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적절한 권지현
SGF 코스프레 대회.
팀 단위로 진행되는 심사가 일단락 되고, 다음 심사를 진행하려던 순간이었다.
-노잼!!!!!!!!
"응?"
코스프레 대회의 책임자인 최 팀장.
그녀는 관람석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소란에 고개를 돌렸다.
관람객.
아마도, 특정 방송인의 팬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에휴, 쯧. 진짜 별의별-"
지금 SGF 공식 방송에는 5만 명의 시청자가 모여 있었다.
시청자 5만 명을 통제하기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숨컷을 비롯한 선행 체험 방송인들은 해냈었다.
분위기의 구심점이 되어 줄 고정 시청자들이 있는 덕분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채팅창의 분위기는 형성되고, 유지되려는 성질을 띠게 된다.
하지만, SGF 공식 방송은 임시 편성 채널이니만큼 고정 시청자랄 게 없다.
구심점이 없다.
5만 명의 시청자들이 난잡하게 뒤섞인다.
[엄상희는 언제 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여기 경훈이나옴?]
[어 ㅋㅋ 와꾸 살벌하네 빨리 다음 참가자로 넘어가죠]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엄상희는살아있다!]
악성 어그로, 도배, 헤이터들.
아주 그냥 난리가 났다.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던 최 팀장에게.
현실에서까지 시작된 시청자들의 난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정신나간 것들이."
최 팀장이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용자들 수준이 저따위니까 이 업계가 맨날 무시당하는 거야? 어! 그리고, 저것들도 저것들인데. 저것들 주인은 뭐하고 자빠진 거야?"
"주인…이요?"
옆의 부하직원이 그녀를 달래기 위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방송인 말이야! 자기 팬들 관리 안 하고 뭐 하고 자빠진 거야! 아까 그 뭐지? 계속 나타나던 엄…상이? 그년 시청자들도 그렇고. 어떻게, 자기애들 하나 제대로 관리 하는 년이 한 년도 없어! 관리도 못할 거면 저렇게 왜 떼로 끌고 다니는 거고! 하여간, 근본 없는 딴다라 같은 것들이 항상 물을 흐리지."
시청자들 때문에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최 팀장.
그녀의 눈치를 보던 부하직원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저 사람들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가서 소금이라도 뿌려? 방망이로 두들겨 패기라도 해!?"
"예?"
"저딴 것들도 귀하디귀한 시청자 분들이라고, 건들면 우리만 어머 되는데. 가서 정중하게 타일러 드려라. 제발 좀 조용히 해 주거나 꺼져 주십사~하고."
"아, 넵…."
그러던 그때.
-숨컷!!!
저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숨컷'이라는 단어.
그리고-
[머 숨컷?]
[여기에 숨컷 나옴?]
[숨컷 코스프레? 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ㅑ]
[숨컷이 누구임?]
[숨컷 모르면서 인방 왜 봄?]
[ㅈㄹ하네 듣보 새기 가지고 ㅋㅋ]
[숨컷을 듣도 보도 못한 건 니가 눈이랑 귀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나 헬렌킬러인데 숨컷은 안다]
[켈러 병신아 켈러 누굴 죽이려고]
[나 베토벤인데 눈은 안보여도 숨컷은 본적있다]
[베토벤은 장님이 아니라 귀머거리야 ㅄ아]
[뭐래 ㅄ이 ㅋㅋ 베토벤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귀머거리 ㅇㅈㄹ 베토벤 음악가야 ㅄ아]
[스티비원더도 귀머거린데 음악하잖아]
[걍 채팅창 수준에 정신 혼미해지네]
[위기의 방송을 구할 마지막 희망 숨성근]
여전히 난잡하지만.
채팅창은 '숨컷'이라는 키워드로 뭉쳐, 나름대로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다.
"응? 뭐야. 채윤아."
"네, 팀장님."
“애네 갑자기 왜 이러냐?”
처음 등장했었던 미남 코스어 이후 보지 못했던 뜨거운 반응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그래서 이상적인 반응이었다.
"아… 아무래도, 저기 있는 게 숨컷- 이라는 스트리머라 그런 것 같네요."
"숨컷? 뭐, 걔 유명하냐?"
"팀장 님 모르세요? 요즘 인터넷 방송 공부하신다면서요."
"하고 있지. 아메리카TV에서. 어휴, 좋더라. 요즘 애들 발육이."
"…."
"이 짜-식이 어딜 팀장님한테 눈을-"
얇은 서류가 돌돌 말려 팔을 가격했다.
팍!
"악! 어쨌든, 요즘 한창 잘나가는 신인 방송인 있어요."
"신인? 신인인데 뭐 저리 인지도가 높아."
"아~ 그, 이거거든요."
부하 직원이 따봉을 치켜들었다.
"…몸매가 그렇게 좋아?"
"아니, 팀장님. 비쥬얼을 말하는 거죠. 뭔 그런 쪽으로만 생각을 하세요."
퍽!
