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내 여동생이 이렇게 반가울 리가 없어
준비물도 구했겠다.
이제는 착수할 일만 남았다.
남았는데, 재은이쉑과의 대화창을 선뜻 끌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새기, 왜 이렇게 반갑지?
내 여동생이 이렇게 반가울 리가 없어.
[야]
[저녁 먹었냐]
[ㄴㄴ]
[아직]
[지금 친구랑 피방인데 있다 우리 집에 가서 라면 조지려고]
[부모님 오늘도 늦으신대]
부모님이 오늘도 늦는다고?
'아.'
우리 집은 살림이 쪼들렸다.
회사 사정으로 빠른 나이에, 그러니까 애매한 나이에 은퇴를 권고받은 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새로운 방책으로 치킨집 창업을 선택하셨다.
그때 생긴 빚 때문이었다.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게 일을 돕기로 결정한 어머니와 함께, 두 분은 휴일 없이 매일 밤낮으로 일하셨다.
부모님이 한시름을 놓게 된 건 내가 빚을 갚아드린 이후였다.
두 분은 빚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휴식과 여유라는 개념을 되찾을 수 있으셨다.
반면에 최재훈2는 부모님의 빚을 갚아드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 집은 여전히 살림이 쪼들리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일당을 채우기 위해 밤늦게까지 퇴근을 못 하는 경우가 잦았다.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은 재은이에겐 일상이었다.
'뭐같네.'
순간 답답함인지 짜증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아 새끼]
[뭔 라면이야]
[라면이 뭐 ㅅㅂ]
[사실 질리긴 함 ㅋㅋ]
[계좌 불러봐]
[불렀잖아]
[아니 니 쓰는 계좌]
평소 습관대로 돈을 보내려다가 아차 했다.
재은쉑의 계좌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허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계좌 번호는 내가 알던 것과 동일했다.
진짜 어지간히도 근본 없는 규칙성이 아닐 수가 없다.
[ㅁㅊ]
[3만원?]
[머임 이거]
[다음주에 준다며]
[그걸로 친구랑 치킨이라도 사 먹어라]
중국집 자식은 짜장면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집 자식이니까 짜장면을 질릴 정도로 먹지 않을까 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저 말대로라면 우리 집 식구들은 치킨에 질려, 치킨을 싫어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우리 치킨집에서 끼니를 때우려면 적어도 치킨 두 마리는 만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매출에서 최소 3만 원이 비게 되는데, 살림에 쪼들리는 우리 집이 한 끼 식사로 부담하기엔 많은 액수였다.
그렇기에 우리 집은 치킨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치킨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 질리기는커녕, 하도 배어서 부모님의 채취가 되어 버린 치킨 냄새에 시달리며 치킨을 갈망하기까지 했다.
[ㅁㅊ]
[뭐임 갑자기 왜그럼]
[당신 누구야]
[당신 최재훈 아니지]
날카로운 거 보소.
[어케 알았음]
[니 진짜 오빠는 다른 세계로 가 버렸고]
[사실 난 그 다른 세계에서 온 최재훈임]
[헐]
…
…
…
[뭐라는 거야 십덕색]
아, 깜짝이야.
잠깐의 공백 때문에 설마 믿어주는 건가 싶었네.
[애니메이숑 작작 쳐바라]
[왜 아무도 안 믿어주는 것이지?]
[르리웹같은데 가보삼]
[거기라면 믿어줄지도 모름]
[아니 근데 ㅋㅋ]
[나도 잠깐이지만 믿어버릴뻔]
[이 새기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오빠 구실 하는데 ㄹㅇ]
그러고 보니, 최재훈2는 평소 애한테 뭘 사주긴커녕 용돈 조금도 안 줬나 보네.
하긴.
계좌 잔고로 스릴러물을 찍는 새낀데, 남 챙겨줄 여유가 어딨겠어.
재은이 녀석은 나랑 달리 천성 인싸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친구들도 많아 항상 돈에 쪼들리다시피 했다.
그래서 괜히 용돈 벌겠답시고 알바 하겠다는 걸 막기 위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용돈을 줬었다.
하지만 최재훈2에겐 나와는 달리 그럴 여유가 없었고, 재은이의 알바를 말릴 수가 없었다.
재은이는 부모님의 동의를 받고 편의점에서 주말 알바를 했다.
놀 시간도 부족하다고 찡찡대던 녀석은 그렇게까지 돈을 벌었다.
그리곤 가족 생활비에 보탰다.
