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무호흡 딜링 1
숨컷은 이례적인 기간 내에,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 성공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질투를 비롯해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였다.
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는 적이 많았다.
최재훈과 이린이 방송을 방해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판단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누군가'가를 정확히 특정해내지 못한 이유다.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고, 그들 전부가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총을 겨누고 있었으니.
악의적인 채팅을 치는 시청자.
커뮤니티에 악의적인 글을 남기는 유저.
SGF에서 마주쳤더니 눈을 흘기고 가던 방송인들.
그 외에도,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헤이터들.
최재훈에겐 모두 '누군가' 같이 느껴졌고.
그렇기에 모두 '누군가'가 아닌 것 같았다.
최재훈은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와중 신도와 김경훈을 만났다.
그들은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표출해왔다.
하지만 최재훈은 이번에도 다른 적들과 똑같이 느껴졌다.
다른 적들과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니 얼마 안 남았어."
김경훈이 언쟁에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본성을 내비치기 전까진.
그 본성을 본 최재훈은 김경훈에게서 다른 적들과의 차이를 느꼈다.
그 차이는 아주 미미했다.
마치 희미하게 남아 있는 화약의 잔향처럼.
아주 조그마한 호흡의 흐트러짐처럼.
그런데도.
그 미미함을 정확히 포착해내곤 고개를 돌려- 김경훈을 명확히 응시했다.
그리곤, 파안대소한다.
"니였냐? 그 개지랄한 새끼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고 이빨을 훤히 드러낸 그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 같았다.
비로소 최재훈의 적의가 김경훈에게 닿았다.
추측을 통해.
그 추측은 날카로운 걸 넘어서 비약적인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김경훈은 저도 모르게 당황하고 만다.
'갑자기 또 무슨 개소리지?' 의 당황이 아닌.
'도대체 어떻게…?' 의 당황을.
그 모습은 마치 포식자에게 발견 당한 먹잇감 같았다.
그런 김경훈의 반응을 본 최재훈은-
"맞네."
추측에서 확신으로 이동해, 정답에 도달했다.
덕분에 이제는 '누군가'가 누군지 안다.
이는 김경훈.
그리고, 허나이에 대한 더는 없을 정도의 견제였다.
허나이가 권력 남용으로 특정 스트리머를 제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도 리치TV에서 부조리하게 억압받고, 쫓겨난 스트리머가 존재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그런데도 여지껏 한 번의 논란도 없었다.
그들의 영향력이 정지 당시 '아직' 그렇게 크지 않았서였다.
김경훈과 허나이는 그들이 크기 전에 미연에 제거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연관성을,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통점.
바로 김경훈의 방송의 경쟁자라는 점이었다.
만약, 숨컷 정도 되는 화제성과 영향력을 가진 스트리머가 김경훈이 리치TV 내부에 강력한 커넥션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사람들이 김경훈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김경훈과 허나이에게 아주.
아주아주 귀찮은 일이 될 게 분명했다.
최재훈은 이번 일로 둘의 일방적인 사냥감에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로 거듭났다.
더 이상 둘은 최재훈을 상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최재훈이 이번 일로 거둔 소득은 의미가 깊었다.
이 모든 건 날카로운 걸 넘어서 비약적이기까지 한 추측.
그걸 가능케 한, 동물적 감각 덕분이었다.
매 게임마다 자신의 부진을 다른 팀원의 탓으로 돌리기 위한 음모와 정치가 판을 치는 레오레에서 인생을 바쳐 단련한 결실이었다.
고3,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레오레에 인생을 꼬라박아야 하는 이유였다.
'고마워, 프로 준비하려고 고3에 자퇴한 과거의 나….'
(과거의 최재훈 : 미안한데 냉동실 안에 짱박아두고 깜빡한 음식물 쓰레기 봉투 있는 것 같다)
'시발아.'
(과거의 최재훈 : 냉장고 안에도 뭐 깜빡한 거 있는 것 같은데)
(초코크림슈크림 : 오)
(과거의 최재훈 : 아, 이건 기분 탓인 듯)
(초코크림슈크림 : 시발아)
"그 지랄? 그게 뭔 지랄인데.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지껄이려고."
당사자가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도는 당당하게 비죽일 수 있었다.
그에, 김경훈도 뒤늦게 표정을 관리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리치TV 동시 송출 시작하자마자 은신 처리됐던 거.
내가 방송 인생 걸고 챌린저 도전하는데 대한민국 대리란 대리 죄다 몰려와서 깽판 놓은 거. 보통은 예외 없이 하루 안에 해결되는 파트너십 체결이 나한테만 질질 끌다가, 정확히 입장권-I배포 끝나기 전에 탈락 통보 온 거.
"-진짜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지껄이는 새끼는 내가 아니라, 저게 다 '우연히' 일어났다고 지껄이는 새끼지."