"악! 아무튼! 비쥬얼도 진짜 대박인데. 성격까지 뭐라 해야 하나, 털털해서 귀엽고. 가장 좋은 게, 그. 남잔데 막 가식이나 애교 같은 거 안 부리고 당당하게 게임 실력 하나로만 승부하는 거! 크~ 이게 진짜, 말이 돼요?
이게 다 한 사람 이야기라는 거 믿겨지세요? 진짜 얼굴도 얼굴인데 이 사람은 진짜 실력 때문에 뜬 거예요! 오늘 SGF에서도 어떻게 구한 건지 선행 체험권 구해서 와~ 시청자 8만 찍고~ 영세 게임 개발사들 다 살리고~ 커뮤니티에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갑자기 흥분해서는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팬심 모두 네게 주는 부하직원.
그녀를 어이가 없다며 가만히 바라보던 최 팀장이-
퍽!
"악!"
"이 자식 이거, 커뮤니티가 어째? 내가 기억하기로 오늘 웹서핑할 겨를이 없던 걸로 아는데? 이 자식은 팀장보다 여유롭네, 아주 그냥!?"
"아니, 잠깐씩 짬 내서 본 거죠!"
"짬은! 짬은!"
퍽!
퍽!
"아, 됐고! 숨컷이란 말이지?"
최 팀장이 뭔가, 주워 먹을 건덕지가 없나 숨컷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어? 서채윤."
"예?"
"남자 스트리머라 하지 않았어?"
"네? 맞는데요?"
"그럼 뭐야. 저거 숨컷 아니잖아."
서채윤이 최 팀장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소란을 피우는 시청자들에게 둘러싸인 스트리머로 추정되는 인물이 서 있었다.
그 인물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서채윤이 자세히 보니, 여성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한 숨컷이었다.
그 때문이다, 최 팀장이 헷갈린 건.
"아, 코스프레 하고 있네요."
"코스프레?"
"네, 네. 지금 여장 코스프레 하고 있어요."
"아, 저게 코스프레라고?"
최 팀장이 다시 그를 확인했다.
"…뭔, 여자가 따로 없네."
"원래 저분이 좀 그런 분위기가 있긴 해요. 와, 근데 실물 진짜 대박이네. 팀장 님 저 가서-"
최 팀장의 귀에 더 이상 서채윤의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숨컷 데려와!!!!!]
[숨컷 참가한다는데 ㄹㅇ임?]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옐로TV의 자랑 ㅈ컷!]
숨컷의 존재가 대회와 방송에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서 대회 참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녀가 즉시 진행자를 불러, 숨컷의 대회 참가 의사 타진을 요청했다.
"가서. 일단 바로 찍지 말고. 참가하는지부터 확인해 주세요. 참가 안 하면 거기서 그냥 찍고, 참가 하면, 최대한 감춰서 최대한 시청자들 기대감 높이는 식으로."
그렇게-
"나이스!"
숨컷의 대회 참가가 결정됐다.
"오케이. 서채윤. 참가자들한테 숨컷 찍지도 말고, 이야기하지도 말라 그래. 무대에 오를 때까지. 진행자 님은 계속 숨컷 위주로 언급해서 시청자들 묶어 주시고요."
[이걸 숨컷이 나오네 ㄷㄷ]
[숨컷 코스프레 머했음?]
[ㅁㄹ 안 나옴]
[제발 아라]
뜨거운 반응.
커뮤니티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시청자가 오르기 시작했다.
시청자는 더욱 늘어났는데, 방송 분위기는 아까부터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최 팀장이 방송을 진행하며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그에, 서채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응?"
"이렇게 기대치 올려놔도 괜찮을까요?"
"아니, 괜찮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좋지. 지금 시청자랑 커뮤니티 쪽 반응 좋은 거 안 보여?"
"아니, 아까 숨컷 코스프레가…."
"아, 잘 어울리더만 왜~"
"아니, 그게…."
그가 여장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차치하고.
숨컷을 알기에 그의 코스프레를 기대하는 이들은, 당연히 그의 '남성'스러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 온몸을 꽁꽁 싸맨 걸로도 모자라,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텔론의 모습이 아닌.
남성스러운 아라의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치를 올려놓은 상황에서 아라 대신에, 저 여장 모습을 보여준다면-
숨컷이 좋지 못한 상황에 놓일 공산이 높았다.
"우린, 우리 일이나 잘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최 팀장에겐 대회가, 방송이 흥하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자신의 커리어보다 처음 보는 이의 안위를 우선시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 * *
제목 : 속보) 숨컷 코스프레 대회 참가 ㄷㄷㄷ
내용 : 뒤졌다 코스프레 대회
우승 딱대
ㄴ : ㅁㅊ 먼 코스프레
ㄴ 글쓴이 : ㅁㄹ 아직 안나옴
ㄴ : 머야 숨컷 방송 갔는데 코스프레한모습 안 보여주네 이거 어디가야 볼 수 있냐?
