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미튜버
"제가 지금 딱 그 상황이거든요."
그가 말했다.
"'집'이 괴현상을 일으키면서 절 내쫓으려 하고 있어요."
[?]
[웬 괴현상]
[뭔 괴현상인데]
"무슨 괴현상이냐면…."
자신에게 일어났었던 일들을 말한다.
삼피의 방송에서 홍보한 동시 송출 첫날, '때마침' '은신'에 걸렸던 것.
보통이면 하루 만에 접수, 체결되는 파트너십 신청이 자신의 경우엔 3일이나 소요되었고, 또 반려되었던 것.
그리고.
그게 통보된 게 '때마침' SGF 개장 전날의 끝자락이었던 것.
"소름 돋지 않나요?"
[은신이 뭐임?]
[방송 목록에서 사라지는거]
[ㅁㅊ]
[파트너십 SGF 전날까지 질질 끈것도 뭔가 까리하네]
[ㄹㅇ 뭔가 입장권I 못구하게 방해하는 것 같고]
[아니 진짜 소름돋잖아 뭐임]
[소름이 왜 돋아 ㅋㅋ 귀신도 아닌데]
[?? 그럼 머임]
"글쎄요, 뭘까요?"
[그게 전부임?]
"예, 이게 전부입니다."
일단은 말이죠.
그걸 강조해서 덧붙인다.
플랫폼이 자신을 방해하고 있다.
보통 방송인이 말했다면 시청자들에게 피해 망상적 헛소리로 치부 당해 비난 받았을 것이다.
자신이 인기가 없는 것에 대해 되도 않는 변명을 한다고.
하지만.
숨컷.
성공 가도를 달리며 매일마다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는.
현재 플랫폼 안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장을 거두어 나가고 있는 그가 말한다면?
무게가 달랐다.
3류가 졸작을 만들면서 도구를 탓하면 비웃음을 사나.
장인이 명작을 만들면서 도구를 탓하면 존중을 받듯.
모든 플랫폼에서 모인 7만 명의 시청자가 숨컷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편에 서서, 리치TV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도대체 왜?]
[리치TV입장에서 숨컷 황금거위 아님?]
[ㄹㅇ 이유가 없을텐데]
[당사자 입장에서 뭐 짚이는 거 있음?]
"글쎄요… 아마도-"
최재훈이 짓궂게 웃었다.
그렇게 다음 할 말을 강조했다.
"'집'이 원하는 '집 주인'이 따로 있는 거 아닐까요?"
직설적으로 하면 문제가 될 그 말을 해석하자면-
[ㅁㅊ]
[뭐야 그니까 니 말은]
[다른 스트리머 밀어주려고 니 견제한다는 말이네?]
그러했다.
[뭐 짚이는 사람 있음?]
"짚이는 사람이라…."
'당근 캐럿 빠따죠.'
최재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기실을 향했다.
"…."
태연함을 연기하도 있지만, 최재훈에겐 그의 본모습이 보였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경악하고 있었다.
최재훈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카메라를 향한 뒤, 말했다.
"지금으로선 없네요."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당장 까발리고 싶었으나.
김경훈.
현재 그는'빅 가이즈'라는 이름을 달고, 리치TV 실시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무런 물증도 없이, 무기도 없이, 확신도 없이 그를 공격했다간 패배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
7만 명의 시청자 중 대다수가 숨컷의 편인 이 자리에서 싸움을 건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김경훈이 또 자신의 크루원들을 몰고 오면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 순간에 난장판이 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심지어는 패배할 수도 있다.
패배한다고 해서 딱히 아쉬울 게 있는 건 아니다.
아메리카TV, 미튜브 스트리밍, 하다못해 옐로TV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급할 건 없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신중하게.
확실한 승리를 위해 다가간다.
"어쨌거나, 앞으로 잘 지켜봐 주세요. 이 '집'이 절 내쫓으려고 무슨 짓을 할지. '새로 들어오는 집 주인'이 누구인지."