"하, 참나. 그러니까 니 말은, 그걸 우리가 했다는 거지? 이거 완전 웃기는 놈이네. 야. 니가 그렇게 잘났어? 세상 사람들이 다 니 질투하는 것 같아? 니가 뭔데? 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신 차려."
"신도야… 형도 너처럼 세상이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데, 잘 안 되네. 너 같은 새끼들이 하도 많아서 그런가 봐."
"뭐? 형? 이런, 보자보자 하니까. 야, 니 몇 살이야."
"올해로 마흔네 살 되신다,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야."
지금의 그는 22살인 최재훈과, 22살인 '최재훈'이 융합된 결과였으니 과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허점이 없는 완벽한 마흔네 살이었다.
"뭐? 마흔, 뭐?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 아니야."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신도는 질색하며 미친놈 취급할 따름이었다.
"싸가지가 존나 비범한 새끼라는 건 한눈에 보고 알고 있었는데, 웃어른인 거 알고도 바락바락 깝치는 꼬라지 보게. 가정환경 상 부득이하게 가정교육을 독학으로 수료하였음을 어필하는 것이니?"
"뭐? 뭐라고?"
"어쨌든 신도야. 니는 짜져 있어 봐. 뒤지기 싫으면. 형 지금 이 새끼랑 토킹어바웃 하고 싶은 거니까. 너는 그 다음에 상대해 줄게."
"아니 뭔-"
마찬가지로, 매 게임마다 과격한 방식으로 상대방 양친의 안부를 묻는 레오레에서 인생을 바쳐 단련한 혀 기술에 정신을 못 차리는 신도.
최재훈은 그를 뒤로하고. 다시금 김경훈에게 시선을 향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김경훈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 시치미를 뚝 떼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그딴 소리를 한다고?"
"형은 너 같은 새끼들이랑 달리 항상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란다, 경훈아."
"아니, 장난치지 말고요.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의혹으로 생사람 잡는데. 뒷감당 자신 있어요? 저 이거 공론화시킵니다?"
"그래, 시발. 시켜. 공론화. 우리 같이 함 뒤져 보자."
"…."
김경훈의 겁박은 통하지 않았다.
숨컷은 이미 리치TV랑 눈앞의 이놈이 쌍쌍바 나눠 먹고 자신에게 엿을 맥이려 한다는 걸 확신했다. 그 시점에서 최재훈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생결단 하나뿐이었다.
특정 스트리머와 손잡고 시시탐탐 자신을 조지려는 플랫폼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방송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절이 싫다면-
별수 있나.
뒤집어엎어야지.
실패한다 해도 끽해 봐야 절을 떠나게 되는 정도겠지.
최재훈은 이미 각오를 다졌다.
'플랫폼이 리치TV 하나도 아니고.'
아메리카TV가 남아 있다.
플랫폼의 성향이 잘 안 맞긴 하지만.
플랫폼 차원에서 자신을 조지려 드는 리치TV와 비교하면 선녀였다.
만약 일이 안 풀려 정말 아메리카TV로 이적하게 된다면 시청자가 몇 명이나 따라와 줄까.
어쩌면, 아무도 따라와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지난 한 달 동안 최재훈은 성공을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다.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한다 해도 성공할 확신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이.
김경훈 같은 거물이 자신이 무서워 이 지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자신감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줬다.
그 자신감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 김경훈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 또한 최재훈과 같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숨컷과 사이 좋게 한솥밥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그렇다면 숨컷을 어떻게 하냐는 건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한테 이러시는 건데요. 증거라도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선 떠오르는 방도가 없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분명 이놈이 자신들을 특정해낼 수 있는 단서 따윈 없었을 텐데.
"증거라. 일단 니, 나랑 방송 시간 겹치지? 방송 컨셉도 겹치고. '실력파 미남 게임 스트리머'."
"하, 미남?"
옆에서 신도가 비웃었다.
'지 입으로 미남이라니, 뻔뻔한 새끼. 낯부끄럽지도 않아?'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으나-
"경훈아, 미안하다. 나는 너 정도면 미남인 줄 알았는데, 니 친구가 아니란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정정 좀 할게. '게임은 잘하는 남자 방송인'으로."
최재훈이 패링으로 김경훈에게 흘려버렸다.
"푸훕."
옆의 스태프들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김경훈과 신도가 그들을 째릿 노려봤다.
"…."
둘이 지금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려주는 행동이었다.
그들이 위협적으로 꼬라본 스태프들이 누구던가.
이 부스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들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증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의 편을 들어줄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서. 나랑 방송 시간 겹치고, 컨셉 겹치고. 나 시작한 이후로 니 시청자 꽤 빠졌을 텐데. 아니야?"
"개소리."
정곡을 찔린 김경훈이 반박했지만-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봅시다~ 정말로 개소리인지~"
최재훈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 사이트에 검색하길-
[김경훈 숨컷]
그러자 익숙한 사이트로 연결된다.
