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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167화 (164/361)

167. 어디세요

이린은 당황스러웠다.

아까부터 그랬다.

'여자친구가 있으셨다고…?'

하긴.

이상할 것 없다.

오히려, 숨컷 같은 남자에게 짝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은 그의 매니저일 뿐이고.

그는 자신의 매니지먼트 대상일 뿐이었다.

매니저가 매니지먼트 대상에게 사적인 감정을 갖고 접근하는 건 추잡한 일이었다.

이린은 누구보다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부류들을 혐오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재훈에게 사적인 감정을 일절 갖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최재훈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원인 모를 불쾌함을 느끼는 건.

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나.

실상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이린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숨컷'으로 보냈다.

그의 생방송을 모니터링하고.

그의 영상을 편집하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그에 대한 여러가지를 설정하고 계산하고 계획한다.

사실, 숨컷과 만난 이후.

그녀의 일상은 숨컷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린 스스로는 몰랐지만.

처음이었다.

그녀가 이토록 몰두한 건.

우연찮게도, 남성 스트리머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처음이었다.

숨컷은 그녀가 여지껏 가장 애착을 가진- 그래.

화분이었다.

눈을 떼지 않고 애지중지 키워낸 화분.

최재훈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원인 모를 짜증을 느끼는 이유.

이린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애지중지 키워 놓은 화분에 벌레가 달라붙어서였다.

자신이 흙을 갈아주고, 빛을 쬐 주고, 물을 주어 아름답게 꽃피워놨는데.

대뜸 날아와, 더러운 다리로 빌붙는다.

뭘 했다고.

뭘 안다고.

이린 스스로는 몰랐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녀는 화분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었으면 했다.

아니.

그녀에게 숨컷은 더이상 화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여지껏 화분들에게, 매니지먼트 대상들에게 향했던 감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숨컷은 그녀에게 있어 화분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녀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원인 모를 불쾌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저분이 제 여자친구라고요."

그녀를 가득 채웠던 부정적인 감정이.

"…네?"

그 얼빠진 목소리와 함께 빠져나간다.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허탈하게.

주변의 관심이 일제히 이린에게 쏠렸다.

[아 ㅋㅋ 나도 사랑해 자기야]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쪽팔리게 왜 그래 ㅋㅋ... 자기S2]

[우욱^^ㅣ발]

[아 구질구질하게 왜이래 꺼져 ㅋㅋ]

[자기라 부르고 싶으면 여친비 내라고 아 ㅋㅋ]

[아니근데 장난아니고 머임?]

[누구 말하는 거임? 촬영중인 사람 말하는 거 아님?]

[ㅅㅂ 누구야 얼굴까 십련아!!!]

[언년이야!!!]

시청자들의 관심까지도.

그녀의 직업 철학에 근거하여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매니저가 방송인의 방송에서 관심을 끌다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게 숨컷이 의도한 상황이라는 거였다.

이린으로서는 곧바로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친구라니?

평소 같았으면

'이분 또 시작이네.'

웃어 넘겼을 이린이었겠지만.

방금 전 최재훈으로 인해 겪었던 격렬한 혼란 때문인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나…?'

냉정한 그녀답지 않은 판단을 내려 버린다.

사고 능력이 최재훈에게 오염당한 것이다.

아무리 이성적인 그녀일지라도 숨컷의 개지랄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신 거지? 아니, 잠깐. 나를 그렇게 여기시는 건. 나도 숨컷 님- 아니, 재훈 씨를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가? 뭐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훈 씨에게 오해의 여지를 드린 건가…? 아-"

생각해보니 찔리는 게 많았다.

계약에서 과할 정도로 그에게 유리하도록 해 준 것.

고급 식당에서 그의 일행을 대접한 것.

편집자를 넘어서 매니저가 되고자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

그의 여동생을 과할 정도로 잘 대한 것.

아무리 매니저라곤 하나 과할 정도로 그의 편의를 봐주고, 관심을 보인 것.

예전, 식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굳이 꽃다발을 선물한 것.

등.

자신의 입장에선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그저 매니저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입장에서, 이성으로서 적극적으로 호감을 어필한다 오해할 여지가 충분한 행동들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탓이다.

자신이 애매하게 행동했기에 그가 그런 식으로 오해하고, 받아들여, 착각한 것이다.

