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46화 (143/361)

146. 숨컷 팜 선제

분야마다 존경받아 마땅한 경지에 오른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 존재하곤 했다.

기술 쪽에선 장인.

학술 쪽에선 교수.

예술 쪽에선 거장.

가성비 쪽에선 혜자.

명작 말아먹기 쪽에선 닐 드럭걸.

게임 쪽에선 게임 뭐 같이하는새끼.

그리고 방송에선, 대기업이었다.

다른 명칭 사이에서도 그 거창함이 유난히 빛나는 명칭은, 방송인 한 명이 대기업 급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물론, 정말로 대기업 급의 영향력을 갖는다거나 하진 않는다.

방송인이라는 기업들 사이에서 대기업 급의 영향력을 갖는단 소리.

어쨌거나 대단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컨텐츠나, 이벤트를 진행할 때가 아닌 보통 때 평균 시청자가 4천 명이 넘어가면 대기업으로 취급받았다.

그 기준을 누가 가장 먼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근거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국 인터넷 방송 모든 플랫폼을 통틀은 총 시청자 총 집계 수.

평균 40만이었다.

'지분 1% 이상 소유하고 있으면 대주주라 불리니, 그 1%인 4천 명의 시청자를 소유하고 있는 방송은 대기업이라 부를 만하다.'

[근데 왜 대주주가 아니라 대기업임?]

멋없게 그런 의문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대기업이 대주주보다 더 쌈빡했으니까.

대기업이 되면 일반 사람들이 방송인을 꿈꾸며 기대했던 일 대부분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혹자들은 게임 방송인이 '꿈의 직업'이라 했다.

그리고 게임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그걸 '개소리'라 했다.

방송은 극한의 정신 노동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단 게시글에 악플 하나만 달려도 하루 내내 속상하고 화나는 법인데.

방송을 하면 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악질들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그런 걸 감수하면서도 '꿈의 직업'처럼 느껴지려면, 최소한 대기업은 되어야했다.

지금 최재훈은 꿈의 직업을 손에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개쌉오지는 능력과 매력을 지닌 저와, 절 그렇게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들은것 중에 가장 가식 없는 수상 소감이네]

[싸가지까지 없어서 문제지]

[제발 둘중 하나만 없으시면 안 될까요? 왜 둘다 없으신 거죠?]

[가관인건 심지어 부모님도 지 다음이네]

[폐륜적인 수준의 자기애]

[이제 꿀빨 일만 남았누 ㅋㅋ]

누군가 말했듯, 이제 꿀빨 일만 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해도 될 성공이었다.

하지만 최재훈은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같은 프로게이머 안에서도, 같은 챌린저 안에서도 급이 나뉘듯.

대기업 안에서도 급이 나뉘었다.

정원이 300위까지로 정해져 있는 챌린저 티어로 비유하자면.

최재훈은 이제 막 300위가 되었을 뿐이었다.

대단하지만, 대단한 이들 중에선 가장 덜 대단한 것이다.

이래 봬도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 '뒤졌다 페이스'라고 다짐했던 남자다.

결과가 '힝'으로 끝나서 그렇지.

그는 이번에도 '힝'으로 끝날지언정, 최고를 목표로 할 생각이었다.

'페이스 전투력이 몇이더라?'

여기서 전투력이란 방송인의 미튜브 구독자 + 평균 시청자 + 유료 구독자 수를 말했다.

레오레 방송인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하나- 아니지.

게임 방송인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하나.

그 정돈 돼야 만족하고 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금 당장은 이 성취감과 만족감을 충분히 만끽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SGF에서 제대로 달릴 예정이었으니.

[야 근데 유료 구독 언제부터 됨?]

[파트너 스트리머 된 거 아니였음?]

[유료 구독하러 오라면서요 선생님]

[SHUT UP AND TAKE MONEY(한국어로 해석하면 개씹썅지랄그만하고 내 구독료나 기어 쳐 가져라는 말 ㅎ)]

"너, 세종대왕님께서 딱 봐뒀다. 어딜 감히 유교의 언어 한국어를 음해해. 그리고 좀 진정하세요. 저라고 여러분 돈 갈퀴로 긁어모으고 싶지 않겠습니까?"

