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87화 (187/361)

187. 박멸 1

최재훈과 눈이 마주친 이린이 고갤 끄덕이더니 이내, 핸드폰을 들어 가리켰다.

그러자, 최재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수차례 진동한다.

최재훈은 그 자료를 확인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자신의 예상대로 저 두 연놈은 한통속이었고.

'겜볼 저 암사자 새낀-'

최재훈의 입꼬리가 힐쭉 올라갔다.

폭탄이 준비됐다.

이제 문제는, 이 폭탄을 언제 터뜨리느냐다.

지금 당장 터뜨릴 수도 있다.

지금 당장 터뜨려도, 저 두 연놈은 확실하게 끝장나고.

김경훈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론 아깝지.'

최재훈은 김경훈을 떠올리고 피식 미소 지었다.

놈이 내분에 의해 최전선으로 끌려나온 시점에서.

이 전투는 놈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이겨야 할 중요한 전투가 되었다.

고로, 놈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놈의 전부가 투입될 것이다.

그 전부를 터뜨린다면, 김경훈은 단순히 크게 피해를 입는 수준에서 안 끝날 터.

그러니, 최재훈은 신중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물을 올릴 때를 기다리는 어부의 심정으로.

최재훈이 겜볼을 쳐다봤다.

은근한 조소를 머금고.

"그래서, 어쩔래요?"

그러자 뇌가 정지된 듯 굳어 있던 겜볼이 흠칫 정신을 차렸다.

"…뭐요?"

"내가 그쪽이 나 성추행했다고 하면 어쩌실 거냐고. 당연히, 지금 그쪽이 신도 씨 대하는 것처럼 나 피해자로 대하고, 지현 씨 대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성추행범으로 대하시겠죠?"

"아니, 뭐 그딴 말 같지도 않은-"

"그 말도 안 되는 짓. 지금 니가 하고 있잖아요. 아니, 니들이."

최재훈이 겜볼과 신도를 번갈아보며 노려봤다.

겜볼이 삐질삐질거리더니 입을 연다.

"아니, 그쪽이랑 신도 씨는 경우가 다르잖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좀 해 달라고."

"그만! 궤변으로 논점 그만 흐리세요! 그거, 피해자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결국 한다는 말이 그거다.

"궤변으로 논점을 그만 흐려라…."

최재훈이 카메라를 보며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들었다 놨다.

[┐(-_-)┌]

[아 ㅋㅋ 궤변으로 논점 흐리는 게 어느 쪽이냐고]

[궤변을 아주 잘하시네요... 궤변신이라 불러드리겠습니다]

[이거 완전 궤변신련 아니야]

[아니 아까부터 내로남볼 빡쎄긴 하네 ㅇㅇ]

[ㄹㅇ ㅋㅋ 지가 권지현보고 하지 말라는 거 지가 다 하는 중]

[아니 그런데 ㄹㅇ역으로 생각해 보니까 오바긴 하네 증거도 없이 이 ㅈㄹ하는 거]

[머임? 증거 없는 거였음?]

[피해자의 목소리랑 눈물이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함]

[증거 ^^ㅣ발아 증거]

[무슨 '피해자의'세트누? 셋옵이라도 붙어 있어서 증거 대체 가능한가]

[진짜 역지사지로 내가 이런 상황 처한다고 생각하니까 정신 아찔해지긴 하네]

신도 측을 대표하던 겜볼.

숨컷이 그의 이중적이며 인지부조화적인 모습을 조명하자, 신도 측에 쏠리기 시작하던 여론이 다시 또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감성이 아닌 이성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신도 크루원들의 선동도 더 이상은 안 통했다.

'저런 멍청한 새끼… 뭐 하는 거야!'

가련하고 힘없는 피해자를 표방하고 있는 이상 수동적으로 겜볼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신도가 답답함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던 그때.

시청자가 신도 크루의 난입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팅창.

[신도님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억울한 성추행 피해자 신도님 지지합니다]

[숨컷 권지현 님 2차 가해를 멈춰주세요]

권지현과 숨컷을 비난하는 댓글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슬로우 채팅에 도배 금지라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 * *

리치TV 게임 스트리머 C-POP.

