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62화 (159/361)

162. 악질들 1

최재훈의 방송은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가장 과격한 성향을 가진 옐로TV에서 기반을 다지고 넘어온 탓인지.

일반인 기준에서 눈쌀을 찌푸릴 정도로 과격한 방송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평소 그의 시청자들은 인터넷 문화의 어두운 일면을 피력하기 위해 탄생한 화신이라도 되는 양 특히나 무례하고, 저질스럽고, 짓궂게.

그러니까 악질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도, 최재훈이 그런 시청자들에게 갖고 있는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좋냐 나쁘자로 따지면 좋은 쪽에 가까웠다.

어찌 되었든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서 자신의 방송을 골라준 시청자라는 점에서 그들은 팬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팬들이 존재하기에, 자신은 방송인으로서 존재하고.

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최재훈 같이 데뷔부터 승승장구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

그렇게 팬들의 소중함을 망각하기 쉽상이었지만.

그는 실패한 프로게이머로서 긴 시간을 보낸 전력이 있기에, 팬들의 소중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간혹 있는.

노골적으로, 아니면 음습하게 악의와 적대감을 갖고 표출하는 헤이터들은 당연히 제외하고.

그들은 시청자일지언정 팬이라곤 부를 수 없는 부류들이었으니.

여느 방송인들이 그렇듯, 최재훈은 그런 자신의 시청자들이 현실에선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저 유쾌하게 병신스러운 악질들은 현실에서는 어떨까.

저 음습한 헤이터들은 현실에서는 어떨까.

인터넷에서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모습을 일일히 대조하기 전까진 모를 일이었지만.

최재훈은 눈앞에 있는 두 시청자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드물게,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하게 방송인들을 존중과 배려로 대하는 인터넷 신사- 아니, 숙녀들이 있었는데.

이 둘이 그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넷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무례할 거라 추측하듯.

현실에서 한없이 얌전히 행동하는 저 둘이, 인터넷에서도 그럴 거라 추측한 것이다.

최재훈은 둘에게 아이디를 물어봤다.

리치TV에서 방송인이 자신의 시청자의 채팅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부검'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그 둘의 채팅 내역을 확인하고,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그 의도가 '자신의 닉네임을 기억해 주려고'라 착각하고 선뜻 아이디를 밝히는 둘의 모습에 최재훈의 기대는 더더욱 강해졌다.

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채팅 내역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라고, 생각한 최재훈.

(기대의 최재훈 : 얼마나 이쁜 채팅을 쳐 놨을까. 기다려 봐 나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케이크에 불 좀 켜 놓음.)

한 층 더 기대에 찬다.

"일단 JYSM0318."

상대적으로 더 당당한 시청자의 아이디부터 부검에 들어간다.

그러자-

"아, 잠시만…!"

사색이 되어 말리려 하는 아이디의 주인.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최재훈의 눈 앞에 JYSM0318의 채팅내역이 펼쳐졌다.

"…."

최재훈은 꽃밭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변기였다.

최재훈의 공중화장실의 변기를 여는 어리석은 행동의 대가를 치룬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채팅 내역 중 아주 인상 깊은 부분을 저도 모르게 음독했다.

"와, 숨씨. 오늘 조깅은 발이 아니라 얼굴로 뛰었어? 오늘따라 더 못생겼네. 그래도 캠 킨 용기는 가상해서 좋다. 용기의 숨컷 이응이응."

"아 크크, 숨컷쉑 표정 보소. 구렛나루 바이크 뒷바퀴에 걸어서 풀악셀 밟아 버리고 싶네. 숨컷 구렛나루 모아서 만든 모피 입고 동물 보호 단체 앞에서 런웨이하고 싶다. 동물 보호 단체의 전문적인 관점으로 숨컷이 금수라는 걸 입증하고 싶다.

대담하게 짓궂다.

지금까지 보여준 얌전한 모습과 완벽하게 상반되는 악질적인 채팅이었다.

이중성이 탄로난 시청자와, 그걸 들춰낸 방송인의 눈이 마주쳤다.

"…."

"…."

"……."

"……."

어색한 침묵.

최재훈은 그 침묵 속에서 시청자A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얌전했던 시청자B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이 시청자만큼은 분명 악질이 아닌 숙녀이리라!

그렇게 믿었건만-

"홀리."

[ㅁㅊ ㅋㅋ]

[아니 얘가 걔였어? ㅋㅋ]

채팅 내역에서 코딱지를 향한 강력한 갈망이 느껴졌다.

