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65화 (162/361)

165. SP

"자, 그러면 다음은 어디 가 볼까요."

오랜만의 SGF 현장 방문.

권지현이 눈을 빛내며 회장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하이 포니테일 머리가 활기차게 찰랑거렸다.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이 옆 여자의 팔짱을 끼고 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꼬리를 쫓았다.

그녀의 '진심 모드' 비쥬얼은 그 정도 힘을 갖고 있었다.

[아 근데 이 새기 오늘 와꾸 왜 이럼 ㅋㅋ 어제 빨리 방송 끄더니 전신성형했나]

채팅을 확인하더니, 씨익 거만하게 웃는다.

"그렇지. 내 미모를 설명하려면 그것밖에는 없지."

[아 ^^ㅣ발 ㅋㅋ 쓸데없는 소리좀 하지 마세요 제발 이새기 또 ㅈㄹ하잖아]

[ㄹㅇ; 전신성형 필요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네]

[아니 근데 이 새기 오늘 패션에 왤케 신경씀?]

[화장도 했네 ㅋㅋ]

[(손 들고 질문하는 이모티콘) 선생님, SGF에 남자라도 꼬시러 왔나요?]

"어~ 솔직히, 나는 그럴 생각은 없거든? 근데 남성분들이 날 가만히 안 놔둘 것 같긴 해."

[아 ㅋㅋ 진짜 이 새끼 가만히 안 놔두고 싶네]

[지금 SGF 계신분 있나요? 사람 많아서 이새기 몰래 칼로 찔러도 도망치기 쉽지 않나요?]

[권지현을 찌르면 치킨 이모티콘을 드려요]

[야 근데 웬 일로 SGF임?]

[??? SGF가 왜]

[그러게 이 분 평소 공식행사같은데 잘 안 다니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음?]

[앗;;]

[앗...]

[그사건 ON]

권지현이 쓰게 웃었다.

'그 사건'.

남성 스트리머 신도가, 자신의 추파를 거부한 권지현에게 앙심을 품고.

그녀가 자신에게 치근덕대다가 선을 넘어 버렸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심지어, 신도는 비슷한 전과가 몇 번 있었다.

여성 스트리머들에게 추파를 던지다 차이더니 앙심을 품곤 복수한 전과가.

하지만 신도는 대형 크루의 수장인 대기업 스트리머였고.

권지현은 막 뜨기 시작한 신인에 불과했다.

사실 여부는 어찌 됐건, 모든 리치TV 스트리머들이 그녀와 선을 긋고 신도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권지현은 자연스럽게 리치TV 스트리머가 있을 법한 공식 행사를 피하게 되었다.

그 이후, 오늘이 첫 공식 행사 방문이었다.

권지현의 사정을 알고 있는 골수팬들이 의문을 표했고.

권지현은 그 의문에 답을 주었다.

씩씩하게,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솔직히, 나 같은 여자가 방구석에서 썩는 건 국가적인 차원에서 비극이잖아? 국가와 남자들을 위해 인심 좀 썼지."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크루의 일원으로서 최재훈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그녀는 현실에 좌절하고, 안주하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나아가고자 한다.

자신을 믿어준 숨컷과 어울리는 여자가 될 수 있도록.

[(손 들고 질문하는 이모티콘) 유서는 안 썼나요?]

[비극은 제가 지금 SGF에 없어서 님을 못 조지는 게 비극이구요]

[아 ㅋㅋ 클립 따서 수출 마렵네]

"왜, 내 예쁜 모습을 혼자 보긴 아까워서?"

권지현이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했다.

눈꺼풀을 따라 안면 근육 전체가 움직이는 그 서툰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에 쥐났누?]

[걍 기엽네 ㅋㅋ]

[ㄹㅇ 그 찐따같던 권씨가 맞네 가슴이 진정된다]

[너무 진정돼서 사라지신 것 같은데요]

[귀하의 부친처럼 말입니까?]

[귀하의 모친처럼 그렇습니다]

"아~ 이상한 거 가지고 싸우지 말고."

권지현이 웃으며 다음 장소로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

그녀가 황급히, 부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인파 사이에 몸을 감추었다.

[??? 머임]

[갑자기 왜 그러누]

[학창시절 괴롭히던 일찐이라도 마주쳤나요?]

놀랍게도 비슷했다.

그가 본 건 반대편에서 핸드폰을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는-

신도.

쿵!

쿵!

그녀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모든 게 별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뒤로, 신도의 목소리가 지나갔다.

다행히, 그는 권지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후.'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 죄인 마냥 도망쳐 놓고 뭐가 좋다고 안심하고 자빠진 건지.

도대체 자신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녀의 텐션은 급격히 내려가 있었다.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한 채팅창의 분위기 또한 가라앉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찰랑!

권지현의 기분을 좋게 해 줄 소리가 들려왔다.

