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예상치도 못한 적
[권지현 저새끼 표정 뭔데 저리 당당함?]
[뻔뻔하고 역겨운거 야수오 코스프레 하는 거임? ㅋㅋ]
[코스프레의 신이네 걍 ㅋㅋ싱크로율 100% 진행 더 할 거 있냐? 저새끼 우승시켜라]
[빨리 저 새끼 우승시키고 내 눈 앞에서 치워주셈 ㅇㅇ]
[니가뭔데 ㅄ아 꼬우면 니가 쳐나가]
[갑자기 ㅈㄹ하는 새끼들 왜이리 많음?]
[권지현 억까 뭐임?]
[강간미수범 새끼 강간미수범이라 욕하는 게 억까임? ㅋㅋ 그러면 교도소도 필요없겠네 걔네들 다 억까 당한 거니까]
[웬 강간미수범?]
[뭔 일임?]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권지현신도한테왜그랬어?]
[숨컷 뭐 문제 있음?]
"아니, 옘병 이건 또 뭔…."
한창 잘나가다 다시 또 개판이 나 버린 방송.
최 팀장은 싸구려 롤러코스터라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 이렇게 자주 올라갔다 내리 박혔다를 반복한단 말인가.
가슴이 진정될 새가 없다.
"서채윤!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최 팀장이 컴퓨터에 앉아 사태를 해결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서채윤을 닦달했다.
"그, 아무래도. 대기실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권지현이랑 신도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일이 갑자기 터져서, 신도가 그것 때문에 방송 종료하고 그 방송 시청자들 다 몰려온 것 같습니다."
"아니, 뭐 이딴."
시청자가 갑자기 폭증해서 좋아했더니만.
그것들이 다 저 폭도들이었다고?
"진짜, 지랄 났구만. 아니, 것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강간 미수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와!? 저 친구, 그런 사람으로 안 보이더만!"
"제가 알기로, 권지현이랑 신도 둘이 옛날에 같은 크루였는데 좀 안 좋게 끝난 걸로 알거든요. 신도 말 들어 보면, 권지현이 술 먹고 신도한테 찝쩍거리다가 선을 넘었다고…."
"아이고, 또 그 년의 술이야!? 그리고 넌 임마, 그걸 이제 와서 말해!"
"아까 권지현 신청했을 때도, 팀 짜실 때도 말씀드렸는데요…."
"아니, 니가 임마! 옛날 일이라 흐지부지 잊혀져서 괜찮을 거라며!"
"저는 흐지부지 잊혀진 일이라고 까지만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괜찮네! 라고 하신 건 팀장 님이시고…."
"내가 왜!?"
"나름대로 규모 있는 방송인이라 말씀드려서…."
"니가 말렸어야지!"
"…그냥 절 죽이세요."
"이거 해결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야?"
"일단, 아까 숨컷 때 보단 덜해요. 리치TV 안에서 일부 시청자만 저러는 거라. 근데, 그 일부 시청자가 너무 많아요. 방금 시청자 폭증했던 거 보면, 최소 만 명인데. 걔네 다 같이 난리 피우고 있는 거라. 일단, 슬로우 채팅부터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슬로우 채팅!?"
채팅 간격에 대기시간을 설정해, 시청자 개인의 시간당 채팅 횟수를 제한시키는 시스템이었다.
채팅 참여율과 갱신율, 그러니까 방송이 어지간히 흥하지 않는 이상은 사용했다가 방송 분위기가 한 번에 가라앉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수.
한 마디로, 지금 최 팀장에겐 방송의 존망이 걸린 선택이 요구되고 있었다.
엄청난 책임이 걸린.
초조한 심정으로 고민하던 최 팀장.
그녀의 눈에-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참가자들.
그 중에서도 숨컷이 들어왔다.
어딘가 초연한 듯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이 말이다.
그걸 본 순간, 최 팀장은 솟구치는 자신감을 느꼈다.
그래.
슬로우 채팅이건 뭐건, 저 숨컷이 이번에도 결국 한 건 해 주리라!
숨컷을 믿는다.
그게 최 팀장의 판단이었다.
"슬로우 채팅 걸어! 그리고-"
그녀가 당황한 최 진행자를 불렀다.
그리고, 손짓 눈짓으로 숨컷을 가리킨다.
마치 화재 현장에서 소화기를 가리키듯.
진행자가 알아들었다며 바로 마이크를 입에다 가져갔다.
"자, 그럼. 먼저 첫 번째 심사입니다! 스트리머 심사! 숨컷 님?!"
"? 아, 예."
김경훈과 스트리머 심사석을 번갈아 바라보던 최재훈이 시선을 진행자에게로 옮겼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부터 진행될 첫 번째 심사는 스트리머 심사로! 저기 저, 스트리머 심사위원 여러분들이께서-"
그녀가 심사석에 앉아 있는 그들을 가리키곤 말을 이었다.
"다른 분들이 참가자 분들께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을 대신 해 주거나. 보고 싶은 것들을 대신 요청하거나 하시고, 그에 대한 채점을 하게 될 건데요. 새로 오신 시청자 여러분과, 참가자 여러분께 심사 위원을 소개해 드리기에 앞서. 혹시, 숨컷 님께서 저 중 알고 계시는 스트리머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이, 두 분처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던가?"
