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블루오션
-연아야… 너가 힘들어도 나는 항상 너만을 응원할게… 누가 뭐래도 너는 항상 내 최고야….
"헤헤헤…."
-현지야, 안 일어나? 해가 벌써 중천에 떴는데~? 잠꾸러기 같으니. 일어나(소근)
"흐흐흐…."
-희연아,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했어.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마. 나는 항상 네 편이니까. 내 맘 알지? 내 방송 보고 힘내자?
"후후후…."
-욕 먹는 게 기분 좋다고? 기분 나빠. 변태같이 음탕-… 하…. 인생 시발… 이건 진짜 못하겠다. 배째쇼.
"데헤헤…."
선수들의 핸드폰 안에서 숨컷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팀 BAY의 숙소.
선수들은 핸드폰을 귀에 갖다댄 채, '상품'을 만끽하고 있었다.
숨컷의 목소리가 흐를 때마다 칠칠치 못하게 웃었다.
"오…."
그 광경을 보며 김희은이 감탄해선 중얼거렸다.
"개역겨워…."
그때-
벌컥!
"희은아!!!!!!!!!!!!!!!!"
숙소 문을 박차고 감독, 한시영이 두두둥장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감독님, 좀 진정하시는 검다."
"후… 그래. 미안하다."
심호흡을 한 뒤, 차분하게 묻는다.
"어떻게 됐니? 어떻게 됐니? 어떻게 됐니? 어떻게 됐니?"
이내, 김희은이 피식 웃으며, 브이를 그렸다.
"와아아아악!!!!!!!!!!!!!!!!!!!!!!"
와락!
한시영의 가슴에 파묻힌 김희은.
"헤헤헤…."
"후후후…."
"데헤헷…."
"킥킥킥…."
팀원들의 기분 나쁜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
숨컷이 우리팀에 독을 풀었다고.
뭐, 어쨌거나-
씨익.
그녀 또한 기쁜 건 매한가지긴 했다.
아직 실물로 받지 못해 실감이 나지 않을 뿐.
"감독님."
"응?"
"제가 뭘 하면 되는 검까?"
"아!"
게다가,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한시영이 팀을 위해서 김희은이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 근데 감독님."
"응?"
"이거, 팬미팅 일자랑 장소가…."
"뭐야, 또 왜 그래 불안하게."
"SGF 첫날이던데요."
"어."
"게다가, 생방송으로 중계한다던데."
"어…."
한시영이 영원불겁 절대 풀어주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포옹으로부터 김희은을 해방시켰다.
갑자기 식어서는 고뇌에 잠긴다.
김희은은 팀 BAY의 에이스이자, 얼굴마담이자, 아이돌이었다.
그녀의 상쾌한 미소에 열광하는 남성 팬들만 얼마던가!
그 아성은 레오레 최고의 페이스(TC1 FACE아님ㅎ)인 파이어, 위치, 미스릴과 비견될 정도!
나아가, 서양인 선수들에게도 안 꿀릴 정도!
그런 그녀가 남자, 그것도 엄청난 미남인 방송인과.
팬미팅을 하며 좋아 죽는 모습이 방송으로 중계되어 퍼진다면?
남성 팬들이 좋아 죽으며 눈쌀을 찌푸릴 공산이 컸다.
으레 그렇듯, 남성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유명인이 남자와 알라깔라를 하면 질색팔색을 했고.
그 전까지 그녀들을 응원하는 데 있어서 열성적이었다.
열성팬, 중요도가 높은 팬이라는 소리다.
그들이 눈쌀을 찌푸리면, 구단주께서도 눈쌀을 찌푸리신다!
"음…."
하물며.
SGF 첫날.
그 날은 팀 BAY가 SGF에서 공식 일정을 진행하는 날이기도 했다.
하여.
한시영이 우선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이와 같았다.
"희은아.
"넵."
"그… 뭐냐… 일단 물어보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넵?"
"그, 미팅 말인데. 바로 가서, 내가 말했던 것만 하고, 방송 시작 전에 나올 수 있겠어?"
그러니까.
맛만 보고 나오라는.
바로 가서 인사 나눈 뒤 헤어지란 소리였다.
김희은의 표정이 굳었다.
그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넵, 알겠슴다."
주저없는 대답.
싫은 기색을 티내지도 않는다.
마치, 어제까지 그리 간절하게 바라고 기대하고 있던 게 거짓말이라 느껴질 정도.
"와! 알겠구나! 괜찮은 거지? 싫어 보이진 않고~ 와~ 개꿀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할 수 있을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시영 입장에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더더욱 껄끄러웠다.
미운 자식이 이런 식으로 나와도 사탕을 뺐기가 힘들진대.
이쁜 자식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
"하…."
때문에 한시영은 도저히 자식의 사탕을 뺐을 수가 없었다.
