, 멋지게 말한다.

"저, 권지현의 매력을 알아보고 지금까지 믿어 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절 못 믿은 분들! 지금까지 손해 본 거니까, 지금부터라도 분발하세요! 리치TV의 권지현입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끅… 끅…."

말이 나와야 할 통로로 다른 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가슴 속의 응어리였다.

오랜 세월 동안 점점 커지며, 꽉꽉 뭉치며.

그녀의 명치께를 틀어막고 있었던 그것이.

드디어 녹기 시작하며,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던 그때-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고개를 돌려 소리가 향해온 곳을 쳐다본다.

최재훈.

그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려줬다.

툭.

툭.

권지현은 속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자신은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최재훈은 피식 웃으며 부드럽게 포옹하고 등을 토닥여줬다.

토닥이며, 또 장난스럽게 말한다.

"울어, 한없이 울어."

권지현은 정말로 한없이 울었다.

입에서나, 눈에서나.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다.

제나가 와서 무심하게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다음은 방민아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헤집듯 쓰다듬으며, 포니테일을 잡고 붕붕 돌렸다.

"오냐~ 감사해야지. 야, 그런데 너 큰일 났다. 이거 지금 시청자가- 미친. 야, 찐따야. 너 지금 15만 명 앞에서 질질 짜고 있는 거다. 어떡하냐, 우리 지현이 찐따에 울보인 거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다 소문나겠네. 시집가긴 글렀- 아니, 근데 얘 언제까지 붙어 있으려고. 얌마! 이제 떨어져!"

"아!"

방민아가 권지현을 최재훈에게서 떼어냈다.

최재훈을 안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두 팔이 모친에게서 떼어내 진 갓난아기처럼 아련하게 앞을 향해 있었다.

어쨌거나, 응어리는 모두 쏟아낸 그녀는-

아주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웃는 애였구나.

그 미소를 본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그 미소의 주인이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치TV에서 방송하는 권지현입니다! 저희 숨컷 씨랑, 삼피 씨! 컷컷컷 크루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아메리카TV에서 방송하시는 우리 민아도요!"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방송하시는 민아는 또 뭐야."

피식 소리와 함께, 일제히 박수소리가 터져 나와 장소를 가득 채웠다.

"미튜브 구독할게요!!!"

"화이팅!!!"

"힘내세요!!!"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속보)권지현 광복)

[지현 독립 만세]

[후... 프린스 메이커 엔딩 본 기분이네]

[지현아 그쪽에서는 행복해라...]

[안뒤졌다고]

압도적인 영향력은, 힘은.

부조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렇게 권지현을 묶고 있던 부조리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자, 여러분. 우리 지현 씨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바로잡혔네요."

이제는 자신을 묶고 있는 부조리를 바로잡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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