그 말에 최재훈의 시선이 심사석을 향했다.
"쓰…."
그가 미간을 구겼다.
'쟤를 어디서 봤더라?'
아까부터 가운데 심사위원이 계속 눈에 밝혔다.
단순히 어디서 본 것 같아서가 아니다.
김경훈이랑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하는 이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라는 게 중요했다.
"오, 이건 뭔가 아시는 듯한 눈친데요?"
"아, 아뇨. 모르겠네요."
그는 일단 고갤 가로저었다.
"아~ 이거, 방송인 심사 위원 분들, 줄여서 방심 분들 섭섭하시겠는데요? 자, 그러면 방심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서 MC가 1번 방심, 함당을 쳐다보았다.
"아~ 당연히 알죠."
심사위원 중 유일한 아메리카TV BJ이자, 남성 방송인.
아메리카TV에서 상당히 유명한 그가 방송인 특유의 활기찬 자세로 답했다.
"오~ 당연히 아신다고요? 1번 방심, 함당 님은 아메리카TV 소속이 아니셨나요?"
"플랫폼 상관없이, 우리 숨컷 씨. 요즘 우리 남자 게이머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하신데요!"
그의 목소리에 흥분이 담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게임에 관심 좀 있다 하는 남자 게이머들 다 숨컷 씨 아실 걸요? 남자 게이머들의 희망이잖아요! 맨날 남자들 게임 못한다고 놀리는 여자들한테 참교육 시켜 줄! 저 진짜, 숨컷 님이 프로 데뷔해서 1위 찍는 그 날 만을 기대하고 있다니깐요!? 그러면 남자라서 게임 못하느니 뭐니 하는 애들한테 숨컷 씨 말하면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아, 그렇긴 한데요. 그러면 함당 님이 게임 못한다는 소리 들으실 때.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못하게 되는 건데. 괜찮으신 건가요?"
"뭐라고요?! 저기요, 진행자 님. 실례지만, 저보다 게임 잘하세요? 그님티! 레오레 티어 어디신데요!"
"아, 저는 일단 골드긴 합니다만…."
-오~~~
"골레기!? 하, 참나! 저 플래거든요!?"
"아이고, 이거 몰라 뵙고.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좀만 젊었어도 다이아는-"
"네다틀!"
하하하하하.
남자 BJ와 능숙한 서 MC의 티키타카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함당 님. 그렇다면 지금, 상당히 떨리시겠어요? 말씀 들어 보면, 숨컷 님의 광팬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니까! 그니까요! 아니, 저 진짜 깜! 짝 놀라서! 우리 숨컷 씨 실물 왜 이렇게 잘생기셨어!? 게임도 잘 하시는 분이! 이거 나 완전 덕통사고로 죽일라고! 그리고 뭣 보다, 여러분! 이거 아실라나 모르겠는데. 혹시 우리 숨컷 씨 개헤엄 사건이라고 아세요?"
"개헤엄 사건이요?"
"네!네! 숨컷 갤러리 보면 정리돼 있는데-"
'뭔 갤러리?'
상상도 못한 장소에 대한 언급에 최재훈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남자 방송인들 착취하는 완~전 못되고, 덩치 이~만한 여자 편집자 있거든요? 이 사람이 막 숨컷 씨한테 팔다리 완전, 막 휘두르는데. 숨컷 씨는 그걸 또 막 갖고 놀고, 남자 방송인 분들 이런 사람 무서워하지 말라고 저만 믿으라고 하는데!!! 와! 진짜, 대박! 이야, 이게 진짜 보이크러신가 했죠! 저 그 때부터 우리 숨컷 형 완전 팬-"
완전 팬이라는 말은 정말인지.
숨컷이라는 주제로 흥분하다 못해 불타오른 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아, 자, 자. 진정하시고요 함당 심사위원 님."
"진정 못하겠어요!!! 저 부탁인데, 무대 올라가서 우리 숨컷 형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돼요?"
"어… 숨컷 님, 그러시다는데-"
어림 반 푼 존나 어치 없는 소리.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 ㅋㅋ 함당 얘가 맨날 노래부르는 숨컷이 얘였구나]
[찐텐인거 보니 ㄹㅇ 팬인가 보네]
[아 잠만 ㅋㅋ 숨컷 어디서 봤나 했더니 한예지 이겼던 걔구나]
[아 그러게 ㄹㅇ 코스프레해서 못알아봤네]
현재, SGF시청자 중 30%는 아메리카TV 시청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이 스트리머 밭에서 가장 익숙한 건 담당이었다.
그는 지금 보여주는 모습으로 알 수 있듯, 아메리카TV 안에서 호불호가 적게 갈리는 이른바 소위 호감 BJ였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숨컷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신도 시청자들의 말에 혼란스러워 하던 아메리카TV 시청자들의 여론이 숨컷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전체 시청자 비율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던 아메리카 TV 시청자들의 여론이 말이다.
