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야 4885
"숨컷 님?"
"네?"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해 봤을 때, 아무래도, 남성 캐릭터 코스프레가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성별이 다르니만큼 퀄리티 면에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팬 서비스차원에서도 그렇고.
홍보 효과를 누리려고 대회에 나가는 건데, 조금이라도 더 나은 퀄리티의 컨텐츠를 보여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녀의 답지 않은 구구절절한.
그러나 어쨌든 논리적인 설득에 여자친구들은 열광했다.
"오오오오!!!"
"갓집자! 갓집자! 갓집자! 갓집자! 갓집자! 갓집자!"
[고건 맞지]
[나 솔로몬인데 논리적으로 반박이 불가능하다 ㅇㅇ]
[어딜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갑옷 입고 대검 들고 어?]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아 ㅋㅋ 앞치마에 뒤집개 아닌 걸로 만족하라고 ㅋㅋ]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그에 대한 최재훈의 답.
"편집자 님."
"예?"
"제가 장담하는데, 이게 더 저랑 잘 어울릴 겁니다."
특유의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이게 더 잘 어울린다.
그 말에 이린, 김희은, 차현하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그가 여성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거기에 저, 당당하고 씩씩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어딘가 '여성'스러운 웃음.
분위기.
생각해 보니, 정말로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여장이 말이다.
그녀들은 혼란을 느꼈다.
그가 가덴 코스프레를 하고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걸 넘어서, 매력적이라고 느껴 버렸기 때문이다.
'뭐지…?'
여자들로 하여금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놓고.
그는 정작 아무런 생각 없이 신나서 담당자에게 말한다.
"선생님, 그렇게 됐으니. 팜플렛 버전 어나더 원 좀 주시겠습니까."
담당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팜플렛을 내밀었고.
최재훈은 흡족한 표정으로 그걸 확인했다.
가덴.
야수오.
텔론.
데이브즈.
애즈리얼.
"크~ 이, 이봐. 얼마나? 어? 이게 옳게 된 코스프레지. 이것 봐요, 나랑 얼마나 잘 어울리겠어."
여자친구들은 대답 대신 뚱-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기억 속에 있던 원래의 디자인 크게 다르지 않은 코스튬들은 하나같이 바람직했다.
방금 전엔 뭘 골라도 싫었지만, 이번엔 뭘 골라도 좋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 선생님들?"
"음?"
"옙?"
"혹시, 두 분이 고르실래요?"
"아, 좋죠~"
"네네!"
그가 다가온 김희은과 차현하에게 팸플릿을 보여줬다.
그전 선택지와 비교하자면 애로사항이 꽃피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한 번 상상해 보았다.
최재훈이 이 여성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을.
거기에 그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는 상태로-
자신을-
두근.
이런.
묘한 세계에 눈을 떠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녀들은 황급히 생각을 뿌리쳤다.
그리곤, 각자 최재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선택지를 골랐는데.
놀랍게도 둘의 선택지가 일치했다.
"아, 오케이~ 그러면 시청자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라 이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뭔 우리 의견!!"
"아라!!!!!!!!!!!!!!"
"뒤져!!!!!!!"
"크, 저도요~ 저도 여러분이 절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ㅅㅂ 뭐 그냥 딜이 안 박히네 ㅋㅋ]
[뇌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
담당자가 명찰에 무언가를 적어 최재훈에게 건넸다.
"이거 들고 저기, 부스 보이시죠? 저 안으로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는 스태프에게 건네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맞다. 선생님?"
"넵?"
"이거, 코스프레하는데 오래 걸리나요?"
"예? 아, 시청자 분들 기다리실까봐."
"네네."
"어, 평균적으로 환복이랑 메이크업까지 해서 10분에서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10분이라…."
짧다면 짧지만, 시청자들이 방송인 없는 방송을 기다리며 지루함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현재 시청자가-
'오….'
시청자는 순조롭게 늘어나 어느새 1만1천500의 벽을 뚫었다.