제목 : 야 요즘도 경훈이 어떠냐? ㅇㅇ
내용 : 나 이 시간대에 볼 만한 남자 겜 스트리머 없어서 경훈이 방송 보다가 숨컷으로 갈아탔는데
요즘 경훈이 어떠냐 ㅇㅇ?
ㄴ : 경훈이 난리 났음 ㅇㅇ
ㄴ 글쓴이 : ㅁㅊ 뭔데
ㄴ : 사실 나도 모름 숨컷으로 갈아타서
ㄴ 글쓴이 : ㅁㅊ 년인가
제목 : 숨컷 있으니까 경훈이 좀 애매하네 ㅇㅇ;
내용 : 와꾸도 숨컷이 낫고 겜도 숨컷이 더 잘하고 입도 숨컷이 더 잘 털고어...
경훈이한테는 뭐가 있냐?
ㄴ : 너한테는 없는 거
ㄴ 글쓴이 : 나 부모님 있어;
ㄴ : 누가 뭐랬냐 미친련아니야 이거
ㄴ : 경훈이가 숨컷보다 좀 더 남자력이 높긴 하지 ㅇㅇ;
ㄴ : ㄹㅇ ㅋㅋ 숨컷 유사 레즈 쉑 이 새긴 아무리 봐도 남자 같지가 않음ㄴ 글쓴이 : 아니 ㅋㅋ 뭐 그딴것 때문에 숨컷을 거르누ㄴ : ? 안 걸렀는데 그래서 좋다고 ㅇㅇ;
ㄴ : 레즈야...
ㄴ : 성격 남자같은거 고려해도 숨컷이 압승이지 ㅇㅇ;
ㄴ : 강한 남자... 왜곡된 성욕...
최재훈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리가 멀어 글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글의 내용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김경훈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최재훈은 피식 웃었다.
"이러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이거 딱 그거네. 이러다간 언젠간 내 시청자 다 뺏길 것 같으니, 먼저 모가지를 따 버리자. 맞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던 퍼즐이, 윤곽이 완성되자 신기할 정도로 착착 진행됐다.
"그게 다야?"
"응?"
"그 심증들이 니가 생각하는 증거 다냐고. 사람들이 그딴 것만 듣고도 믿어줄까?"
김경훈이 비웃었다.
자존심을 자극받고, 허세를 부린다.
최재훈은 가소롭다며 실실거릴 따름이었다.
"니 말 들어 보니, 물증도 구해야겠네. 돌아가서 바로 구해 볼게. 자신을 조질 사람한테도 충고하는 그 자세! 아주 좋아. 평소에도 좀 그렇게 살지 그랬어. 그러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웠을 텐데."
"…."
3자들이 봐도, 지금 김경훈은 최재훈에게 일방적으로 발리고 있었다.
신도는 어떤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일단 편을 들어줘야겠다 생각했다.
"아니 듣자듣자 하니까, 적당히 좀 하지?"
"아 맞다, 니도 있었지. 야."
최재훈이 표적을 김경훈에서 신도로 변경했다.
그의 표정에 서린 분노가 더욱 명확해졌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니, 권지현의 일도 해결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권지현이 눈 앞의 남자에게 당한 일을 떠올리게 된 탓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렇게 살지 마."
"뭐?"
"사람 관계가 잘 풀릴 수도 안 풀릴 수도 있는 거지. 안 풀렸다고 그거 가지고 원한을 품고, 사람 한 명을 발정 난 개십새끼로 만들어?"
"뭔 개소리야-! 그 새끼 진짜 나한테-
"꽐라돼서 니한테 치근덕댔다고?"
"알면서-"
"야."
최재훈이 헛웃음을 흘리며 그의 말을 끊었다.
"지현 씨가 닐 상~당히 불편해하셨나보다?"
"뭐?"
"니 앞에서 술을 취할 정도로 안 마신 거 보면."
"뭔 개소리-"
"니, 지현씨, 술 버릇 뭔지 알아?"
그가 두 손을 포개서 자신의 왼쪽 귀에 가져다 댄 뒤, 고개를 눕히는 시늉을 했다.
"자는 거야. 코코낸내~ 하고."
"…."
정말로 처음 알게 된 사실.
말문이 막힌 신도에게, 최재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조만간 방송으로 지현 씨 술버릇 만천하에 알릴 생각이거든? 그러면, 사람들 생각이 어떻게 바뀔까. 꽐라 돼서 남자한테 치근덕거렸다는 권지현 씨가.
술 조금만 들어가면 나른해져서 축축 처지고. 취기 오르는 순간, 꾸벅꾸벅 조는. 술버릇이 잠드는 사람인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권지현 씨가 술 취해서는 자기한테 치근덕댔다며 방송계에서 매장시키려 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조소를 머금었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다가, 니도 엿 한 번 먹어 보자. 그래야 오고 가는 정이 있는 세상 아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