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제로제로 2
빠르고 과감하게 판단을 내린 최태이가 다시 패드를 회수해, 없는 것까지 털어서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러자-
"하."
최재훈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 되는 조건이었다.
제로제로는 모바일 게임에선 아주 흔한 장르인 턴제 전투 게임을 표방했다.
가챠 시스템이 존재하는 캐릭터 수집형 턴제 전투 게임.
최태이가 제시한 조건 중 가장 눈 여겨볼 만한 사항은 이러했다.
SGF 종료 직후, 곧바로 신규 캐릭터를 출시를 위한 작업에 착수하겠다.
숨컷을 모델로 한 상당히 준수한 디자인과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를.
그리고, 해당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는 특수 가챠를 만들고.
그 가챠 수익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지불하겠다.
수익 추정에 참고가 되는 자료를 보여주자-
"와우."
둘에게서 드디어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엄한 곳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여러분, 잠시만요."
최희이가 그녀를 불러내더니-
-미쳤어!?!
작게 소리친다.
-잘 안 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서는 가챠 매출이 곧 게임의 매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매출을 저 만큼이나 떼어준다니?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는 마당에?
대책 없는 행동.
광기였다.
그래.
광기.
최태이가 답했다.
"어차피, 이랬는데도 잘 안 되면 감당하고 말 것도 없이, 우린 끝나는 거야."
"…."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린이 거듭 물었다.
"예, 숨컷 님만 괜찮으시다면요."
괜찮다마다.
기쁨에 울부짖으며 팬티를 찢고 있는 걸 가까스로 참고 있엇다.
하지만-
최재훈은 알고 있었다.
스트리머인 자신에게,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그 수고를 하고 여기까지 와준 이 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더군다나 그 중 한 명은 페이스다.
최재훈은 둘에게 말했다.
"여러분?"
"네?"
"어떻게 할까요? 헤헤…."
그런데도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그 솔직한 모습에, 두 여자는 탈 안에서 피식 웃었다.
모름지기 진정한 팬이란, 무엇보다도 응원하는 상대가 잘 되길 원하기 마련.
더군다나, 본래 예정보다 세 시간은 빠르게 입장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흔쾌히 수락했다.
"크~ 누구야! 이렇게 쿨한 팬 갖고 있는 행운아 스트리머 누구야!"
말과 데스베이더가 연호했다.
숨컷.
숨컷.
좀비들도 연호했다.
숨컷.
숨컷.
그 이름을 외치지 않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여러 시선이 일제히 이린에게 향했다.
"…."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레절레.
그러자 다시 돌아오는 절레절레.
"…숨컷. 숨컷."
어쩔 수 없이 나오자마자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숨컷ON]
[숨하]
[방제 무슨 의미임?]
(제목 : 미래에서 왔습니다, 지금 SGF 안임)
"무슨 의미냐면요-"
이린이 눈치 좋게 회장의 중심부를 카메라에 담았다.
[ㅁㅊ]
[머선129]
[머임?]
[아직 개장 안 했잖아]
[어케 들어갔노 시발련ㄴ아]
[아니 이 ㅁㅊ새기 ㄹㅇ 무단침입했네]
[아니; 어제 현실 GTA 조지겠다는 게 그냥 한 소리가 아니였다고라]
[선생님의 오늘만 사시는 모습에 모든 게 무상하게 느껴집니다]
[적금 왜듬? 공부 왜함?]
[유해한 깨달음을 주는 방송 ㄷㄷ]
[(손 들고 질문하는 이모티콘) 다음 컨텐츠는 감방 체험인가요?]
[탈옥하면 삼만원]
예상대로 폭발적인 반응.
그리고-
(시청자 : 25, 132)
[와 뭐야]
[어케 벌서 입장함? ㅋㅋ]
[이 분 누구임?]
[아 이 사람이 숨컷임?]
[첨 보는 분이신데 ㄷㄷ]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가즈아ㅏㅏㅏㅏㅏ]
[뭐라도 ㄱㄱ]
예상 대로 폭발적인 시청자 유입.
최고 시청자 수를 갱신하는데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렇게 이윽고-
(시청자 50, 132명)
때가 온다.
"기존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규 시청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숨하. 다들, 제가 어떻게 개장하기도 전에 여기에 들어와 있는지 궁금하시죠?"
[ㅇㅇ]
[허가 받은 거 맞음?]
[들켜서 끌려나가면 레게노]
[어케 들간거임]
피식 웃는다.
"그런데, 솔직히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잖아요?"
[아 어케 알았지 ㅋㅋ]
[알면 전화번호 내놓으라고 아 ㅋㅋ]
[여친 있음? ㅋㅋ]
[레오레 골드2에 단풍이야기 코디에 50만원 쓴 여친 어떠신가요?]
[그래서 스리사이즈 먼데 ㅋㅋ]
[치킨 먹을때 뻑뻑살만 먹는 여자 어떤가요]
"어, 그건 좀 섹시한데. 아니, 이게 아니지. 아니, 시발. 어떻게 게임 궁금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니들 SGF 보러 온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ㅋㅋ]
[들어와 보니 다른 메뉴도 잘 하네 ㅋㅋ]
[이집 얼굴 잘 하네 ㅇㅇ;]
[미연시 마렵네요]
최재훈이 이마를 짚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 게임밖에 모르던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게이머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게임밖에 모르는이랑 위대한이라는 두 수식어가 공존할 수 있나요?]
[유대인 나치 같은 건가]
[리치TV 명예의 전당행 ㄷㄷ]
[그레이트TV ㄷㄷ]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그레이트 어게인]
"그만. 이노프. 충분띠. 이제 다들 그만 맘 편히 닥치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거-"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게임 시연 가겠습니다."
