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Seoul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최재훈이 중학생에 되던 해, 그의 부모는 부쩍 바빠지기 시작해 더 이상 아침 식사를 비롯해서 가사를 책임질 여유가 사라졌다.
최재훈은 자신이 그 책임을 떠맡기로 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다고 반성하며.
그때부터 그의 기상시간은 상당히 앞당겨졌다.
등교까지 해야 했기에, 어지간한 일반 가정의 부모들보다 빠르게 하루를 열었다.
그 생활은 자취하기까지 이어졌다.
욕구가 생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날이었다.
마음껏 자고 싶다는 욕구가!
그렇게 최재훈에게 생긴 지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게 짜세'
그에 따라, 그의 자취집 BGM 리스트에 알람 소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오늘처럼 아침 일찍부터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었다.
띠띠-
탁!
알람이 울리자마자 오빠는 곧바로 상반신을 일으켜 알람을 껐다.
자칫 침대 위에서 새근새근-
"커어어어-푸우우우-키이이익-커어어어-"
아니, 매우 씩씩하게 자고 있는 여동생이 깰까 봐.
우렁차게 코 고는 모습을 보니 바로 옆에서 메탈리카가 콘서트를 열어도 코고는 소리를 이어가며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오빠의 걱정은 무의미했다.
"…."
이불을 걷어차고 대자로 뻗어 있는 여동생은 천 조가리 빤스 한 장만 달랑 걸친 모습이었다.
온 동네 감기 바이러스들의 입주 신청을 받고 있는 그 모습에 오빠는 에휴, 한숨을 쉬며 이불을 덮어줬다.
그대로 부엌으로 향한다.
크루가 모였을 때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 * *
"오빠."
"엉."
"SGF 근데 거기에서 음식 파는 데도 있어?"
"제휴 맺은 패스트푸드점이랑 식당 같은 것들 들어오는 걸로 아는데. 나가면 주변에 현지 식당도 있을 거고. 왜?"
"아니, 그냥. 없으면 오랜만이 그거 먹나 해서."
여동생은 문득 오빠가 자취하기 전, 현장 체험 학습 갈 때 싸주던 도시락에만 있던 메뉴의 그 맛이 그리워졌다.
좋은 음식은 추억과 함께 기억된다.
여동생은 느긋하게 소풍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오오올~ 오빠가 해 준 도시락이 먹고시퍼떠여~?"
"이 몸에게 도시락을 헌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성은이 뻐큐하옵니다."
"난 재은인데."
서로 중지 총싸움을 하다가, 시선을 느낀 최재훈이 여자들을 쳐다본다.
의미심장하게 반짝이고 있는 눈빛.
최재은이 눈치껏 말한다.
"여러분들 것도 준비해드릴까요?"
쳐다보자 답하는 제나.
"뭐,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평가해 줄게."
"싫음 말고. 나머지 두 분은요?"
"아, 부탁드릴게요!"
"저도, 감사히."
"…."
* * *
그렇게 된 연유로.
최재훈은 어제 장을 봐서 채워 넣은 냉장고를 연다.
그는 최재훈2의 기억을 참고했다.
놀랍게도, 최재훈2의 도시락은 자신의 도시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초밥용 유부를 꺼낸다.
포장을 뜯자 초의 시큼달달한 향기 코를 자극한다.
초를 털어낸 유부의 수분기를 완전히 빼기 위해, 채 위에 놔둔다.
그리곤 소 다짐육을 꺼내 볶는다.
고기가 적당히 익으면 팬 한 쪽에 몰아넣고, 반대쪽에 간장을 졸인다.
태우기 직전까지 졸이다가, 맛술을 약간 넣은 뒤 고기와 같이 볶는다.
불맛이 나는 불고기 토핑 완성.
다음은 게맛살.
길다랗고 잘게 찢은 뒤, 채썬 양파와 같이 특제 마요네즈 소스와 버무린다.
다음은 아보카도.
으깬 뒤, 소량의 소금과 설탕을 넣고 다진 토마토와 함께 섞는다.
그 위에 반으로 자른 생 레몬을 가져다가, 즙을 짜 낸다.
최재훈이 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카몰리라 부르는 특유의 질척한 소스, 혹은 음식이 탄생했다.
다음은 연어.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 둔 연어에 송골송골 수분기가 올라왔다.
키친타월로 닦아준 뒤, 가열된 채 올리브유 가 뿌려진 팬 위에 올린다.
치익-
삼투압 현상으로 겉의 수분기가 완전히 제거된 연어는 곧바로 기름에 지져진다.
살인적인 소리, 그리고 냄새.
잠시 뒤.
겉면이 먹음직스럽게 갈색으로 익은 연어 스테이크가 탄생했다.
-탁탁.
최재훈이 칼끝으로 톡톡 두드리자 바삭한 소리가 난다.
적당한 두께로 자르자, 바싹 익은 겉면과 익지 않고 싱싱한 속이 층을 이룬 연어 스테이크 완성.
