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악질들 2
"숨컷 님 맞으신가요?"
창구에서 나와 최재훈에게 다가온 담당자가 진지한 얼굴로 묻자, 최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그러자 여자 담당자는 입을 벌려-
"와…."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리치TV 직원이라는 직업상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을 실물로 접해 보았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각도빨, 조명빨, 보정빨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 도움이 얼마나 큰지.
그녀가 방송에서 봤을 때 '헉'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미남 미녀의 모습은 대부분 그 3빨의 도움을 받은 결과였다.
물론, 보정이 없어도 충분한 미모였지만.
방송만 못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본 숨컷의 모습이 반드시 3빨의 도움을 받은 결과라 생각했다.
그의 외모는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특출난 케이스였으니.
그렇기에 당연시 여기고 놀라지 않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놀라고 말았다.
그의 캠은 오히려, 그의 외모를 좀먹고 있었던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캠으로 봤었던 그의 조그마하고 입체적인 얼굴은, 잘못된 캠 각도에 의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크고 평면적으로 담긴 것이었다.
방의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도 하얬던 피부는, 있으나 마나 한 회장의 조명 아래에서 빛나다시피 했다.
그만큼 더욱 부각 되는 희미한 다크서클이 깊은 눈과 맞물려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를 경악케 한 부분.
캠에는 담기지 않는 그것, 비율이었다.
'옷이랑 바지 어디 브랜드지? 운동화는 빈티진가? 와… 저런 걸 소화하네.'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주워 산 후드와 청바지, 그리고 몇 년 신어서 헤진 싸구려 운동화를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 비율.
[아니 얘 실물이 도대체 어떻길래 이 분 입이 안 다물어지냐 ㅋㅋ]
[동탄노인정청춘도둑엄상희 : 실물 개쩔긴 하더라 ㄹㅇ; 말 안돼 그냥]
[상희야 아직도 있냐]
[상희야 코딱지 왜 안 받았냐]
[ㄹㅇ; 안 받을 거면 나 주지]
[동탄노인정청춘도둑엄상희 : 햇반을 안 가져 와서 ㅇㅇ;]
[저 새끼 정신 못 차렸누 ㅋㅋ]
[인터넷 여포 ON]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던 탓에, 오히려 더 감탄하고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는 여자에게 결국 최재훈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요! 와… 진짜, 와… 저 팬이에요. 이렇게 만나서 진짜, 와…."
와….
밖에 말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최재훈이 넉살 좋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야, 이렇게 반가워해 주시다니. 제가 다 황송하네요. 감사합니다. 미튜브 구독이랑, 채널 팔로우 당연히 하셨겠죠?"
"아, 예! 당연하죠!"
여자가 안절부절못하더니 조심스럽게 주먹을 맞댔다.
그러더니 입꼬리가 아주 그냥 승천을 한다.
"아, 그 여기엔 무슨 일로!? 아! 저 두 분 혹시! 아! 팬미팅!"
"이야, 진짜 제 시청자신가보네."
최재훈이 오올~하자 헤헤 뒷머리를 긁적인다.
"어쨌든, 예. 그렇게 돼서 스트리머 존 좀 사용할까 하는데, 가능할까요?"
"아! 예! 물론이죠! 평생 쓰셔도 됩니다!"
"오~ 권력남용. 기대하겠습니다?"
"헤헤헤."
그렇게 그녀가 창구에 들어가서 처리를 하려던 때였다.
목에 명찰을 달고 있는 누군가가 황급히 다가와, 여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 여자를 대신해 최재훈에게 말했다.
"숨컷 님 맞으시죠?"
최재훈은 익숙한 흐름에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아, 죄송합니다만. 현재 숨컷 님께선 스트리머 존을 사용할 수 없으십니다."
"엥!"
최재훈이 표정으로 왓더퍽을 표현해 당황을 표하기도 잠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사전에 알아본바, 스트리머 존은 리치TV에서 방송하는 사람이라면 조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거로 아는데요?"
"아, 그게 올해부터 규정이 변경되어서요."
"…아!"
짝!
최재훈이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내, 생각났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오늘이 1월 1일이었죠 참!"