기존 시청자가 약 4천 명이니, 무려 7500명이나 유입된 것이다.
순수하게 기뻐하기도 잠시.
최재훈은 자신이 코스프레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하는 10분 동안 저중 얼마나 이탈될까 염려가 됐다.
평소 방송을 봐 왔던 4천 명은 저 10분을 기다려주겠지만, 신규 시청자들은?
조금이라도 흥미가 떨어지면 채널을 옮길 공산이 컸다.
어떻게 해야 시청자들을 묶어둘 수 있을까.
컨텐츠가 필요했다.
'아.'
최재훈이 휴대폰을 조작한 뒤 이린에게 건넸다
"그, 편집자 님?"
"네?"
"저 자리 비우는 동안, 시청자 여러분들이랑 이것 좀 하고 계셔 주실 수…."
이거.
최재훈이 팬미팅을 염두해서 준비해 둔 컨텐츠 중 하나였다.
"아, 네. 좋은 생각이네요."
"자, 그러면 여러분. 이건, 여러분도 참가하실 수 있고 꽤 괜찮은 상품도 준비해 뒀으니까. 많은 참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거 하면서 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꼭 채널 고정! 오케이? 채널 돌렸다가 돌아와도 후회해요."
[왜 후회함?]
최재훈이 잠깐의 고민 뒤, 카메라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모습을 1초라도 놓칠 수 있으니까."
[우욱]
[채널 못 옮기게 10분동안 토악질 시키려고 하네]
[아 ㅋㅋ 갑자기 피아노학원 마렵네]
[안 나가고 싶은 사람도 나가고 싶게 만드는 사람]
[본인 15년차 히키코모리였는데 이거 보고 용기 얻어서 나갈 결심 했습니다]
10분 동안의 부재를 선언했는데도, 시청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시청자들의 반응.
최재훈은 안심하고 부스로 입장했다.
꽤 널찍한 부스 안은 꽤 본격적으로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옷걸이엔 다양한 의상이 걸려 있었고.
그걸 갈아입을 피팅룸, 그리고 메이크업을 위한 화장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메이크업을 진행 중인 사람이 몇 있었다.
성별 별로 나누어져 있는지, 부스 안은 남자뿐이었다.
최재훈은 입구 앞에서 대기 중엔 스태프에게 명찰을 건넸다.
명찰을 확인한 스태프가 응? 눈썹을 튕긴다.
아.
최재훈은 눈치 있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캐릭터, 제대로 고른 거 맞아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스태프들이 다가와 최재훈의 사이즈를 쟀다.
그리고-
"잠시 대기 부탁드리겠습니다. 해당 코스튬은 여성용 부스에 구비 되어 있어서-"
잠시 뒤.
최재훈은 그들이 들고 온 코스튬을 받아 들고 피팅룸에 들어섰다.
"혹시, 환복하는데 불편함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의 도움을 받다니.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최재훈은 환복을 마친 뒤, 피팅룸 안의 전신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오…."
과연 아이엇.
세계 최대 게임 기업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
코스튬의 퀄리티는, 코스프레 팀 전체서 몰려들어 완성한 한 벌의 코스튬 만큼이나 훌륭했다.
이런 게 여러 벌 구비되어 있다니 놀라움 따름이었다.
게다가, 여성을 위한 코스튬이고, 최재훈의 키가 184cm인데도.
맞는 사이즈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원단의 재질도 자연스러고.
코스튬은 어두우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후드 달린 로브였다.
그야말로 암살자라는 느낌.
최재훈은 후드를 뒤집어 써 보았다.
어느 정도 캐릭터의 느낌이 사는 듯했다.
이 세계의 '텔론'이 아닌, 그가 알고 있던 텔론의 느낌이 말이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의 음식을 먹는 기분.
최재훈은 마음이 과하게 들뜨는 걸 억누르며, 옷을 접어서 사물함에 넣어놓고 피팅룸을 나섰다.
