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대기업
"이런 애가 하루 300만 원 벌 정도로 블루 오션인 것 같은데, 과감하게 이 한 몸 투신해 봐?"
하루 300만 원을 벌어도 존경받지 못하는 오빠는 슬펐지만 냉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동생이 잘못된 길로 빠지려 하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에 들어서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 그녀는 고2!
그것도 그냥 고2가 아닌 겨울 방학 중인 고2!
사실상 고3이라 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고3이 학업 외의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판돈으로 거는 미친 스릴 중독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빠는 금이야 옥이야 기른 여동생이 그런 사람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덩상아…."
"엉?"
"거 머시냐… 그런 말이 있잖냐. 방송은 대학교 가고 나서 해도 안 늦는다는 말."
"연애 아니야?"
"연애는 언제든지 해도 돼. 단, 오빠보다 레오레랑 싸움을 잘하고, 클린이랑 메테오를 사용할 줄 알아야 돼."
"그렇지. 이 몸의 남친이 되려면 그 정돈 돼야지."
"어쨌거나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란다 덩상아… 거, 방송… 대학생 되고 해도 늦지 않는단다."
"아니야, 내가 보기엔 지금이 딱 블루오션이야. 오빠 같은 사람도 막 월 1억 킥 하고 그러잖아."
"뭔 킥? 아무튼, 덩상아… 니가 보는 것 만큼 방송계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래서 오빠가 허락허락 할 수가 없어."
"라임은 개 오지지만 인정인정 할 수는 없는 소리군. 그래서 쏘리쏘리."
"지현 씨."
"넹?"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현실을 가르쳐 주시죠."
"어…."
다른 누가 '숨컷 같은 애 방송도 잘 나가는데 나도 해볼까?' 라고 했으면.
그건 분명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 할 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최재은이 한다면?
권지현은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스캔했다.
그녀는 방송인으로서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한 눈에 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얼굴은 반 이상이기에 그렇다.
권지현은 처음 그녀를 보고 '모델'인 줄 알았다.
이는 틀리면서도 맞았다.
원래 세계에서 최재은은 편의점 알바가 아닌 모델 일로 용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미인이 방송 켜놓고 공부만 해도 인기인이 되는 세상이다.
그녀는 외모에, 캐릭터에, 게임 실력까지 갖춘 최재훈처럼 성공하지는 못 할지언정.
저 외모가 있는 이상, 방송인으로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둘 공산이 높았다.
"그, 재은 학생?"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3이었다.
무언가를 도전하기엔 아주 조심스러운 시기였고, 게다가 최재훈의 동생이었다.
여자는 여동생의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재훈 씨 말씀이 맞아요. 제가 방송을 몇 년 차라 아는데, 엄청 힘든 일이에요. 경쟁도 엄청 쎄구요. 진짜, 재훈 씨 정도 되니까 단기간에 이런 성공 거두신 거지.
보통 재훈 씨 만큼 성공하려면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들이어도 반년 이상은 잡아야 해요. 그렇다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재훈 씨도 그렇게 간단하게 성공하신 건 아니에요. 몇 주 동안 엄청 고생- 이라고 해야 하나. 활약하신 거거든요."
그 말대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최재훈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권지현과의 합방을 시작으로.
방민아의 대회에 가서 우승했고, 그로 인해 한예지와 엮여서 두 거물 BJ의 캐삭빵이라는 대형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어 유명세를 알렸다.
덕분에 아메리카TV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그는 곧 옐로TV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페카의 저격.
이겨냈다.
악덕 편집자.
참교육시킴으로써 유명 남성 방송인들을 도왔다.
리치TV 유명 스트리머인 삼피와 합방해서 그녀를 참교육시키고.
그 자리에서 플래티넘4>챌린저 도전 의사를 밝혔다.
모든 이들이 불가능하다 단언했다.
그런데 성공했다.
그것도 대리업계 1, 2인자 듀오와.
1등 팀인 퍼블팀의 방해를 이겨내고, 참교육시키면서.
최재훈이 단기간에 이러한 성공을 거둔 건.
외모, 능력, 캐릭터도 물론이지만 노력과 운이 따른 덕이었다.
최재은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허나, 최재훈처럼 무수히 많은 기회와 그걸 모두 잡아낼 능력과 노력이 없다면.
다른 방송인들이 그렇듯 적잖게 긴 세월 동안 무명 생활을 보낼 확률이 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인 고3이라는 순간에 걷기엔 부적절한 길이었다.
"음…."
최재은이 이해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듯했다.
당근을 줄 때였다.
"방학다운 방학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니까, 이번 방학 끝날 때까지라면 해 봐. 그 안에 성적 나오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보고."
사실, 최재은은 반쯤은 농담이었다.
그녀도 안다.
방송인으로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곧 고3이다.
진심으로 방송에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빠의 말대로.
