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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152화 (149/361)

152. 제로제로 1

SGF관람객의 동선과 관심도는 자연스레 회장의 중심에 집중된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게이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SGF의 자리 배치 기준은 아주 공명정대했다.

돈을 많이 낼수록 좋은 자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더 공명정대할 수가 있을까.

외곽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곧 돈이 적다는 것이오.

돈이 적다는 것은 곧 버는 돈이 적다는 것이었다.

최재훈에게 입장권-I를 지급하기로 한 업체는, 외곽 중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하꼬네."

최재훈이 입장권-I를 수령하러 가는 길.

제나가 툭 내뱉었다.

"하꼬 중 하꼬. 회사 이름이 뭐라고?"

"게임 이름이 제로제로 였던가?"

"인기도 제로, 매출 제로. 뭐 대충 그런 뜻인가.

"우리 클라이언트 님들 작작 욕하세요, 무슨무슨 죄로 고소하기 전에."

"아니, 진짜 개듣본데. 뭐 그딴 곳이랑 컨텍을 했어?"

"당장 입장권-I 못 구해서 인생 망할 판이었는데, 구해진 것만으로 감지덕지하지."

더군다나 선행 체험까지.

최재훈은 아직 실감이 안 됐다.

이렇게 엄청난 기회를 손에 넣다니.

모두가 이린 덕분이었다.

이린 더 라이트!

최재훈은 격정적인 충만함을 느끼고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기도를 올린다.

"오빠 뭐해. 500원이라도 떨어져 있어? 떨어진 500원 주우려고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생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려는 거야?"

"이 자리를 있게 해준 하느님과 그보다 위대한 우리 갓집자 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려고 한다, 덩상아."

"옆에 있는데 굳이 기도를 하게 만드는 지능을 준 하느님한테는 감사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차마 너무 거룩하고 빛이셔서, 감히 직시할 수가 없구나. 눈이 멀고 말 거야."

최재훈의 꼴값에 일행이 그와 이린을 번갈아 쳐다본다.

쪽팔림은 애꿎은 이린의 몫이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알겠으니까, 그만 일어나심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갓집자시여. 입장권-I부터, 선행 체험인지 뭔지까지. 갓집자께서 행하신 권능에 이 어린 양, 울부짖으며 팬티를 찢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의 신실한 종입니다. 이린교의 창설과 첫 신자가 되는 걸 윤허해주시겠습니까?"

"제발 좀…."

"새언니라 부르는 걸 윤허해주시겠습니까!"

자기한테 잘해주고, 오빠한테도 잘해주는.

이 언니가 마음에 드는 여동생이 분위기를 타서 내뱉은 말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새언니.

오빠의 부인을 이르는 호칭.

어지간해선 받기 힘든 여동생의 관계 공인에, 시기의 시선이 이린에게 집중됐다.

"하…."

그녀는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참는 듯.

"그렇게 감사해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거의 다 숨컷 님께서 하신 일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제엔장!!! 그만 겸손하란 말이야!!!"

"역겨우니까!!!"

겸손이 아니라 정말인데.

이린은 설명하려다가 탈을 쓴 두 시청자의 존재를 깨닫고 유예하기로 했다.

남이 들어서 문제 될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내부의 이야기가 외부로 퍼져나가서 좋을 건 없었다.

이내, 일행은 마침내 외곽 중 외곽에 위치한, 하꼬 중 하꼬인 제로제로의 부스에 도착했다.

"오… 몬가…."

최재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동생의 말 대로 제로제로의 부스는 몬가… 몬가였다.

부스의 협소한 규모와, 투자의 흔적이 전무한 심플한 디자인은 '우리 예산 조졌어요'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듯했고.

뭉쳐서 굽은 어깨와, 생기 없는 얼굴로 그런 부스를 지키는 두 개발자는 좀비 같았다.

똑같이 체크 남방과, 머리띠로 대충 머릴 넘기고, 뿔테 안경을 쓴 쌍둥이 좀비.

축제 분위기였던 중심의 부스들과 비교하면 이곳은 장례식이었다.

숨컷을 본 두 좀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상과는 달리 빠릿빠릿한 태도로 숨컷을 반갑게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숨컷 님 반갑습니다!"