마지막으로, 간장 새우장을 손질한 뒤 잘게 썬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아주 잘게 썰되 다지면 안 된다.
새우 특유의 통통한 식감을 죽이면 안되기에.
그렇게, 토핑들이 완성됐다.
최재훈은 유부에 밥을 채워넣는다.
여동생이 기대하던 특별 메뉴.
다름 아닌 유부초밥이었다.
다소 특별하고 호화로운 특제 유부초밥.
밥을 상대적으로 조금 채워넣고, 나머지 빈 공간을 온갖 호화 토핑들로 채운다.
소고기 다짐육의 갈색.
특제 마요네즈 소스로 버부린 게맛살과 양파의 폭신한 흰색.
과카몰리의 연두색.
연어 스테이크의 갈색과 주황색의 그라데이션.
간장 새우장의 은은한 검정 빛을 띄는 하얀 속살.
유부의 노란색과 어우러져, 빈 도시락 통 안을 물감처럼 수놓는다.
마치 한여름 튤립밭같이 다채로운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최재훈은 뿌듯한 기분으로 냉장고에 넣어뒀다.
가져갈 땐, 아이스박스에 옮겨 가져갈 것이다.
여동생과 소풍 가는 기분을 내는 건 꼬꼬마 이후로 처음이었다.
들떠버린 오빠였다.
"자, 그럼."
그가 다시 칼을 잡았다.
이제는 아침을 준비할 차례였다.
-탁탁탁탁!
도마 위의 경쾌한 리듬.
아침에 일어날 때 그보다 나은 알람 소리가 있을까.
기분 좋게 잠에서 깬 최재은이 기지개를 켰다.
따듯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자연스럽게 상 위로 시선을 향한다.
구수한 된장찌개.
매콤짭짤한 두부 부침.
달큰한 시금치 무침.
다짐육을 비롯해서 남은 재료로 만들어진 볶음밥.
최재훈이 자취하고, 아침 준비는 최재은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녀가 담당하게 된 이후, 볼 수 없게 된 퀄리티의 아침상.
"개꿀띠."
그녀가 곧바로 식탁에 달려들었다.
"먹고 있어 봐."
최재훈이 어디론가 향한다.
윗집이었다.
똑똑똑.
조심스러우나 확실하게 노크 소리를 만들어낸다.
"…."
천천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후줄근한 옷차림의 권지현의 얼굴이 나타난다.
막 일어난 듯 몽롱하게 구겨진 그 얼굴은, 최재훈을 보자 찬물을 끼얹은 듯 단번에 펴진다.
"지현 씨, 이른 아침부터 미안해요. 주무시고 계셨어요?"
"아, 아뇨! 저 아~까 일어났어요!"
"아, 아침은 드셨고요?"
"아뇨! 아직이요!"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 와서 같이 드실래요? 다 차려 뒀는데."
"오!"
그녀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끄덕 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쫄래쫄래 최재훈을 따라가 상에 합석했다.
"와!!! 이거 다 재훈 씨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신 거예요? 와…."
이전 만찬 때에 비하면 훨씬 소박한 메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감동받았다.
가정식.
권지현은 생각헀다.
아침부터 최재훈이 차려준 가정식을 같이 먹으니까 왠지, 가족 같다고.
"헤헤헤."
정확히는 부부 같다고.
최재은은-
"오, 고기 덩어리 개꿀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최재훈은 생각했다.
옛날 일찍 일어날 때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었던 것 같다고.
셋이 식사한 뒤 준비를 마치고 방 안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
입가심할 거 없나.
냉장고를 연 최재은이 무언가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거 뭐야? 나 먹어도 댐?"
(초코크림슈크림 : 오?)
"아, 그거. 사다 놓고 깜빡했네. 먹어. 지현 씨도 드실래요?"
"오, 넵!"
(초코크림슈크림 : 오!)
최재은이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권지현에게 건넸다.
개별 포장된 우유 아이스크림이었다.
(초코크림슈크림 : 시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다 보니 머지않아 이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가자, 이미 대기하고 있는 이린의 듬직한 세단에 올라탔다.
쾅!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 * *
SGF 개최지로 향하는 길.
행인들은 전부 최재훈 일동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SGF로 향하고 있는 거겠지.
그들 대부분은 오프라인 게임 축제에 직접 행차할 정도의 게임 매니아일 것이다.
"어."
그렇기 때문일까.
도중에 합류하기로 한 제나.
"저건 뭐 신호등도 아니고."
노란 머리, 붉은 패딩, 청바지 차림의 그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미튜브 채널 영상 평균 시청자 50만 대.
리치TV 평균 시청자 1천.
그걸로도 모자라 계속해서 성장 중인, 명실공히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그녀였다.
게임계의 유명인이란 소리다.
게임마니아인 행인들, 주로 남자 행인들이 단번에 알아보고 그녀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마도, 여자친구와 같이 온 게이머들 같았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여자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제나는 화려한 게임 실력보다, 더욱 화려한 외모로 유명한 미인이었으니.