[개국공신 마크 달려고 오늘 학원 째고 적금도 쨌는데 ㅅㅂ]

[뭔 그거 가지고 적금을 째요]

학원을 쨌다는 게 아닌 적금을 쨌다는 데에 딴지를 거는 이유는.

저 개국공신이 고작 6천 원짜리였기 때문이다.

파트너십 스트리머가 되면, 유료 구독 시스템을 개설할 수가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를 통해 매달 6천 원을 지불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인을 정기후원할 수 있었다.

그 호의에 대한 약소한 대가로 구독 마크라는 게 주어졌다.

구독 마크는 해당 방송인의 방송 채팅창에서 채팅을 칠 때.

아이디 앞에 표시되어 '나 이 방송 돈 내고 보는 기특한 시청자요~'라고 표를 낼 때 사용했다.

그걸 표내면 뭐가 좋냐면.

일단 다른 시청자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을 냈으니 우릴 더 좋아해 주겠지'라는 지극히 논리적인 이치에 따라.

방송인의 편애를 노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하찮지만.

또 어찌 보면 겨우 6천 원으로 누리기엔 호화로운 특혜였다.

하루 200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인의 눈에 드는 거였으니.

그리고 개국공신 마크.

이는 그 어감이 갖는 느낌으로 추측할 수 있듯.

방송인이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직후, 가장 먼저 구독한 특정 인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한정판 에디숀 같은 것이다.

개국공신을 비롯한 구독 마크는 구독중일 때에만 표시된다.

개국공신 마크는 평소 구독을 안 하는 사람들조차, 구독을 유지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구독 시스템이 개설되는 동시에, 구독으로 몰려들 터.

한마디로, 이 많은 사람들이 최재훈에게 셧업앤테이크마이머니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거였는데.

정작 최재훈은 그 머니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파트너십 문의가 접수는 됐는데 답변이 오지 않고 있었다.

팬티를 찢으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비단 테이크 뎃 가이스 머니를 하지 못해서만이 아니다.

리치TV의 입장권-I지급은 SGF 개최 당일인 내일 전날까지.

그러니까, 오늘 자정까지였다.

하지만 갓집자님꼐서 말씀하시길.

리치TV는 스트리머들의 문의를 접수하는데 하루, 해결하는데 하루를 넘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최재훈이 엊그제 오후 9시쯤에 문의를 넣었으니.

오늘 오후 9시까지는 해결이 된다는 것이었다.

"뭐. 오늘 내로는 되겠죠. 그런 의미로, 구독 열릴 때까지 방송하겠습니다."

[ㅗㅜㅑ]

[오히려 좋아]

[살다살다 파트너십 켠왕은 첨보누]

[속보)숨컷 뒤질때까지 방송 비종료 선언]

[박제가 되어버린 조컷을 아시오?]

[50년 뒤 미래에서 왔습니다. 달 뒷면으로 도망쳤던 히틀러가 돌아와서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하프 라이프3은 아직도 안 나왔으며, 숨컷은 아직도 방송 중입니다]

[근데 파트너십 신청 언제 했는데?]

"엊그제 저녁이요."

[???]

[그거 보통 조건만 맞으면 바로 해결해 주지 않나?]

[ㄹㅇ 어지간한 애들도 몇시간이면 해결되던데 숨컷정도면 바로 해결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가장 긴 것도 하루 안 넘었던 걸로 아는데]

[리치TV새끼들 배떄기 불렀지]

"어허~ 우리 회사 욕하지 마~"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니네 회사 아닌데 ㅋㅋ]

[아니면 리치TV에서 숨컷 견제하는 거 아님? ㅋㅋ]

[리치TV에서 숨컷을 왜 견제해 ㅄ아 ㅋㅋ]

[아니 리치TV 다른 스트리머가 ㅋㅋ]

[응애세력ON]

"그러게, 무슨 음해 세력 있나."

허나 그럴 리가 없는 걸 알기에.

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느긋하게 방송이나 하며 기다리려던 찰나-

찰랑!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숨컷님 ㅋㅋ 지금 경매 사이트에 뭐 올라왔는지 아심?

[아 ㅋㅋㅋ]

[그거 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ㄹㅇ이었음?]

"갑자기 웬 경매. 그리고 이 호들갑은 또 뭐고. 뭐, 천암비서나 만녈설삼이라도 올라왔어?"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님 올라왔음 ㅋㅋ

"그건 또 뭔 개소리야 그건 또. 팔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그냥 개소리라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불온한 소리였다.

