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전염
소음과 소란의 화신 같았던 여친단이 해산하고 드디어 분위기가 진정된다.
세 여자는 그제서야 최재훈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응? 왜요? 아. 여러분. 저 보신 김에, 지금 이거 어때요? 솔직하게. 그렇게 별론가?"
최재훈은 여친단이 코스프레에 보였었던 반응이 신경 쓰였다.
단순히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 싫어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안 어울려 싫어했던 건지.
대회 출전 전, 또라이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었다.
최재훈의 시선이 가장 먼저 말 탈, 차현하에게 향했다.
"음…."
차현하가 목을 앞으로 내빼고 탈 안에서 눈에 힘을 줬다.
"…."
그러다가 이내 고갤 갸웃거리더니-
"일단, 엄청 잘 어울리세요."
상남자이길 자처하는 최재훈은 여장 코스프레가 일단 엄청 잘 어울린다는 말에, 일단 엄청나게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뭐, 그래도 일단 안 어울리는 것보단 낫겠지.'
(상남자의 최재훈 : 일단 갈!!!)
'아니, 일단 그 두 새끼는 이겨야 할 거 아니야.'
김경훈과 신도.
둘에게는 뭐가 됐든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설령 여장을 하고 참가하는 코스프레 대회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1등 상품인 '특별 상품'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스스로를 정말 엘레강스하고 세레브하다 여기는 최재훈조차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특별하다 소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특별해야 지 입으로 특별하다 할 수 있을까.
게임 대회의 이벤트이니만큼.
최재훈은 저 1등 상품이 악마의 열매나 F-22 정도가 아닐까 논리적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우승하여, 김경훈과 신도에게 티배깅을 시전하고.
여장의 굴욕을 보답 받을 생각이었다.
"엄청 잘 어울리시는데… 뭔가…."
객관적인 첫 번째 소감을 말해 줄 말탈의 입이 열릴듯 말듯 사람을 애태웠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감탄사를 생각하고 계시길래…."
"뭔가…."
꿀꺽.
"애매하달까."
"음… 그건, 제가 너무 멋지고 위대해서 신인지 인간인지 애매하다는 소린가요?"
[그게 어케 애매갈려]
[ㄹㅇ ㅋㅋ 누가봐도 (병)신인데]
[BOTTEL GOD ㄷㄷㄷ]
[보텔이 뭐임?]
[보틀 ㅄ아]
[그럼 호텔은 호틀이냐 ㅄ아?]
[상대 탑 노틀이요]
[상대탑 : 학상 내 틀니 돌려줘]
[채팅창 수준 아찔해지네 ㄹㅇ; 못따라가겠누]
그런 최재훈의 헛소리에 차현하는-
"하하학! 예, 뭐 그런 거로 합시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헤헤헤, 우승 딱대."
"우승 딱 기다려! 우리 숨컷 씨 가신다! 부릉부릉!"
"아, 맞다 미세스 홀스."
"응? 왜요 미스터 숨컷."
"자동차 무덤이 뭔지 알아요?"
"오, 뭔데요?"
"부르릉!"
"아하하하하학!!"
"히히히히헤헤헥!"
"아, 저도 저도!"
"뭔데요?"
"말들의 무덤은?"
"뭐지!?"
그녀가 말의 숨소릴 흉내 냈다.
푸르릉! 하고.
"어어어어어얽!!!"
"아하하하하하핳!!!"
둘이 신나서 춤을 추고 난리가 난다.
"헤헤헤헤, 어?"
그걸 재밌다고 바라보던 김희은이 옆에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끅.
끅.
끅.
끅.
[뭔데 죽 잘 맞누]
[ㄷㄷ 미세스 홀스 쌉인싸네]
[숨컷한테 맞춰줄 정도면 인싸가 아니라 정신과의싸 아님?]
[그녀에게 주어지는 합격 목걸이]
[wodms18 : 님들 부르릉 저거 표절임 어떤 예쁜 인싸가 먼저 했던 거 얘가 따라하는 거]
[저걸 드립이랍시고 친 사람이면 인싸가 아니라 아싸 아닌가요?]
[wodms18 : 즐]
그렇게 한동안 드립의 향연이 이어지고-
"아, 미치겠네. 숨컷 씨 왜 이렇게 재밌어요."
"너도 만만찮군, 아니, 말말찮군."
"큭큭큭큭, 아 진짜."
"아니, 그래서. 선생님."
"예."
"저 진짜 어때요. 진짜 애매해요?"
"아, 음…."
끄덕끄덕.
"에이, 선생님이 고르셔 놓고 그렇게 나오면, 너무 정 없는데. 이럴 거면 왜 고름!"
"아, 큭큭큭. 미안해요. 그게, 진짜 엄청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드는데. 뭔가… 쓰, 이걸 뭐라 해야 하나 모르겠네."
