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86화 (186/361)

186. 암사자

'리치TV가 자신을 견제함으로써 밀어주려고 하는 특정 스트리머가 있다.'

숨컷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김경훈은 극도로 당황했지만-

괜찮다.

아직은.

그게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모난 데 없는 성격으로 사람들을 차별 없이 친근하게 대한다.

그렇기에 시청자들과의 마찰이 없다시피하고, 모든 방송인들과 원만하게 잘 지낸다.

게임 스트리머로서, 남성 게임 스트리머 대표 실력자라 불릴 만큼의 출중한 실력과.

리치TV 대표 크루 중 하나인 빅가이즈를 능숙하게 이끌 만큼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

인간으로서도, 방송인으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는.

그게, 김경훈이 착실하게 쌓아 올린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였다.

그건 견고한 성세와도 같았다.

무너트리기 아주 힘든.

기세가 바짝 오른 숨컷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숨컷은 '리치TV가 자신을 견제함으로써 밀어주려고 하는 특정 스트리머 A'가 존재한다 할 수 있을지언정.

그 A가 김경훈이라고 섣불리 지목할 순 없었다.

숨컷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 봐야, 결국 신인에 불과했고.

그런 그가 심증만 가지고 아무런 접점도 없었던 김경훈을 A로 지목하면.

그러니까-

'김경훈이 리치TV랑 같이 나를 견제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경우,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줄지는 불보듯 뻔했으니까.

리치TV 에서 숨컷의 팬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김경훈을 지지할 것이다.

숨컷의 팬들조차 그에게 실망을 느끼고 돌아설 수 있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았다.

숨컷이 김경훈을 A로 지목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아직은 말이다.

숨컷이 김경훈을 A로 지목하기 위한 조건.

그 중 첫 번째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부당하게 리치TV에서 퇴출당했으나 주목 받지 못한 다수의 스트리머들.

그들이 김경훈의 경쟁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아니면, 김경훈이 최재훈에게 '적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숨컷에게 일어난 일을 김경훈과 엮는 게 가능해진다.

숨컷의 의심이 '합리적 의심'이 되어, 힘이 생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첫 번째 조건.

최재훈이 증거를 모으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터다.

하지만, 김경훈과 허나이는 그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계획'.

그 계획에 의하면, 숨컷은 이 대회가 끝나는 즉시 무너지기 시작해서.

증거를 모은다 해도, 그 시점에선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

최재훈이 김경훈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면, 그의 그러한 모습을 방송이나 영상, 혹은 녹음에 담아내야 할 텐데.

모니터에서 완벽한 내숭으로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게 장기인 김경훈이었다.

그는 앞으로 최재훈에게 일말의 빈틈도 보여주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었다.

코스프레 분장실에서의 일이 있지 않느냐?

김경훈이 거기에서 숨컷과 아무런 대화도 안 했다고 잡아떼면 되는 일이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

서로를 눈치를 뚫고 몰래 녹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365일 녹음을 켜고 다니지 않는 이상에야 녹음본은 존재할 수 없다.

옆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대화를 듣긴 했지만.

그들의 증언은 아무런 효력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기본적으로 시청자 수천에서 수만을 유지하는 대형 스트리머인 김경훈과 숨컷이었다.

비공인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증언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증인이라 자처하는 비공인들이 수천 명은 나타날 테니까.

그러니.

최재훈의 조건이 만족될 일은 없었다.

김경훈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 자리에 경훈 씨도 같이 있었어요!"

신도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

신도는 현재 숨컷과 적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경훈이 신도의 편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김경훈이 숨컷을 적대하고 있다는 인상이 심어진다.

두 번째 조건이 만족된다.

"아, 전 그때 다른 거 하느라 못 듣고 있었어요."

김경훈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하며.

신도에게 시선을 향했다.

'정신 차려 병신아!'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신도가 홧김에 실수한 거라 판단하고.

허나, 그에 대한 신도의 대답.

"어, 정말요?"