"누나 팬이에요!"
"얼굴 짱 작아!!!"
"실물이 더 예뻐, 어떡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열광하는 남자팬들과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
은근슬쩍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거나, 팔짱을 끼려고 하면 질색을 하며 몸을 뺀 뒤 째려본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마냥 좋아 죽는다.
동업자 관점에서 참으로 편리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두 방송인은 저 성공한 방송인의 모델을 기꺼이 본받기로 했다.
"누나 방송 화이팅!!!"
"오늘 방송 켜면 꼭 볼게요~"
남자팬들이 떠나자 비로소 최재훈 파티와 제나는 합류한다.
제나가 첫 번째로 한 일은, 권지현을 보며 우쭐대는 것이었다.
"…!"
권지현이 자극받아선 길에서 몸을 돌린다.
그렇게 높게 묶은 포니테일을 찰랑이며, SGF로 향하는 행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어필한다.
도도한 인상.
그리고, 여러 개의 버튼이 보석처럼 수놓아진, 바이올렛 색상의 밀리터리 코트 중심의 화려한 패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제나보다 훨씬 유명인스러웠다.
"…."
하지만 힐끔힐끔 눈길만 줄 뿐.
행인들을 갈 길을 갔다.
"하."
제나가 코웃음을 쳤다.
굴욕에 젖은 권지현이 터덜터덜 뒤따라왔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다.
일대 전체를 차지하는 대규모 건물.
대한민국 대표 종합 전시 건물 중 하나이자, 이제는 매년마다 SGF가 열리는 장소로 더 유명한 건물.
Seoul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일명 섹스코!
"풉."
최재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창 저급스러운 말장난을 좋아할 나이였다.
네 성인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
다가갈수록 그 장엄함이 더욱 실감나는 거대한 건물.
전면에는 걸려 있는 거대한 간판들이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엔 하나 같이,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기업의 이름이.
혹은 게임 프렌차이즈가.
혹은 게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직 개장까지 몇 시간은 남았을 텐데도 벌써부터 빼곡하게 줄을 채우고 있는 인파.
바야흐로 대축제라는 느낌!
최재훈 일당은 슬슬 떨리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공포였다!!!
줄 서기에 대한 공포!
"아니, 대한민국 60억 국민 여기 다 모인 것 같은데."
"저기에 광역기 쓰면 개쩔겠다…."
최 남매가 막막한 심경으로 중얼거렸다.
"아가씨."
"뭐."
최재훈의 부름에 제나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 뭐냐. 우리 아가씨 미튜브 채널이랑 개인 방송국 보여주면서, 나 이런 사람인데, 사람들한테 잘 이야기해 줄 테니 먼저 입장하게 해달라~ 부탁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 옛날 파워블로거 감성으루다가."
"…되겠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다니!!! 이런 근성 없는 것 같으니! 그러니까 너희 미국인들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근성이 담긴 보물 팔만대장경을 침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이없네."
"얘랑 두 언니가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일단 레오레 다이아2긴 한데!"
"하, 꼴값 그만 떨고 줄이나 서자…."
"헝."
"힝."
꼭두새벽에 일어나 먼저 도착한 게 무색한 줄 길이.
하지만, 먼저 도착했기에 그나마 이 정도다.
개장시간에 딱 맞춰 온 이들은 줄에 서는 게 아니라, 줄에 목매달리고 싶어질 것이다.
"아, 맞다."
줄을 서기 전 최재훈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그, 팬미팅 하기로 한 시청자들?"
최재은이 묻자 고갤 끄덕인다.
"둘 다 참가하기로 했고, 이 시간쯤에 여기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척 보면 알아?"
"두 명 다 방송에 얼굴 나오기 싫은지, 척 보면 알아볼 수 있는 마스크 쓰고 온 댔어. 이야, 근데 그 두 분 땡잡았네. 나 만나러 왔는데, 우리 지현 씨랑 제나까지 만날 수 있고.
원 플러스 원도 아니고, 원 플러스 원 플러스 원이네."
세 여자는 생각해 봤다.
시청자 입장에서 최재훈과 팬미팅을 하러 왔는데, 그 옆에 엄한 여자 스트리머가 둘이나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과연 땡 잡은 걸까?
두 여자의 머리를 땡 하고 쳐서 잡아버리고 싶긴 할 것이다.
"근데, 재훈 씨."
"넵?"
"그, 프로들도 이벤트에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혹시 오시는 분들, 프로예요?"
"아,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목소리만 들어봤을 땐, 다들 모르는 목소리였거든요."
지금 그가 이 세계에서 목소리를 아는 프로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 페이스뿐이었다.
그래.
페이스.
'어?'
최재훈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는다.
당첨자 중 한 명이 페이스였다는 사실을.
그 말은 즉슨-
'페이스가 나오는 건가…?'
최재훈이 격하게 떨리는 가슴으로 시청자들을 기다렸다.
그때-
"어, 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