'이런… 어떡하지. 이제 와서 오해라 말씀드리면….'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은 또 어쩌고.

단순히 오해였다며 상황을 무마하기엔, 너무 판을 크게 벌렸다.

그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질 터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오해의 여지를 준 건 자신이니, 책임져야한다.

그리고 매니저로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매니저로서 전적으로 방송인의 안위를 위한 결정이다.

"그러니까… 저 분이 숨컷 씨 여자친구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차현하가 재확인했고, 최재훈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들이 이린을 위에서 아래로 스캔했다.

스캔을 마친 뒤.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단정하게 땋아 올린 머리.

얼핏 봐도 참으로 귀티가 나는 정장과 구두.

사무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

딱 봐도 '나 엘리트요~'라고 말하는 듯한 이지적인, 미녀였다.

외모도 외모지만.

사회적, 재력적으로 상당히 비범해 보였다.

장신으로 곧게 서 있는 자세에선 카리스마마저 느껴진다.

자신들이 어찌 비벼 볼 수준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블랙 말랑 카우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렸다.

사무치던 감정이 한 번에 날아가고, 거기엔 깊은 패배감만이 우뚝 서 있었다.

김희은은 패배감까진 아니었으나, 허탈함은 느낀다.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숨컷의 커플 공개 여파로부터 멀쩡한 사람은 차현하, 그녀가 유일했다.

그녀는 멀쩡한 걸 넘어서 지금 상황이 그저 재밌었다.

"그런데, 저분 표정은 뭔가 시원찮은데. 정말 여자친구 맞으신가? 막, 우리 시청자들 놀리려고 즉석에서 꾸며낸 거 아니에요?"

흥미진진해서 질문하는 차현하.

그에, 이린은 괜히 발끈해서 답했다.

"여자친구, 맞습니다."

"오옹, 그런가 보네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차현하가 곧바로 사과했다.

자 그럼, 다음 데스베이더 님.

질문하세요.

라고 말하기 전에.

최재훈은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

이린의 전적인 협조(?)덕분인지.

채팅창도 그렇고, 초상집 분위기였다.

만족스러운 참교육!

최재훈이 이린에게 미소로 말했다.

'호응 나이스.'

이린이 그 미소에, 남에겐 잘 보여주지 않는 아주 희소한 표정으로 답했다.

밝은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별말씀을요'라고 해석한 최재훈이 다음 행동을 이행했다.

"자, 여러분. 찬조 출연해 주신 저희 편집자 님이자. 제 첫 번째 여자친구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

짝.

짝.

응?

여자들의 힘 없는 박수가 이어지다가,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뭐라고?"

"뭐?"

최재훈의 대사 사이에 끼어 있던 어떤 단어 때문이었다.

'첫 번째.'

"첫 번째 여자친구…?"

누군가 기겁해서 곱씹었다.

그, 문란하기 그지 없는 구성의 문장을.

'뭐…?'

그 중 가장 당황스러운 이는 단연코 이린이었다.

첫 번째라니?

그럼 맥락상 다음 번째도 존재한다는 건데.

혹은, 다음 번째를 만든다거나.

이린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첫 번째라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같았다.

그의 '첫 번째 여자친구'라는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예외적으로 차현하만이, 실소를 터뜨리며 분위기를 탔다.

이게 웬 개판?

그녀가 잔뜩 들떠서는 물었다.

"그 말을, 다음 번째도 있단 소린가요?"

칫칫칫.

최재훈이 능글거리며 혀를 찼다.

그 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흔들었다.

"원 타임, 원 퀘스천."

최재훈은 마냥 장난스러운 기분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인지, 여자들은 그의 행동이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원 타임 원 퀘스천.

김희은이 다급히 거수하고 질문햇다.

"그 말은, 다음 번째도 있으시다는 검까!?"

그녀는 탈 안에서 당황한 한 편,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명의 여자친구'를 '한 번'에 거느리고 있는 숨컷의 모습을 떠올린 탓이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기대했다.

자신이 그중 한 명으로 끼어 있는 상황을.

흥분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원래의 말버릇을 꺼내 버렸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최재훈이 웃으며 입을 열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있죠. 저 같은 사람이 여자친구 한 명밖에 없겠습니까?"

김희은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워낙에 소탈하고 털털해서 동성친구처럼 느껴지던.

그러니까.