답지 않게.
내가 괜히 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 재은이가 오빠 닮아서 사람은 착해]
[갑자기 머라누]
[내가 니 닮았으면]
[우리 아빠 진즉에 화병나서 돌아가셨을듯]
그런데도 이렇게 씩씩하다니.
기특해 죽겠네, 진짜.
[오빠 앞에서 셀프패드립 하는 거 보소]
[3만원 압수]
어느새 내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음을 깨달았다.
[ㅋㅋ]
[뺏어가 보던가 ㅋㅋ]
[이미 내 계좌에 들어왔지롱 ㅋㅋ]
[ㅋㅋ]
[친구 누구랑 있냐?]
[혜원이]
혜원이.
이 세계에서도 재은이 베프인가 보네.
성실하고, 착하고, 얌전하고.
재은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고마운 애였다.
[야 근데 여고생 둘이서]
[8시까지 피방에서 머 하고 있는데]
[여고생 둘이서 8시까지 피방에서 뭘 하긴]
[당연히 레오레지]
아.
남녀역전.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꼭 이렇게 한 번씩 비틀림을 느낀다.
'그나저나 레오레라….'
원래 재은이도 레오레를 했지만 한두 판 가끔 하는 정도였다.
반면의 이 세계의 재은이는 여가 시간 전부를 레오레에 올인하는 수준이다.
[대회연습중임]
[대회?]
얘 티어가 몇이지?
[최재훈2의 기억 : 다이아2랬던 것 같음.]
다이아2?
"오, 짜식."
꽤 높은데?
얘가 안 해서 그랬던 거지, 역시 하면 오빠를 닮아서 게임을 잘 할 팔자였나 보다.
'그런데….'
다이아2.
분명 레오레에서 상위 1%정도에 속하는 상위권이다.
하지만, 대회에 나갈 정도는 아니다.
내가 알기로 대회는 상위 1프로에서도 또 상위 1프로에 속하는 놈들의 무대였다.
[웬 대회?]
[그]
[BJ허니뱅 알지?]
[미드 방송하는 애]
[걔가 피방에서 미드빵 대회 여는데]
[그거 나가보려고]
아.
BJ배 대회.
혹은 피방 대회.
주로 아마추어들을 겨냥한 규모가 작은 대회.
그런 거면 납득이 된다.
[올 ㅋㅋ]
[자신 있냐?]
[1등은 몰라도]
[3등정돈 노려볼만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 새끼]
[대회 나갈 거면]
[십새끼들 다뒤졌다 ㅋㅋ 1등 딱대]
[이런 마인드로 나가야지]
[3... 3등정돈... 가... 가능하지 아늘까...? 아님 마... 말고]
[ㅇㅈㄹ ㅋㅋ]
[나약해 빠진 것]
[지금부로 너에게서 '최재훈 님의 동생' 지위를 박탈한다]
[그럴수가]
[그럼 이제 남남인 겁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최재은 씨]
[눈물이 나요...]
[너무...]
[신나요...]
[그건 슬픔의 눈물입니다]
[신난다고요 ㅄ아...]
[3등 상금 얼마냐?]
[10만]
겨우?
아, 아니지.
1:1 대회랬지 참.
팀원 다섯이서 상금을 분배할 필요 없이 혼자서 10만 원 독차지하는 거다.
원래대로 다섯 명이었다면?
각각 10만 원을 분배받기 위해서 50만 원 상당의 상금을 타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꽤 쏠쏠한 액수였다.
[그 위는 얼만데?]
[2등이 20만 1등이 100만]
"미친."
백만 원?
그 솔깃한 액수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항문까지 열리는 기분이었다.
[1등 ㄹㅇ 100만원임?]
[ㅇㅇ]
[뭔데 2등에서 확 뛰냐]
[ㄹㅇ ㅋㅋ]
[게다가 그 뭐냐]
[시청자 인기 투표로 10만원]
[장인상 10만원]
[이렇게 됐던 것 같음]
[아 도착해따]
그때 연락이 왔다.
(짐승)
금수? 아 재은이구나.
최재훈2 이 새끼, 사랑스러운 동생을 저렇게 끔찍한 이름으로 저장해 놓다니
나처럼 말야, 어?
[뇌 : '금수'라 저장해 놓음.]
'어….'
아무튼 최재훈2가 더 심했음.
그런데 웬 영상 통화라냐.
"뭐여 갑자기, 오빠 얼굴이 그리 보고 싶었어."
"뭐래."