일단은 가볍게 잽.
최재훈, 그가 선빵을 날렸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
과감하기 그지 없는 그 일격에-
"…."
김경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난데없이 주먹에 얻어맞은 듯.
그 일격은 뇌진탕이 뇌세포들을 없애듯.
김경훈이 고려하고 있었던 선택지 일부를 지워 버렸다.
김경훈은 아무런 말도 않았지만.
최재훈은 들을 수 있었다.
'또라이 놈이….'
최재훈의 양쪽 입꼬리가 승리감에 힐쭉 올라갔다.
* * *
'특별 상품'
대회의 1등 상품을 그렇게 표기해 놓은 건 비단 참가자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혹시 모를 경우란.
참가자, 그러니까 우승자의 매력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였다.
우승자의 매력이 충분하지 못하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
참가 업체들이 우승자를 위해 준비한 상품, 혹은 프로젝트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게임의 일부가 된 열혈 팬'
그게 바로 참가 업체들이 비밀리에 준비한 프로젝트이자, 상품이었다.
게임에 조연 NPC로 출연시키던가, 이스터 에그로 넣어 놓던가, 아니면 필요에 따라 그 이상의 역할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게임사가 코스프레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열혈팬에게 감동 받은 게임에 출현시켜 줬다!'
게임을 홍보하는 동시에, 게임사의 유저 친화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기에 꽤나 적절한 이벤트가 아닌가?
그런 이벤트를 전면적으로 내걸어 판을 키우지 않은 이유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우승자가 조연 NPC가 되는 등의 형식으로 게임의 일부가 될 경우, 팬들로부터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었고.
사실상 홍보 모델이 될 우승자의 매력이 부족하면, 그만큼 파급 효과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투자 비용에 걸맞는 홍보 효과가 나올 것인가.
직접 보고 결정하자 한 것이다.
가능성이 보이면 하고, 안 보이면 안 해도 그만인 프로젝트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도록.
그렇게 상품은 해당 프로젝트가 포함된 A와, 포함되지 않은B.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엇의 주요 캐릭터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서 아이엇의 대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타니아 리.
그녀는 상품A가 지급되는 일은 없을 거라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심사를 진행하는 그녀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난했다.
그녀가 느끼기에 참가자들의 수준이 무난한 탓이었다.
가끔 '오….'라는 반응이 나오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프로젝트의 기준에 부합하려면 최소한 '오!!!!!!!!!' 정도는 나와야 했다.
아주 높은 기준.
그렇기에 심사위원들은 참가자의 수준에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준이 만족될 거라 기대를 않았으니.
그러던 와중, 5팀에 들어 급격히 높아진 수준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시큰둥한 애즈리얼과, 소심한 야수오.
비쥬얼도 느낌도 좋지만- 역시 '오…!' 정도에서 그칠 뿐이었다.
다음의 두 남자는 비쥬얼은 괜찮았지만, 느낌이 너무 없었다.
원래 캐릭터에게 너무 충실하려 한 나머지, 도리어 개성이 사라졌다.
그러다 마지막 참가자인 숨컷의 차례가 왔다.
'오…!!!'
처음으로 느낌표 두 개 이상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뿐이었다.
남자가 여성 캐릭터인 텔론의 코스프레를 저만큼 잘 소화했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그러니까, 퀄리티 자체는 높았지만.
매력이 너무 적었다.
여자가 가발을 쓰고 콧수염, 구레나룻 분장을 한 모습이 아무리 잘 어울린다 해도 남자들의 입장에선 매력적이지 못하듯.
'그녀'들의 입장에서도, 긴 가발과 긴 속눈썹을 착용해 여장한 '남자'의 모습은 매력적이라 느끼기 힘들었다.
차라리, 여장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러면 고민할 수준까지는 됐을 텐데-
라며 아쉬움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최재훈이 속눈썹, 가발을, 가발망을-
여성의 면모를 한 꺼풀씩 걷어낸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내의 차림을 드러낸다.