이가 썩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된 이상 치과 비용을 대기 위해 쌔가 빠지게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미팅 시간이 정확히 언제라고?"
한시영은 사무실로 내려가서 팀 BAY의 SGF 행사날 스케쥴을 노려봤다.
마치 눈으로 그 스케쥴 틈의 사이를 벌리듯.
그렇게 꾸역꾸역 새로운 스케쥴을 쑤셔 넣었다.
아슬아슬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오!!! 진짬까?"
덕분에 선수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헤헤헤….”
"후후후."
흐흐흐….
데헤헷
"아싸우싸으쌰~"
"….'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딱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선수들이, 한 남자의 녹음된 목소리를 반복재생하면서.
다소 역겨운 모습으로 희열을 만끽하고 있는 광경은 말이다.
“후, 안되겠다! 좀 달리고 오겠슴다!”
잔뜩 흥분해서는 분명 건전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하는 김희은도 어딘가, 기분 나빴다.
자식처럼 그녀들을 아끼는 한시영조차 착잡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혈기왕성한 때니까.
한시영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랠 뿐이었다.
* * *
김이리는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책장을 넘기며 오랜만의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
그때 문을 박차고 쳐들어오는 팀원들.
페이스의 방은 개인실치곤 상당히 넓었다.
평범한 원룸 수준.
화장실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그렇기에, 여자가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할 만한 건 다 할 수 있었다.
"내가 1빠!"
첫 번째로, 변기 능욕.
"콜라 있냐!"
두 번째로, 냉장고 능욕.
"야동 있냐!"
세 번째로, 컴퓨터 능욕.
메뚜기떼가 벼밭을 훑듯, 빠른 속도로 방을 초토화시켜 가는 팀원들.
이린은 그런 그녀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몇 번 가로저은 뒤, 다시 책에 시선을 향했다.
"어, 야동 있다!!!"
"뭐야, 시발. 다큐멘터리잖아."
"아니 뭐 이딴 걸 보지?"
"어, 이거 봐! 중세 고문 다큐멘터리!"
"이 싸이코패스 새끼! 또 누굴 고문하려고!"
하지만 이 상태에서 책을 읽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좋은 글귀를 되새길 때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같이 따라오리라.
그건 책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때문에 김이리는 그제야 책을 내려놓고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화면엔 숨컷의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흥미를 느꼈다.
어제 그녀는 숨컷에게 패배한 데에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오랜만에 솔랭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수확은 없었다.
그녀의 솔랭이 연습이 되려면 상대팀에 최소한 숨컷에 준하는 솔랭 실력자가 있어야 했는데.
김이리가 아는 한 한국에서 그 정도 되는 유저는 숨컷을 제외하고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한국이 아닌 중국에 있었다.
"오늘도 그, 저격인가 뭔가 하는 거야?"
김이리가 드물게, 어딘가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자 팀원들이 '뭐지 이 새끼'하는 눈빛이 향해 왔다.
"아니, 오늘도 그 저격인가 뭔가 하는 거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오늘 그거 발표잖아."
"무슨 발표."
"뭔 발표긴."
"어제 이벤트를 했는데, 오늘 발표를 하면 무슨 발표겠어요."
"아."
팀원들의 예상대로 안중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옆에서 팀원들과 같이 방송을 지켜봤다.
숨컷의 목소리를 녹화한 뒤 시시덕대는 기분 나쁜 팀원들의 모습.
그리고-
"오!!!!!!!"
"미친!"
"아니, 당연한 건가?"
"하긴."
김이리의 미팅권 당첨.
"오."
이러면 한 번 더 승부할 수 있는 건가?
김이리가 기대하던 그때-
"아."
팬미팅 일자와 장소가 발표된다.
2일 뒤 SGF.
김이리는 잠깐의 고민 뒤- 흥미가 완전히 꺼졌다는 듯 다시 침대로 돌아가 책을 집어들었다.
FACE.
그녀는 임이현과 장재현의 계보를 잇는 게임 스타였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서양 본토에서조차 그녀의 인기를 능가하는 게임 스타는 적었다.
무슨 말이냐면, 명색인 게임 축제인 SGF에서 존나 바쁠 거라는 말이었다.
김희은도 바빴지만, 페이스 정도는 아니었다.
비틀즈의 매니저가 와도 그녀가 숨컷을 만날 시간을 내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TC1 팀원들은 그녀 만큼은 인기가 없었다.
'그 일' 때문에라도, 누군가는 그를 만나야 되기도 했고.
그렇게, TC1 숙소에서 김이리의 '상품' 쟁탈전 미드빵이 시작됐다.
"대회에서나 이렇게 좀 하지…."
그녀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감독이 기가 차서 말했다.
* * *
"오빠. 어제 얼마 벌었어?"