"우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의 모습을 보더니 순수하게 감탄했다.
"완전 잘 어울리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와… 아니, 오히려 원래 버전보다 느낌이 좋은데요?"
이 세계의 텔론은 여성으로, 설정상 170cm의 키를 비롯해서.
암살자 답게 날렵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반면에 지금 최재훈의 텔론.
185cm의 키에, 탄탄한 팔다리.
그리고 넓은 등과 어깨.
날렵함은 덜하지만, 훨씬 위압적인 인상을 주었다.
"진짜, 이런 암살자 만나면 '조졌다!' 소리 절로 나오겠는데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걸걸한 입담을 뽐내며 그를 화장대 앞으로 안내했다.
"평소 어떤 화장품 쓰시나요? 원하시는 느낌이라도 있으신가요?"
"어… 전문가시니 맡기겠습니다."
"크! 알겠습니다!"
그렇게 메이크업이 진행되는 도중.
두 개의 피팅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나왔다.
그들은 나란히 화장대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에 앉아 있던 최재훈을 발견하더니-
"어? 숨컷 씨 아니세요?"
그 말에, 최재훈은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었다.
왠지 껄그럽기도 하고.
"아."
기억났다.
'지현씨한테 누명 씌운 그 새끼'라고 기억하고 있는-
"신도 님."
"오~"
그러자 신도가 호들갑을 떨며 옆 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말했다.
"경훈 씨. 저 요즘 제일 잘나가는 분이 알아봐주셨어요~"
* * *
이미 나쁜 인상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최재훈은 겉으론 살가운 그의 태도가 무언가 끈적해서 기분이 나빴다.
그나저나-
'경훈 씨?'
최재훈은 자연스레 신도가 부른 경훈씨라는 남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쳤다.
"…."
"…."
김경훈이 최재훈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주 복잡했다.
그렇기에, 최재훈의 시선 또한 따라서 복잡해지고.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얘는 또 어디서 봤더라…?'
아.
기억났다.
김경훈.
오후의 경후닝.
신도와 마찬가지로, 리치TV 대표 남성 스트리머 중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숨컷 씨, 이렇게 뵙네요."
그가 인사했다.
신도처럼 살갑게.
그리고 그 모습은, 신도처럼 어딘가 꺼림칙했다.
그의 시선엔 미처 다 숨기지 못한 감정의 편린이 느껴졌는데.
최재훈은 그걸 읽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경훈 씨."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그들은 다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최재훈은 조상의 얼과 지혜가 담겨 있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유유상종.
신도는 자기랑 싸바싸바 안 해줬다고 한 여자의 인생을 국밥에 밥 말듯 쿨하게 말아 먹으려고 한, 중증 개새끼였다.
그런 개새끼와 친하게 어울리고 있는 김경훈.
최재훈은 그에게서, 신도와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즉.
김경훈, 그도 상당한 개새끼일 공산이 높았다.
사람 보는 눈이 꽤 정확한 최재훈은 그런 결과를 내렸다.
'엮이지 말아야지.'
그리고 둘에게서 관심을 완전히 거두고 멍하니 있자니-
"요즘 지현 씨는 좀 어때요?"
신도가 관심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의미심장한 태도.
최재훈은 대번에 알아챘다.
이 새끼가 개 지랄을 할 예정이구나, 하고.
지가 반쯤 담궈 놓은 사람의 근황을 무슨 염치로 묻는단 말인가.
'개같은 새끼.'
최재훈은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주먹도 간지러웠다.
하지만 신도가 싸움을 걸어온 종목은 그게 아니었다.
최재훈은 그 종목에 맞는 싸움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음흉한 질문에 걸맞는 음흉한 대답을 말했다.
"요즘 어떠시냐…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좋아지신 것 같아요."
그 겉으로는 아주 이상적인 대답에.
신도의 표정 근육이 꿈틀거렸다.