"오!!!!!!!!!!!!!!!!!!!"
뭐가 좋고, 뭐가 괜찮다.
라고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타니아 리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압도적인 퍼포먼스.
비쥬얼.
그리고-
캐릭터성.
여장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중성적 미모.
하지만, 그 여장을 풀었을 때 나타나는 선명한 '남성성'.
그리고 그러한 '남성'적인 외면과 공존하는 '여성'적인 내면.
텔론은 설정상, 능력을 전부라 여기는 냉엄한 제국의 유력가문이 키워낸 암살자였다.
어린 나이에 탈락이 곧 사망인 혹독한 훈련에 투입되어.
암살, 전투, 복종에 필요한 것들을 습득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냈다.
'그 과정에서, 신체적인 면에서 우수한 여자들에게 뒤쳐지기 않으려고 여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거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심지어는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포기한 암살자.
타니아 리 안에서 영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원래 여자 캐릭터인 텔론이-
"아, 숨컷 님!"
"네?"
"거기서 자세 한 번 이렇게, 표정은 좀 더 무감정하면서도 여성스럽게… 아! 좋아요!"
여자에서 남자로-
"숨컷 님! 거기서 대사를 좀 더 뭐라고 해야 하나… 여성스럽게… 어, 아니지. 이게 아닌데…. 숨컷님. 그냥 자연스럽게 본인의 느낌을 살린다는 기분으로… 네! 네! 아! 좋습니다!"
남자에서 여장 남자로-
이내, 여장 남자에서 숨컷 그 자체가 되었다.
더 이상 숨컷이 아닌 텔론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지금 숨컷을 바라보고 잇는 이들 전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숨컷의 텔론이. 원래의 텔론을 이겼다.
타니아 리의 머릿속에서 규모가 확장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제목 : 와 숨컷 얘 뭐냐?
내용 : (사진)
얘 몸 왜이럼?
원래 어깨 이렇게 널었나?
ㄴ : 머임 이거??? 먼 일임?
ㄴ 글쓴이 : (링크) 대회 중이니까 봐라
ㄴ : 평소에 오버사이즈 후드만 쳐 입고 다녀 가지고 몰랐지 ㅋㅋㄴ 글쓴이 : 그런가? 그래서 팔도 갑자기 ㅈㄴ 길어 보이고 가슴근육이랑 복근도 ... 와...
말안대네 걍
숨컷
축하한다
너는 나 김지영의 아이의 부친이 될 자격을 획득했다
ㄴ : 모친년...
ㄴ : 니 자식 부친이 숨컷인 건 모르겠고 니 자식의 미친은 적어도 니겠다
제목 : 숨컷 방금 그거 좀 오바 아님?
내용 : 사람들 앞에서 반응 안 좋으니까 그냥 바로 야한 옷 노출해 버리네? ㅋㅋ얘 뭐임? 무슨 벗방 BJ임? ㅋ
질떨어지네
여자들은 또 이딴 걸 좋다고 ㅋㅋ
ㄴ : 뭔 노출 ㅄ아 ㅋㅋ
ㄴ : 그냥 평범한 스판 민소매 티셔츠구만 저게 야한 옷 노출이면 ㅅㅂ 여름에 거리 나가면 눈뒤집어지겠누
ㄴ : 쓰니가 한 번 입어 봐... 그래도 야한 옷인지
ㄴ : ㄹㅇ ㅋㅋ 옷 문제가 아니구만
ㄴ : 이건 진짜 잘난 게 죄라고 하는 새기네 ㅋㅋ
제목 : 아니 숨컷 지금 무대 보는데 기분 ㄹㅇ;; 이상해지네
내용 : 머지? 이 새기 평소보다 더 여자 같이 구는데
왜... 기모찌가 이상해지는 것이지
ㄴ : 레즈야...
ㄴ : 이게 그 남왕님인가 뭔가냐 ㄷㄷ
ㄴ 글쓴이 : ㅁㅊ; 그거였나
ㄴ : 강한 남성... 왜곡된 성욕...