이번이 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다운 방학이 될 터.
그 동안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딜."
그때, 최재은은 의문을 느꼈다.
"지현 언니."
"네?"
"지현 언니는, 왜 그렇게 시청자랑 구독자가 적어요?"
"…넹?"
"동생아. 싸가지가 레전드구나. 그냥 따귀도 때리고 얼굴에 침도 뱉지 그러니. 그리고 오빠를 죽이렴. 너가 레전드로 자란 건 오빠가 잘못 키운 죄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지현 언니, 얼굴도 예쁘고. 사람도 좋고. 말도 잘하고. 게임도 잘하시던데- 내 말은. 능력에 비해 시청자랑 구독자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이거지. 방송도 오래 하셨는데."
"아…."
"그러게."
최재훈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녀의 평균 시청자는 2천대였고, 구독자는 10만대였다.
충분히 대단하지만, 권지현은 그 두 배는 될 자격이 있었다.
"어…? 재훈 씨, 모르고 계셨어요?"
"뭘요?"
"아…."
꽤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최재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차별없이 대해주는 건, 자신을 믿어줘서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편 좋은 착각에 불과했다.
권지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음 같아선 계속 숨기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하지만 그랬다가는 언젠간 최재훈에게 폐를 끼칠 것이다.
그 경우, 최재훈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건 물론이며.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최재훈이 알고, 그에 따라 새로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그게-"
권지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부분 방송인의 성장 속도는 아주 느리다.
그렇게 느리게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한 번에 폭발한다.
권지현이 그 '폭발'을 경험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시기.
크루 제의가 들어왔다.
리치TV 대표 대기업 남성 스트리머인 '신도'를 필두로 한, 대형 크루였다.
아직 신입에겐 권지현에겐 꿈만 같은 기회.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이런 대형 크루에서, 자신 같은 신입을 원한 이유.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서가 아니었다.
-우리 지현이는, 방송에선 그렇게 귀엽던데. 오빠 앞에선 왜 이리 도도할까?
크루의 장인 신도가 권지현에게 관심이 있어서였다.
방송인이 아닌, 남성으로서.
유명 방송인답게 준수한 외모. 그리고 능력.
충분히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성격적인 부분에서 권지현과 차이가 컸다.
-죄송합니다….
권지현은 그와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될 생각이 없었다.
비극이었다.
신도에게나.
권지현에게나.
권지현에게 거절당한 신도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방송을 켰다.
취해서 말하길-
'권지현이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치근덕대다 선을 넘어버리고 크루에서 제명 당했다.'
해명할 기회는 없었다.
-지, 지, 지현 씨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아주세요….
신도가 다음날 방송에서 울며 권지현을 용서(?)하자.
사건은 종료되었고 권지현은 이미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반박의 기회는 없었다.
리치TV에서 신도의 영향력은 권지현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녀는 리치TV 안에서 철저하게 고립됐다.
손을 내밀어주는 스트리머는 없었다.
그녀의 주력 시청자이던 남성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녀에게 환멸을 느끼고 떠났다.
그렇게 권지현의 폭발은 끝났다.
그녀에겐, 그녀를 믿어주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남았다.
한창 때 시청자의 1/3도 안 되는 수였고.
가파르게 상승하던 미튜브 구독자는 정체되었다.
그래, 그녀는 정체되었다.
권지현은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하지만 당당하지 못했다.
믿어줬던 사람보다, 믿어주지 않았던 사람이 더 많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 어느정도 잊혀졌지만 완전히는 아니다.
최재훈 같은 남자들에겐 더더욱 민감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끝낸 권지현이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최재훈의 판결을 기다렸다.
이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아니 그건 좀…."
"…."
"말이 안 되는데…?"
"…예?"
권지현을 조금만 아는 이라면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러니까. 우리 지현 언니가 얼마나-"
그녀는 남자에게 치근덕대다가 선을 넘기엔 너무-
"찌질-"
했으니까.
"-아니지. 착한데."
최재훈이 동의의 의미로 고갤 끄덕였다.
"헝…."
권지현은 기분이 복잡했다.
어쨌거나, 최재훈은 자신을 믿어줬다.
자신이 고집을 부렸던 걸까?
자신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걸까?
그 일이 있고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권지현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지금.
그 고민이 막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권지현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재훈 씨… 저, 다시 생각해 봤는데…."
그렇기에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건.
그를 위해서라도, 그와 거리를 둬야 했다.
'그 권지현'이랑 어울리는 수준 알 만하다.
최재훈이 그런 소리를 듣는 일이 없도록.
"에이~"
그런 그녀의 말을 끊는 최재훈.
"지현 씨.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무리 그래도…."
"전 그런 거 안 할 거니까."
"…예?"
"지현 씨가 저랑 안 놀아준다고, 그렇게 방송 켜고 한심하게 찌질거리는 일 없을 거라고요."