"…예?"
"어? 아닌가? 그럼 이상한데요. 제가 조사한 게 어제였거든요."
"…."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최재훈의 비꼬기에도-
"리치TV에서 방송하는 사람이라면 조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서 변경된 부분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단호한 얼굴로 묵묵히 말할 뿐이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듯 깔끔하게 느껴져서, 변명처럼 느끼는 대사를 말이다.
"…."
최재훈은 심히 아니꼬웠지만, 이렇게 나오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뀐 규정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스트리머가 되어서 빼애애액 뒹굴며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때.
최재훈 대신 떼를 써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ㅋㅋ 자리도 남잖아]
[악용은 ㅅㅂ 그걸 어케 악용하는데]
[방송키는 척 비트맥스 채굴이라도 했는갑지 ㅋㅋ]
[아 ㅋㅋ 라이오 또 너야!?]
[아니 근데 숨컷 스트리머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ㄹㅇ 뭔 악용을 한다고 좀 에바치긴 하네]
시청자들이었다.
채팅창이 우~로 가득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들리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
"""우~~~~-"
""
"어?"
최재훈이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단순히 리치TV 부스라서 인구 밀도가 높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모여 있었다.
별도의 목적이라도 있는 듯.
'응?'
그들을 바라보던 최재훈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아.'
이내 그 익숙함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들은, 레오레 부스에서 최재훈을 둘러싸고 있었던 이들이었고.
그가 이동할 때,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한 이들이었다.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최재훈을 따라온 게 맞았다.
그 중에는 시청자 A, B도 보였다.
"지금 그 말은 저분이 스트리머 존을 악용할 거라는 말인가요~?"
그 중 누군가가 외쳤다.
핸드폰을 들이댄 채 말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례하고, 좋게 말하면 과감하다.
최재훈 같은 공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누구보다도 스트리머를 존중해 줘야 할 플랫폼에서, 스트리머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건가요!?"
"갑질이다!!!"
"이거 안 들여보내주면 오늘부터 리치TV 불매운동 할 거야!!!"
"노 리치 운동!!"
"노? 신고합니다"
"뭐라는 거야 이 데베충 새낀!"
"이 새끼부터 죽여!!!"
이성이 통하지 않는 집단 광기.
면전에서 대놓고 비꼬던 최재훈이 선녀처럼 보이는 적의 등장에, 여자의 단호한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직원으로서, 한 명 있어도 상대하기가 곤란한 진상 수십 명이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족히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 저 군집은 여자의 눈에 벌집처럼 보였다.
잘못 건드리는 순간, 리치TV 부스는 난리가 날 것이다.
뒷생각을 안 하고 날뛸 수 있다는 점에서.
숨컷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협적인 적이었다.
그녀로선 감당할 수 없는 상대.
여자가 그들의 약점을 노리기로 했다.
"숨컷 님…?"
"네?"
"저렇게 모여서 소란을 피우시면 다른 분들에게 폐가 될 수도 있으니…."
그들의 존재에 대한 책임 자체를 숨컷에게 돌리려는 것이었다.
"아! 아, 네 죄송합니다!"
최재훈이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그렇게 군집을 마주했다.
"여러분!!! 제 팬이라 절 생각해서 이래 주시는 거라면, 해산해 주세요!!! 이러면 제 입장은 난처해지기밖에 안 됩니다!"
그 말에 그들은 통렬한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재훈이 여자에게서 완벽하게 등을 돌린 이유를 보여줬다.
그의 입이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않으며 움직였다.
그 입모양을 해석하길-
개.
쌉.
굿.
계.
속.
해
주.
세.
요.
화.
이.
팅.
그의 의도를 해석한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가 무슨 니 팬이야!!!!!"
"니가 누군데 씹덕아!"
"뭐야 이 듣보 새낀!!!"
"나대지 마!!!"
"우리는 그냥 이 부조리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뿐이야!!!"
"나는 개인이오."
[아 ㅋㅋ]
[ㄹㅇ ㅋㅋ 누가 봐도 숨컷이랑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그니까 ㅋㅋ 방송한지 겨우 한 달 된 애한테 저렇게 사람이 들러붙겠냐고]
"헉… 그렇습니까… 나대서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팬들이신지…?"
