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살아난 놈들
최재훈은 경악했다.
"""빼애애애애액!!!!!!"
""
여성의 육신과 '여성'의 정신를 지닌 존재는 저런 사이렌이 울리는 듯 청아하게 엿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사실을 이런 공공장소에서 자랑할 생각을 할 수 있는 반사회적으로 도전적인 쌉또라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상식적으로 그 수가 절대로 많지 않을 또라이들이.
자신만을 보기 위해 SGF에 행차해 주는 열성팬 비율의 전부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또 절망했다.
그리고 부조리함과 의문을 느꼈다.
'도대체 왜…?'
내 시청자들은 이런 또라이들밖에 없는 것인가.
그가 모르는 그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인터넷 방송에는 그방그시라는 말이 있었다.
몇 차례의 검증으로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그 가설은 바로 '그 방송인에 그 시청자'.
시청자의 상태는 방송인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그 가설에 따르면 최재훈의 시청자 대부분이 또라이인 것은-그가 또라이라서였다.
'뭐가 문제지? 숨컷한테 문제가 있을 리 없고. 얘는 지나치게 완벽한 게 문제니까.'
(숨컷의 최재훈 : 내가 아무리 멋져봐야 너 만할까?)
(최재훈의 최재훈 : '코쓱')
(숨컷의 최재훈 : '윙크')
그러한 최재훈의 현실도피적인 사고는 오래가지 않았다.
폐를 다 비워내면 멈출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쌉지랄이-
"""흐읍-"
""
다시 한 번 폐를 가득 채우더니-
"""빼애애애애액!"
""
2절, 3절, 4절을 넘어 뇌절까지 갈 것을.
가만히 기다려서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암시한 것이다.
소음이 스트리머 존을 가득 채웠다.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쳐 리치TV 부스 전체로 흘러나갔다.
"뭐야?"
"허, 뭐야 저거."
"시청자랑 뭐 같이 하시는 건가?'
소음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온 그 말에, 최재훈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시청자랑 뭐 같이 하시는 건가'라니.
그러면 마치 자신이 이 개지랄의 일부 같지 않은가.
아니, 일부를 넘어 주동차처럼 들리지 않는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적인 스턴에 걸렸던 최재훈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근엄하게 외쳤다.
"여러분!"
위엄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에 또라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음 배출을 멈추고 두 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앞에 있는 남자의 다음 행동을 주목한다. 기대한다.
그의 다음 행동.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이 새끼들 제 시청자 아닙니다!!!"
"""빼애애애애액!!!!!!!!!!!!!!!"
""
"저 이런 새끼들 몰라요!!! 아까 방송 보셨죠!!! 저랑 상관없는 새끼들입니다!!!"
"""빼애애애애액!!!!!!!!!!!!!!!"
""
"으아아악!!! 제발 닥쳐!!! 또라이들아!!!"
"""빼애애애애액!!!!!!!!!!!!!!!"
""
방송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이 또라이들에게 시달리며 어느 정도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터넷 안에서였다.
인터넷 안에서 자신의 또라이들이 이 지랄을 했다면 무시하거나, 웃어넘기면 되는 노릇이다.
어차피 자신의 방송이었고, 남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었다.
놀랍게도, 이 또라이들이 이 지랄을 하고 있는 장소는 현실의 공공장소였다.
피해 입을 남이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그렇기에 무시할 수도,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채팅 금지나 강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
최재훈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 봤다.
'채팅 금지랑 퇴장?'
아,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이건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입 스트리머 주제 이렇게 리치TV 부스의 분위기를 흐려 놓다니.
잘 보여도 모자를 판에,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당장에라도 주변에서 날 선 비난이 들려올 것만 같아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러던 그때-
"큭큭큭."
"아니, 저거 뭐야."
"저분 숨컷 님인가?"
"아니, 현실에서도 개 유쾌하시네."
'오옹?'
아주 천만 다행히도.
최재훈이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이러한 시청자들과 방송인의 기행이 유쾌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재훈의 이미지도 한몫했다.
일주일 동안 리치TV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챌린저 도전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방금, 선행 체험 시간 동안 리치TV의 정점으로 군림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지금 그는 리치TV 안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남자치곤'이라는 수식어가 모욕이 될 엄청난 게임 실력.
특출난 외모를 가진 남성 스트리머들 안에서도 부각되는 특별할 외모.
방송 시작 겨우 한 달 만에 대기업의 반열에 도달하는 말도 안 되는 포텐셜.
그리고.
'입장권-I'와 '선행 체험 권리'를 단 하루 전에 얻을 수 있는 '능력'.
말도 안 됐다.
미래가 창창하다 못해 찬란한 괴물 신입 스트리머!
