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최재훈은 남녀역전 세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요즘엔 '여자'들이 이따금 이성으로 의식되려 하는 수준이었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하는 요소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의 요소가 아닌 것은?
평생동안 당연스럽게 받아들인 경험과 지식으로 인해 생긴 편견과 상식은 쉬이 바뀌지 않는 법.
최재훈이 SMART CHOI로부터 전해 들은 제로제로의 새로운 방향성은 '야시꾸리한 게임'이었다.
그의 안에서 야시꾸리한 게임이란 여전히 남자들을 위한 게임이었다.
여자 캐릭터들을 알라깔라한 차림으로 내놓는 그런 게임.
그렇기에 이린의 걱정을 물리치고 출연을 흔쾌히 승낙했으며.
'이 인간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좋은 조건에, 숨컷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일임해 준 것이다.
그런 게임에서 남자인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져 봐야 얼마나 망가지겠는가?
(덜렁)
싶었는데-
'오, 솔레미오.'
이건 야시꾸리한 게임이 아닌 '야시꾸리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불안에 빠진 인간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기 마련.
그의 머릿속에 최악의 미래가 펼쳐졌다.
자신의 분신이 600억 게이머들 앞에서 왜곡된 찌찌를 드러낸 채 덜렁거리고 있는 미래가.
'오, 시발 모든 초월적 존재시여 제발 저에게 이 역경을 헤쳐나갈 용기와 지혜를 존나 주소서. 선착순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 종교 믿음. 22세 잘생기고 돈도 잘 버는 남자 스트리머 대기중.'
바로잡으려면 기회는 지금뿐.
지금, 확답을 들어놔야 했다.
자신의 분신이 아르곤 같은 덜렁이가 될 것인지, 아닌지.
그 확답에 따라 행동 방침이 달라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위약금을 지불해서라도 계약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
귀중한 선행 체험 시간을 사용한 홍보의 대가로 돈을 받긴커녕, 오히려 준다.
엄청난 타격이었지만, 그래도 덜렁이가 된 자신의 분신이 게이머들에게 퍼져 이미지가 조져지는 것보단 당연히 나았다.
안일했던 자신을 탓할 뿐이다.
[?? 머임 이 분위기]
[설마 이거 상의 안 된 거임?]
[서프라이즈파더뻐커]
[와^^ㅣ발!!! 개꿀잼 몰카!!! 샌즈 어딨어 빨랑 기어나와!!!]
[이건 몰카가 아니라 기습 수준인데]
[ㄹㅇ; 이 게임에 상의도 없이 캐릭터로 내놓으면 그건 사실상 사이버 암살이지]
개발자가 야시꾸리한 게임에 남성 스트리머를 캐릭터로 출시한다고 밝히자, 당황하는 남성 스트리머.
최재훈의 행동으로 인해 채팅창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이 분위기를 잘만 이용한다면 간단히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즙 한 방울만 보태면 뚝딱인 각이었다.
"어, 예? 네? 뭐, 머 네? 수, 숨컷 님?"
하지만 그 경우엔 스마트 최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불어, 홍보와 관련해서 자신의 신용이 바닥을 쳐 이후로 그 어떤 광고 수주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 아,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비쥬얼 쇼크가 너무 강렬해가지고 3초 정도 뇌사가 왔을 뿐입니다. 대표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이미 상의된 부분이 맞습니다."
[이걸 수락했다고?]
[진짜 이런 게임에 캐릭터로 나온다고? ㄷㄷ]
[ㅗㅜㅑ]
[이미지 괜찮겠누 ㄷㄷ]
최재훈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방송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살리면서, 최태이의 확답을 들을 수 있도록.
"그, 대표님?"
"네?"
"제가 게임을 하면서 느낀 문제점이 있는데요."
"아! 네!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즉각 피드백하겠습니다!"
"아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꿀꺽.
진지해진 최태이의 시선이 최재훈의 손가락을 따라가-아르곤의 가슴으로 향했다.
"얘네요."
"…네?"
"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캐릭터 디자인 다 이런 식이죠?"
"아, 그…."
