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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175화 (172/361)

175. 게이야…

"확실한 거니까, 저만 믿으세요."

최재훈 특유의 분위기.

태도.

미소.

이린이 이끌리듯 고갤 끄덕이더니-

"네, 숨컷 님만 믿겠습니다."

둘이 진지하게 서로를 마주보다가, 동시에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편집자 님 그래서 말인데요."

"아, 예."

"김경훈 그놈이랑, 리치TV 커넥션 있는 거 사실상 확정이잖아요?"

"아, 그렇죠."

이린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리치TV에 뒷배를 갖고 있는 김경훈이라니.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네?"

"그놈들이 이런 짓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일 리가 없을 텐데- 화끈하게 한 방에 모아서 터뜨리죠."

최재훈의 말을 곱씹은 이린이 잠시 뒤 '하' 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전면전.

지금부터, 저들이 밟아온 절차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들을 조사하고, 그들을 무너뜨릴 방법을 모색한다.

최재훈이 그런 이린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저도 편집자 님만 믿을게요."

"예, 저만 믿으시길."

이번에도 동시에 미소를 짓는다.

장난스럽게.

요즘 들어 최재훈을 대함에 있어 한창 감정이 풍부해지고 있는 이린.

그런 그녀가, 다른 스펙트럼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여지껏 보여 준 적 없는 모습으로서.

최재훈이 '여자'가 아닌 여자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린'과 헤어진 최재훈이 참가 대기실에 들어섰다.

"오…."

다양한 코스어.

다양한 캐릭터들이, 대사를 연습하는 둥.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연습하는 둥.

살아 숨쉬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딘가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광경에 최재훈은 흥미로 눈을 빛냈다.

에바참치꽁쌈치 도무지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던 남성 코스어도 이 안에 끼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오 ㅋㅋ]

[거의 다 레오레 코스프레네]

[픽벤창이 따로 없누 ㅋㅋ]

[저 사람들이 게임에서는 부모 안부 묻고 다닌던 사람들이 이건가 ㄷㄷ]

[부모 학살자들의 정모 ㄷㄷ]

[소름 돋는 사실) 레오레 유저 100명이 한 자리에 모여도 부모의 총합은 0명이다]

[매판마다 부모의 목숨이 걸린 어둠의 듀얼을 즐기는 미친 스릴 중독자들 ㄷㄷ]

[레오레 유저답게 가서 부모님 안부부터 물어보죠]

[여어~ 에미에비 만수무강하시냐~]

[레오레 인식이 어쩌다 이렇게 됐누]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는, 참가 조건에 따라 기본적으로 모든 방송 출연에 동의하게 된다.

대회 특성상, 참가자 중 높은 비율이 방송인이었고.

그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홍보 효과를 키우겠다는 심산이었다.

코스어 대부분은 이미 핸드폰을 서로에게 향하고 시청자들과, 혹은 다른 방송인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하나둘씩 입구의 숨컷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화면에 담지 않았다.

방금 전.

대회 주최 측에선 최재훈의 엄청난 화제성과 주목도에 반해, 그의 대회 참가를 공식적으로 홍보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코스프레 모습을 의도적으로 숨겼다.

무대에 올라오는 걸 방송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시청자들의 코스프레 대회와 숨컷에 대한 관심도, 그리고 기대감을 고조시는.

SGF와 최재훈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걸 위해서였다.

대회측은 숨컷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촬영하거나 언급하는 것을 자중할 것을 거듭 부탁했다.

서로 윈윈하기 위해 자신을 밀어주는 건 좋고 또 감사한데.

이렇게 관심과 기대치를 높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급식에서 [닭다리]가 나온다 해 놓고, 닭다리 과자가 나오는 경우처럼.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폭동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최재훈은 어깨가 부담감으로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와, 유명인이다!"

"대~박 여- 아니, 완전 잘 어울리셔!"

"와… 개잘생기셨어."

"아, 우승 정해졌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반가워하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중 자신에게 직접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숨컷님 목욕 언제하셨음 왜 아무도 주변에 안 옴]

[3일마다 한번은 해야함 ㅎㅎ]

[3일이요?]

[ㄹㅇ; 그렇게 자주해야댐?]

[아 갑자기 ㅅㅂ 채팅창에서 퀘퀘한 냄새 나네]

[4D 지원 방송 ㄷㄷ]

[지금 숨컷 코스프레 엠바고 걸림 ㅋㅋ]

[선생님 지금 어그로랑 기대치가 쌉 높으신데 감당 가능하신가요?]

"좀, 부담스럽긴 하네. 이게 월클의 기분인가."

최재훈은 후딱 참가 신청을 하고 구석에 쳐박혀 월클의 기분을 만끽하기로 했다.

"어?"

그때, 최재훈이 생각치도 못했던 선객을 발견한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그녀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탓이었다.

"YO, 와쌉~"

그는 애즈리얼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제나에게 인사했다.

[삼피쉑 ㅋㅋ]

[애즈리얼 잘 어울리는 거 바]

[ㄹㅇ; 이미 금발에 파란눈이라 옷만 갈아입음 되잖아]

[혐성쉑 또또 ㅋㅋ 코스프레랑 방송 날로먹는 거 봐]

"?"

제나가 평소의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시선을 향해온다.

"…."

그리곤 눈에 힘을 준다.

닌 뭐냐는 듯.

어느샌가부터 최재훈에게만 짓지 않게 된, 타인을 멸시하고 밀어내는 표정을 짓는다.

코스프레 때문에 그를 못 알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HUH??"

한쪽 눈썹을 구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니… 뭐하냐?"

"뭐 하긴. 대회 참가하려고."

"아니, 아는데."