한없이 순수해 보이던 최재훈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때가 탔다니?

이토록 문란하다니?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마치, 순정이 더럽혀진 기분.

학창시절의 첫 사랑을 성인 영화에서 접한 기분.

그 기분은, 충격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었다.

충격의 도가니.

뇌가 정지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굴이,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기 직전.

혹은 배신감에 소리치기 직전에 멈춰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여자.

차현하와 김희은은 예외적으로, 흥미가 진진하다 못해 질질 샐 정도였다.

차현하는 즐거워 보였고.

김희은은, 어딘가 흥분한 상태였다.

차현하가 거수했다.

다음 질문을 위해.

"그럼 두 번째. 두 번재는 누구인가요. 혹시, 저희도 알고 있는 사람인가요?"

숨컷이 잠깐의 고민 뒤, 고갤 끄덕였다.

김희은이 거수했다.

"혹시 세 번째도 있슴까!?"

끄덕.

"와우."

차현하가 중얼거리며 거수했다.

"혹시 네 번째- 아니. 몇 번째 까지 있나요?"

"글쎄요, 어디 보자."

최재훈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세상에…."

목록이 따로 있어?

차현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최재훈이 답했다.

"1만 300명 정도 있네요."

…?

이번에도 경악에 빠진 사람들.

허나, 그 전까지의 경악과는 달랐다.

"뭐요?"

누군가의 말문이, 얼탱이와 함께 터졌다.

그녀들은 뒤늦게.

아주 뒤늦게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 최재훈은.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그 의도가 어느 정도 추측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32명. 약 1만 300명 하고도, 32명 있네요. 제 여자 친구."

그 집계에, 누군가가 설마 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뭔."

그러자 최재훈은 주변 사람 모두를 담으려는 듯,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제 여자친구입니다."

그리곤 팔을 내렸다.

양손을 들었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쌍따봉을 갈기며- 찡긋.

자세를 유지한다.

경련을 일으킨 듯 어색한 윙크가 숨막히도록 띠꺼웠다.

흐르는 침묵도 숨막히도록 무거웠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아아아앍~~~~ 도망가~~~"

댐이 터지기 직전!

최재훈이 빛의 속도로 빤스런을 시전했다!

"…."

빨랐다.

빠르게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은, 여자들에게 세상에 정말 존나 말도 안 되는 광경처럼 느껴졌다.

그녀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도 입은 떡하니 벌어져 있었다.

터져 버린 얼탱이와 갈 곳 잃은 분노가 방황했다.

그렇게, 애꿎은 이린을 노린다.

하지만-

"……."

그 표정.

마치 세상에게 배신당하고 똥오줌침이라도 뿌려진 듯한 표정.

그걸 보고서도 그녀에게 동정 외에 다른 감정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뒤.

-라톡!

이린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최재훈 : 반응 어때요ㅋㅋ?]

<차단했습니다.>

그녀는 미련없이 핸드폰을 다시 내려놨다.

하지만-

<차단 해제했습니다.>

미련이 남은 걸까?

[이린 : 어디세요]

[최재훈 : 레오레 부스로 갈 예정 ㅋㅋ]

[이린 : 곧 갈 테니 거기서 기다려주세요]

[최재훈 : 애들 지금 반응 어때요?]

애들 반응.

이린은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어 애들의 반응을 살폈다.

"…허."

"참나."

하나둘 도미노처럼 헛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ㅋㅋㅋ]

[얼탱이가 없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이런 골때리는 련이 다 있어]

[이 십련어디갔어]

[찾아서 매달아 ^^ㅣ발]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

[이린 : 재밌어하시네요]

[최재훈 : 굿 ㅋㅋ]

<차단했습니다.>

"여러분…."

이린이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레오레 부스입니다…."

10, 332명의 여자친구가 레오레 부스로 진격했다.

비공식 이벤트.

'숨컷을 잡아라'가 절찬리에 진행됐다.

머지않아 최재훈은 성황리에 생포 당했다.

"갓집자!!! 니가 어떻게 감히!!!"

"…에휴."

그는 10, 332 여자친구들의 순정을 농락한 죄로.

레오레 부스의 코스튬을 빌려 코스플레이하기 형에 처해졌다.

그 과정에서 피운 개 난리 법석 때문에.

1만 1천 명까지 늘어난 여자친구들 앞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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