정말로 그렇게 나와도 되겠냐는, 협박 혹은 최후통첩이었다.

신도는 평소엔 냉정하지만, 자존심을 자극받을 때에 한하여 극도로 충동적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때문이었다.

자신을 찬 권지현과.

그녀를 가진 숨컷 앞에서 비참하게 우는 연기를 하고 있노라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숨컷을 흔든다는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

그를 흔드는 걸 넘어 무너트리고자, 김경훈을 끌어들었다.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무탈해서 자신을 살려줘야 할 김경훈을.

신도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고 아차 했고 수습하려 했다.

김경훈의 예상대로, 처음엔 실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김경훈의 반응.

숨컷과 권지현이 보는 앞에서, 김경훈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을 내팽개치자.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그리고 의심이 시작된다.

정말 저딴 놈을 믿어도 되나?

이 일이 끝나고, 저놈이 날 살려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설사, 살려준다 해도 지금의 자리에 되돌려 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나는 이렇게 모든 걸 거는데.

저놈은 저렇게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이나 한다고?

내 한 몸 바쳐, 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는 놈 좋을 일이나 하라고?

'안 되지.'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신도 역시 눈으로 답했다.

'내가 널 위해 독박 쓰는 건 이제 없어. 이제 같이 뒤지거나, 같이 살거나 둘 중 하나야.'

아주 공평하게.

'이런 미친놈이….'

그 속내를 읽은 김경훈이 역시 눈으로 욕했다.

실수였다.

공동의 적을 뒀다고, 아무것도 아닌 놈을 너무 믿어 버렸다.

이런 중요한 일을 놈 따위와 함께해선 안 됐다.

그 안일한 판단으로, 자신은 절대적인 이점을 잃어 버렸다.

'이런 병신 같은….'

어쩌지.

놈은 자신이 더 이상 뒤에서 팔짱끼고 지켜보는 걸 용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요구는 명백했다.

전선으로 나와, 자신과 협력하여 숨컷을 같이 공격할 것.

그러나, 그 경우 숨컷의 두 번째 조건이 만족되는데-

'…잠깐.'

김경훈이 알기로, 이 사건은 권지현과 신도 양쪽 다 이렇다 할 물증이 없다.

즉,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것이다.

숨컷의 지금 기세는 분명 엄청나지만, 신도와 김경훈이 크루 전체를 동원한다면?

충분히 이길 만하다.

숨컷을, 권지현이 성추행을 한 걸 알면서도 두둔해 주고.

그걸 위해 피해자를 협박한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

그 경우 숨컷의 방송인생은 완벽하게 끝난다.

두 번째 조건을 만족한다 해도, 기본 조건인 '김경훈에게 대등하게 맞설 영향력'이 사라져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결국 김경훈은 선택했다.

그가 고민하는 시늉을 하더니.

"아… 그거…."

생각났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겜볼이 이때다 싶어 묻는다.

"경훈 씨, 신도 씨의 말이 정말인가요?"

그러자 김경훈은-

"잘… 모르겠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혹시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기 위해 애매하게 말한다.

그리곤-

"흑… 도대체 어쩌다, 우리 같은 리치TV 스트리머들끼리… 죄송해요… 저 기분이 이상해져서 잠시만…."

즙을 짜는 연기를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핸드폰으로 '빅 가이즈'를 호출하기 위해.

그리고, '그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머임?;;]

[오줌마려워서 눈으로 흘러 넘치는 거임?]

[미친년인가 진짜]

[머 어케 대가는 거임?]

[신도가 한 말이 ㄹㅇ이라고?]

김경훈의 행동에 분위기가 다시 또 술렁이기 시작한다.

[숨컷이? ㅋㅋ]라 반응하던 이들이.

[숨컷이;;;?]

라 반응하기 시작한다.

숨컷과 신도+김경훈 사이에서 방황한다.

권지현은 이번에 신도와 결착을 짓기 위해 결심하고 또 각오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더 이상 눈 하나 깜짝 안 할 자신 있었다.

자신에게 말이다.

