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1
-자, 다들 2번 참가자 분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돌아온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삼피, 뭐해요! 빨랑 같이!"
"아, 꺼져."
"아이, 꺼지긴. 이리 와 봐요."
"아, 아니- 뭔-"
삼피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팔을 잡고 강제로 박수를 치게 하는 최재훈이, 그녀를 웃으며 맞이했다.
"같이~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권지현."
그런 그를 바라보는 권지현은,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ㅋㅋ 아니 먼데 기엽냐 얘네]
[크루가 아니라 먼 숨컷이 강아지랑 개새끼 키우는 것 같네]
[강아지랑 개새끼는 머여 ㅋㅋ]
[아니 그 싸패련이 숨컷한텐 쪽도 못쓰네]
[ㄹㅇ; 숨형욱 개새끼 조련 완벽하네]
[세상에 정말로 나쁜 개는 없군요...]
보는 이들에게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광경.
그런 광경에 신도의 표정은 도리어 썩어들어갔다.
-자, 그럼! 다들 많이 기다려주셨을 텐데요. 드디어!!!
-숨컷!!!
-아! 쉽게도! 숨컷 님은 아닙니다!
-아~~~~~~~~~
[아니, 숨컷도 아니면서 왜 드디어를 붙이냐고 ㅋㅋ]
[줘패고싶네 ㄹㅇ;]
[다 됐고 ^^ㅣ발 숨컷이나 데려와요 빨리 참가자 345 필요없으니 숨컷345나 보여줘]
그리고, 그런 반응에 더더욱.
-아~ 여러분! 아직 실망하시기엔 이릅니다. 숨컷 님 못지않게 유명하고, 숨컷 님 못지않게 멋지신 분이니까요. 무대 위에 오른 모습을 보고 알아보시면 바로 아하! 하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사실, 알아보지 못해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자 그럼, 다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참가자 3번, 신도 님입니다!
신도가 그 즉시 표정에서 거무칙칙한 감정을 지우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
다 때려치우고 숨컷을 데려오라 할 땐 언제더니, 막상 그가 등장하자 반응은 아주 좋았다.
지금까지 평범한 남자, 혹은 여자만 올라왔었고.
무엇보다 신도, 그도 일단은 미남 스트리머이자.
대기업 스트리머였기에.
-어? 갑자기 조명이 밝아졌나요? 아~ 3번 참가자 님 때문에 분위기가 밝아진 거였네요!
-하하하, 뭐라는 거예요~
[아지매 주접떨지 마쇼]
[근데 ㄹㅇ 갑자기 밝아진 것 같긴 하네]
[이게 옳게 된 방송이지]
신도가 자신이 괜히 대기업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진행에 따르자.
삼피와 권지현 때와는 다른 종류의 활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무리.
자기 어필 때에 카메라에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살려 교태를 부렸다.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신도!]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하는 사람들.
대회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 신도가 무대에서 내려오며 숨컷과 마주쳤다.
뒤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분위기에 취한 그가 이전까지의 굴욕을 잊고 거만하게 웃었다.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자. 그럼! 다음 참가자-
-숨컷!!!
-아, 아쉽게도!
-야이!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ㅣ발 탈골올것같애]
[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
[아니 ㅋㅋ 이거 이악물고 숨컷 마지막으로 미뤄놨네]
그런데, 숨컷의 이름이 언급되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마는 자격.
"…."
"하."
결국 본전도 못 찾고 더욱 늘어난 굴욕에 몸서리치며 자리를 떴다.
"와, 근데…."
-숨컷!!!!!
[숨컷 언제 나와 ^^ㅣ발!!!!!!]
[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점신나가서먹을것같애]
"역시, 재- 아니, 숨컷 씨…."
폭발적인 반응에 권지현이 마치 제 칭찬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워했다.
"하, 참나,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제나는 같잖다는 양 비웃었지만-
[싫으면 ^^ㅣ발아 크루 나오던가 ㅋㅋ]
[아 ㅋㅋ 지는 맨날 같이 있다고]
그 얼굴엔 모종의 우월감이 느껴졌다.
다른 여자들이 저토록 선망하는 남자인 최재훈과 가까운 사이라는 우월감이.