그는 평균 시청자 3천 명을 보유하고 있는 리치TV 대기업 스트리머였으며.

빅 가이즈 크루의 일원이었고.

허나이와 김경훈의 라인을 타고 있었다.

"자 그럼 다음은-"

현재 그는 SGF의 현장에서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그 시청자는 평소보다 1천 많은 4천이었다.

-라톡!

"어, 잠시만요."

그러던 와중 김경훈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신도한테 힘 실어 줘.'

그 문자를 본 C-POP이 중얼거렸다.

"미쳤네…."

나직하지만 시청자들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미 : 아야]

[아 그런것좀 하지마요 ㅅㅂ]

[뭐야 먼데]

[좋은 거 같이 봐 이자식아]

의도한 반응이 나오자, 그가 심각한 분위기로 말한다.

"지금 SGF에서 마남사냥 일어나고 있대요. 신도 씨, 성추행 당한 걸 오히려 무고범으로 몰고 있다고… 하, 몰라.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방송을 진행하는가 싶더니-

"아, 도저히 못하겠다. 여러분, 저 지금 답답해서 방송계에 환멸이 나서, 이 일 잘 해결되기 전까진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이 정도로 썩어 있었다니. 저 방송 끄고 그분 좀 응원하러 가 볼게요."

그러한 일들이 현재 SGF를 진행하던 다수의 대기업 방송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다수의 대기업 방송인들의 시청자를 합치면 약 3만 2천 명.

그리고- 김경훈.

"저는 어떻게 할 거냐고요? 아… 굳이 한 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저는, 신도 씨가 그 일로 예전부터 많이 힘들어하시는 걸 봤으니까. 일단 신도 씨 지지할게요."

이미 다른 빅가이즈 크루원들에게 시청자를 몰아 받고 3만 명에 달해 있던 그가 동참했다.

그렇게.

빅 가이즈 크루의 시청자.

약 6만에 달하는 시청자가, SGF로 몰려들었다.

신도 크루와 빅가이즈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SGF의 시청자는 7만대였다.

그렇기에 수 자체만 놓고 보자면 둘의 기세는 동등해야 했다.

하지만.

단결된 6만 명과, 단결되지 못한 7만 명의 차이는 컸다.

[신도 화이팅!!!!!!]

[권지현 숨컷 쓰레기 새끼들 2차 가해 멈춰라]

[사과해!!!!!!!!!!!!]

슬로우 채팅이 걸려 있고 도배가 금지되어 있는데도.

채팅창은 빠른 속도로 빅 가이즈와 신도 크루 시청자들에게 정복되어갔다.

차츰 숨컷과 권지현을 옹호하던 채팅이 줄어든다.

[뭐임?]

[어디서 몰려옴?]

[^^ㅣ발 오랑캐 새끼들]

[우리도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ㅏ]

상황을 지켜본 최재훈, 삼피, 권지현의 시청자들도 알아서 지원에 나선다.

하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채팅창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신도를 격려하고, 숨컷과 권지현을 비난하는 내용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장.

관객석은 대회 개최 이후 전에 없을 정도로 붐빈다.

빅가이즈와 신도 크루의 스트리머들, 그리고 그들의 시청자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신도 씨 힘내세요!!!!!!!"

"숨컷 씨 너무해요!!!!!!!!"

"권지현 사과해!!!!!!"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지금 이 상황 무서울 게 없는 그들은 거리낌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신도를 응원하고, 숨컷과 권지현을 비난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서로를 덮었다.

채팅창과 같았지만, 그 무게감은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게, 현실이었으니.

목소리가 귓청을 때리고 시선이 날아와 박힌다.

그 안에 담긴 악의가 끈적하게 몸에 달라 붙어 남는다.

시종일관 우습다는 듯 사태를 방관하던 제나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그 표정을 보고 외친다.

"다른 방송인들이랑 절대 안 어울릴 것처럼 하더니, 숨컷 그 쓰레기 새끼랑은 잘만 어울리네! 그놈이 대주기라도 하디!?"

"뭐, 이 개새끼야!?

최재훈의 이름이 그렇게 언급되자 제나도 마침내 이성을 잃는다.

그녀가 관객석으로 내려가려 하자, 서 MC가 다급히 그녀를 만류했다.