눈앞에서 최재훈 같은 미남이 이렇게 대놓고 왜곡된 성욕을 지적하자.
숫기 없는 게임 개발자 최태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당황한다.
"아,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제 가슴을 보세요."
"…네?"
툭툭.
아직 자신이 가진 파괴력을 완전히 자각하고 있지 못한 최재훈.
그가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에 최태이는 화들짝 놀란다.
펑퍼짐한 후드 차림엔 색기라고는 1도 없었으나, 최재훈 같은 남자가 면전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데 당황하지 않을 여자는 많지 않았다.
채팅창에선 능글거리는 시청자들도 바로 앞에 데려다 놓으면 마찬가지일 터였다.
"보고도, 뭐가 문젠지 모르시겠습니까?"
"어…."
당황해서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최태이에게 밀어붙인다.
아르곤의 가슴을 가리키며-
"남자의 치킨텐더는… 이렇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덜렁)
"숨 쉴 때마다 덜렁거리지도 않습니다. 아니, 무슨 폐나 심장도 아니고. 가만히 숨 쉬는데 왜 계속 위아래로 덜렁입니까. 존슨 경께 그런 재주는 없습니다. 한 길만 걸어오신 분이세요."
"아, 그…."
"지금 이 자리에서 남자의 신체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광기를 멈추길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건 3D고 이건 2D인데요]
[ㄹㅇ ㅋㅋ 종족이 다른데]
[아 2D에선 이게 맞다고~ 니가 그래서 우리보다 2D 잘 알아?]
[뭣도 모르면서 3D는 좀 짜져 계십쇼]
[2D에서만이라도 우릴 냅둬!!!]
[그게 뭐가 문제점이야 ^^ㅣ발 이 게임의 유일한 장점인데]
최재훈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번갈아 살피며 우왕좌왕하던 최태이.
"아."
이내 최재훈의 의도를 눈치채곤 입을 연다.
"그, 지극히 맞는 말씀이십니다. 남성분의 입장에서 불쾌하신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제로제로는. 보시다시피-"
여성 분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저희는 새로운 방침을 고수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 역겹도록 숭고한 의지에 분위기가, 제로제로에 대한 호감도가 최고조에 달했고.
그리고 지금부터 분기점이다.
최태이가 이 상태에서 끝낸다면, 숨컷(캐릭터)은 덜렁이가 되는 것이며.
말을 덧붙인다면?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적으로! 숨컷 님의 캐릭터에 관해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할 생각이니, 다들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회사 돈 못버네]
[ㅉㅉ 쓰레기련들 무슨 상상한 거지 (지갑 닫으면서)]
[당연히 이럴 줄 알았지 ㅋㅋ (통곡하고 팬티를 찢으면서)]
[기대한 흑우 없제? (훔쳐온 아빠의 지갑을 돌려다놓으면서)
최태이는 최재훈의 걱정보다 상식적이며,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와중에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제로제로 부스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체념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이 구석진 자리에서 자신들은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
그런데 지금, 제로제로는 SGF의 중심에 있었다.
그 모든 게 이 남자, 숨컷 덕분이었다.
사장되어 썩어가던 자신들을 끌어내 빛을 보게 도와준 은인!
그런 은인의 분신을 덜렁이로 내놓는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안에서 숨컷의 캐릭터 컨셉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구원자.
버려진 약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순결하고 성스러운 구원자!
그게 지금 최태이 안에서 최재훈의 이미지였다.
조금의 상스러움도 묻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생각을 엿본다면 [안 팔리지 않을까?] 라는 합당한 의견을 내놓을 테지만.
지금의 최태이에겐 들리지 않는다.
눈앞에서 시체를 살리는 기적을 묵도했다!
이미 그녀의 안에서 숨컷은 하나의 종교였다.
그런 숨컷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휴.'
최악의 미래를 최선의 미래로 바뀌었음을 확인한 최재훈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일할 차례였다.
사실상 자신을 대주주로 임명한 거나 다름이 없는 이 게임을 키우는 게, 곧 그의 지갑을 키우는 일이었다.
방송인으로서의 커리어와 함께.
"자, 그럼 계속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홍보에 임했다.