그렇다.

시청자 B의 정체는 '동탄노인정청춘도둑엄상희'였다.

그녀는 정답을 맞히고 상품으로 코딱지를 요구했고.

최재훈은 줄 테니까 여기 SGF로 오라 했었다.

"아니, 이걸 진짜로 온다고…?"

최재훈은 소름이 돋은 팔을 들어 저도 모르게 콧구멍을 가렸다.

그 팔은 이미 SGF에 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은 뒤에야 내려갔다.

"…."

"…."

"…."

또다시 찾아오는 어색함, 을 넘어선 불편한 침묵.

최재훈은 시청자A에게 말을 걸며 그걸 깼다.

"오늘은 어때요?"

"…예?"

"오늘은 SGF까지 어디 부위로 걸어온 것 같아요?"

"어…."

"바로 답 안 나오는 거 보니까, 헷갈리시나 보네. 오늘의 저도 용기가 가상한 부분입니까?"

"아, 저, 그… 그게… 아니라…."

"선생님. 아니, 교수님?"

"에? 예?"

"교수님의 가설 입증에 제 구레나룻이 절실하게 필요하신 듯한데. 어째, 지금 뽑아가시렵니까?"

"…."

최재훈이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얼굴이 가까워진 만큼 얼굴이 더더욱 붉어진 시청자A가 끝끝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최재훈의 눈이 다음 사냥감을 응시했다.

그가 몸을 흠칫 떨은 시청자B 에게, 똑같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

"예?"

"가져가세요. 상품."

"어…."

"가져 가라고!!!"

"…."

안절부절못하며 얼굴을 뜨겁게 달구던 그녀가 끝끝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고개숙인 여자가 된 둘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최재훈은-

"갈!!!"

무기이자 갑옷인 익명성을 잃고 헐거 벗겨진 악질 시청자.

"왜 답이 없어!!! 꼭 바이크로 뽑아야 되는 거야!? 그럼 바이크 어딨어! 지금 당장 갑시다! 내가 당장 용기 있게 얼굴로 걸어가 줄게!!! 아 참! 코딱지! 코딱지 줘야지! 왜 안 가져가는 거야? 이리 줘 봐-

최재훈이 시청자B의 손을 잡아, 새끼손가락을 들게 했다.

그리곤 그대로 자신의 콧구멍에 가져가려 하자-

"히이익!"

여자가 기겁을 하며 손을 뺐다.

"히이익!?! 히이이이이읽!!?!?!?!? 아니 무엇이지!?!!?! 이걸 원하던 게 아니었나!?!!?!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세이 슴띵!"

그동안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던 최재훈이 분노가 한동안 이어졌다.

아주 유쾌한 분노가.

이는 시청자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다.

재미적인 면은 차치하고, 이미지적인 면에서 말이다.

분명 악질 A, B의 채팅엔 악의나 적대감이 담겨있지 않다곤 하나.

자칫하면 불쾌하다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무례함이 담겨 있었다.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에선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게 느껴진다.

온라인에선 대담하게 무례한 시청자의 초라하다고 할 수도 있는 실체는, 방송인으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 낼 여지가 충분했다.

경멸 혹은 실망.

실제로 방송인들을 비롯해서, 팬을 보유한 유명인들 사이에서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실제로 만난 팬을 표면상으론 평범하게 대하지만. 유명인인 자신에 비한 초라한 그들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경멸이나 멸시를 드러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말이다.

하지만 최재훈은 그런 그녀들을 방송에서 시청자 대하듯 차별 없이, 유쾌하게 대했다.

항상 눈을 빛내고 트집 잡을 거릴 기다리는 일부 불편충들조차 가식이나 내숭을 일절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일반인은 감히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외모와 분위기를 가졌지만, 마치 동성 친구처럼 털털한 성격 때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숨컷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여실히 부각 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오늘 SGF에서 막 유입되어 아직은 숨컷에 대해 잘 모르는 신규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작용했다.

최재훈이 시청자 A, B를 만난 동안.

그의 팔로우 숫자는 무려 2천이나 상승했다.

현재 그의 시청자는 8, 500명.

기존 시청자를 4천이라 치면, 신규 시청자가 4, 500명인 건데.

그중 절반이 다음에 또 숨컷의 방송을 볼 의향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엄청난 성과였다.

