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ZOOM AND VIEW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끊음? ㅋㅋ]
[ㄹㅇ ㅋㅋ 뷰-티풀 데이라 하려 했던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쳐다봤다.
그러게.
정말 뷰-티풀한 날이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이런 날에 나 같은 방송인은 이 또라이들 사이에서 뷰-ㄹ타야하나 보다.
[뷰-를 뭐로 본 건가요 ㅋㅋ 설명좀]
[(파랭이 거수하고 말하는 이모티콘)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방금 그게 이상하게 들렸다면 그건 선생님 문제가 아닐까요?]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뇌수가 여타 체액으로 대체된 문란한 인간이라 순수하기 그지없는 시청자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황이라는 게 있잖아?
인과관계라는 말도 있고.
마이클 잭슨이 자세를 잡고 모자를 눌러쓰면 다음에 나오는 곡은 뭘까.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가 헵시면 나오는 말은 뭘까.
-후욱.
-후욱.
시청자.
그것도 옐로TV 시청자.
더군다나 이미 수 차례의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악질적인 채팅으로 뇌리에 기억되고 있는.
그런 애가 끈적하기까지 한 두 차례의 한숨 뒤에 내뱉는 뷰-로 시작하는 말이 뭐겠냐고.
똥꼬에서 꽃이 나올 수 없듯, 쟤 입에서도 상스러운 말 대신 뷰티풀한 말이 나올 확률은 적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방금 과정에서 저한테 문제가 있었다면, 그거 여러분같이 훌륭한 시청자들만 꼬이는 제 팔자가 아닐까 싶네요."
[(파랭이가 윙크하는 이모티콘) 별말씀을]
[선생님도 만만찮게 훌륭하십니다]
[님들 근데 해상동 다리 위에서 VIEW 본적 있음?]
[아 거기 ㅋㅋ 최고의 VIEW지]
[님들 릿산 파크 동물원은 가봄? ㅋㅋ]
[아 ㅋㅋ 거기 개쩌는 ZOO지 ㅋㅋ]
아니 시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거-
'성희롱 아닌가?'
너무나도 병신스러워서 친숙한 채팅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까먹게 되곤 하는 사실.
얘네는 여자였다.
'여자'.
나는 남자지만, 쟤네들한텐 '남자'고.
애매해서 잠깐 내 사고관으로 뇌내 치환의 시간을 가져 봤다.
여자 방송인이 있다.
이벤트 때문에 시청자와 통화를 연결했다.
그런데 대뜸 시청자가 거치고 열띤 숨을 내쉬더니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한다.
간신히 컷했지만 이제는 시청자들이 신나서 음담패설을 내뱉는다.
'맞네, 성희롱.'
나는 존나 영락없이 퍼펙트하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입장에서 '여성'시청자들에게 말이다.
문제가 있는 건 시청자들이지.
그 자체론 건전한 방송 문화를 지향하는 옐로TV와 리치TV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다른 '남자' 방송인 방들도 이런가?
'내가 알기론 아닌데.'
내가 너무 '남자'같지 않고 '여자' 같아서, 이 새끼들도 무의식적으로 동성처럼 편하게 대하는 건가?
물론.
얘네들이 아무리 성희롱성 발언 씨부려 봐야, 아무런 생각도 안 든다.
내 입장에선 남자 무리 사이에 끼어서 주변 애들이 병신짓 하고 있는 거 보는 기분이다.
'머야 기분 나빠.'
'헐, 쓰레기들.'
그런 감상이 아닌,
[병신들 ㅋㅋ]
그런 감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방송하고 있는 플랫폼은 옐로우TV와 리치TV지 옥수수TV가 아니었으며.
내 방송은 실력 게임 방송을 지향한다.
병신들 잘들 논다라며 방치해선 안 되고 수질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오수들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다른 방송에 흘러간다면?
그렇게 흘러들어간 방송에서 지금처럼 출력 최대 지랄을 하곤 '숨컷 방송에선 괜차났는데여?' 라고 말한다면?
나는 온라인 직장 따돌림이라는 신시대의 문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짜릿했지만, 저건 테이저건처럼 짜릿할 게 뻔해서 피하고 싶었다.
'음….'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거다.
[시청자들 성범죄자로 아는 숨컷 해명해!!!]
[해명해!!!]
[아니면 춤이라도 춰!!!!]
[코스프레 해!!!!!!]
[남교사 코스프레!!!]
[JYM381 :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미팅권을 요구합니다...]
신나서 분위기를 탄 이 병신들을 어떻게 처리할까다.
저렇게 흥분한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찍어누르려 했다간 반발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방송은 곱창이 나버리는 것이고.