'특정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그에게 격렬하게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뭐임 방금 괴성? ㅋㅋ]
[빼애애액 뭔데 ㅋㅋ]
[도대체 뭐가 들어갔길래 그렇게 고래고래 ㄷㄷ]
[?]
[방금 숨컷 목소리 들린 것 같은데?]
[주변에 숨컷 있어?]
스트리머 존에서 방송을 진행하던 이들의 채팅창에 그런 채팅이 올라왔다.
스트리머들은 이 때다 싶어-
"아, 그러게요."
"한 번 가서 확인해 볼까요?"
그녀들은 평균적으로 시청자 2천을 넘기지 못하는 최대 중견기업 스트리머들이었다.
숨컷은 명실상부 이미 대기업의 반열에 있는 스트리머였고.
급이 안 맞다.
원래 같았으면 대기업에게 감히 먼저 접근할 엄두를 못 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숨컷은 머지않아 초 대기업으로 거듭날 혜성이었다.
그래.
혜성.
아직 그는 신입이었고, 그렇기에 입지가 미묘했다.
머지않아 감히 범접조차 못 할 존재가 되겠으나, 지금이면 동등한 관계 형성을 노려볼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숨컷이라는 황금 동아줄을 잡을 마지막 기회였다.
그와 엮이고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삼피'와 '권지현'.
그 둘 처럼 되겠다는 꿈을 안고 숨컷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스트리머 대 스트리머서가 아니여도 좋았다.
인간과 인간으로라도 좋으니, 그와 접점을 갖고 싶었다.
정확히는 여성 대 남성으로서.
스트리머들이 핸드폰을 켜고 최재훈의 주위를 둘러싼 또라이들의 주위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밝히고 먹잇감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처럼.
"…."
아무리 광기에 지배당한 또라이들이어도.
바로 옆에서 이러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냉정을 되찾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악질 시청자이기 이전에, 원래의 평범한 일반인으로.
[왜 갑자기 조용해졌누?]
[갑자기 조용해진 거 보니까 어떤 소설에서 주인공이 괴담 클리어하려고 시스템 이용해서 음소거한 게 떠오른달까요]
[으아악 제발 닥쳐 씹덕새끼야]
[나 씹덕 아닌데 괴담 고등학교는 인정한다]
[주변에 먼 일 일어난 거 아님?]
최재훈도 무슨 일인가 싶어, 시청자들을 헤집고 나가 확인하려던 찰나였다.
"숨컷 님!!!"
침묵을 깨는 발랄한 목소리가 있었다.
최재훈은 안면 근육에 힘을 줬다.
자신을 반갑게 부르는 저 목소리에 똥 씹을 표정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발랄한 목소리의 주인은 남자였다.
"어!?"
"야, 저거."
"어!"
남자.
정확히 남자들은 망설임 없이 최재훈에게 접근했다.
스트리머들을 뚫고.
시청자들을 뚫고.
그들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스트리머들이 막기엔 그들은 너무, 거대한 존재였고.
시청자들이 막기엔 그들은 너무, 정석적인 미남이었다.
숨컷의 시청자들은 숨컷 한정 여포였다.
털털하지 않고 평범하게 남성스러운 미남들에겐 쪽도 못 쓰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그렇게 다수의 남성 스트리머가 최재훈에게 다가왔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대~박 피부 완전 좋아."
"숨컷 님, 안녕하세요?"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행동 자체만 놓고 보면, 숨컷과 접점을 갖기 위해 접근했던 다른 스트리머들과 다를 게 없었으나.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하나 같이 이미 대기업이라는 점.
숨컷과 이미 접점이 있는 것처럼 군다는 점.
그리고, 다른 종류의 호감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삿된 목적이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호감.
'남성'스러운 남성들의 살가운 태도가 괴로운 건 차치하고.
최재훈은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하나같이 모르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남성은 석훈이와 두산이 새끼들 정도였다.
아, 며칠 전에 마트에서 만난 인싸도 그렇고.
어쨌거나, 그가 알기로 자신을 이렇게 대할 관계에 있는 남자들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최재훈의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자-
"헐~"
"숨컷 님, 저희 모르시겠어요?"
"좀 섭섭한데~"
그런 반응을 보인다.
최재훈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봐도, 저들의 태도는 일방적으로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닌.
이미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상태에서 만났을 때의 태도였다.
[어 ㅋㅋ]
[ㅁㅊ ㅋㅋ]
[쟤네가 왜 여깄누]
[숨컷한테 감사인사 하러 왔나 보네]
'잉?'
심지어 시청자들도 저들이 누군지 아는 눈치.
최재훈은 갈수록 어두워지는 남자들의 표정에 뇌에 힘을 줬고-
"아!"