숨컷에게 불똥이 튀자, 결연하던 표정이 바로 당혹감으로 너덜너덜해진다.

그에게 튀는 불똥을 막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연다.

"아, 저-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하지만-

"아!"

겜볼이 윽박을 질러 말을 끊는다.

"뭐하시는 겁니까!"

"…예?"

"아직 신도 씨 차례잖습니까! 권지현 씨, 이젠 강압적으로 신도 씨 발언할 기회도 뺏으려는 겁니까!? 이 인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당신! 신도 씨가 여자였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부끄러운 줄 알아!"

"아니, 뭔…."

"당신 각오해, 이 자리에선 당신이 예전에 신도 씨한테 했던 것처럼 안 될 테니까. 신도 씨, 많이 힘드셨죠? 저런 인간 때문에. 이제 걱정 마세요. 솔직하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만 믿으세요. 저희가 신도 씨 지켜드릴 테니, 저런 사람 더 이상 겁내지 마세요. 알겠죠?"

그에 최재훈이 코웃음을 쳤다.

마치 자신이 남자들의 수호자라도 되는 양.

마치 권지현이 남자들의 적이라도 되는 양.

괴물에게서 공주를- 아니, 왕자를 지키려는 공주라도 되는 양 지껄이는 그 모습이 더는 없을 정도로 가증스럽고 고까웠다.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암사자인가?

그나저나-

'저 새낄 도대체 어디서 봤더라?'

그의 안에서 겜볼의 인상이 강해지는 만큼.

아까부터 간질거리던 게 더욱 심해진다.

그때, 겜볼이 숨컷에게 말을 걸었다.

"숨컷 씨."

"뭐 병신아."

라고 대답할 뻔한 걸 가까스로 참는다.

지금 상황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좋지 못했다.

"네."

"하실 말이라도 있습니까?"

이게 코스프레 대회라는 사실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지.

대놓고 판사 행세다.

역시, 겜볼과 신도 사이에 뭔가 있다.

'이 지랄 하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겁니까?'

최재훈은 그 시선을 담아 최 팀장을 바라봤다.

"…."

하지만 최 팀장이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잘 나가던 자신의 대회가 갑자기 재판 현장으로 변해 버리다니.

당장에라도 바로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남자가 자신을 성추행 한 직장 동료를 눈물 흘리며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

그리고, 항상 남성 단체들이 눈을 부라리는 게임 업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엿 같은 제목의 기사가 뜰지.

어떤 귀찮은 일이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최 팀장에게 응답받지 못하는 시선을 보내는 숨컷에게 겜볼이 말했다.

"아무 말도 못하는 건 할 말이 없다. 잘못을 시인한다. 그렇게 해석해도 되겠죠?"

"하, 뭔."

숨컷이 마침내 못 참고 비죽였다.

"다 헛소리입니다. 코스프레 분장 부스에서 있었던 일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때 일 말하자면-"

"숨컷 씨!!!"

그가 탁자를 쾅쾅쾅 내리쳤다.

"제 질문에만 대답하세요! 경고합니다!"

위압적으로 삿대질하며 말한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최재훈이-

큭큭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얘 갑자기 왜 이래;;;]

[미안합니다 저는 기분과 상관 없이 웃는 병이 있어요]

[지금 상황에 웃는다고?]

[;;; 멘탈 나갔나보네]

채팅창을 확인한 겜볼.

속으로 건수를 잡았다며 히죽 웃곤, 겉으론 기가 찬다는 듯 화를 낸다.

"숨컷 씨는 지금 이 상황이 웃깁니까!? 신도 씨가 저 여자한테 강압적으로 성추행 당하고 입은 상처가, 당신과 저 여자 때문에 곪아 터진 건데. 그게 웃겨요!?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웃음이 그쳤지만, 여전히 우스워서 어쩔 수가 없다는 얼굴로.

숨컷이 겜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긴 건 맞는데. 내가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웃음 못 참을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데."

그가 피식 웃었다.

