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제로제로 3
그렇게 5초가 흐른 뒤.
다시 비처럼 쏟아지는 6만 명의 채팅.
[와 ㄷㄷ]
[이걸 단결하네 ㅋㅋ
[ㄹㅇ 이걸 아무도 안 치네]
[소름돋누]
[이 정도 되면 인정할 수 밖에 없네 ㅋㅋ]
[6만 명 중에 한 명도 모르는 명작 ㄷㄷ]
한껏 기세등등해진 채팅.
최재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바로 그겁니다."
[뭐가]
"지금 여러분들이 말씀하셨다시피, 이 게임은 개쌉듣보 게임입니다."
[뒤늦게 수습하는거보소 ㅋㅋ]
[이제와서 까봐야 다 티납니다 선생님]
[저희를 빙다리 핫바지로 보시는 겁니까?]
싸늘한 반응.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게임은 진짜 개 쌉 듣보 게임이라! 평론가 평이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평도 없습니다!”
그는 정말 당당했기에.
[? ㅋㅋㅋ]
"심지어!"
최재훈이 검색 사이트에 '제로제로'를 검색한다.
무수히 많은 검색결과.
그 중, 게임 제로제로와 연관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칼로리 제로.
어게인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제로로. 따위의 결과만 나온다.
"심지어!!! 너무 개 쌉 듣보라서!!! 플레이 한 유저도 없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 악평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 ㅋㅋㅋㅋㅋ]
[미친놈아니야 ㅋㅋㅋ]
[이 소리였누 ㅋㅋ]
[박형신은 말할 것도 없네]
[아니 ^^ㅣ발 ㅋㅋㅋ]
[잊혀진 명작이라며]
"잊혀진 건 맞잖아요. 이제 명작인지만 확인해보면 됩니다."
[아니 ㅋㅋ]
[진짜 잊혀져버린 거였누 ㅋㅋㅋ]
[논리적으로 매우 완벽하게 ㅈ같은 소리네요]
[도대체 이딴 개듣보겜을 어디서 들고 온 거야]
최재훈의 가히 기적적인 입 털기 능력에 시청자들의 감정은 어느새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격렬한 호기심으로.
여러 의미로 정신 나간 최재훈을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맞습니다, 여러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홍보입니다. 시청자 4천 명인데 파트너십 신청 빠꾸먹은 병신이라!
!! 입장권-I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이 투명드래곤 같은 게임의 홍보를 맡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입장권-I 때문에 이 홍보를 받아들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솔직히 궁금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뭔 지랄을 해야! 이렇게! 아주 존나 듣도 보도 못할 수 있느냐! 솔직히, 일부러 안 유명하게 만들려 해도 이 정돈 힘들 건데!!!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느냐!!! 궁금하지 않습니까?"
[ㄹㅇ ㅋㅋ]
[얼마나 못만들었길래 ㄷㄷ]
[망작계의 마스터피스]
"좋습니다, 여러분. 아주 좋아요.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것 같네요. 자 그럼. 이 신비롭게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을 개발한 개발사, SMART CHOI의 대표! 최태이 대표 이사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ㅉㅉㅉㅉ]
[스마트 초이는 또 뭐고 ㅋㅋ]
[회사도 듣보 ㄷㄷ]
[최태이 대표가 아니라 최태이 듣보 아닌가요]
채팅창에 올라오는 온갖 조롱성 발언.
최태이가-
웃었다.
오픈 당시에 아주 잠깐 반짝하고 완벽하게 게이머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졌었다.
종류가 어찌 됐든 관심을 받아 보는 게 얼마 만이던가.
종류가 어찌 됐든, 이렇게 격렬한 관심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구부정했던 자세는 펴져 있었다.
당장 죽을 것 같았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로제로를 개발한 최태이 듣보라고 합니다! 게임 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니, 처음 뵙겠습니다! 출시 6개월인데 게이머분들을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엌ㅋㅋㅋ]
[최태이 대표 아니고 듣보 ㅋㅋ]
[일류 ㄷㄷ]
[유쾌하누 ㅋㅋ]
아주 좋은 분위기.
최재훈이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자, 최태이 듣보님.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게임 소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예! 저희 듣보 게임인 제로제로는 놀랍게도, 모바일 게임에서는 흔한 캐릭터 수집형 턴제 게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중적인 장르를 채택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저희도 놀랍네요!"
"그러게요. 진짜, 놀랍습니다. 최태이 대표님?"
"옙!"
"대표 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까지 이 게임이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가감 없이!"
하….
진심이 느껴지는 깊은 한숨.
"첫 번째론, 광고 실패입니다. 예산 편성에 실패해서, 예산은 예산 대로 쓰고.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렸어요."
"아, 광고 탓이다! 좋아요. 일단 첫 번째니까,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ㅋㅋ 남탓 한 번까진 인정이지]
[(비장한 고양이 이모티콘)두 번은 없습니다]
[3진 아웃이 아니라 레드카드 제도니까 ㅇㅇ;; 다음 건 신중하게 대답하십쇼]
[아 ㅋㅋ 광고탓하려고 광고 조진것같은데]
"그럼 두 번째! 두 번째 이유는 뭐죠?"
하.
씁쓸하게 웃는다.