"김경훈 팬으로서 리치TV에게 요구합니다!"
"개헤엄 팬으로서 리치TV에게 요구합니다!"
"어썸 팬으로서 리치TV에게 요구합니다!"
"풍랑 팬으로서 리치TV에게 요구한다!!!"
"나 김경훈 팬인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조쿠가 두렵지도 않냐!"
[자조쿠가 왜 저기 끼어 있누]
[자황-]
[아 ㅋㅋ 한국 인방 전체가 자황 나와바리지]
완벽한 어그로 분산!
'크~'
이렇게 똘똘한 친구들이 자신의 시청자라니.
최재훈은 구빱을 원샷한 것 같은 든든함을 느꼈다.
"…."
자신을 등지고 몰래 이루어진 뒷거래를 알지 못하는 여자로선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숨컷의 팬이 아니라고?
그러면 저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뭐야?"
"무슨 일이야?"
소란을 듣고 근처에 있던 스트리머와 관람객들의 관심이 향해졌다.
그런 그들에게, 군집이 말한다.
"지금 저 리치TV 직원이 저 스트리머 보고, 스트리머가 아니래요!"
"신입 스트리머는 스트리머로 안 쳐준다고, 리치TV 부스 시설 사용 불가능하대요!"
"리치TV에서는 저 스트리머를 위험 분자로 판단하고 척살령 내렸대요!!!"
"리치TV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이 오사마 빈라덴 본체래요!!!"
"저 직원이 아메리카TV가 더 방송인 친화적인 뛰어난 플랫폼이래요!!!"
최재훈은 저 무시무시한 군집이 자신의 적이 될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더는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바로 그게 지금 여자가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
"어? 저 사람 숨컷 아니야?"
"어, 맞는 것 같은데? 저 사람 스트리머 아닌가?"
"근데 스트리머 존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오늘부터 스트리머 존이 아니라 VIP존이래요!!!"
"그게 뭔 소리예요?"
"리치TV에 돈 되는 스트리머들만 사용 가능하대요!"
"와, 그건 좀…."
"신입 주제 사용하고 싶으면 타임머신 개발해서 작년으로 가래요!"
"와, 대박이네.'
집단 광기에 의해 망설임이 거세된 군집의 거리낌 없는 선동.
거기에 여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숨컷의 외모가 더해져, 리치TV 부스는 아수라장 되기 일보 직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여자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악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 아무래도, 규정 변경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네요. 불편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자가 최재훈에게 ID카드를 건넸다.
그 순간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정의가 승리했다!!!!!!!!!!!!!"
"와!!!!!!!!!!!!!!!!!!!!!"
"숨- "
컷을 숨컷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들이 대체 단어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듣보! 듣보! 듣보!"
최재훈은 정의구현의 뽕맛에 심취해서 눈을 감고 팔을 휘적거려 지휘하는 시늉을 하였다.
'숨컷, 우리가 당신에게 바치는 진혼곡입니다."
(상식의 최재훈 : 그거 사람 뒤졌을 때 들려주는 곡이야 병신아)
이내 소란이 진정되고-
"아 여러분들. 이렇게 또,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최재훈은 군집에게 감사를 표한 뒤. 세 여자를 데리고 스트리머 존으로 갔다.
그리고 방송 세팅을 하는데-
"…."
주변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
최재훈 감사를 표함으로써 작별을 고한 군집이, 도넛처럼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저기 여러분… 이 듣보에겐 무슨 일이신지?"
"우리가 쟁취해 낸 '정의의 증거'가 나아갈 미래를 지켜보게요."
"와…."
개멋져.
최재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방금 처음 봤는데 팬 됐습니다!!!"
"구경 좀 해도 되죠?"
최재훈은 뒤늦게 고찰해 보았다.
SGF에 와서 게임 구경은 안하고, 자신을 구경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구경하겠다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SGF에 왔다가 자신의 선행 체험 방송을 보고 즉석에서 팬으로 거듭났을 신규 유입들일 확률-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동으로 추측건대.