[캬 ㅋㅋ]
[어째서 눈물이...]
[아... 소난다... 나는 사실 게임을 원하고 있던 건가...]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게 내가 잃어버렸던 게이머의 영혼...?]
[칙쇼!!! 가자고!!!!!]
[I AM GREAT]
[병신들ㅋㅋㅋ]
[그래서 먼겜부터함?]
"아, 아주 좋은 퀘스천입니다. 무슨 게임부터 하느냐!"
[GTA7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라스트 오브 스카이3 ㄱ]
[라오스3 쳐내 ^^ㅣ발]
[대가리가 미스릴인가 절대안깨지누]
[레아블로5 가자]
[스팀펑크 1077 ㄱ?]
[단풍이야기 업뎃 확인좀]
[-단-]
[파이터 인 던전 신캐 먼지좀 확인해줘]
[-파-]
"아, 오케이. 접수 완료. 여러분이 진심으로 원하는 게임이 뭔지, 과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산출해냈습니다."
[그게 무슨 방법인가요]
최재훈이 가슴을 툭툭 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텔레파시."
[속보) 갈릴레이랑 뒷목잡고 사망]
[아직 살아있었누]
[일단 과학을 ㅈ으로 보시는 건 알겠습니다]
[문과가또]
[아 그래서 ㅋㅋ 함 말해 보셈 그게 뭔지]
[ㄹㅇ ㅋㅋ 헛다리 짚으면 뒤졌다]
[무슨 게임인가요]
"무슨 게임이냐!"
최재훈이 검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악평한 평론가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게임입니다."
[오 ㅋㅋ]
[평론가 별거 있나]
[평론가보단 평타지]
[진짜 ㅈ나근본없는 드립일세]
[단풍이야기 유저일듯]
[어~ 파던 유저야~]
이어서 중지를 들어올리며 말한다.
"그리고, 평론가뿐만이 아닙니다. 악평한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게임입니다."
[? ㅋㅋ]
[아니 그걸 어케 호응해 줘]
[선 넘네]
[또 또 뇌절하누]
그런 반응에 최재훈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화면에 호소한다.
"여러분, 진심입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제 모든 걸 걸고."
[???]
[머임?]
[ㄹㅇ임?]
"심지어, 박형신 평론가 님도. 이 게임에 악평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구라의 알싸한 향기가 나는데요]
[마지막으로 씼은 게 언제신지]
[오늘 무슨요일인데]
[세상에 맙소사]
[아니 그런 게임이 있음?]
[스펑이네 이거]
[콜옵이지 ㅄ아]
[린에이지 아닐까?]
[낄데 끼세요 린저^^ㅣ발]
[집 살 돈으로 집행검 사는 새끼들...]
[혈육 대신 혈맹부터 찾는 새끼들...]
[그래서 더 답없는 새끼들...]
최재훈이 게임을 극찬하며 기대치를 올리자.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명작을 거론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자신이 기다리던 작품을 바라보고 오늘만을 기다려온 시청자들이다.
그 기세는 다소 흉흉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요 도대체]
'그리 극찬한 게 내가 생각하던 그게 아니기만 해 봐라.' 라는 느낌.
최재훈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 동안 뜸을 들인 뒤, 말한다.
"여러분.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잊혀진 명작-"
최재훈이 손을 펼친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이동하며-
"제로제로입니다."
제로제로의 부스를 담았다.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들의 게임을 이렇게 띄워준 걸까.
그걸 알 방도가 없는 개발자는 일단 따봉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무안한 만큼 넉넉하게, 쌍따봉을.
[???????????????????]
[머요?]
[먼로?]
[에로에로?]
[야겜인가요]
[아니 그게 먼데 씹덕아]
갈고리가 난무한다.
[이거 머 홍보 받았나 본데 ㅋㅋ]
[근본없는거봐 ㅋㅋㅋ]
[이딴 겜이 잊혀진 명작이라고?]
[아니 ^^ㅣ발 이럴줄 알았다 ㅋㅋ]
불타기 시작하는 채팅창.
최재훈은 침착하게 손을 들어올린다.
"여러분, 전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쭈욱(이새기 코 늘어나는 소리)]
[이 사람 코가 대단하다]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부렁 씨부리십시오 선생님]
"그러면 말해 보시죠. 제가 무슨 거짓말을 한 건지."
[와 ㅋㅋ 뻔뻔한 거 봐]
[막나가누 ㄷㄷ]
[악평한 사람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ㅋㅋ 이딴 듣보 게임이]
[ㄹㅇ ㅋㅋ 나 태어나서 첨 들어봄]
[이딴 겜도 있었냐?]
[숨하다 추컷아...]
[홍보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면 누가 하냐 ㅋㅋ]
[ㄹㅇ 괘씸해서라도 안 하지]
"여러분. 정말입니까? 여러분 중, 이 게임을 아는 분이 단 한 명도 없습니까?"
[ㅇㅇ]
[아니 ㅋㅋ 나 진짜 첨봄]
[이 게임 아는 년 한 명도 없다에 내 찌찌 건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거는 거 아님?]
[그러면 내 직업 검]
[그것도 아무것도 안 거는 거 아님?]
[^^ㅣ발년이 진짜]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해보죠."
최재훈이 캠을 향해 손바닥을 폈죠.
"지금부터 5초 동안. 이 게임을 아는 사람만 아무 채팅이나 쳐 주세요."
놀라운 일이었다.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사용하고 있는 채팅창에, 정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