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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189화 (189/361)

189. 박멸 3

크루원들에게 신도를 지원하라 지시를 내리고, 본인의 시청자들도 그러게끔 한 뒤.

허나이와 통화라는 이름의 보고 겸 도움요청을 마친 김경훈.

"하…."

그가 폐 안에 든 공기를 전부 한숨으로 쏟아냈다.

짜증나고 지친다.

최근,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언제부터일까.

그래.

숨컷, 그놈이 나타난 이후부터다.

놈은 재앙 그 자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현실에서 접촉하자 그 재앙이 가져다주는 불행의 크기가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해진다.

자신이 방송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라니.

다른 방송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판이라니.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김경훈은 짜증이 솟구치는 걸 느끼며 SGF 공식 채널에 접속해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구름이 드리운 그의 얼굴이 다소 밝아진다.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에 대한 칭찬과.

자신들에 대한 욕으로 도배된 채팅창.

그리고 성난 현장의 분위기에 놈의 얼굴엔 평소의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기색이 사라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걸 보니 지금까지 묵은 체증이 어느 정도는 내려가는 기분이다.

결국엔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몸이 가벼워진다.

'슬슬 가야지.'

그 가증스러운 놈의 파멸을 눈 앞에서 직관하는 다신 없을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가 심각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인 SGF 방송을 예능이라도 보는 듯, 즐겁게 시청하며 무대로 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이 꾸깃, 박살난다.

방송에 비춰진 신도를 보고 그렇게 되었다.

그는 지금 훌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론 웃고 있겠지.

무승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뭐가 됐건 괘씸하기 그지 없었다.

'뭣도 아닌 놈이 감히….'

자신이랑 맞먹으려 들다니.

협박하다니.

그는 숨컷뿐만이 아니라 신도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헀다.

이내 대기실에 도착한 김경훈이 감정을 가다듬는다.

숨컷의 표정을 보고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도록.

심각한 얼굴로, 무대 위로 오른다.

그렇게 보이는 숨컷의 얼굴.

그는-

"…어?"

자신을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자, 그럼 프레젠테이션 시작합니다."

갑자기 상황이 돌변한다.

폭로되기 시작하는 겜볼과 신도의 추태.

역전되는 민심.

김경훈이 그리고 있던 그림이 도저히 못 봐 줄 낙서가 돼 버린다.

'이 병신 같은 머저리 새끼가 끝까지….'

마침내 신도에 대한 증오가 숨컷에 대한 증오를 넘어섰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화낼 여유가 없었다.

온 신경을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집중시켜도 모자랄 판이었다.

무고한 이들을 성추행범한, 그 옹호자로 만들려다가 실패한 상황이다.

역풍에 대비해야한다.

아니.

역풍을 피해야한다.

온 신경을 사고에 집중시키느라 가만히 서 있는 김경훈.

"여러분, 말했었죠 '리치 TV가 저 견제해서 밀어 주려는 스트리머' 있다고."

"어?"

그런 그를 끄집어내는 숨컷의 목소리.

그가, 김경훈을 중지로 가르켰다.

그 특유의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 새끼에요."

그 모습이, 이번에 또 그림 위로 뿌려져 망친다.

신도에 대한 증오가 정도를 넘어서 잠시 놈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신도 때처럼.

열심히 그려나가던 그림에, 그의 얼굴이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숨컷이 특유의 역겨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긴 초상화가, 김경훈을 비웃었다.

'시발….'

두 꼴같잖은 놈이 쌍으로 아주 개지랄을 한다.

빠드득.

다문 입 안에서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들의 면상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당장에라도 팔 근육이, 안면 근육이, 성대가 제어를 벗어나 날뛰어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만한 게 없기에.

초인적 인내심으로 참는다.

그리곤?

어떻게 해야 하지?

숨컷의 지목으로 지금 상황은, 방금 전까지의 끔찍한 상황이 깜찍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채팅창에선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들이.

관객석에선 자신을 이런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에 원망의 시선을 향하는 스트리머들이.

눈앞에선, 웃고 있는 숨컷이.

자신의 다음 행동만을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느낌상으론 총을 겨누고 있는 기분이다.