신규 유입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신규 유입인 것 치고는 너무- '
자신의 채팅창에서나 맡을 수 있을 법한 알싸한 향기가 그녀들에게서 났다.
그렇게 최재훈은 결론을 내린다.
'아니, 얘네 진짜 나 보려고 SGF에 온 것 같은데?'
(악마의 최재훈 : 월클이시네요, 인정합니다)
팬이 SGF같은 행사에 특정 스트리머만을 보기 위해서 참가하다니.
방송 경력이 어느 정도 되어 마니아층이 형성된 대기업 스트리머에게나 일어날 일이었다.
그런 일이 방송한 지 겨우 한 달 차 되어가는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최재훈은 기쁘고 또 뿌듯한 마음에 고갤 주억거리-
기 전에.
두 참가자에게 눈빛으로 의사를 물었다.
쟤네.
괜찮?
그러자 두 명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컷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거란 기대는.
팬미팅 장소가 SGF로 정해진 시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한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이들을 해산시키는 것보다 끼고 가는 게 숨컷에게도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모종의 우월감이 들었다.
자신은 숨컷과 이렇게 가까이 앉아 팬미팅을 진행하는데, 저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잘생긴 남자친구를 태운 스포츠카를 몰며 부러움과 시기 섞인 시선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사실, 잘나가는 프로게이머로서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자주 접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둘이었지만.
그 자랑의 대상이 숨컷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과시욕.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감정인 것이다.
둘의 허락을 받은 최재훈은 이린과 함께 방송 세팅을 마저 끝내고.
캠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러면! 숨컷 저격 이벤트 당첨자, 아니지 우승자? 아무튼. 두 분과 함께하는…."
하….
말하다 말고 민망함에 한숨을 내쉰다.
팬미팅이라니.
아무리 말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마냥 민망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시작 직전이 되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프로게이머 시절, 상상이라도 해 봤던가?
자신이 팬미팅을 열게 될 거라고.
열었을 경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줄 거라고.
못 해봤다.
감히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현실이었다.
최재훈은 기분이 들뜨는 걸 느끼며-
"팬미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근데 팬미팅이면 뭐 하는 거임?]
[준비해온거라도 있음?]
"아, 예! 일단 뭐. 어느 정도 준비해 오긴 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은…."
말하는 최재훈의 목소리가 쪼그라들었다.
[ㅁㄺ?]
[잘 안들리는데요]
[크게좀 말해봐 찐따 쉑]
또 익숙해졌나 싶더니 부끄러워져서였다.
자신이 개최한 이벤트의 상품으로 참가 자격을 내건 팬미팅을,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건.
어지간한 자기애와 뻔뻔함을 보유하고 있는 최재훈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첫 번째 시간은 QNA 시간 되겠습니다. 저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봐 주세요."
그는 평소 한없이 두꺼웠던 낯짝을 민망함으로 붉히며 가까스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QNA ㅋㅋ]
[정석적이네 ㅇㅇ]
그러자-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즉시 질문이 나온다.
최재훈은 당황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너무 노골적-
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질문의 출처가 말 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다스베이더 탈 또한 아니었기 때문이다.
질문의 출처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군집의 일원이었다.
팬미팅의 초청객이 아닌 관람객.
최재훈이 두 초청객을 위해 자중을 부탁하려던 찰나-
"어떤 여자가 좋아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가족 구성이 어케 돼요!"
주변에서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다.
최재훈이 수습하기 위해 황급히 외쳤다.
"아니, 여러분. 이거 이 두 분을 위한 자리니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죠?"
최재훈이 아이 달래듯 그녀들을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쳐다봤다.
그러자-
"빼애애애애액!!!"
누군가로부터 재발한 광기가-
"""빼애애애애액애애애애액애애애애액애애애애액!!!!!!!!"
""
삽시간에 군집 전체로 번졌다.
"오, 시발 세상에."
집단 광기로 흥한 자, 집단 광기로 망하리라.
아직 꺼지지 않았던 광기의 불씨가 다시 불꽃이 되어, 새로운 먹잇감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