여자라면 응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깐 보고 왔는데 SGF방에서 숨컷 ㅈㄴ찾누 ㅋㅋ]
[폭동 일어나기 일보직전]
[ㅈ컷쉑 월클 다 됐누]
[안돼 나 못잃어 나만의 작은 숨컷 못 잃어]
[이 새기가 언제는 작은 적이 있었나? 첫날부터 시청자 수천 찍었던 걸로 아는데]
[첫날 수천 ㅇㅈㄹ ㅋㅋ 리치TV 유입쉑들 커엽네 ㅋㅋ]
[ㄹㅇ ㅋㅋ 숨컷 캠 안킬 때부터 봐준 본인으로선 걍 우습네 ㅋㅋ]
[본인 첫날부터 봤는데 숨컷 첫날에도 시청자 100명찍고 그랬던 걸로 암]
[ㄹㅇ ㅋㅋ]
[김해댄싱머신라이오 : 첫날 시청자 100명 ㅇㅈㄹ ㅋㅋ 얘 첫날에 시청자 1명 밖에 없었음 내가 그 1명이고 ㅋㅋ]
[아 예 ㅋㅋ]
[저도 사실 에덴의 동산 출신임]
[나 히틀러인데 달 뒷면에서 로봇 나치 군단 만들고 있다]
[김해댄싱머신 : 진짠데 ㅋㅋ]
"어? 어! 그러게요? 저분, 제가 진짜 처음으로 방송 켠 날 왔던 사람인데? 와, 신기하네."
[ㅁㅊ 이걸 기억해 준다고?]
[아니 그래도 한 명은 오바 아님?]
"그때, 마이크도 없고 캠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뭣도 모르고 켠 거라."
말하고 있자니 그때.
뭣도 모르고 인터넷 방송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순간이 생각난다.
방송을 켜고 하염없이 기다려도 아무도 와주지 않던 순간.
시청자 한 명에 기뻐하며 방송을 진행하던 순간.
[김해댄싱머신 : 아니 이 금수쉑이 웬일로 사람을 다 감동시키지 ㅋㅋ]
"아니, 어떻게 잊어요. 그때 미션 성공하면 첫 후원해준다 해놓고 튄 사람을."
그 한 명이 미션에 성공하면 첫 후원을 해준다 해놓고 토꼈던 순간.
최재훈이 방송 화면에 자신의 손바닥을 비췄다.
"달라고, 후원."
[김해댄싱머신 : 아 잠깐 이 방송이 아니었구나 ㅈㅅ 잘못 들어와서 착각함]
ㄴ임시 퇴장 당했습니다.
"그럼 나가 이 자식아."
[아 ㅋㅋ 잘못들어왔으면 나가야지]
[어떻게 첫 시청자부터 악질이었냐 ㅋㅋ]
[쓰레기통이 될 운명이었던 방송]
"그러게요."
그나저나, 새삼 감회가 새롭다.
처음 그 순간을 회상하니, 이어서 초창기 때의 기쁘고 슬펐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다양한 일들.
그리고.
처음 시청자 100명이 돌파한 순간.
처음 시청자 1, 000명이 돌파한 순간.
처음 시청자 2, 000명이 돌파한 순간.
처음 시청자 3, 000명이 돌파한 순간.
처음 시청자 4, 000명이 돌파한 순간.
그렇게 지금에 이르러-
(시청자 15, 441명)
절박한 심정으로, 큰 야망을 갖고 아주 높은 목표를 향해서.
도전이란 산에 첫 발을 디뎠던 그 순간을 회상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특히 자신감.
계속 가능하다, 가능하다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갔다.
지금.
최재훈은 처음으로 멈춰 뒤돌아보았다.
높았다.
자신은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
명치로부터 솟아난 강렬한 성취감이 뇌를 푹푹 찌른다.
처음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곳.
도달할 수만 있다면 무엇도 할 수 있으며-
더는 바랄 게 없었던 곳.
그곳에 도착한 최재훈은-
만족한다.
이내, 최재훈은 깨닫는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곳에 도달한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이라던 그 생각을 말이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만족감은, 소나기처럼 멈췄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앞을 향하고, 고개를 한껏 치켜들어 노려본다.
높은 곳을.