마침내 기억해 낸다.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편집자', 채지윤 사건 때 말이다.
그들은 바로 채지윤이 착취했었던 남성 스트리머들이었다.
폭로 영상에서 봤었던 기억이 이제서야 상기된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최재훈이 뒤늦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에이~ 너무하신다. 알아보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시다니."
"설마, 모르는데 아는 척하시는 거 아니에요?"
"에이. 아니죠. 그쪽 분이, 덤덤 님."
"넵."
"찬식 님, 삼식 님 맞으시죠?"
"이열~"
"그래도 알아봤으니 봐 드릴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여기엔 무슨 볼일로?"
"무슨 볼일이긴요~"
"당연히 이렇게 숨컷 님 보러 온 거죠."
"아직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잖아요."
"아…."
덤덤이 최재훈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흐미.'
최재훈은 눈앞의 남자가 여자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는 아주 '남성적'으로, 중성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다.
얼핏 보면 여자로 보일 정도로.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덤덤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그때, 그 말. 이런 사람 겁낼 거 없다는 말.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감동 받았는지 몰라요. 진짜, 이렇게 꼭 한 번 찾아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그 인간이랑 문제도 잘 해결하고…. 좋은 소속사에도 들어가고… 진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세 남자의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감사.
짝짝짝짝짝.
그 감동적인 장면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최재훈은 멋쩍어서 쓰게 웃었다.
[이럴 때 즙 짜야지 뭐하누]
[ㄹㅇ ㅋㅋ 시도때도 없이 짜대니 이렇게 필요할 때 못 짜지]
[아 그러고 보니 이 분 그때 그 살놈 구해준 분이었네 ㄷㄷ]
[어쩐지 ㄷㄷ]
[숨컷 니는 살아 안 들어감?]
"피보요?"
"아, 맞다! 숨컷 님!"
"예?"
"저희 크루 안 들어오실래요?"
"크루요?"
"네네! 저희 피해자들 그때 숨컷 님이 연결해 주신 MCN 레드풋으로 다 같이 들어간 김에 크루 만들었거든요, 살아난 놈들이라고."
내가 연결시켜 줘?
아, 이린 씨구나.
최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지윤 사건으로 득을 본 건 최재훈뿐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이미 대기업이거나, 대기업의 반열에 있었지만 채지윤 때문에 하락세를 걷고 있었던 그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뭉치고, 성장했다.
살아난 놈들.
요 근래 미튜브에서 한창 떠오르고 있는 크루였다.
"잘 되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그 덕 많이 봤습니다."
최재훈의 겸허한 반응에, 세 남자는 감동에 복받쳤다.
개헤엄과 이 세 명을 비롯한 채지윤의 피해자들로 구성된 살아난 놈들.
그들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채지윤의 억압에서 벋어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송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게 최재훈 덕이었다.
그에게 자신들이 받고 있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크루. 들어오실래요? 숨컷 님만 들어오면 진짜 완벽한데!"
[요즘 파보 ㅈㄴ 잘나가자너]
[숨컷 들어가면 쌉오지긴 하겠네]
[ㄹㅇ; 개헤엄이랑 같이 라인업 개오질듯]
열렬한 반응에, 최재훈은 이번에도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제안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한데, 이미 제가 크루가 있어가지고."
"아…."
"그래요?"
"아쉽다…."
"크루원 누구누구 계신데요?"
최재훈은 이 김에 제대로 발표하기로 했다.
"여러분, 저 크루 만들었습니다. 크루 이름은 컷컷컷입니다. 크루원으론 지금, 컷컷컷 이름 달고 방송 중이신 삼피 님이랑, 권지현 씨 있으니까. 잘 좀 부탁드릴게요!"
[ㅋㅋ 삼피에 권지현]
[서유기 파티인가요?]
[ㄹㅇ ㅋㅋ 악질만 모아놨네]
[한 명 더 구해서 불전구하러 인도가겠누]
그의 발표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 권지현?]
[그 권지현 맞음?]
[오반데 ;;]
[숨컷님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모름?]
그런 반응도 나왔다.
세 남자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어… 숨컷 님?"
"네?"
"그… 괜찮으신 거예요?"
"도움 필요하시면…."
최재훈은 잠시 뭔가 싶었으나, 이내 떠오른다.
권지현.
아직도 그녀를 부당하게 옭아매고 있는 매우 모욕적인 의혹을.
딱 좋은 기회였다.
"여러분."
최재훈이 진중하게 호소했다.
"지현 씨, 그러실 분 아니세요.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한때.
마땅히 대기업을 노릴 수 있었던 유망주의 발목을 묵었던 족쇄.
수년 동안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족쇄를, 누군가 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