[아니 ㅋㅋ 하는 거랑 달리 쌉악질이었네 ㅋㅋ]

[ㄹㅇ ㅋㅋ 키보드 잡았을 때랑 왜 이리 딴판이냐고]

[집에 고양이 키우고 있는 거일 수도 있음]

[나 판산데 고양이가 친 채팅은 인정한다]

[사실 유희라서 키보드를 잡는 순간 또하나의 인격이 해방되는 거라면?]

"앞으로는, 예!? 좀 살살 합시다! 정 까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으면 후원으로 하던가."

"넵!"

"그리고 선생님은… 하. 어떻게. 진짜 드려요?"

최재훈이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아뇹…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악질 난입 헤프닝은 불편해하는 사람 없이 좋게 마무리되었다.

시청자 A, B가 떠나고.

마침내 최재훈과 두 팬미팅 참가자만이 남게 되었다.

"하, 드디어…."

최재훈이 둘을 보며 쓰게 웃었다.

두 사람을 방치한 게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게다가, 둘 중 한 명은 다름 아닌 그 페이스라 추정되는 사람이었다.

최재훈이 생각하는 페이스의 시간은 금을 넘어서 다이아몬드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낭비하게 하다니.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그는 당장 사죄의 그랜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과엔 진심이 절절하게 묻어나왔다.

"아, 괜찮습니다!"

"신경 안써요~"

그에 두 추울 만큼 쿨하게 답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팬미팅.

최재훈은 아무리 말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멋쩍은 그 단어를 말하며 둘과 이린에게 손짓했다.

"일단, 좀 이동하실까요?"

사람이 미어터지는 SGF 회장 특성상.

한 자리에 죽치고 있으면 이동하는 관람객들에게 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이미 주변 사람들이 최재훈을 중심으로 모여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게임 잘하고,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귀여운 여동생까지 둔 완벽한 새끼는 뭔데 저 자리를 전세내고 있는 것이지?'

그들의 눈빛을 그렇게 해석한 최재훈은 즉시 무리를 이끌고 이동했다.

미리 알아봐 두었던 장소로.

리치TV 부스.

게임이 아닌 스트리머를 통해 업체를 홍보하는 부스이니만큼.

그곳엔 스트리머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스트리머들의 안정적인 방송을 위해 준비된 '스트리머 존'이 목적지였다.

스트리머를 위해 준비된 공간에서라면 한 자리에 죽치고 있다 해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비난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

그래서 그곳으로 이동하는데, 최재훈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설마… 날 따라오는 건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그때,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최재훈(22세/악마/ 자기 문 모기 생포해서 말라 죽을 때까지 저스틴 디버의 베이비 들려준 적 있음)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SGF에 있는 사람들 다 너 보려고 온 것 같은데?)

'리을리?'

(당연히 쌉구라지. 아주 그냥 지구인들이 다 너 보려고 태어났다고 하지 그러냐? 너 그거 연예인 병 초기야.)

'하긴.'

리치TV 부스는 SGF에서 가장 큰 부스 중 하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팬이라 따라온다고 보는 것보다.

목적지가 똑같이 리치TV부스라 따라온다고 보는 게 더 합당했다.

이내, 도착한다.

"오."

선행 체험 시간에 실컷 봐 두었던 소규모 부스와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리치TV를 상징하는 거대한 마스코트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테마파크의 입구 같았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펼쳐지는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소파가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라운지.

많은 사람들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핸드폰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방송 중이겠지.

다음은 널찍한 무대 근처를 배회하며 바쁘게 공식 행사 준비에 한창인 사람들.

그걸 또 찍고 있는 스트리머들.

그리고, 자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자체 진행하는 게 아닌.

리치TV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팬미팅의 주인공인, 리치TV 대표 초 대기업 스트리머들을 위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만 신성불가침 영역인 양 휑하니 비어 있는 게 얼마나 멋진지.

'나도 내년이면 저기에 낄 수 있으려나?'

최재훈이 자극받은 의욕을 불태우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오~"

그렇게 수십 개의 컴퓨터가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스트리머 존에 도착했다.

꽤 본격적인데.

최재훈은 들떠서, 사용 신청을 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있는 거로 보아, 따로 기다리거나 다른 장소를 알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저기, 실례합니다?"

최재훈이 아담한 창구를 지키고 서 있는 여성 담당자를 불렀다.

"어서 오세요!"

그러자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여성 담당자가 즉시 고개를 돌려 숨컷을 쳐다보더니-즉시 창구에서 나와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숨컷 님 맞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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