"으아악!!! 적당히 덜렁거려 조까튼 새끼들아!!!!!"
[ㅈ 같은 새끼들이 아니라 ㅈ 그자체인 데요]
[ㅈ들아! 가 맞는 표현입니다]
[이 방송 좀 선정적이네 ㅇㅇ;]
[괜히 19금 걸린 게 아니었네요]
덜렁이가 하나둘 늘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쨌거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제로제로에 대해서도 그렇고.
숨컷이란 방송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그가 보여주고 있는 영향력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 * *
최재훈은 제로제로 방송을 위해 19금 제한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보통 같았으면 19금 제한은 시청자들에게 크나큰 결점으로 다가오지만.
[SGF 선행체험으로 제로제로 리뷰, 야겜 아님(아마)](19세 제한) 지금은 오히려 호기심을 돋우는 요소로 작용했다.
저 제목에 19세 제한이 걸려있는 걸 보고도 어떻게 안 들어올 수가 있겠는가.
현재, 리치TV 커뮤니티에선 그에 대한 이야기뿐이었고.
다른 게임 커뮤니티에선, 숨컷과 제로제로가 한 데 묶여 관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선행 체험으로 SGF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플랫폼의 초대기업 방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는 것이다.
"아, 이거. 진짜 잘 만들긴 했는데요?"
최재훈을 수많은 덜렁거림 속에 빠뜨려 놓고도 그런 반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제로제로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었다.
"크, 난이도 디자인. 쫀쫀하다 진짜."
"아! 이 디자인에 담긴 철학을 아시겠어요!?"
"어썸하네요."
초보자에겐 쾌감을! 숙련자에겐 만족감을 주는 난이도 디자인.
익숙하면서도 특색 있는 시스템.
모든 게 절묘했다.
거기에 양심 있는 과금 모델까지.
"솔직히 이 정도면 호불호 안 갈리는 수작 반열에는 드는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보는데 재밌어 보이긴 하네 ㅋㅋ]
[지금 다운 받아서 해 보는 중인데 ㅆㅅㅌㅊ]
[ㄹㅇ 일러스트 이렇게 안 해도 흥했을 것 같은데?]
일러스트 이렇게 바꾸기 전엔 관심도 없었잖아!
야속함을 느끼기도 잠시.
제목 : 지금 SGF 중계 보는데
내용 : 이거 물건이네 ㅋㅋ
옛날 라티안 전기 ㅈ망하기 전 폼이 보이는데?
ㄴ : 그거 만든 애들이 최자매잖아
ㄴ 글쓴이 : 최자매가 뭔데 씹덕아
ㄴ : 그 라티안 전기 다 키워놓고 나간 애들
ㄴ : 나간 게 아니라 정치싸움에서 져가지고 권고 퇴직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ㅋㅋㄴ 글쓴이 : 캬 ㅋㅋ 라티안전기가 잃어버린 근본이 어딨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커뮤니티의 반응을.
[실시간 랭킹 TOP 10]
1. ZERO ZERO [SMART CHOI]
그리고, 모바일 스토어의 실시간 랭킹을 확인한 최 자매는 과장 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실시간 1위도 1위지만-
2. 라티안 전기 [M HIGHER]
온갖 대형 PC, 콘솔 기대작들이 즐비한 SGF에서 모바일 턴제 게임은 비주류에 속한다.
지금 SGF의 모든 게이머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건 명확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그렇기에, 그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정식 개장 전까지 끌어모은다면.
후발주자.
라티안 전기는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어쩌면, 앞으로 SGF가 진행되는 3일 동안.
어쩌면 평생 동안!
그 경우, 증명되는 것이다.
결국 틀린 건 자신들을 부정하던 한유리였다는 사실이.
결국 옳은 건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이!
끝끝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을 때의 성취감.
틀린 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였음을 깨달았을 때의 통쾌함!
끝자락에 닿았을 뿐인데도 짜릿했다.
저 실시간 랭킹이 12시까지만 유지된다면, 그 두 가지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제발 이대로만 가자!
"아, 썅! 신캐 또 기어 나왔네! 그만 좀 쳐나와!!!"