오늘 아침도 달린 뒤 승리의 국밥을 먹던 자리에서, 여동생이 그렇게 운을 뗐다.
"응? 뭐가?"
"방송으로 얼마 범?"
"글쎄. 이제 미튜브 수익도 나오고… 몰라, 계산해 봐야 알듯."
"후원만."
"후원만? 글쎄. 어디보자-"
최재훈이 후원 앱을 켜서 확인했다.
어제, 최재훈은 상품(?)수여식 때문에 이례적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현지야, 안 일어나? 해가 벌써 중천에 떴는데~? 잠꾸러기 같으니. 일어나(소근) 연하 남자친구 같이.
-희연아,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했어.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마. 나는 항상 네 편이니까. 내 맘 알지? 내 방송 보고 힘내자?
포용력 깊은 오빠 같이.
-연아야… 너가 힘들어도 나는 항상 너만을 응원할게… 누가 뭐래도 너는 항상 내 최고야….
친근한 동갑내기 남자친구같이.
하나 같이 평소 그와는 상반되는.
그래서 여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울리는 모습들을 연출했다.
그리고는 수치심에 부들거리며 욕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츤데레라 지랄하는 또라이들'을 보며 뒤통수를 잡는다.
여자들은 열광해서, 혹은 놀리기 위해 기꺼이 기갑을 열었다.
"오~ 삼백이십만 원."
최재훈이 후원을 확인한 뒤 말했다.
여자들은 그 액수에 한 번.
최재훈의 반응에 삼백이십만 번 정도 놀랐다.
방송 하루 만에 320만 원이라는 비정상정인 액수를 벌어들인 것보다.
그의 '오~ 레어카드~' 수준의 반응이 더 그녀들을 당황케 했다.
320만 원은 우리 같은 소시민들한텐 전설 카드 수준 아니였던가!
'오!!!!!!!! 320만원!!!!!!!!!!!!!'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던가!!!
그녀들은 최재훈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져서 모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뭐야 그거!?!?"
"아아… 이건 스마트폰이라는 거다."
"아니, 뭐냐고! 뭔데 320만 원을 무슨 뉘집 최재훈 이름 마냥!"
"와… 재훈 씨… 대단하시당…."
권지현이 여느 때처럼 박수를 보냈다.
최재훈이 멀게 느껴져서 시무룩한 여자의 박수는 힘이 없었다.
"응?"
그런 둘의 반응에-
"헉…."
최재훈은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다.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놓치곤 의자를 뒤로 밴 뒤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봤다.
며칠 전, (일주일 동안의 수익이지만 체감상)한 번에 2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수익을 올린 탓이었다.
하루 320만 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렸다.
명백히 금전 감각이 뒤틀려 버린 것이다.
이건 내가 아니다!
[졸부의 최재훈 :아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너다… 새로운 너! 새로운 너에게 320만 원 따윈 하찮은 액수… 그런데 돼지국밥? 기가 차는군… 이 따위 저급한 음식을 위장에 집어넣다니! 당장 게워내!!! 그리곤 집에 돌아가서 치킨에 캐비어를 먹어서 정화시키도록!]
'캐비어를 시발 어디서 구하는데! 수산시장 가면 파나!?'
[졸부의 최재훈 : 수산시장에선 해산물을 팔고, 캐비어는 수산물의 알이다… 상식이지….]
'그렇군….'
[졸부의 최재훈 : 게다가, 이건 또 뭐지? 3년 신은 신발에, 아무데서나 산 후드티와 청바지? 누더기, 역겹군. 당장 가서 100만 원짜리 후드티와 청바지를 사라. 그리고 100만 원 정도 하는 신발도. 아참… 큭큭큭… 시계도 사는 건 어떤가? 300만 원 정도 하는 시계로 말야, 큭큭큭… 그렇게 비싼 시계가 세계에 존재할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개쌉소리! 핸드폰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시댄데 300만 원이나 하는 시계 따위가 존재할 리가!'
[졸부의 최재훈 : 뭐가 됐든 상관 없다. 사치와 향락을, 부려라. 너는 그 자격이 있다. 너는 멋지니까… 너는 주변 사람들과 달라! 왜냐! 멋지니까!!! 왜 멋지냐고? 멋지니까!!!]
'조까! 내가 멋진 건 맞지만… 아무튼 !'
[졸부의 최재훈 : 후후후… 지금 당장은 물러나지만, 다음엔 과연 어떻게 될까… 고대되는군…는군…는군…는군…(에코)]
"320만 원… 스바라시… 아임 소 그레이트… 소 해피…."
최재훈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격렬하게 진행된 내적 전투에서 승리한 뒤에야.
원래의 가치와 기준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여동생은 오빠의 병신 같은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리고 욕심이 들었다.
"쓰으… 아, 이거 나도…."
"응?"
"방송이나 해볼까?"
여동생의 눈이 야망으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