자신의 다음 행동이 저들이 원하던 게 아니라면 바로 총알이 날아와 두개골을 뚫을 것만 같이 싸늘하다.

'후….'

정신 바짝 차리자.

아직 살아나갈 구멍은 있다.

그 짧은 사이에, 또 다른 스케치를 시작한 김경훈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김경훈이 자신의 친근한 이미지를 살려서, 당황스러움을 어필했다.

최재훈이 가소롭다며 씨익 웃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긴. 사실 그대로의 말씀을 하시는 거지. 니가, 리치TV랑 손잡고 나 조지려고 한 새끼시라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혹시, 제가 신도 씨 지지했다고 복수하시는 건가요…?"

김경훈이 겁먹은 듯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가만히 있는데 얻어맞은 조그마한 강아지 같아서, 보호욕구를 자극하는 그 모습은-

[아니? 갑자기? ㅋㅋ]

[오빠 깜빡이좀 키고 들어와 ㄷㄷ 너무 갑작스러워]

[들어와? ㅗㅜㅑ]

[ㅗㅜㅑ이 ㅈㄹ 니네 부모님은 ㅏㅣㅜㅑ겠다]

[머임 이거 무슨 일임? ㅋㅋ]

[숨오빠 이 사람이랑 무슨 관계길래 분위기가 이럼?]

[뭔지 몰라도 얘 반응 보니까 무죈거 같은데?]

제대로 먹혀들었다.

시청자들이 김경훈의 편에 서서 최재훈에게 당황을 표하기 시작했다.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김경훈의 연기도 연기지만.

사건의 전말과 김경훈의 본성을 모르는 이들에게 최재훈의 행동은 분명 난데없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좀]

[진짜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건데 무슨 근거로 그러는 거임?]

심지어는 권지현과 삼피, 방민아조차 머리 위에 [?]가 떠올라 있었다.

"오빠, 신도 저 인간은 알겠는데. 김경훈 씨는 왜요?"

"민아 씨, 얘 알아요?"

"당연히 알죠, 게임 잘 하시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몇 안 되는 남성 챌린저 유저. 그리고, 얼굴도 워낙에 잘 생기셨고."

"그거 때문이에요."

"네?"

"얘 게임 잘하죠?"

"네, 네."

"그런데 저랑 비교하면 어때요?"

"어…."

김경훈 앞이라 눈치를 보며 대답하질 못한다.

"얘, 잘생겼죠."

"어… 예."

"저랑 비교하면 어때요?"

"…."

"바로 그겁니다."

최재훈이 짓궂게 웃었다.

방민아가 김경훈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 했다.

"얘가 원래 이 동네 짱이었었는데, 나 나타나고 그저 그런 놈이 돼 버렸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그 말은, 저 분이 재훈 씨 질투해서… 뭐 대충 그런 이야긴가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진심이냐는 듯.

괜찮겠냐는 듯.

[ㅋㅋㅋ 아니 맞는 말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분명 근거 있는 자신감인데 왜인지 ㅈㄴ 추한 새기]

[증거 있음? 증거 없으면 이거 좀 오반데]

[ㄹㅇ; 선 넘는 거지]

[그만 장난치고 제대로 좀 얘기해 보셈]

[도대체 뭐가 문제임]

"도대체 뭐가 문제냐…."

최재훈이 신도를 보며 한 번 씨익 웃은 뒤 말했다.

"여러분이 김경훈, 이 새끼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제가 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도, 저 새끼가 뭐하는 새끼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아까부터 방송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새로 오신 분들도 많으니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얘-"

삿대질하며 말을 잇는다.

"저기 저 보이는 야수오 코스프레 한 분한테 집적거렸다가 차이고 억하심정 가져서, 저분이 자기 성추행했다고 소문내서 성추행범으로 만들어 버리고. 여자 시청자 분들 앞에서 하늘에 맹세하고 연애 안 한다고 했으면서 비밀 연애 하는. 아주 그냥 주댕이만 열면 거짓부래리가 술술 나오는 큰일 날 새끼거든요?"

"…."

별다른 대꾸 못하고 부들거리는 신도.

[근데 걔랑 김경훈이 무슨 상관임]

"뻐킹 라이어랑 김경훈이 무슨 상관이냐! 기억하시는 분들 다 기억하시겠지만, 얘가 아까 코스프레 심사 때- 아니, 잠깐. 이거 코스프레 대회였지 참."