[ㄷㄹㄷㄹ]
[덜하]
최 자매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며, 존경스러우며,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듯.
마치, 신실한 신도가 신을 올려다보듯!
최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아니, 급한 일 얘기입니다. 저 숨텃-"
"숨컷이요 팀장님."
"뭐가 됐던, 저 사람한테도 좋은 얘기니까. 좀, 불러 주십쇼. 예?"
지긋지긋한 얼굴이 보였고.
"저 인간이 왜 저깄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하…."
무례하다.
이린이 한유리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
그렇기에 최재훈과 접촉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아니, 중요한 일 얘기라니까요?"
그런데 저렇게 나오면 어쩔 수가 없다.
최재훈이 알고, 판단해야 할 일이 되었다.
"예? 아."
최재훈이 이린의 시선을 캐치했다.
"여러분. 보니까, 게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으니. 지금부터 잠깐 동안 QNA 시간 갖겠습니다! 곧 인기 게임 돼서 뵙기 힘든 분이 되실 우리 개발자 님께 직접 질문할 기회! 지금 아니면 잡기 힘든 기회니까, 잘 잡으세요!"
[해석 = 후원해서 질문 채택률 높이라는 말]
"해석, 후원해서 질문 채택률 높이라는 말. 아~ 아주 바람직한 음해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우리 최 대- 아? 아, 최희이 개발자 님!"
"아, 안녕하세요! 뭐든 물어봐 주세요! 뭐든 답해드리겠습니다!"
[리만 가설 풀어주세요]
[비트맥스 종목좀 꼽아주세요]
[삼전에 언제 들어갈까요]
[국제 증시 전망이 어떤가요]
[남친이랑 싸웠는데 어떻게 기분 풀어줄까요]
[결별 통보]
[입원 소식]
[^^ㅣ발련들아]
[우린 ㅈㄴ 추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혼자만 안에 계신가요? 게이머들 상대로 갑질하시는 건가요?]
"…예?"
자칫 방송의 흐름이 끊길 수도 있는 상황.
이린은 능숙하다 못해 완벽하게 대처하는 최재훈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숨컷 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아, 예."
그의 뒤로 불안한 낌새를 느끼고 자신 대신 최희이를 자리에 앉힌 최태이가 따라나섰다.
"그쪽은 왜…."
한유리가 못마땅해하며 최태이에게 툭 내뱉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 나누십쇼."
"아니~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나. 최태이 씨~ 아니, 최 대표가 불러드려야 되나? 큰일 났네. 대표가 됐는데 여전히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옛날의 최태이- 아니.
잠깐 전의 최태이만 됐어도 저런 한유리의 무례한 태도에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자존감은 지난 몇 년간 한유리에게 혹사당하며 소모된 상태였다.
"그러게요. 팀장이 되셨다고 들었는데, 진짜,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하지만, 숨컷을 만나고 짧은 시간 동안 그 소모된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최태이의 반항적인 태도에 한유리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란 게?"
심각해지려는 분위기에 최재훈이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었다.
한유리는 최태이를 노려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최재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숨컷 씨,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한유리가 최재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상당한 외모.
하지만 그녀에게 '인터넷 방송인'들이란 운 좋게 얻어걸린 딴따라 양아치에 불과했다.
아무런 노력도, 생각도 없이 살다가 방송 켰더니 운 좋게 거액을 벌어들이는 사회의 기생충들.
같잖을 따름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숨컷의 도움이 필요했다.
'세상 참 말세야.'
내키지 않지만 정중하게 최재훈을 대했다.
한유리가 잘하는 것이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M HIGHER 라티안 전기 부의 개발 기획 팀장, 한유리라고 합니다."
최재훈이 그녀가 정중하게 건넨 명함을 받으며 답했다.
"아… 반갑습니다. 전 방송 하고 있는 숨컷, 최재훈이라고 합니다. 무슨 용무로 절 찾아주셨는지?"
"바쁘신 것 같으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숨컷 씨에게 좋은 제안을 드릴까 합니다."
"아, 어떤, 제안을 말씀하시는지?"
"저희랑 같이 일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