자신이 상품으로 올라오다니.

최재훈은 뭔가 싶어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경매 사이트라 하면 '오크션'이었다.

별의별, 그래서 무수히 많은 상품이 올라와 있는 오크션에서.

최재훈은 문제의 물품을 찾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실시간 인기 품목)

사이트에 덩그러니 강조된 그곳에-

BEST.1 숨컷 미팅권.

* * *

숨컷의 저격 이벤트에는 무수히 많은 프로들이 참가했다.

유사 LKL이라 불러도 될 정도.

시청자들은 프로가 참가했다는 말에 흥미는 가질지언정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믿었다면, 승률이 좋을수록 유리한 미팅권 당첨자 세 명은.

반드시 프로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첫 번째 당첨자는 LKL의 3강, 팀BAY의 에이스인 김희은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두 번째 당첨자는 FACE였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 번째 당첨자는 경기도 안양에 사는 이순영이었다.

누구세요.

"오, 시발 미쳤다."

솔로 랭크 게임에서 운은 실력만큼이나 강하게 작용했다.

이순영은 당시에 운이 개쌉오졌었고.

그 개쌉오지는 팀운 덕분에, 저 둘 못지않은 승률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어부지리라는 사자성어.

혹은 고래 싸움에 새우 쌉이득.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말들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이벤트가 끝나기까지 장시간 동안 열성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한 그녀는 당연히 숨컷의 팬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숨컷과의 팬미팅권은 당연지사 매우 값진 것이었다.

제목 : 아 숨컷 미팅권 개마렵다

내용 : 솔직히 10만원까지 낼 의향 있다

ㄴ : 5치킨보다 짜릿한 경험을 줄 수 있는 남자 ㄷㄷ

ㄴ : 그저 갓컷

ㄴ : 나는 한달치 용돈 투자도 가능 ㅇㅇ

ㄴ : 얼만데

ㄴ : 50만원

ㄴ : ㅁㅊ 개많이 받네

ㄴ : 내 나이가 27인데 이정돈 받아야지 ㅋㅋ

ㄴ : ??????????????????

하지만 돈만큼은 아니었다.

그녀는 적잖은 나이에 별다른 직업이 없이 부모님에게 빌붙어 살고 있었다.

워낙 수입이 좋은 부모라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굳이 하나 뽑자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용돈.

사람들이 숨컷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고 하자.

자신에게 있는 이 미팅권이 돈으로 보였다.

그것도 상당한 거액의.

그녀가 숨컷을 만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돈은 최대 30만 원이었다.

그 30만 원을 넘어서면?

그녀의 팬심은 그 정돈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글을 올리기로 했다.

경매 사이트인 오크션에.

* * *

TC1의 숙소에서 벌어진 규모는 작지만 치열한 미드빵 대회.

"하하하!!! 조빱쉐끼들 컷! 숨컷!"

숨컷 미팅권 쟁탈전이 원딜러인 SIGHT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 썅!!!!!"

간발의 차로 진 상대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1차전에서 진즉 탈락한 서포터는 이미 체념하고 인터넷을 망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프로들은 멘탈 관리를 이유로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길 강력하게 권고받는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숨컷 갤러리)

자신의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전무한 커뮤니티의 경우엔, 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응?"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게시글.

제목 : 아니 이거 실환가 ㅋㅋ

내용 : [사진]

오크션에 숨컷 팬미팅권 매물 올라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허위매물 아님?

ㄴ 글쓴이 : 판매자 등급 보셈 ㅋㅋ 허위매물로 올리면 계정 정지인데 낚시 한번 하려고 저 계정을 버리겠냐

ㄴ : ㅋㅋㅋ 와 ㅅㅂ 가격봐

ㄴ : 링크좀

ㄴ 글쓴이 : [링크]

호기심에 그 링크를 클릭하자.

문제의 글이 표시된다.

판매 물품 : 숨컷 미팅권

상세 내용 : 저격 이벤트에 참가해서 얻은 미팅권입니다 사정이 생겨 참가를 못하게 돼서 부득이하게 양도합니다 ㅠㅠ

그 글을 확인한 최재훈.

"아니, 이건 뭔…."

그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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