휴대폰에 비치는 익숙한 얼굴.
그 뒤로는 또 익숙한 광경이 비추고 있었다.
"뭐야, 우리 가게 온 거야?"
'우리 가게'
10년 다닌 단골 가게라도 그렇게는 안 부른다.
다름 아닌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치킨 가게였다.
"엉. 사 먹을 거면 우리 가게에서 사 먹는 게 낫잖아? 여보게 주인장, 3만 원으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주시게."
화면이 돌아가며 카운터에 있는 어머니- 아니, 아버지를 비췄다.
"아이고, 여기서 뭐 하는 거래니, 얘는."
와….
우리 상남자 아부지 말투랑 어조 보소.
완전 아줌마 다 됐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는 또 왜 그리 웃어?"
"아뇨, 반가워서요."
"쯧쯧쯧쯧쯧, 싱겁긴. 그나저나 저 3만 원, 너가 줬다며? 아이고. 지도 쪼들리면서, 너 또 용돈 달라고 졸랐지?"
-아닌데? 아닌데?
"그냥 뭐, 혜원이가 우리 찐따랑 놀아주는 거 고마워서요. 앞으로도 좀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뭐 찐따? 어이없네.
-오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방금 그거 혜원이 목소린가?
나랑 눈 마주치던 눈 피하면서 쭈볏거리던 모습이 그렇게 귀엽던 애가 저렇게 씩씩해졌다고? 내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알려주던 아이였는데.
나는 또다시 외동아들이 되어 버린 것인가?
"얘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없다고 그렇게 징징대더니만. 무슨 일 있었어?"
그러게요.
3만 원이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분위기 타서 쾌척하기엔 너무 많은 액수였다.
내 전 재산의 20%이니까.
뭐, 그래도 다름 아닌 귀여운 동생한테 준 돈이니까-
'존나 아깝다!'
뒤늦게 큰 후회가 들이닥쳤다.
그래도 걱정시키니 싫으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엄니- 아니, 아부지에게 답했다.
아이씨, 말투 때문에 뭔 엄니랑 대화하는 것 같네.
"그 문제 잘 해결됐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봐.
그때, 주방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김여사님, 목소리 근엄해지신 거 보소.
상여자 되셨네.
"네, 전 진작에 먹었죠. 아부지랑 엄니는요?"
"우린 뭐, 퇴근하고 먹으면 되지."
밝은 웃음.
그러나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묻어 나온다.
부모님에게서 오랜만에 보는 종류의 표정이었다.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착잡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구길 뻔했다.
"쉬엄쉬엄하세요."
"아이고~ 지금도 장사 안돼서 충분히 쉬엄쉬엄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쉬엄쉬엄하면 우리 가게 진짜 문 닫는다?"
능청스럽게 말씀하시길래 나도 일단은 억지로나마 웃어 드렸다.
"알겠어요 아부지. 저는 이만 볼 일 있어서 끊어볼게요. 몸조리 잘 하세요."
"아들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
내 얼굴에 퍼져 있던 미소가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늘어놨던 고무줄이 원상태로 되돌아오듯.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떼쓰고 투정 부리던 모습이 어울리던 재은이가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힘든 상황이 마치 당연한 듯이 억척스러우셨다.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돈을 벌고 싶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은 기분이었다.
"…."
잠깐의 고민 끝에 컴퓨터에 앉아 자판을 두들겼다.
* * *
"와, 씨. 다행이다. 아직 자리 남았네."
BJ 허니뱅의 대회가 시작되는 건 한 시간 뒤인데도 PC방은 벌써부터 붐비고 있었다.
전세를 낸 PC방에선 시간 결제권 대신, 칠천 원 상당의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그 입장권이 있어야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고, 좌석에 앉아 있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울 뻔했네.'
최재은은 달려오느라 차오른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도의 한숨이기도 했다.
'아직 허니뱅은 안 왔네….'
사실상 상금을 탄다는 목적보단 자기가 좋아하는 BJ의 실물을 구경하러 온 최재은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한 번 쓱 둘러본 뒤, 자리에 가서 앉아 입구 쪽을 응시했다.
왠지 이렇고 있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잉?"
그러던 최재은이 멍청한 소릴 냈다.
누군가를 발견해서 그렇게 됐다.
BJ 허니뱅은 아니었다.
'오빠가 왜 거기서 나와?'
다름아닌 그녀의 오빠, 최재훈이었다.
최재은과 눈이 마주친 그가 씨익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