"에잉, 쯧."
"아, 삐지지 마요!"
"됐어. 댁한텐 볼일 끝났어."
"아아아~"
"데스베이더 님?"
"아, 네!"
그렇게 최재훈이 몸을 돌려 김희은과 마주했다.
그리곤-
"…."
쭈볏거린다.
이렇게 마주 보니까, 잊고 있었던 사실이 상기됐다.
저 데스베이더 탈 안에, '페이스'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모든 레오레 유저의 우상!
영웅!
아이돌!
그 페이스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레오레에 일가견이 있는 최재훈가 페이스에게 향하는 존경은 특히나 각별했다.
그를 존경하는 순대로 줄을 세우면, 열 명 안에는 반드시 들 정도.
그에게 있어 페이스는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
"아, 그, 극…."
그가 지금처럼 너무 긴장해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머그컵' 김희은이 '이 분 갑자기 왜 이래?' 라며 당황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선생님…?"
"네?"
"저는… 어땠습니까…?"
"…예?"
"그때, 저격 이벤트에서 만났던 거…."
"…아!"
김희은은 그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던 판을 떠올렸다.
"아, 진짜 깜짝 놀랐었슴-니다. 너무 잘하셔가지고."
"오…."
"사실 제가 숨컷 님 만나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거, 내가 이겨 버리면 숨컷 님 미션 실패하시는 거 아닌가? 어떡하지? 적당히 봐 드려야 하나?"
그 두 번째, 영혼을 걸고 겨뤘던 게임이 설마 봐줬던 거였다고?
최재훈의 표정이 이 모든 게 쇼였다는 걸 깨달은 트루먼같이 되었다.
그랬다가-
"그런데!"
"그런데!?"
"게임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느꼈습니다. 아. 내가 함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김희은이 심취해서 말한다.
다스베이더의 목소리로 변조되었음에도 진심이 묻어나오는 그 말에 최재훈은-
"크으으~ 미쳤다, 미쳤어!!! 으아아아아앍!!!!"
이번엔 신을 영접하기라도 한 듯 반쯤 오열하며 물개 박수를 쳤다.
메소드 연기 창시자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준의 과몰입이었다.
[아니 이 새기 갑자기 왜 이럼 ㅋㅋ]
[좋아 뒤지는 거 보소 ㅋㅋ]
[데스베이더 포스로 똥꼬 살살 간지롭혀 주는 거 보소 ㄷㄷ]
[속보) 억빠타임ON]
[억빠) 숨컷님! 아직도 안 맞아 뒤지고 살아계시는 생존력이 정말로 대단하세요!]
[억빠) 우오오옷!!! 스게!!! 저길 봐!!! 두 다리로 서 있어!!! 다리를 서는 데 사용하다니 천잰가!? 그런 사용 방법 따위 생각해본 적 없다고 호라!!!]
[(야구 방망이 들고 위협하는 이모티콘)억빠가 억소리나게 빠따로줘패는타임 인가요]
시청자들이 그의 갑작스러운 과몰입에 당황했다.
당사자인 김희은은 오죽할까.
'뭐, 뭐징…?'
그때 최재훈이 말하길-
"우리, 데스베이더 님 같이 엄청난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영광, 또 영광입니다. 그, 혹시-"
"네?"
"그… 손 좀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기운 좀 받게."
"어…."
김희은이 당황해하면서도, 냅다 손을 내밀었다.
"헤헤헤."
최재훈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싸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건 이미 자신의 팬을 대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이 팬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다가-
기운 좀 받게, 라니.
그 의미심장한 태도와 발언에 김희은은-
'설마…?'
'내 정체를 아시는 건가?'
'거기에다가, 내 엄청난 팬이신 거고?'
합리적 의심을 하고-
"오…."
감격했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니!
다른 팬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팬이라는 게 이렇게 흥분된 적이 없었다.
그녀 또한 양손을 포개고 악수에 응했다.
'설마, 이거-'
이 이상의 관계로 발전 가능한 각인가?
그런 기대에 잠긴 김희은은 탈 안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 숨컷 님! 저도요! 저한테도 물어봐 주세요!"
"아, 미세스 홀스는 어떠셨나요."
차현하가 김희은 못지않은 감탄을 담아 그의 플레이를 찬양했다.
그리곤 눈을 빛내며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하, 감사합니다. 쑥스럽네요."
엄청난 온도 차이.
쑥스럽게 헛 웃고 마는 그 반응에 차현하가 "잉?" 고갤 갸웃거렸다.
"아니, 미스터 숨컷. 이거 온도 차이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하, 그럴 리가요. 아, 이야기가 잠깐 셋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데스베이더 님."
"넵! 말씀하시는 검다!"