"게이머 분들의 니즈 파악에 실패입니다."
"아, 니즈 파악 실패라면 어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제로제로는 캐릭터 수집형 턴제 전투 게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캐릭터 수집형 턴제 전투 게임에서 결제를 하실 때, 어떤 점을 보고 결제를 하시나요?"
다양한 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 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답.
2위는 성능이었고 1위는-
"그렇습니다. 바로-"
디자인.
혹은 외모.
현재, 모바일 게임 랭킹 10위 내에 캐릭터 수집형 게임만 여러 개.
그 게임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수집 대상인 캐릭터들의 디자인이 '노골적'이라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어필하는 디자인.
일단, 대부분의 캐릭터가 이성 캐릭터인 것을 기본전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식 둥글둥글하면서도 선정적인 그림체.
그리고-
노출.
"저희는 정말 오만하게도! 그걸 무시했습니다. 저희 게임은 아주 잘 만든 게임이라! 그런 요소가 없어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런 치기 넘치는 생각을 가져 버렸죠."
"아… 제가 대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예. 그런데. 그런데, 결과는 무참했습니다. 게이머 여러분들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완전히 묻혀 버렸죠."
[아 ㅋㅋ 나 기억났다]
[ㄹㅇ ㅋㅋ 나도 기억남]
[그 여캐만 잔뜩 있고 일러스트 ㅈㄴ 반실사에 ㅈ같은 게임 ㅋㅋ]
[캐릭터들 하나도 ㅇ
"아, 경험자? 피해자분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최태이 대표님!"
"네."
최재훈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개선됐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진중하게-
끄덕.
[오 ㅋㅋㅋㅋㅋ]
[믿음직스럽누]
[믿어도 되는 겁니까?]
"네. 믿어 주셔도 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의 오만의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버렸습니다. 풀매출 땡겨서! 싹 다 갈아엎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부분에!!! 전부 투자했습니다!"
"아, 그 말씀은!!! 게임 회사인 주제!!! 예산 전부를 야한 그림이랑 목소리 사는 데 투자했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결연히 다문 입으로- 따봉을 내밀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크~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제게 대한민국 게임계의 미래를 보여주고 계시는군요. 눈이 멀 것 같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서!!!"
지금 이 곳.
외곽 중 외곽에 위치한 하꼬 중 하꼬인 스마트 최의 부스는, 한창때 중심 쪽의 부스 부럽지 않게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비록 현장에 있는 건 다섯뿐이지만-
(시청자 65, 316명)
"자, 그럼 여러분. 바로, 시연 들어가보겠습니다."
책상 위에 충전기에 연결된 패드가 놓여져 있었다.
최재훈은 그 패드로 방송을 연결시킨 뒤, 게임을 재생했다.
(ZERO - ZERO)
트레일러가 재생된다.
-마왕이 부활하며 세계는 전란이라는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흔히 판타지 세계라 불리는 유사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깔린다.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간족이 피워낸 찬란한 문명.
-마족이 기록한 끔찍한 역사까지.
-그럼에도, 그들의 전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들의 전투에….
말을 흐리는 여자.
동시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수려한 영상이 마침내 끝나며-
<참가하시겠습니까?>
창이 떠올랐다.
"크~ 이 회사, 트레일러 좀 치네요."
최재훈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와 ㅋㅋ]
[오우 뽕맛좀 줄줄 아는 새끼들인가?]
[트레일러를 이렇게 잘 뽑았는데 말아먹었다고? ㅋㅋ]
[이쯤되면 새로운 능력이 아닐까 싶은데 ㄷㄷ]
격렬한 반응!
옆에서 지켜보는 최 자매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흐뭇하게 지켜봤다.
"자, 그러면."
<참전을 환영합니다.>
<지휘관이여.>
<방황하는 전사들이 당신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임을 짊어지고 영광과 존경을 쟁취하십시오.>
그렇게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첫 등장인물이 나온다.
-새로운 지휘관인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군.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그쪽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를 뿐.
-내 존경을 원한다면, 먼저 입증하도록.
다부진 얼굴을 한 전사가, 고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ㅗㅜㅑ]
[퍄퍄퍄]
[10점... 10점이요...]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정도의 노출도를 가진.
정말 쓰임새대로 기능하는 건가 싶은 갑옷을 입고.
"…."
최재훈의 표정이 굳었다.
시청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 일러스트의 엄청난 미려함에 깜짝 놀란 건 아니었다.
그의 안에서 성적인 어필이 부각된 '캐릭터 수집형 턴제 전투 게임'은 당연히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한 편견으로 인해 잊고 있었다.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이 게임이, 어떤 성별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 건지.
이 게임의 야한 그림과, 야한 목소리가.
어떤 이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건지.
-으악!
전사가 일격에 당했다.
피를 흘린다.
흉갑이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무방비한 가슴이 노출된다.
[퍄퍄퍄퍄퍄]
[오빠 나죽어]
철저하게 이성의 시선에서 왜곡되어 성적으로 변형되고 어필된.
아주 아슬아슬하게 중요한 부위만 가려진.
남자의 가슴이.
"오, 할렐루야…."
최재훈 눈이 스르륵 감겼다.
마치 영면에 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