거의 고개를 조아리는 수준으로 최재훈을 맞이하며 곧바로 입장권-I를 건넸다.

최재훈은 명찰 형태로 된 그것을 받아서 목에 걸고,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치 식민지의 사신이 종주국의 지배자에게 조공을 바치는 듯했다.

둘의 관계가, 정확히는 제로제로제로의 처지가 드러나는 그림이었다.

"자, 그럼."

최재훈은 두 팬에게 제나와 권지현도 함께할 거라 했었다.

하지만 상의한 바, 역시 그건 아니었다.

명색이 숨컷 팬미팅이니, 숨컷과 그의 팬들만의 시간이 되는 게 맞았다.

결국 팬미팅이 끝날 때까지 최재훈 크루는 개별활동을 하기로 했다.

권지현과 제나가 각기 제 갈 길을 갔다.

둘에겐 방송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다른 방송인들과 달리 공식 개장 전까지 회장을 미리 둘러보고 계획을 짜둘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특혜였다.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지 말고, 사람 없는 곳 가지 말고,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단 거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너무 자극적인 게임은 하지 말고, 사람 함부로 물지 말고-"

"마지막 건 벌써 어기고 싶은데."

아까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던 여동생도 오빠의 품을 떠났다.

남은 건 촬영을 도맡으며 방송을 보조해 줄 이린과 두 시청자뿐이었다.

김희은은 드디어 팬미팅다운 구성이 되었음에 크게 만족했다.

"두 분 준비 되셨나요?"

둘이 격렬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최재훈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이린에게 방송 시작 신호를 보내-

"어, 그런데…."

려던 찰나.

개발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거수하며 질문했다.

"아직 개장 안 했는데, 어떻게 벌써…."

최재훈이 선행 체험에 대한 설명을 하자 두 개발자의 눈이 커다래졌다.

* * *

최태이와 최희이 자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게임 개발계에 투신했다.

둘에겐 재능이 있고 열정도 있었다.

경력도 없는 상태에서 중소 게임사인 M HIGHER에 입사하는데 성공했고, 착실히 경력을 쌓아갔다.

업계에서 둘의 평판은 갈수록 높아졌고, 성공가도는 끊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둘은 정치엔 젬병이었다.

"야, 정신 차려. 좀 잘나가니까 니들이 무슨, 코지마 쉬데오나 토드 버그러버라도 된지 알아? 주제 파악해. 되도 않는 짓 해서 팀원들 고생 그만시키고."

상사인 한유리의 정치에 의해, M HIGHER에서 쌓았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빼앗겼다.

M HIGHER에서 쫓겨나다시피 뛰쳐나온 자매는 이를 갈며, 이를 기회로 삼자며 서로를 달랬다.

애당초 자신들과 안 맞았던 회사라고.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 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게 SMART CHOI는 설립되었고, 모바일 턴제 전투 게임 제로제로는 탄생했다.

넘치는 자신감.

보란듯 성공하여 한유리에게 복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제로제로가 출시되었고.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제로제로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출시 이후 한 번도 넘기지 못한 손익분기점.

마지막 기회.

둘은 이번 SGF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세태와 야합을 했다.

오직 게임성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던 그들은 게임에 '그것들을' 추가하여, 제로제로를 새 단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예산이 훨씬 초과해 버렸다.

결과.

새단장은 했는데, 새단장을 했다고 홍보를 할 돈이 부족하게 됐다.

돈이 녹아내리는 배너 광고, 광고 영상 제작은 꿈도 못 꿨다.

가까스로 참가하는 데 성공한 SGF의 부스는 초라했다.

남은 거라곤 입장권-I 하나뿐이었으나, 그 어떤 방송인들도 홍보 섭외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번 '새 단장'으로 바뀐 제로제로는 표면상, 상당히 저급한 게임이 된 탓이었다.

6개월 동안 파리만 날리다가 마지막 발악으로 세태와 야합한 게임!

그런 게임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줄 방송인은 아주 적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소규모 방송인들뿐이었다.

소규모 방송인들뿐이었으나, 그들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였고.

그나마 가장 덜 찬 밥을 골라 기대를 걸어 보려던 찰나-

숨컷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 뜨기 시작했으며, 아직 레오레에서만 유명한 그 이름을 두 여자는 몰랐고.