최재훈의 발언을-
-니새끼 때문에 좋지 못했었는데, 나 만나고 좋아졌다.
그렇게 곡해해서 받아들인 탓이었다.
최재훈의 의도대로 말이다.
그가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지현이랑 같은 크루 만드셨다던데."
지현 씨에서, 지현이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아직 권지현에 대한 소유욕을 완전히 다 버리지 못한 듯했다.
사실이었다.
그는 최근까지 권지현에게-
지금이라도 자신한테 온다면 그 일을 해결해 주겠다, 는.
선심의 형태를 한 협박을 이어오고 있었다.
"예, 뭐."
"삼피 씨는 둘째 쳐도. 지현이는 같이 크루를 짜기엔 뭔가, 좀… 제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아시겠죠?"
"죄송해요, 잘 모르겠네요."
"아…."
그가 피식 웃더니 말을 잇는다.
"일단 뭐라고 해야 하나. 지현이는 좀… 숨컷 씨랑 급이 안 맞지 않나요?"
"그렇죠."
최재훈이 그렇게 답하자, 신도는 옳다구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저 같은 놈이랑 크루 짜기엔, 지현 씨가 많이 아까운 분이시긴 하죠."
"…에이."
다시 차분히 내려놓고 말을 잇는다.
"숨컷 씨, 엄청 겸손하신 분이셨네~ 보니까 오늘 선행 체험으로 1위 찍고, 8만 찍고. 난리도 아니셨던데."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김경훈이었다.
"숨컷 씨."
그가 대화에 난입한다.
"네?"
"대단하시네요."
"네? 갑자기?"
"방송 시작한지 아직 한 달 안 되셨는데, 선행 체험권을 도대체 어떻게 구하셨대요?"
"아…."
최재훈이 쓰게 웃으며 겸손을 떨려는 순간, 김경훈이 말을 이음으로써 그걸 끊었다.
"업계에 아는 '누나'가 많으신가보다~ 부럽네요."
그 말에, 메이크업에 한창이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숨을 삼켰다.
담긴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최재훈은 생각한다.
'역시.'
예상대로, 유유상종.
끼리끼리 어울리고 자빠진 거였다고.
여유로운 걸 넘어서 거만한 표정을 한 김경훈.
조소를 머금고 있는 신도.
제들 딴에는, 신입의 기를 완전히 죽여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최재훈은 그저 가증스럽고, 또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그가 웃으며 김경훈에게 답했다.
"에이~ 뭐. 아무리 그래도 경훈 씨한텐 안 되죠~"
"…."
이걸 되받아칠 줄은 몰랐던 걸까.
김경훈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었다.
"재훈 씨."
이건 뭐 태그매치도 아니고.
한 놈 피 깎아 놓으니, 다른 놈이 기어나온다.
"지현이 걔, 계속 크루에 데리고 있으시게요?"
"데리고 있다뇨. 제가 뭐, 사장도 아니고. 지현 씨 알아서 하실 일이죠."
"에이~ 그랬으면 알아서 나갔겠죠. 걔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자기가 숨컷 씨랑 삼피 씨랑, 급이 안 맞는 걸 모를까요? 제가 보기엔 재훈 씨가 지현이 불쌍해서 억지로 끼워주는 것 같던데~ 아니면 뭐."
의미심장한 웃음.
"혹시 둘이 뭐, 그렇고 그런 관계에요? 보니까, 서로 바로 위아랫집에 같이 살던데."
"그걸 같이 사는 거라고 표현하나요?"
"아닌가요 그럼?"
"그게 같이 사는 거면, 신도 씨도 위아랫집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거겠네요."
"에이~ 아, 뭐. 숨컷 씨가 그렇다니까, 일단 그런 거로 해 줄게요. 아,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지현이 걔랑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니. 숨컷 씨. 제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지현이, 걔랑 계속 같이 지내실 거면 조심하세요. 걔- 보이는 거랑 달리 꽤 문제 많은 애거든요. 걔, 옛날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아세요?"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예. 알죠. 아주 잘 알죠."