"그쪽 염병하는 건 도저히 못 참겠대."

"뭐요?"

"다른 건 몰라도. 그쪽 지랄하는 모습은 너~무…."

말하는 와중 다시 또 못 참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다.

"큭큭큭, 웃긴 거 아니냐고. 아니 솔직히. 저 이런 상황에 웃는 못된 새끼 만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죠?"

"아니, 그게 지금 뭔-"

"그게 무슨 소리냐면 그쪽-"

"제 말 끊지 마세요!"

최재훈이 겜볼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대답하려 하자.

그녀가 언성 높이며 최재훈의 말을 끊었다.

그에-

"큭큭큭큭큭큭!"

최재훈이 또 못 참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니, 그 봐! 그 지랄을 하는데 어떻게 웃음을 참겠냐고!"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댁, 아까 그랬잖아."

웃음을 그친 최재훈은 한심해서, 같잖아서, 우스워서 어쩔 수가 없다는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현 씨한테. 이제, 강압적으로 남자가 말 할 기회 뺏는 거냐고. 여자가 돼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그런데, 그쪽 하는 짓 봐. 위협적으로 책상 내려치면서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면서 딴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자기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그러고~ 게다가."

그가 씨익 웃었다.

"계속 소리 지르면서 내 말 당연하다는 듯 끊고. 그러면서 , 내가 지 말 끊으면 거의 발작을 일으키고. 아니, 그쪽 뭐. 그거야? 치외법권이라도 있어? 내로남불도 그 정도면 병인데. 그쪽은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그 지랄을 하고 자빠진 거예요?"

응?

최재훈이 어디 지껄여보라는 듯 턱을 까닥였다.

"아니, 저는 대회 진행하는 입장에서. 대회 룰 준수하라고 그런 거 아닙니까."

겜볼의 빨갛게 썩은 표정으로 변명하듯 구차하게 지껄였다.

그에 최재훈은-

"뭐? 대회 진행? 대회 룰 준수? 아, 그거야? 이게 코스프레 대회라, 그쪽도 뭐, 판사 코스프레 하는 거야? 멀쩡하던 대회를 개판을 내놓고, 뭘 준수해?"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녀를 비웃는다.

점점 얼굴이 썩어들어가던 겜볼이 다급히 외친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합니까? 어떻게 그렇게 뻔뻔해요!? 도대체, 권지현 그 사람이랑 무슨 관계길래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두둔하는 겁니까! 같은 남자로서, 신도 씨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그쪽이 여자 동료한테 성추행 당했는데, 다른 남자 스트리머가 그 여자 싸고돌면! 그쪽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좀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십쇼!"

"오, 역지사지라. 거 말 잘했네. 저기요. 그럼 댁은, 같은 여자로서 지현 씨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불쌍하긴! 부끄럽습니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우리 여자들이 욕먹는 거 아닙니까!"

"우리 여자들은. 댁이 뭔데 여자를 대표해요. 그리고, 저 인간은 뭔데 또 남자를 대표하고. 댁들 같은 인간이 툭하면 남자, 여자 대표하고 나서니까 허굿날 싸움이 나는 거지. 어쨌든. 그럼 그쪽은. 남자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쪽 보고 성추행범이라 하면. 예~ 그렇습니다~ 하면서 바로 겸허하게 손 내밀고 쇠고랑 채워 달라 할 거란 말이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비유입니까!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아, 그렇구나."

최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신도를 향해 말했다.

"신도 씨, 증거 있으셨구나.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러면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았을 건데."

"…."

"얼마나 기가 막히는 증거길래, 이렇게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꼭꼭 숨겨놓고 자기 혼자만 구경하는 겁니까. 어디, 좀 봐요. 같이 좀 봅시다."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당연하다.

증거가 있을 리 없었으니.

최재훈이 다시 겜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거랑 이거랑 같다는데?"

그리곤 피식 웃었다.

생각났다.

이 암사자 새끼, 어디서 봤는지.

그가 이린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이미 그를 쳐다보고 있던 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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