"…님이 5,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그 액수는 지금 그녀의 기분을 풀기엔 다소 부족했으나.

"속보, 숨컷 방송에서 '그 사건' 언급."

"뭐?"

그녀는 즉시 숨컷의 방송을 확인했다.

숨컷의 입술은 마치 그녀의 얼굴을 피는 펌프 같았다.

작동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펴졌다.

그녀가 숨컷의 말에 기뻐하고,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이 일단락되었을 때, 그녀는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은 뒤였다.

방금 전, 신도를 만나기 이전처럼.

옛날, 신도를 만나기 이전처럼.

[크... 빛컷]

[그저 빛 ㅠㅠ]

[우리 ㅈ지현이 뭐가 이쁘다고 ㅠㅠ]

[감사합니다 숨선생님 ㅠㅠ 우리 지현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채팅창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여러분 보셨죠? 숨컷 님이 신경 써 주는 여자. 이게 바로 나, 권, 지현이다."

[아니 이걸 바로 개, 지랄을 하시네]

[개, 패고싶네요]

[아 이건 못, 참는다 ㅋㅋ 바로 클립수출 간다 ㅋㅋ]

"아니."

권지현이 기분 좋게 큭큭대며 SGF 회장을 돌아다녔다.

그 발걸음은 방금 전과 비교해 아주 가벼웠다.

마치 족쇄가 사라진 것처럼.

"어?"

그러다가 마주친다.

신도.

권지현은 이번에도 먼저 발견했으나,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했다.

"지현 씨."

권지현을 발견한 신도가 반가워하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잘 지내세요?"

도대체 무슨 염치일까.

기분을 끈적거리게 만들 정도의 음습함.

그전의 권지현이면 눈도 못 마주치고,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분을 삭였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당당히 그와 눈을 마주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싱긋 웃은 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

"어땠어요, 완전 사이다였죠?"

진심으로 뿌듯해하며 자랑한다.

[? ㅋㅋㅋ]

[지현아...]

[사이다를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

[방금 그게 사이다면 지현아...]

[혹시 집에 냉장고가 없니?]

"아니~ 왜~"

아주 긴 시간 동안 변화가 없었던 권지현 방송국의 팔로우 수가, 미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 * *

"여러분."

최재훈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평소 나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더욱 착하게 느껴지듯.

평소 이미지가 이미지인 만큼.

그의 진중한 모습은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다.

그런 모습으로 말을 잇는다.

"권지현 씨, 남 약점 이용해서 함부로 상처 주고 그러실 분 아닙니다. 그러기엔 너무…."

최재훈이 단어를 고르다 고르다, 겨우 말한다.

"찌질하신 분이세요…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아 ㅋㅋㅋ]

[ㄹㅇ ㅋㅋ 권지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지]

[그니까 ㅋㅋ 그 아싸찐따쉑이 뭘 하냐고 도대체]

[증거도 없고 애매하긴 헀지 ㅇㅇ]

[아 근데 이러면 좀 복잡해지는 거 아님? ㅋㅋ]

[그러게 ㅋㅋ]

세 남자가 숨컷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숨컷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면, 예."

"저희도 믿을게요."

어벙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준수한 외모.

권지현은 원래 남성 스트리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소문이 소문이니만큼.

남성 스트리머들은 여성 스트리머들 이상으로 그녀에게서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

권지현의 이미지 복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

그 문제가, 지금 해결되었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성 스트리머들이 그의 편을 자처했다.

숨컷을 따라서 말이다.

"감사합니다, 믿어주셔서."

"하… 그래도 아쉽네요."

"예?"

"숨컷 님 저희 크루 못 들어오시는 거요."

"아…."

"이러면, 저희 크루장 자리가 너무 오래 비어있게 되는데…."

"네? 크루장이 비다뇨?"

"저희 크루장 자리 숨컷님 드리려고 명예직으로 남겨 놓고 있었거든요. 어때요. 이러면 좀 끌리죠?"

"아…이고…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에이~ 독하다 독해!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몸은 따로 있어도, 저희 마음은 언제나 같이 있는 거. 맞죠?"

"하, 예. 선생님들 같은 거물들께서 그렇게 여겨주시면. 저야 영광이죠."

"에이~"

"또, 겸손 떠신다~"

"요즘 엄청 잘나가시던데! 조만간 저희 다 합쳐도 못 따라잡을 것 같던데요?"

"솔직히, 저도 제 파멸적인 재능이 두렵긴 합니다."

"네? 아핰핰!"

"아, 숨컷 씨 완전 웃겨."

"개좋아, 진짜"

"아 참! 숨컷 씨!"

"예?"

"개헤엄 형이 안부 전해달래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참가 못 하셨는데."

그가 숨컷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희, 선행 체험권 숨컷 씨 드리자 한 거 개헤엄 형 아이디어였어요.

"아."

퍼즐이 하나 더 맞춰졌다.

