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한유리
김경훈은 황급히 SGF로 향했다.
기어코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마저 마치고 말이다.
마치 귀족처럼 여유롭다고 해야 할까, 고집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거만하고 미련하다고 해야 할까.
도착하는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한 줄.
선행 체험 자격으로 그걸 무시하고 곧바로 SGF에 입장하자, 엄청난 우월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치TV에 들어가 검색한다.
[SGF]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방송.
[제로제로 시연시연 가자가자]
숨컷의 방송.
[시청자 56, 341]
시청자.
현재 SGF 키워드에서 1등인 숨컷의 방송과, 2승 방송의 격차는 엄청났다.
2등은 현재 1, 373명.
SGF에 들어와 있는 이와, 들어와 있지 못한 이의 차이였다.
자신은 SGF에 들어와 있었고 그렇기에 다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김경훈은 선뜻 방송을 켜지 못했다.
현재 저 2등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 버린 것이다.
엄습하는 불안감.
그리고 짜증!
김경훈은 즉시 허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어, 경훈아 도착했어?
"뭐하는 건데! 애초에, 저 새끼 어떻게 방송 켠 건데!!! 파트너십 안 해 줬다며! 어떻게 방송 키고 자빠진 건데!"
-따로 홍보 맡길 업체를 구한 것 같더라고.
"하, 딱 하루 전에!? 어떻게!? 아, 몰라. 관심 없으니까. 빨리. 어떻게 해 봐. 나 지금 방송 켤 거니까."
-뭘 어떻게 해.
"방송 끄던가, 정지시키던가!"
-…그건 지금 좀 힘들어.
"왜! 아~ 명분이 없다고? 그럼, 잠깐 방송 오류 걸리게 해서 재접속하게 만들고, 그때 방송 은신 걸어 버리면 되잖아. 그러면 문제없는 거 아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선행 체험은 입장권-I와 같이 주최측에서 참가 업체를 위해 준비한 특혜였으며.
입장권-I와 달리, 특정 업체에게만 지급됐다.
대형 업체에게만.
그러니만큼 그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이는 더더욱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옐로TV에 한 명.
미튜브에 두 명.
아메리카TV에 한 명.
그리고 리치TV에 한 명 있는 상태였다.
어림잡아, 현재 게임계의 관심 1/5이 숨컷에게 향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명분 없이 숨컷에게 부당한 처분을 내린다면?
그대로 업계에 부당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될 터였다.
그렇다면, 시스템 오류를 빌미로 한다면?
그 경우엔 더 나빴다.
시스템 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무능한 이미지가 각인될 터였으니.
평상시처럼 리치TV 내부만의 상황이었다면 감당이 가능했겠으나.
지금은 외부의 관심이 너무 많이 향해져 있었다.
대외적인 이미지 손실은 허나이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지금 숨컷은, 허나이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입장권-I는 몰라도, 선행 경험은 도대체 어떻게?
리치TV 부스의 책임자인 허나이쯤 돼야 입수하여 양도 가능한 물건이었다.
숨컷에게도 뒷배가 있는 건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허나이로선 숨컷에 대한 평가를 대폭 조정하고, 그만큼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행동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뿐더러.
더이상 그러한 행동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
무력감에 몸서리치는 것은 김경훈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허나이조차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김경훈을 더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
-…미안, 오늘은 그냥 하자.
뚝.
"시발…."
김경훈은 홧김에 방송을 켰다.
숨컷, 그 멍청한 새낀 지금 선행 체험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별 잡스러운 게임을 하고 자빠졌으니.
게이머들이 SGF에 기대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마냥 새로운 게임이면 다 좋을까?
그럴 리가.
이미 검증된 회사, 혹은 시리즈로.
개발 단계에서 이미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끌어모았던 대형 기대작들.
그걸 원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그걸 방송하면 자연스레 자신의 방송으로 넘어오리라.
김경훈은 제딴엔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현재 운영되는 부스 중, 가장 큰 부스 중 하나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경후니입니다! 짜잔~ 깜짝 놀라셨죠? 예~ 운이 좋게도! 먼저 방송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서만 사용하겠습니다! 그렇게 가장 먼저 방문한-"
커뮤니티에 게시글로.
그리고 숨컷의 방송에 후원으로.
김경훈이 대형 기대작을 플레이 중이라는 소식이 퍼졌다.
김경훈의 방에 엄청난 속도로 시청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금세 쌓인 시청자.
김경훈의 판단은 옳았다.
게이머들이 SGF에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좋을 회사의 게임들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알 회사의, 시리즈였다.
그게 아니여도, 더욱 유명한 게임을 선택하길 마련.
김경훈 방송의 시청자.
(62, 154명)이었다.
반면에 최재훈의 시청자.
(74, 137명)
SGF에 관한 김경훈의 판단은 옳았다.
그런데도 결과가 틀린 이유.
단순하다.
이건 SGF +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초 인기작을 플레이하는 김경훈의 방송보다.