제쪽에서 먼저 다가왔기에.

당연히 그저 그런 소규모 방송인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숨컷에 대해 조사한 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현재 리치TV에서 가장 핫한 신입.

방송한지 한 달도 안 돼서 대기업에 입성했으며, 미튜브 구독자 10만을 앞두고 있는 초신성!

게다가-

"미친…."

남자다.

잘생겼다.

게임까지 잘한다.

이미지도 좋다!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돈이 있어도 데려오지 못했을 완벽한 인재가, 겨우 입장권-I 하나에!

두 여자는 무신론자였다.

허나, 숨컷의 메일이라는 종교적 경험을, 기적을 겪고 신을 믿게 되었다.

둘에게 숨컷은 구세주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 마지막 기회인 숨컷이.

다시 한번 더 기적을 일으켰다.

선행 경험이라는 기적을.

지금 그가 방송을 켜면, SGF 개장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리치TV 시청자들의 관심이 일제히 그에게 쏠릴 터였다.

그 시청자는 어림잡아도 최소 5만.

5만 명에게 실시간 방송으로 자신들의 게임이 홍보가 되는 것이다.

두 여자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놓쳐선 안 될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숨컷 님!""

절박함 가득 담긴 외침.

"네?"

"그, 저희 게임 홍보해 주시는 거죠?"

"예? 아, 네. 물론이죠."

"그 혹시… 지금 바로?"

"아. 지금은 먼저 진행해야 할 컨텐츠가 있어서요. 사실 제가 지금, 이 두 분하고 팬미팅-을 할 예정이라. 예, 그렇습니다. 제가 보시다시피 쌉 월클이라 팬미팅 같은 것도 합니다. 하하."

긁적.

"뭐 아무튼. 일단 돌아다니면서 이분들이 원하시는 게임 위주로 플레이하고, 준비해 둔 팬미팅 일정 끝내고 그때 와서 홍보할 생각이었습니다."

준비해 둔 그 일정이 뭔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때면 이미 선행 체험이 끝나고, SGF이 정식 개장된 이후일 것이라고.

사람이란 게 참으로 신기하다.

숨컷이 홍보를 맡아준 것만으로도 두 여자는 더이상 바랄 게 없었는데.

지금 그 '더이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으니.

둘은 최재훈이 방송을 켜자마자 자신들의 게임을 플레이해 준다면.

그 수만 명에게 자신들의 게임을 먼저 각인시켜 준다면.

뭐든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 낌새는 눈치챈 홀스우먼과 데스베이더가 두 좀비를 노려봤다.

무기질적인 시선이 싸늘하게 박힌다.

괜히 정치를 못하는 게 아니다.

둘의 성격은 상당힌 내성적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저 시선을 버티지 못했을 터!

허나,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기 마련이었다.

둘은 가까스로 시선을 이겨내고, 최재훈에게 말한다.

"그, 숨컷 님?"

"네?"

"가능하다면 방송을 켜자마자 저희 게임을 홍보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 당연히! 그냥 부탁드리는 건 아닙니다. 잠시만요!"

최태이가 패드를 가져와 조작한 뒤 최재훈에게 내밀었다.

SMART CHOI가 그에게 줄 보상이었다.

최재훈이 방송을 키자마자 곧바로 제로제로를 홍보해주는 대가로써.

선행 체험이라는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기회를 제로제로라는 검증 안 된.

모든 방송인들이 마다한 컨텐츠에 투자하는 위험비용에 대한 대가로써.

최재훈이 다가온 이린과 함께 그걸 확인하더니,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애매한 반응.

최재훈의 입이 열-

"잠시만요!"

리기 전에 최태이가 다급히 패드를 가져왔다.

나머지.

그러니까, 있는 것 죄다 털어서 테이블에 마저 올려놓곤 다시 최재훈에게 건넨다.

"음…."

여전히 시원찮은 반응.

SMART CHOI는 지금 빈궁했다.

있는 것 죄다 터는 정도론 안 됐다.

빠르고 과감하게 판단을 내린 최태이가 다시 패드를 회수해, 없는 것까지 털어서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러자-

"하."

최재훈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 되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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