그는 선행 체험을 자신이 다 했다던 이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선행 체험권은 다름 아닌 레드풋과 개헤엄들에게 베풀었던 도움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저희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나중에 합방이라도 같이 해요~"

그렇게 폭풍이 지나갔다.

폭풍에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찌 잘 하면 최재훈이라는 줄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스트리머들의 기대도.

또라이들을 집어삼켰던 광기도.

모든 게, 세 스트리머의 생기발랄한 존재감에 날려졌다.

냉정을 되찾은 시청자들에겐 더이상 팬미팅을 방해할 뻔뻔함이 남아있지 않은 게 느껴졌고.

최재훈은 이때다 싶어, 냉큼 재개했다.

팬미팅을.

"자,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QNA를.

"두 분, 저한테 궁금하신 거 있다면? 뭐든 물어봐 주세요. 아 참! 저 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와주신 블랙말랑카우 여러분 멀뚱멀뚱 서 계시면 심심할까 봐 생각한 건데. 이렇게 하죠."

최재훈이 두 여자를 가리켰다.

"두 분이 번갈아서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다음은 주변의 시청자들을.

"그 다음에, 우리 블랙말랑카우 친구들이 평가하는 거죠. 누구 질문이 더 좋았는지."

시청자 중 한 명이 거수했다.

"네, 학상. 뭐가 궁금하신가요."

"더 좋은 질문으로 꼽히면 뭐가 좋은가요?"

"SP가 지급됩니다."

"SP가 뭔가요?"

"숨컷 포인트입니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나요?"

"아, 진행의 도움을 돕는 아주 능동적인 질문 좋아요. 1SP 드리겠습니다."

"와!!!"

"이 SP로는, 이번 팬미팅이 끝나고 숨컷 상점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오! 1SP로 살 수 있는 거 뭐가 있나요?"

숨컷이 그 시청자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죠.

"띠링, 따봉을 구매했습니다. 1SP가 소모되었습니다."

"뭐야, 시발. 내 SP 돌려줘요."

"이처럼, SP로는 유용한 물품들을 구매 가능합니다."

"유용???"

또 다른 시청자가 거수한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SP를 얻을 수 있나요?"

"음, 참가자 외 다른 분들이 SP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을 안 해 놨는데. 1만 원을 후원해 주시면, 1SP를 지급해 드리는 거로 하겠습니다."

"아니, 양아치네 이거."

"꼬우면 현피 뜨시던가. 아, 참고로 현피 뜨기는 3천 SP입니다."

"미친놈 아니야."

"자, 어쨌든! 진행하겠습니다! 자, 두 분 중 누가 먼저 질문하실래요?"

룰이 룰이니만큼.

먼저 한 질문의 반응을 보고 다음으로 질문하는 게 유리했다.

두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자연스럽게 주먹을 들었다.

가위.

바위.

"아."

말 탈의 승리였다.

후욱.

데스베이더, 김희은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궁금해하던 걸 질문할 생각이었으니.

그녀는 평소의 말투와 제스쳐가 나오지 않도록 신경 쓰며, 말했다.

"평소 취미가 어떻게 되시나요?"

"노잼~~~"

"우~~~~"

그런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최재훈은 답했다.

"취미라… 대부분 게임과 관련된 거네요. 게임을 한다던가, 게임과 관련된 컨텐츠를 본다던가."

"아, 그렇다면 혹시 LKL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 물론이죠."

"아 그러면, 혹시-"

어느 팀에 관심이 있으심까!

신나서, 그리고 기대에 차서 그 질문을 이으려는 김희은의 말을 최재훈에 정중하게 끊었다.

"호응 잘 해 주셔서 감사해요. 시간 많으니까 우리, 천천히 갑시다."

팬의 호의가 아직은 익숙치 않은 그가 멋쩍게 웃었다.

"아, 네!"

간질간질한 기분.

탈 안의 김희은도 저도 모르게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다음, 어… 말 님?"

"아, 네."

[말님은 뭔디 ㅋㅋ]

[근데 얘네 왜 탈 쓰고 있는 거임?]

[방송에 신상 나오기 싫은가보지 ㅇㅇ]

[사실 안에 프로들 들어있는 거 아님? ㅋㅋ]

"아, 여러분. 분명하게 말해 두는데, 이 두 분 신상 추측하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안에 탈 안에 봤었는데, 진짜 말이었고 데스베이더였습니다."

[ㄴㅇㄱ]

[말이 말탈을 쓰고 있네 ㅋㅋ]

[우리도 사람인데 사람 탈 쓰잖아]

[천잰가?]

"자, 어쨌든. 질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 탈 안에서 입이 열렸고.

"오오올!!!"

"크, 이게 방송이지."

[오우 놀 줄 아는 년인가?]

김희은때와는 상반된 반응이 돌아왔다.

그녀의 질문.

단순했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TC1 SIGHT.

논란을 몰고 다니는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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