아무래도 좋을 잡스러운 게임을 플레이하는 숨컷의 방송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 재밌었으니.
그렇게 김경훈은 숨컷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또다시 패배했다.
정작 숨컷은 신경 쓰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철저한 패배였다.
김경훈이 숨컷을 신경 쓰느라 헛발길질을 거듭할 때.
숨컷.
다른 이들 따윈 신경 안 쓰고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그는, 거침없이 치고 나갔다.
그의 미튜브 구독자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팔로우 수와 함께.
* * *
모바일 게임 '턴제 장투' 장르 1위.
다름아닌 M HIGHER의 라티안 전기였다.
M HIGHER는 이번 SGF에 당연히 참가했으며.
한유리는 이번 라티안 전기 부스의 책임자로 발탁되었다.
그녀의 노력과 능력이 맺은 결실이었다.
그 노력과 능력은, 정치였다.
사내정치로 최 자매의 공을 가로챈 결실.
라티안 전기는 최 자매가 한유리에게 뺏겨버린 자식이었다.
물론 한유리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둘의 상사였던 한유리는, 라티안 전기를 만든 게 자신의 공이라 여겼다.
자신이 그 둘을 이끌었기에!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둘은 은혜도 모르고.
주제도 모르고.
대가리가 굵어져서는 바락바락 자신에게 대들었다.
한유리는 생각했다.
이 둘에게 주제를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고.
그렇게, 둘은 한유리의 사내정치의 희생양이 되었고.
극도의 배신감에 퇴사를 결정한다.
이봐라.
결국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러게 왜 주제도 모르고 설쳐서.
한유리의 뜻대로 최 자매가 퇴사한 이후.
라티안 전기 팀은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적응과정일 뿐이다.
둘을 죽이는 데 신나서 동참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또 그립다는 년들.
그렇게 그립다니 곧 따라가게 해 줄 것이다.
퇴사한 그 둘이 회사를 차렸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녀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언젠가부터 느끼고 있었던 걱정.
그 둘이 자신이 없는 곳에서 성공하면,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당연하다.
최자매 이후로 들어온 이들이 일을 꽤 잘했다.
한유리는 라티안 전기와 함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번 SGF는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만큼 준비는 완벽해야했다.
"한 번 더 확인해."
"저기 디자인 누가 담당한 거야?"
"쯧,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말해줘야 하나. 니들은 나 없이 할 수 있는 게 뭐냐 도대체?"
SGF 개장 전.
한유리는 달달 볶은 커피콩으로 우린 커피를 마시며, 부하 직원들을 달달 볶고 있었다.
"어… 팀장님?"
"응?"
"문제가 좀…."
"뭐?"
한유리는 즉시 다가가 그 문제의 것들을 확인했다.
먼저, 실시간 랭킹이 문제였다.
한참 동안 SGF를 위해 준비해 온 라티안 전기였다.
SGF에서 대규모 업데이트를 발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달 전부터 꾸준히 홍보와, 파격적인 이벤트로 속되게 원기옥을 모으고 있었다.
순조로웠다.
몇 주 째 유지되고 있는, 모바일 스토어 '턴제 전투 게임' 장르 랭킹 1위가 그 증거였다.
그런데, 방금 그게 깨졌다.
실시간 랭킹일 뿐이었으나. 지금은 SGF 진행 도중.
SGF 진행 도중의 실시간 랭킹은, 단순한 실시간 랭킹이 아니다.
향후 1년을 결정지을 SGF가 진행되는 3일을 결정지을 지표였다.
그걸 위해 근 몇 달을 공들였는데.
그 노력이 당일날 갑작스럽게 위협받고 있었다.
한유리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사실-
"이런 미친…."
그 게임이 다름아닌 제로제로, 최 자매의 게임이라는 사실이었다.
실시간 랭킹 게임 이름 옆에 표시된 회사 이름.
SMART CHOI.
그 두 자매의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뭐, 어떻게 된 거야."
잠들기 전 검색해 보고 정말로 끝났다고 비웃었던 게 어젯밤 일이다.
오늘 내일 하는 게임.
이렇게 될 정당성이나 근거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한유리는 생각 끝에 그러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아, 오류네.
그게 아니면 납득이 안 됐으므로.
하지만, 부하 직원이 다음에 보여준 '문제'가 그걸 부정한다.
다음 문제는 커뮤니티였다.
모바일 게임 커뮤니티 전체가 제로제로 얘기로 한창이었다.
심지어, 라티안 전기의 커뮤니티에서조차.
"무슨 일인데 도대체…."
"그… 아무래도…."
"뭔지 알아?"
"아, 예… 뭔지 아는 건 아니고… 그 뭐냐, 여기 글들 보시면-"
커뮤니티 게시글에 제로제로와 공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키워드.
"숨컷, 이라고 있는데. 요즘 엄청 핫한 남자 스트리머거든요."
"나는 처음 듣는데?"
"아, 그. 레오레를 안 하시면-"
"아니, 모른다고."