ㄴ : 지금 아무데서도 못봄
ㄴ : ?? 아닌데 뭔 개소리
ㄴ : 니야말로 뭔 개소리 내가 다 확인했는데
ㄴ : SGF 가면 볼 수 있는데? ㅋㅋ
ㄴ : 닌 어디가야 볼 수 있냐? 좀 죽이고 싶은데
ㄴ : 나 우리집에 오면 볼 수 있지 ㅋㅋ
ㄴ : ??? 나도 지금 우리집인데
ㄴ : 헉 근데 왜 아직까지 못만났지
ㄴ 글쓴이 : ㅄ들아 ㅈㄹ그만하고 SGF공식 채널 가서 기다리기나 해
ㄴ : 하 ㅅㅂ 제발 아라였으면
제목 : 뭐? 숨컷이 아라 코스프레한다고?
내용 : 미쳤네 ㅋㅋ
ㄴ : 숨컷이 아라 코스프레했다는 말이 어딨음?
ㄴ 글쓴이 : 윗 글에서 누가 한다던데?
ㄴ : 제발 아라 코스프레엿으면 좋겠다는 게 , 어떻게 아라 코스프레라는 게 되누
ㄴ : 나 숨컷 동창인데 ㅇㅇ 숨컷 아라코스프레 찌찌파티 하는 거 맞다
ㄴ : 나 아라 코스프레인데 숨컷이랑 이야기 잘 끝냈다 찌찌파티 하는 거 맞다
ㄴ : 나 너희 부모님인데 오열하고 있다
사람들이 숨컷에게 열광하고.
대회 측에서 그걸 캐치하고.
대놓고 그를 밀어준다.
김경훈은 괜히 확인했다며, 신경질적으로 웹서핑을 끝냈다.
놈이 자신의 무대에 끼어든 이후.
계속해서 들러리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열등감이 역겨울 정도로 불쾌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숨컷과의 대면 이후.
김경훈은 곧바로 허나이와 연락을 취했다.
기나긴 대화 끝에.
숨컷을 어떻게 처리할 지 결정했다.
"경훈 씨… 진짜, 괜찮을까요?"
김경훈은 신도에게도 숨컷 처리 계획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처리해야 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계획.
그만큼, 신도에게 부여된 역할 역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제 말 대로만 하시면, 제가 알아서 다 해결해 드릴게요. 아니면, 그냥 그 새끼 말 대로 시청자들한테 다 사실대로 고백이라도 하시게요?"
"아, 아뇨. 당연히- 아니죠…."
김경훈은 불안을 표하는 그를 격려하는 대신, 힘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게 그와, 허나이의 방식이었다.
기꺼이 따른다.
마지못해 따른다.
신도에게 주어진 선택이 전부였다.
"그런데- 진짜, 어이가 없네요."
신도는 그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려 해소하기로 했다.
"그런 새끼 어디가 좋다고 이 지랄들인지."
권지현, 그 얌전떨던 게 그 걸레 같은 놈이랑은 물고 빨고 다 했을 거라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당장에라도 쌍으로 묻어 버리고 싶었다.
"딱 봐도 얼굴에 칼 댄 놈이던데. 그리고, 코스프레도. 그 새끼 여장, 도대체 누가 보고 싶어 한다고."
김경훈이 동의한다며 못마땅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어?"
그러다가-
표정이 돌변해서, 미소를 머금는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대회에서 걔 밀어주는 거."
"…예? 왜, 왜요?"
"봐요. 신도 씨가 말했던 것처럼, 걔 코스프레 기대하는 애들이, 걔 그딴 모습이나 기대하고 있겠어요? 당연히 아라 같은 거 기대하지. 그런데, 지금 같이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그딴 모습으로 기어 나오면?"
아까까지 도저히 표정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김경훈.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자, 그럼 3번 팀 여러분. 준비 되셨으면-"
그렇게 스태프가 최재훈 일동을 부르려던 찰나-
"예? 아, 잠시만요."
다른 스태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개된 대기 속에서-
"와, 근데 지현 씨.""
"넹?"
최재훈이 뒤늦게 권지현의 모습을 살폈다.
제나가 본디 금발 벽안을 가진 캐릭터인 애즈리얼 코스프레를 해서, 자신의 금발 벽안을 살렸듯.
권지현은 본디 하이 포니테일 비슷한 헤어스타일인 야수오의 코스프레를 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살렸다.
거기에 복장.
낭인 검사 야수오는 원래 통이 넓은 도복 바지에, 어깨만 겨우 가리는 해진 망토만 두르는 복장을 하여 상체를 그대로 드러냈지만.
'야수오'는 다행이랄까, 붕대로 가슴을 가린다.
"…."
권지현이 지금 그 차림이었다.
상체에 두른 거라곤, 가슴을 가리는 붕대가 고작.
이 세계 여자들의 기준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복장이지만.
최재훈의 기준에선 꽤 자극적인 복장이었다.
최근 들어, '여성'들이 여성으로 의식되기 시작한 최재훈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여장의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가 남자 중 남자라 강하게 암시하고 있어서인지.
더더욱 여성으로 의식된다.
그래서인지-
'흠터레스팅.'
권지현의 복장을 보고.
여자를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아주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