위아래로 훑더니-

웬 텔론?

이라 말하려다가.

현재 그가 볼드모트라는 걸 깨닫는다.

"아, 얘들아. 잠깐 마이크 좀 끌 게."

"아, 여러분 저도 잠시 마이크 좀 끄고 대화 좀 하겠습니다."

[이런 ^^ㅣ발]

[뇌없페련이 숨컷 독점하네]

[??? : 니 방송인 쩔더라 ㅋㅋ]

[저 오늘 첨인데 둘이 무슨 관계심?]

[군신관계입니다]

[ㅋㅋ 웃기네]

[? ㄹㅇ임]

[??]

[ㄹㅇ 맞습니다; 게임 처발리고 3000도의 굴욕 당하고 신하됐어요]

[같은 크루임 걍]

그렇게 최재훈도 마이크를 끄자-

"웬 텔론?"

참고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 주캐잖아."

최재훈이 따봉을 시전했다.

"아니… 내 말은, 웬 여장이냐고."

"아. 어쩌다보니 코스프레를 하게 됐는데, 남자 캐릭터 코스튬들은 죄다… 유노왓암생?"

그 말에, 제나가 아까 봤었던 남성 캐릭터의 코스튬을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아라의 코스튬을.

왜인지, 입고 있는 모델이 최재훈이었는데 그가 제나를 향해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

"그래서, 너는?"

그 말에 망상 속에서 불려 나온 그녀가 최재훈과 눈을 마주했다.

"어? 뭐가."

"너는 웬 일이야. 이런 거 좋아할 줄 몰랐는데."

"뭐? 시리어슬리?"

"그럼 뭐 임마."

"당연히 방송 벌칙 때문이지."

"뭐 어쩌다 당연히 방송 벌칙을 하게 되셨을까."

"뭐, 별거 있나. 어떤 애가 500만 원 미션 걸고, 어떤 게임 미션 걸었는데 실패한 거지."

"세상에마상에, 니는 500만 원 미션 걸어 주시는 회장님을 어떤 애라고 부르냐?"

"몰라, 지가 그렇게 부르래."

"참… 니 방송 시청자분들도 어지간하시구나."

"니 만할까."

"뭐, 어쨌든. 에이요, 제나. 이거 코스프레. 어때. 우승 쌉가능?"

제나가 최재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아라 코스프레가 눈에 아른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여장을 하냐. 무난하게 아라 같은 거나 하지."

안 그래도 여자 같은 애가.

그녀는 아쉬운 마음에 툴툴거렸다.

(상남자의 최재훈 : 뭐!!?!?!?! 안 그래도 여자 같아!?!!?!? 아아아아아앍!!!!!!!!)

'야, 잠만. 이 세계에서 여자 같다는 말은-'

(상남자의 최재훈 : 오!?)

'오.'

(상남자의 최재훈 : 오….)

그런 자기 합리화를 진행 중인 최재훈을 보며 제나는-

"아, 아니… 팩트잖아… 기, 기분 나빴냐?"

눈치를 보았다.

그가 자신의 말에 충격 받은 기색을 보였기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의 안색을 살폈다.

"기분 나빴으면…."

제나가 살면서 말해 본 적이 손에 꼽는 그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던 찰나.

툭.

최재훈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짜식."

"응?"

"역시 날 알아봐 주는 건 너밖에 없다."

그는 불쾌한 것 같지 않았다.

불안이 끝나고 제나는 안심했다.

'…어?'

그러나 곧바로 생겨나는 다른 불안.

'안 그래도 여자 같은 애가'

보통 남자라면 질색할지언정, 절대로 좋아하진 않을 종류의 말이었다.

그런데, 반색을 한다.

그러면서- '날 알아봐 주는 건 너밖에 없다'고?

'설마…?''

짧지만 굵었던 사고를 마친 제나.

"야. 너…."

그녀의 태도는 답지 않게 매우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응?"

"너… 그… 그거야 설마?"

"그거가 뭔데. 천재? 감비아 수산부 장관? 삼도수군 통제사? "

"아니… 그…."

제나가 우물쭈물 눈치를 살피며 조심, 또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

"뭐? 뭐라고?"

"하, 씨. 너, 게이냐고."

"…."

제나가 각오하듯이 내뱉은 말에 최재훈은-

꿈뻑.

꿈뻑.

그렇게 몇 초 동안 넋이 나가 있다가, 묻는다.

"제나 게이야… 데베충이었누…?"

"아니, 그거 말고 멍청아. 진지하게."

"진지하게?"

"호모섹슈얼!"

"…그 말은, 진지하게 제가 게이로 느껴지셨다는…?"

"…아냐, 그럼?"

제나는 그가 뭐라 답할지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그의 입에서 정말로 동성애자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의 애인은 적어도 여자는 아닐 것 아닌가.

"…."

그러는 와중, 최재훈은 혼란스러웠다.

게이 같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상남자의 최재훈 : 야 어떡하냐 화낼까 좋아할까)

새삼스럽지만, 이 세계의 성관념은 그에게 철저한 혼란을 준다.

최재훈은 이 세계의 기준으로 자신이 게이인지 아닌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가, 나머지 팔도 제나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제나 씨."

"어, 어?"

김희은과 차현하, 이린에게 했던 대로 한다.

뭐가 됐던 그의 기준에서 게이란,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운 남성을 일컫는 말이었기에.

여장에 대해 세계 전체에 변명이라도 하듯.

의식을 해가며, 자신이 생각하는 최대한 남성성인 모습을 보인다.

"난 여자 좋아해요."

"…."

그에 제나는-

두근!

'…썅.'

묘한 기분을 느꼈다.

세 여자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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