"아, 맞다. 오빠. 굿. 완전 잘 어울려요."

[아 맞다]

[아 ㅋㅋ 나도 깜빡하고 있었네]

[아니 이거 코스프레 대회였다고? ㅋㅋ 왜 코스프레 하고 있나 했네]

[코스프레에서 뭐 하는 거냐 얘네는]

[레오레 코스프레라서 레오레 계삭빵 구현한 거잖아 ㅋㅋ]

[아 ㅋㅋ]

최재훈은 헛 웃으며 스태프 쪽을 쳐다봤다.

이제와서지만, 계속 해도 괜찮겠냐고.

방금, 역대급 경사의 롤러코스터를 타서 진이 다 빠진 최 팀장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제와서 바로잡기에, 대회는 이미 너무 먼 곳으로 와 버렸다.

게다가 이 엄청난 시청자수.

화제성.

본래 대회의 취지가 변질되었다는 걸 감안해도 아주 훌륭했다.

코스프레 대회라 해도 결국엔 주최측인 SGF와, 참가 업체들을 홍보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무대 위에서는 코스프레나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15만 시청자들의 눈엔 무대에 설치된 참가 업체들의 게임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거면 된 거다.

그리고, 우승자와 비밀 프로젝트의 주인공도 이미 정해졌고.

숨컷.

최팀장이 그를 보며 고갤 끄덕였다.

"아, 다행히 괜찮으시다네요. 그러면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까 신도, 저 뻐킹 라이어가 그랬었거든요.

아까 저희가 코스프레 분장 부스에서 만났었는데. 거기서 제가 자기랑 권지현 씨 사이에 있었던 일 거짓말이라고 한 시간 안에 정정 안 하면 방송 망쳐버리겠다고. 근데, 제가 한 말은 이거였거든요?

권지현 씨한테 한 짓 사과하고, 수습해라. 안 그러면, 강제로라도 니가 한 짓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겠다. 어때요? 여러분들이 들으시기엔. 두 개가 같은 말 같나요?"

-아뇨!!!

-달라요!!!

[풋볼이랑 축구 만큼 다르네]

[풋볼이 축구야 ㅄ아]

[그럼 핸드볼은 농구냐 ^^ㅣ발아]

[그럼 파이어볼은 머임 ㄷㄷ]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악의적인 왜곡이 있긴 하네 ㅇㅇ]

"그러니까요. 이게 악의적으로 왜곡된 완전 다른 말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신도 이 뻐킹 라이어 새끼가 나 조뙈 보라고 거짓 부라리를 친 거지. 그런 거짓 부라리를!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이 새끼 어떻게 했게요?"

최재훈이 시선을 옮겼다.

현장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엔 가련한 피해자의 모습을 연기하는 데 한창인 김경훈이 있었다.

"그, 분장실에 같이 있었던 김경훈도 들었다고 했죠. 그랬더니 얘는 어쨌게요? 그렇습니다. 이 새끼, 지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신도 새끼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편들어 준 거죠."

[ㅁㅊ?]

[아니 뭐야 그럼 쟤도 신도랑 같은편인 거임?]

[쟤도 숨컷 묻으려고 신도 도와준 거네?]

"아니에요! 여러분, 저 그때 분명 잘 못 들었다고 말씀 드렸었어요! 숨컷 씨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말을 모호하게 했었다.

김경훈은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연기에 박차를 가한다.

울먹이며 세상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보호욕구를 극대화시킨다.

그렇게 숨컷을 악인으로 몰아간다.

[ㅇㅇ 맞음 나도 잘 못 들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함]

[아니; 얘는 왜 아까부터 신도 놔두고 애꿎은 애를 패고 있어]

[갑자기 좀 이상하게 보이네;]

[주먹이 근질거려서 못참겠는 사람]

먹혀든다.

최재훈을 비난하며 김경훈을 싸고도는 이들이 속출한다.

그에 최재훈은-

피식 웃었다.

딱 걸렸다는 듯.

사냥감이 무수히 많은 덫 중 하나를 밟았다.

최재훈은 그걸 작동시키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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