너무 들뜬 나머지.
그녀의 평소 어조와 말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음성 변조 덕분에 아직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데스베이더 님은 제 코스프레, 어떠신가요?"
"아, 일단 정말 잘 어울리심다!"
"오오오!!!…옹? 일단? 아니, 선생님도 일단이시라고요?"
"아, 음… 예,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생각했던 느낌이 안 나는 검다…."
"어! 어! 그거 뭔지 알겠다!"
차현하가 끼어들어 동조를 표했다.
"생각했던 느낌? 그게 무슨 느낌인데요?"
"흠…."
"음…."
차현하와 김희은이 뭔가 말이 나올 듯 말 듯 끙끙거렸다.
그걸 보는 최재훈은 덩달아 변비가 걸릴 것 같은 답답한 기분에-
"편집자 님?"
이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네?"
"편집자 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흠…."
하지만, 이린의 반응.
역시 차현하, 김희은과 같았다.
셋은 최재훈의 묘한 '여성'스러움에 매력을 느끼고, 그의 '여장'모습을 기대했다.
그가 '여장'을 하면 그 묘한 느낌이 잘 살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젤까.
셋으로선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아니 ㅅㅂ 우리한테도 좀 보여줘바]
[또또 지들끼리만 아는 얘기한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네요 그때 반 애들도 다 저 빼고 지들끼리만 아는 얘기 했었는데]
[어? 야! 얘들아! 쟤 자는 척한다! 쟤 있잖아! 쉬는 시간마다 자는 애! 자는 척하는 거였어!"
[으아아아아 그만]
[^^ㅣ발련아 니 어디살아]
[PTSD ON]
[사이버 따돌림 그만 하고 저희도 좀 보여주십쇼...]
현재 최재훈의 방송은, 그의 코스프레가 대회에서 시청자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게끔.
의도적으로 화면에 그의 모습을 담지 않고 있었다.
"아, 오케이. 오케이. 제가 여러분을 너무 방치했네요. 일단,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됐으니 두 분-"
최재훈이 두 여자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타이르려는데-
"…."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여장을 하고, 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과도하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이 세계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원래 세계 사람들의 기준에서.
'남성'스럽게 비추어지는지, '여성'스럽게 비추어지는지가 아니라.
남성스럽게 비추어지는지, 여성스럽게 비추어지는지 말이다.
그가 '이 세계'의 일부가 된 지금, 더는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재훈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았으니.
그건 일종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최재훈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
이 세계에 적응하다 보면, 언젠간 최재훈은 사라지고 '최재훈' 하나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몸부림.
이 세계에 적응하되,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걸 위해서 최재훈은 언제까지나 '남자'가 아닌, 남자여야 했다.
고집적이어야 했고, 편협했어야 했으며, 차별적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의식해가면서까지 평소보다 남성으로서 행동한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여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대한다.
원래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금방 올게요."
그럼으로써 일어나는 변화.
분위기.
태도.
목소리.
아주 미묘하지만, 또 확실한 변화였다.
그에-
"…."
"…."
두 여자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끌어당김을 느꼈다.
아주 복잡하고, 미묘해서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남자'가 되어, 벽으로 밀쳐진 듯한 기분이라 해야 할까?
'남자'가 된 기분이라니.
'여자'의 입장에서 더는 없을 정도로 굴욕적인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뭔가 달랐다.
간질간질한데,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했다.
동시에 명쾌해진다.
지금 최재훈이 보여주는 모습이야말로, 그녀들에 최재훈의 '여장'에서 기대하고 있었던 모습이었으므로.
그녀들은 최재훈이 '여장'이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여성'스러운 것과는 어딘가 달랐던 그 특유의 느낌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모습을.
그녀들이 탈 안에서 아주 묘한 얼굴이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얼굴을 해 본 적 없는 얼굴이.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훈이 싱긋 웃으며 다음은 이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주변의 소음에 묻혀 서로의 목소리를 서로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이린 씨."
"예?"
"저한테 개수작 부리고 있는 놈 말인데요."
"아, 안 그래도 지금 한창 알아보고 있는-"
"그거, 김경훈이란 놈 짓이었어요."
"…네?"
그녀가 당황했다.
방대한 정보와 견식을 가진 그녀조차도 아직 특정해내지 못한 범인인데, 어떻게 그가?
"그걸 어떻게…."
"확실한 거니까, 저만 믿으세요."
최재훈이 자신만만하게.
듬직하게 미소지었다.
"…."
이린은 그 모습에, 차현하와 김희은이 느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속절없이 끌려가는 느낌.
그렇게 이린도, 두 여자와 같이.
작정한 최재훈의 모습에 호응해 주듯 그런 얼굴이 되었다.
최재훈이 남자로서 여성으로 대하자,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은 그녀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