광기는 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격화된다.

이성의 흔적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난장판 일보 직전.

스태프들이 비상에 걸렸다.

"여러분!!!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하지만 그들끼리 얼추 보아도 백 명이 넘어 보이는 폭도들을 진정시키기란 무리였다.

언젠가부터 꽉 쥐여져있던 주먹이 새하얬다.

권지현.

그녀가 소리쳤다.

"여러분!!! 제발!!! 부탁이니까!!! 제 얘기에 한 번만 귀 기울여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때려쳐 좀!!!"

"제발, 신도 씨 좀 그만 괴롭혀!!! 좀 그만 해!!!"

"그냥 좀 인정하고 사과해!!!!!"

"니 얘기 아무도 안 궁금해 하니까!!!!!!"

결의에 찬 그녀의 목소리가 허무하리만큼 덧없이 폭도들의 고함에, 순수한 적의에 파묻힌다.

권지현의 표정이 변한다.

다시금, 옛날로 돌아간다.

최재훈을 만나기 전 그 날로.

그녀가 고갤 돌려 최재훈을 바라봤다.

'….'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엔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권지현이 저도 모르게 실없이 웃었다.

그 모습은 어딘가 최재훈과 닮았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폭도들을 향했다.

그리고 입을 열려던 찰나-

"…."

넓고, 딱딱해서 듬직한.

손바닥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고개가 다시금 손바닥의 주인에게로 향한다.

그는 웃고 있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돈.

워…

뭐라고 한 거지?

아.

돈 워리.

"하."

권지현이 이런 상황에서도 실소를 터뜨렸다.

쾌감에 흥건하게 도취되어 있던 신도의 얼굴이 그걸 보곤 와락 구겨졌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겜볼에게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드디어 운을 뗐다.

"권지현 씨."

그러자 드디어 조용해진다.

마치, 죄수의 처형을, 최후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처럼.

"억울해요?"

"…."

"많이 억울해 보이는 표정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왜 아무도 그쪽 말 안 믿어주는지 알아요?"

"그쪽은 아세요?"

끝까지 무시할 생각이었던 권지현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참지 못할 만큼 궁금했다.

"당연히 알죠."

"뭔데요."

"지현 씨, 저는요. 그쪽처럼 발정 나서 관심 없는 남자가 저녁에 둘이서 술 마시자고 해도, 좋아서 넙죽 따라가거나 그러지 않아요. 나는, 그쪽처럼 남성분들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쓰레기 새끼들이랑 다르다고. 그게 그쪽이랑 나의 차이점이야."

겜볼은 알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권지현이 신도를 '관심 없다'고 한 것을.

신도의 주장에, 지금의 상황에 반하는 말을 한 것을.

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알아듣지 못했다.

최재훈을 제외하곤.

"푸흡."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부터 참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

심각하기 그지없는 이 상황이, 그에겐 골칫덩어리인 벌레들이 폭탄 한 방에 터뜨리기 용이하도록 이쁘게 모여들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어, 무, 무슨 일이에요…?"

모든 벌레들이 완벽하게 모였다.

무대로 돌아온 김경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동시에, 최재훈이 입을 열었다.

"겜볼 씨."

"네?"

"분명 말했었죠. 신도 씨랑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그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데요? 갑자기 왜요. 혹시. 제가 그쪽처럼 지인이라고 무작정 싸고도는 사람일까 봐요?"

최재훈은 피식 웃는 그녀를 깔금하게 무시하고, 이미 신도를 보고 있었다.

"신도 씨."

"…."

대답 대신 노려보는 그에게 말한다.

"신도 씨도 그랬죠. 저 사람이랑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그게 왜요."

"겜볼 씨."

"아, 뭐요!"

"분명 그랬죠. 그쪽처럼 남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쓰레기들이랑 다르다고."

최재훈이 핸드폰을 들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반쯤 영혼이 나가 있는 스태프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예, 지금 보낸 파일들 제가 부탁드리면 차례대로 저기 무대 화면에 띄워 주시면 돼요. 예. 감사합니다."

폭도들이 쑥덕거리고, 최재훈은 무대에 돌아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첫 번째 파일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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