그가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그냥 화장실에 쳐박혀서 조용히 저 혼자 울 테니까, 알겠죠?"
뭐가 알겠다는 걸까.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어쨌거나.
그 말을 들은 권지현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이야긴, 더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권지현은 기분이 후련했다.
* * *
"재훈 씨 오늘도 힘내세여!!!"
"지현 씨도요!"
"언니 수고링!"
권지현과 헤어진 최재훈은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방송 준비에 착수했다.
"후…."
떨렸다.
감사한 시청자들을 만나는 순간의 두근거림은 아무리 거듭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같이 감상적인 이유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오늘.
바로 그의 첫 리치TV 단독송출이었다.
리치TV에선 시청자 4천 명에서부터 '대기업'이라 불린다.
홈페이지 전면의 배너.
추천 방송 등.
노출되는 빈도가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어제 집계한 바.
현재 리치TV 고정 시청자수 약 3000 명.
거기에 옐로TV 시청자 2천 명.
50%만 전환돼도, 그의 리치TV 시청자는 4천 명이 된다.
엘로TV 시청자들이 얼마나 따라와 줄 것인가.
그 전환률에 따라, 최재훈의 향후 방송 성장 속도는 판이하게 달라질 터였다.
"후…."
그는 한 번의 심호흡 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숨하]
[머선129]
[아니 ㅅㅂ 요즘 왜 조깅 방송 안 함?]
"요즘 저희 집 주변에 역병이 돌아서 집 밖으로 못 나갑니다."
[오]
[(손 들고 질문하는 이모티콘) 혹시 그 병 이름이 지랄병인가요?]
[시청자 2, 316명]
순조롭게 모여가는 시청자.
최재훈은 일단 무난하게- 레오레를 켰다.
[전체] : 저거 머임? 숨컷임?
[전체] : 숨컷은 치킨킹이잖아 아 ㅋㅋ
[전체] : 숨컷이 아니라 암컷이누 ㅋㅋ
[전체] : 어? 방송 보니 숨컷 맞는데?
[전체] : ㅁㅊ
[전체][치킨퀸치퀸] : 숨컷이 니들 친구냐?
[전체] : ㅈㅅ;;
[전체][치킨퀸치퀸] : 아는척 할 거면 돈 내고 해라
[전체][치킨퀸치퀸] : 천 원에 1분이고
[전체][치킨퀸치퀸] : 친한척은 1분에 만원임
부캐인 다4계정을 하는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이것이, 월클…?"
프로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유명세를 만끽하길 수차례.
-숨컷-배신=0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자니...?
-엄상희고려장폐륜아숨컷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문 열어 ^^ㅣ발아
-불법이민자조컷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누나왔다
슬슬 옐로TV 시청자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최재훈은 게임을 중지한 뒤, '신규 시청자 집계' 기능을 켰다.
방송에 처음 들어오는 시청자가 집계되기 시작한다.
챌린저 미션 때, 레오레 시청자 중 숨컷의 방송을 한 번이라도 시청하지 않은 리치TV 시청자는 손에 꼽았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 집계되는 '신규 시청자'는, 옐로TV에서 막 이적해 온 시청자들일 공산이 컸다.
현재 그 수.
(신규 시청자 673명)
"오…."
50%를 노려볼 법한 수였다.
"옐로TV 여러분! 생각보다 많이 따라와 주셨네요!"
[생각보다?]
[좋아하는거보소 ㅋㅋ]
[우리가 그렇게 좋누 ㅋㅋ]
"아, 당연히 좋지! 이게 다 돈인데!"
[아니 ^^ㅣ발아 ㅋㅋ]
[(우는 이모티콘) 적당히 하란 말이야]
[우리한테도 순정이 있다 그 순정을 짓밟으면 어? 우리도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속보) 숨컷 자본 대량 유출 예정]
[뒤졌다 바로 계삭간다]
"아~ 당연히 농담이죠. 우리 옐로TV 시청자 여러분이랑 헤어지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습니다."
[아 ㅋㅋ;; 마음을 들었다놨다하네 이게 어장관리인가?]
[그렇게 말하면 좋아할 줄 알았나 ㅋㅋ]
[하 ㅋㅋ ㅈㄴ 구질구질하네]
[좀만 같이 있어 준다 ㅋㅋ]
[착각하지 마라 엔조이니까 ㅋㅋ]
최재훈의 염려와는 달리.
신규 시청자 수는 무난하게 올라갔다.
(신규 시청자 761명)
(신규 시청자 818명)
(신규 시청자 865명)
(신규 시청자 910명)
이윽고-
(신규 시청자 1, 004명)
(시청자 4, 373명)
방송 시작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그는 대기업 방송인이 되었다.
띠링!
최재훈에 머릿속에서 레벨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업적 달성 소리와 함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리치TV에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재훈이 박수와 함께 호기롭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