[그런데 함당 말 맞으면 숨컷이 성범죄자니 뭐니 하는 거 개쌉소리 아님?]
[ㄹㅇ ㅋㅋ 솔직히 권지현인가 쟤 와꾸 보면 솔직히 이해 안 감 저 얼굴로 성범죄를 어케 함 ㅋㅋ]
[그니까 ㅋㅋ 남자애들 좋아 뒤질 텐데]
[예븐 애가 하면 로맨스지 ㅇㅇ;]
[솔직히 문제가 있다면 숨컷쪽이 아니라 신도랑 김경훈 쟤네한테 있을듯]
[김경훈은 관련없을걸? 모르겠다]
신도의 시청자에 의해 하나둘씩 동조되어 권지현을 비난하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크게 출렁였다.
"아, 예 뭐. 점수 잘 주신다고 약속만 해 주시면-"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팬심이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골치 아픈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것도 그렇고.
이 기특하기 그지없는 팬에게, 최재훈은 이 정도 팬서비스는 기꺼이 해줄 의향이 있었다.
"앗싸!!!"
그가 부리나케 튀어가 숨컷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에에엑!!! 나 이제 죽어도 돼!!!"
짝짝짝짝짝-
훈훈한 광경에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부럽다!]
[게이 게이야...]
[성범죄자랑 놀아나는 새끼가 대놓고 이미지 관리하는 거 개역겹네 ㅋㅋ]
ㄴ강제 퇴장 당했습니다
[하 ㅅㅂ 난 여자로 태어나서 숨컷이랑 못 비비네 복수할거야 최현순]
[그게 어머님 성함은 아니길 빌겠습니다]
[앗뜨거]
[이 추운 겨울 덕분에 훈훈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최현순 씨 귀하의 육아는 헛되지 않았어요]
[난로식 육아 ㄷㄷ]
[남자애들 착취하는 편집자는 참교육시키고, 남자 스트리머 성폭행하는 자기 크루인은 두둔해주고 ㅋㅋ 내로남불 개역겹고]
ㄴ강제 퇴장 당했습니다.
[아 ㅋㅋ 신도인지 뭔지 시청자새끼들 ㅈㄴ 꼴보기 싫네]
[ㄹㅇ ㅋㅋ 저 ㅈㄹ하는 거 보니까 누가 문제인지 알 듯]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격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신도의 시청자들은 철저하게 이질적이었다.
슬로우 채팅이 되었는데도 채팅창은 여전히 활발했다.
도배와 연속 채팅으로 권지현을 공격하던 신도 시청자들의 채팅만 확연히 줄어들었다.
종합적인 요인에 의해, 신도 시청자들의 기세는 빠른 속도로 수그러들었다.
신도가 권지현과 숨컷을 공격하기 위해 최후의 각오로 모은 군대.
그 군대가 둘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신도는 초조하고 불쾌한 기분이 되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 진행이 너무 편파적인 것 같은데, SGF에서 주최하는 대회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아이스에이지!]
[갑분싸 시키는 거 봐 ㅋㅋ]
[그저 그스그시]
[ㄹㅇ ㅋㅋ 시청자들이 누구 닮은지 이제야 알겠네]
여론은 신도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니까짓 멍청한 년들 관심 받자고 벌인 일도 아니라고.
자금 자신에게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전력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숨컷과 권지현을 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심사'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2번 방심'을 바라보았다.
"아, 네~"
그런 신도를, 함당이 스쳐 지나갔다.
'짜증나.'
신도에게만 들린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큭."
그 또한, 신도에게만 들리는 작은 웃음소리였다.
"자 그러면 함당 님! 마지막으로, 다른 참가자 분들도 아시나요?"
"아 예~ 당연히 알죠. 저기 저분은 뇌없페-"
"왓?"
"앗, 큭큭큭,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 옆에 분은 권지현 님!"
"와, 아메리카TV BJ인데 어찌 그리 잘 아세요?"
"숨컷 형 크루니깐요!"
"크~ 그러면, 다음 두 분은요?"
"글쎄요, 신도 저 사람은 별로 안 유명하신 분이죠? 처음 봐서."
"아, 사실 리치TV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스트리머십니다."
"헤에에엑? 정말요!?!!?"
정말, 추호도 상상 못해서 깜짝 놀랐다는 반응.
신도에게는 '니까짓 게!?'라고도 해석이 되는 반응.
"…."
[아니 함당 저 ㅈ같은 새낀 뭔데 저렇게 나댐? ㅋㅋ]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하여간 벌레벌레 새끼들 수준 진짜 개역겹네 ㅋㅋ]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아니 이 쓰레기 같은 방송 왜 신도랑 신도 팬들한테만 지랄임?]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느그들 수준만 ㅈㄴ 낮으니까 ㅄ들아 ㅋㅋ]
[벌레들 컽]
"아이고, 제 팬이.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은퇴식인데 추하게 가시겠네."
최재훈이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아직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신도의 전력과 정신력이 차츰차츰 깎여나가고 있었다.
'심사'과정을 대비해서 가다듬고 있는 그의 표정과 감정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