"어~ 무슨 일 있었는지 알고 있는데 데리고 계시는 거라고요~?"
건수 잡았다며 입을 열려는 신도.
최재훈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와 마주하곤-
"무슨 일 있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그러자 더이상 표정관리가 안 되는 신도.
그가 말했다.
"숨컷 씨."
"네?"
"까마득한 방송 대선배한테 너무 좀…."
사납게 웃는다.
"싸가지없게 구시는 거 아니에요?"
"하."
최재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 님."
"네, 후배 님."
"제가 알기로, 레오레를 주로 하시던데. 맞으시죠?"
"그런데요?"
"레온레 몇년차세요?"
"올해로 2년 정도 됐는데, 아니 갑자기 그딴 건 왜요?"
"경훈 씨도 알기로 레오레 주로 하던데, 경훈 씨는요?"
"4년찬데 왜요."
"아…."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쌤쌤이네요."
"…뭐?"
"저는 그쪽 두 분 레오레 대 선배라고요. 두 분은 제 방송 대선배고, 저는 두 분 레오레 대 선배고. 이러면 동등한 입장 맞죠?"
"하, 아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김경훈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때였다.
"저기…."
"네?"
최재훈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주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 일단 메이크업 쪽은 끝났는데. 그, 가발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가발이요?"
최재훈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가발을 보았다.
찰랑이는 흑색 장발 생머리.
(상남자의 최재훈 : 오바지)
상남자세포를 대량 사멸시키는 일.
당연히 최재훈은 내키지 않았지만-
"…."
원래는 이런 코스프레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둘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따로 악세사리까지 준비해 온 꼬라지를 보니, 꽤나 이번 대회에 상당히 힘을 들인 것 같았다.
우승은 못 할지언정 저 둘은 이겨야겠다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코스프레가 그만큼의 경쟁력을 가져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재훈은 전문가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어떨 것 같아요?"
"아, 솔직히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워낙-"
중성스러운 외모를 가져 '미'남의 범주에 포함되는 최재훈이었다.
조그만한 얼굴.
얇은 선의 이목구비에 새하얀 피부.
전문간의 소견으로, 그는 여장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최재훈은 그게 곧 경쟁력 상승이라 이해하고-
"부탁드릴게요."
"아, 넵."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여는 신도.
"컨셉질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컨셉질?"
"'여자'같은 남자 컨셉 잡는 거~ 진짜, 유치해서. 진짜 그딴 걸 좋아하는 멍청한 년들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너도, 적당히 해야지. 뭔 코스프레까지… 그렇게 오버하면 오래 못 가~"
꾸역꾸역 위에 서서 자신을 내리깔려고 한다.
저 콧대를 어떻게 뭉개줄까.
간단했다.
"신도 대선배님. 저보다 훨씬 방송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은데-"
"말이라고."
"대선배님은 저처럼, 방송 한 달 안 됐을 때. 시청자가 몇 명이었어요?"
"…."
"경훈 대선배님은요?"
"…야."
"네?"
"내가 장담하는데, 니 얼마 안 남았어."
김경훈의 태도가 지금까지완 사뭇 달랐다.
가면이 벗겨지고 본성이 드러났다.
거기에선 철저한 적개심과 분노, 그리고 확실한 근거에서 기인한 확신이 느껴졌다.
'내가 장담하는데, 니 얼마 안 남았어'라는 대사를 치는데 말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가 있어야.
저런 말을 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그때.
최재훈은 떠올렸다.
'첫 동시송출 때의 은신. 챌린저 도전 때의 저격. 그리고, 이번 파트너십.'
'단순히 우연이라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제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누군가가 숨컷 님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점 유념하시고-'
이린과 했던 대화를.
그 대화가, 김경훈의 존재와 맞아 떨어진다.
"하."
그가 김경훈을 향해 파안대소했다.
"니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