더더욱 높은-
'기다려라, 빌 게이츠. 아니, 제프 베조스.'
헐.
-어쨌거나!
상념에서 나온 최재훈의 귓가를 진행자의 열기 담긴 멘트가 때렸다.
-여러분. 비록 숨컷 님은 아니지만! 실망하시기엔 아직 이릅니다. 아니, 기대하셔야 할 겁니다. 다들 한 번 씩은 들어보셨을 그 이름! 남성 게임 스트리머를 대표하는 실력자! 그리고, 그런 게임 실력만큼 엄청난…! 제가, 무슨 말 하고 싶은 지 다들 아시겠죠? 누구를 말하는 건지도요!!!
[아니 아지매 진행 잘 하는 거 봐 ㄷㄷ]
[텐션 올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
[묘지에서 저러면 시체들 벌떡벌떡 일어나서 네크로맨서 전직 쌉가능할듯]
사람을 강제적으로 분위기에 태우는 진행 실력 때문일까.
-오후의 경후닝, 김경훈 씨를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옵빠!!!!!!!!!!!!!!"
[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
[경훈옵빠 나 주거!!!!!!!!]
[이게 방송이다...]
[팬티 짖었다...]
[매우 중의적인 표현이네요]
김경훈.
숨컷의 이름을 울부짖던 사람들이, 그 이름이 언급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래뵈도 리치TV의 대표 미남 게임 스트리머인 그였다.
숨컷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 다음 차례가 숨컷이었으니, 분위기는 신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조됐다.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라는 느낌.
-이야! 분위기가 아주, 엄청납니다. 그렇죠. 신도! 김경훈! 그 이름! 숨컷이라는 이름에 묻힐 만큼, 그렇게 가벼운 이름이 아닙니다! 이 분들도 한 때는 숨컷 님처럼 혜성이었거든요! '니가 자라서 된 게 나다 이 자식아!'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저력! 이게 바로 노장의 저력입니다!
-아이, 노장이라뇨!
-앗!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런 말실수를! 베테량을 말한다는 게 그만--우씨~ 조심하세요. 다음번엔 안 봐줄 거니까요!
'우욱, 십.'
숨 쉬듯 애교가 묻어나온다.
최재훈은 자신을 때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그 모습에 다양한 의미로 진절머리를 냈다.
[아 ㅋㅋ 김경훈 살아있네]
[ㅗㅜㅑ 옵빠 나 죽어]
[이]
하지만, 남자인 최재훈이 진절머리를 낸다는 것은.
그의 모습이 '남성'으로서 그만큼 정석적으로 매력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신도, 제나, 권지현.
모두 김경훈 못지않다고 할 수 있는 경력의 베테랑으로서, 기본적으로 수천의 시청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엔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건 논외였다.
(시청자 63, 012명)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심사위원들과 관객.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익숙해질 기회가 적은 현실의 시선까지.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건.
자신의 방송, 그러니까 홈그라운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잘 나가는 베테랑 방송인일지라도, 이곳에선 아무래도 좋을 방송인X에 불과했다.
권지현은 아주 대놓고 긴장했었고.
그 신도와 삼피조차, 긴장의 기색을 숨기지 못했던 무대.
그 무대를, 김경훈은 거침없이 누비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이벤트와 공식 활동으로 다져진 경험으로.
자기소개에서 진행자와 톡톡 튀는 티키타카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무대를 샅샅이 활용하는 과감한 포징.
성우를 방불케 하는 매력적인 발성과 자연스러운 연기의 대사.
자신이 얼마나 엔터테인먼트로서 재능이 있는지.
혹은, 노력을 했는지 가감 없이 뽐낸다.
미소짓게 만들려 하면 [ㅋㅋㅋ]가.
감탄하게 만들려 하면 [ㅗㅜㅑ]가.
당황하게 만들려 하면 [ㄷㄷㄷ]이.
현실에서도, 채팅창에서도.
그가 의도하면 원하는 반응이 나왔다.
김경훈은 신도 때 이상으로, 장소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김경훈!]
반응이 이보다 더 뜨거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 그럼 이 열기를 이어서 바로! 숨컷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숨컷 그 이름이 언급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다시 그 이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컷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적들에게 철저함 패배감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