어딘가 신나서 말하려던 직원의 말을 맥없이 끊어버린다.
"…아무튼 요즘 레오레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유명- 이 아니라. 좀 이름 나오고 있는 스트리머인데요. 이 사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얘가 뭔데? 얘가 뭘 햇다고."
"이 사람이 홍보를 해 줘서-"
"차혜지."
"-예? 네?"
"우리가 홍보 모델로 누구 썼는지 말해 봐."
"어… 테리요…."
한창 잘 나가는 인기 아이돌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멤버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니 말은. 그 숨텃인지 뭔지, 듣도보도 못한 스트리머가. 우리가 돈 탈탈 털어서 고용한 테리보다 유명하다는 거네? 숨텃인지 뭔지 듣도 보도 못한 딴따라 섭외했으면 돈이 반절은 뭐야. 1/10로 절약됐을 텐데. 그런데도 테리 섭외한 우리 회사가 개 병신이라는 거고?"
'…왜 또 나한테 지랄이야 미친년이.'
한유리의 화풀이 대상으로 발탁되는 짜릿한 경험의 주인공이 된 여자가 속으로 환희의 비명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한유리가 죄송해야 할 이유는 천 개는 더 알고.
자신이 죄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몰랐으나.
일단 진심으로 사과하고 봤다.
미친년은 무서워서든 더러워서든 피하는 게 장땡이었다.
그러자 그나마 화가 풀렸는지.
진정해서 말한다.
"그래서, 그, 걔가 뭘 어쨌다고. 진짜 테리보다 유명해서 그런 건 아닐 거고."
'알면서 그 지랄한 건가, 진짜 미친년이.'
"그… 숨컷이 지금 홍보를…."
"…."
"아니, 그러니까. 지금이요! 지금 SGF에서 홍보 방송을 하고 있다니깐요!"
"지금? SGF에서? 개장도 안 한 지금 말이지?"
"아니, 여기 좀 봐 주세요!"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답답해 뒤지기 일보 직전이 분명한 얼굴로 내민 핸드폰에는 리치TV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키워드 [SGF]로 검색한 결과.
최상단에 위치한 방송.
숨컷.
시청자.
"…."
한유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지금 얘 방송을 7만 명이 보고 있다고?"
실시간 시청자 7만 명.
인터넷 방송에 대해 잘 모르는 한유리조차도, 그 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진 잘 알았다.
가끔 그녀가 좋아하는 유명 아이돌들도 개인방송 비스무리하는 걸 하는데, 그때 시청자가 끽해봐야 수백에서 수천이었다.
그런데 7만이라니.
"이렇게 유명한 애를 그딴 년들이 어떻게 섭외한 건데?"
"아, 원래 이 정돈 아닌데. 지금, SGF에서 미리 방송하고 있는 것 때문에 버프 받은 것 같아요."
"아니, 그래서 그 미리 방송하는 건 어떻게 한 건데?"
"선행 체험인지 뭔가인지가 있다던데요…."
"아니, 어쨌든. 그딴 새끼들이 이런 애를 어떻게 섭외했냐고. 그 선행 체험까지 있는, 보증 수표를."
"저야… 모르죠…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쯧, 아는 게 뭐냐."
할 말이 많지만 가까이 티를 내지 않는 부하직원을 뒤로하고.
한유리는 생각에 잠겼다.
회사에서 이번 SGF에 들인 공이 얼만가.
그런데 유저가 유입돼도 모자를 판에,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보면 오히려 이탈되려 하는 분위기다.
이번 SGF에서 부진한 결과를 거둘 경우,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진다.
그런 자신의 실패를 통해 최 자매가 이득을 본다?
승승장구한다?
꽤 정확한 그녀의 직감이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숨컷.'
그놈이 문제였다.
"차혜지."
"네?"
"제로제로 부스 어디야."
차혜지가 한유리를 안내했다.
"이 상황이 재밌냐?"
"예? 아, 아닙니다."
왠지 신나서는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제로제로 부스에서는, 방송에서의 장면이 한창이었다.
"어, 팀장님!"
한유리가 성큼성큼 촬영 현장으로 다가갔다.
제로제로와, 겨우 제로제로 따위에게 섭외 받은 것들.
거리낄 건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런 그녀를, 잠깐 촬영을 숨컷에게 맡긴 이린이 막아섰다.
"거, 책임자가 누구 되십니까."
"지금 방송 중이십니다."
"급한 일인데, 먼저 저랑 대화 좀 합시다. 저 이런 사람인데."
한유리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린은 한유리의 무례한 태도에도 그걸 양손으로 정중하게 받은 뒤-
"지금 방송 중이니,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읽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곤 말했다.
한유리가 얼빠진 얼굴이 됐다.
그 뒤에서 차혜지가 통쾌함에 숨죽여 웃었다.
"아악, 시발!!!!!!"
그리고 최재훈은, 역겨움에 소리높여 비명 질렀다.
"아니 !!! 이게 왜 덜렁거리냐고!!! 이거 안 이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