ㄴ : 밟아주세요 헤으응
ㄴ : 엉덩이랑 가슴이랑 얼굴 보면 이미 충분히 밟은 것 같은데요 충분히 다진 것 같으니 이제 튀김옷 입히고 튀기세요ㄴ : 돈까스같은년...
평소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선행을 베풀면 더욱 선하게 느껴지듯.
평소 '여성'스럽기 그지없던 숨컷의 펑퍼짐한 패션 밑에 감추어져 있던 '남성미'넘치는 반전 몸매는, 그를 아는 이들에게 더는 없을 정도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그의 사진과 클립을 열심히 퍼다 나르며 감동과 흥분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가 코스프레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의 고차원적인 레오레 플레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직관적이었다.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매력적이었다.
레오레나 패션 쪽에 안목이 없어도.
여자이고 눈이 달렸다면, 매력적이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평소 레오레와 리치TV 커뮤니티에만 국한되어 있던 그의 영향권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코스프레 차림이 온갖 여초 커뮤니티에 퍼지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제목 : 이 사람 누군지 아시는 분?
내용 : (사진)
와;;코스프레 보는데 장난 아니네요
이분 뭐하는 분인지 아시는 분?
ㄴ : 레오레 방송하는 사람임
ㄴ 글쓴이 : ㄷㄷ 왜 이런 비쥬얼로 레오레 방송을
ㄴ : 이런 비쥬얼로 레오레 방송하면 안 되노 르리웹 게이야... 이런 비쥬얼이면 다 벗방이나 해야 되노? 선비인 척 다 하면서 우리보다 질이 낮노...
ㄴ 글쓴이 : 데베충은 좀 꺼져
ㄴ : 근데 틀린 말 아니긴 해요 저 비쥬얼로 레오레 방송하는 게 어때서요
ㄴ : 이 사이트 사람들 가끔씩 이중성 오짐 ㅋㅋ
ㄴ : 아 근데 나 인방 안 보는데 아깝네
그로 인해.
인터넷 방송에 관심이 없던 이들 조차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ㄴ : 이제부터 보면 되겠네요
ㄴ : 아니 인방은 좀 그래서 ㅋㅋ;;
인터넷 방송에 편견을 갖고 있는 등의 이유로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는 이들 조차 말이다.
인터넷 방송을 업으로 삼는 숨컷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은가?
없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인터넷 방송을 보지 않은 이는 있을지언정-
ㄴ : 그럼 이건요
ㄴ : 오 미튜브 하시는구나
미튜브를 이용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이는 SGF 시청자 중 리치TV 소속이 아닌 시청자들의 관심과 맞물려-
<구독자 100, 000명 달성 축하드립니다!>
<이제 그 누구도 귀하가 가진 크리에이티브, 미튜버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당당하게 '인기 미튜버'라 자칭해도 좋습니다!>
<귀하의 재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소소한 선물이자 증표인 '브론즈 버튼'이 이곳, 미튜브 본사에서 출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의미를 주는 귀하의 활동이 왕성하게 이어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채널에 들어가게 되면 해당 팝업창을 보게 될 그가 보게 될 구독자 수(121, 335명)
이미 10만을 한참 넘어선 수였다.
<'브론즈 버튼'이 당신의 손에 안기기까지는 1주가 소요 됩니다>
그리고 그 수는-
<간혹, 그 1주 동안 다른 버튼의 수령 조건을 만족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114, 021명)
아주 빠른 속도로.
멈추지 않고 오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좀 대단하단 걸 넘어서 끝내준다고 부를 만한 일이죠>
(116, 940명)
<1주를 그저 기다리는 데 보내지 않고 '끝내주는 일'에 도전하는 건 어떨까요?>
(118, 201명)
<만약 당신이 끝내주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다면>
(119, 542명)
<그걸 증명하는 선물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120, 000명)
<이 기세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120, 318명)
<저희는 왠지 그럴 것 같네요>
(120, 964명)
<아님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