일주일 동안 모든걸 쏟아부어 성공시킨 프로젝트.
(시청자 4, 103)
그 프로젝트로 얻은 추진력으로 순항중이다.
흐름을 깨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저렇게 흥분한 병신들을 평화적이고 또 스마트하게 진정시킨다니.
가능?
'쌉가능.'
내겐 마법의 샘물이 있었다.
그거 한 방울이면, 저런 격렬한 산불도 한 방에 진화가 가능했다.
마법의 샘물.
바로-
"훌쩍."
즙!
나는 우는 시늉을 하며 캠과 마이크를 껐다.
(상남자의 최재훈 : 남자가 돼서 기회만 되면 즙 짜는 연기!!! 부끄럽지도 않느냐!!!)
'내 커리어와, 가족의 빚을 위해 자존심 하나 버리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부끄러운 일 아닐까?'
(상남자의 최재훈 : 올ㅋ)
완벽한 자기합리화!
'즙 짜는 연기는 더이상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못한-'
-야.
'-다, 어?'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재은이가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 괜찮. 연기하는 거임."
"…뭐?"
표정에 담겨있던 감정이 걱정에서 경멸로 바뀐다.
그러자 갑자기 폭발하는 수치심!
"보, 보지 마! 그런 눈으로 오빠를 보지 마!"
"쯧쯧쯧…."
"재은!!! 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아니, 니가 자초한 운명이다."
"아아아아앍!!!!!"
여동생의 경멸은 오빠를 정말 울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거기에, 잠깐 동안의 부재가 더해져.
시청자들에겐 한층 더 생생한 연기가 전달됐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
[아니 왜 울어요;;;]
[미치겠네;;;]
[일단 다시 마이크좀 켜 봐요;]
시청자들이 손으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ㅁㅊ년들아 적당히 해야지]
[데배충들 개역겹네;]
[뭐만하면 다 우리탓이노]
[나 데배충 아닌데 성희롱 한 새끼들 다 르리웹 출신 같다 이기야]
옐로TV에서도 먹혔던 방법이니.
상대적으로 유순한 리치TV에서 안 먹힐 수가 없었다.
옐로TV에서 개입 못 하도록 그쪽 채팅창을 얼려놓기까지 했다.
완벽했다.
-엄청난상심그리고희망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ㅄ들 ㅋㅋ 얘 연기하는 거 첨 보냐? ㅋㅋ
그런데 울타리를 넘어 침입한다
[연기 ㅇㅈㄹ]
[넌씨눈]
[분위기좀 읽어 ㅋㅋ]
[저건 진짜 데배충이네]
[아 ㅋㅋ 닉을 보라고 딱 봐도 르리웹이잖아]
그런데 알아서 제압해 준다.
눈물 한 방울에 폭도에서 친위대가 돼버린다.
이성의 눈물에 이리도 취약하다.
어리석을 만큼 취약하다.
신체구조는 다를지언정 얘네는 분명 내 동지고 동족이었다.
나는 그런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데에 적잖은 죄책감을 느꼈다.
[기만의 최재훈 : 엌ㅋㅋㅋㅋ병신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님 말고.
[저희가 죄송해요 ㅠㅠ]
[이제 절대로 안 그럴게요]
[숨컷님이 너무 친근해서 죄송해요 ㅠㅠ]
즙 짜는 연기에 아무리 익숙해졌다곤 하나, 장시간으로 하면 역시 스멀스멀 자괴감이 올라왔다.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필살기 같은 것이다.
분위기도 슬슬 진정된 듯하고-
[우리 숨아가 하고 싶은 거 다해 ㅠㅠ]
"정말요…? 저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ㅇㅇ]
[그러니까 기분 좀 풀어 ㅠㅠ]
[숨컷 기분 풀어!]
"아~ 오케이. 알았습니다."
[오?]
[??]
[아니]
[머임???]
"뭐. 기분 풀라며."
[???????????????]
[머임?]
[우는 연기한 거임?]
[아니 ㅋㅋㅋㅋ]
[머하는 새기지 ㅋㅋㅋ]
[아니 ^^ㅣ발 어이가 없네]
-동탄삐끼들의워너비엄상희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채팅창 얼린 거 풀어 ^^ㅣ발아
[숨컷 : :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따듯한 격려가 차갑게 얼어붙었던 숨컷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얼어붙었던 옐로TV의 채팅창이 녹기 시작합니다]
[옐로TV][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진짜]
[옐로TV][미친롬 아니야 ㅋㅋ]
[리치TV][??? 먼 일임 도대체]
[옐로TV][머긴 ㅄ들아 ㅋㅋ 보이는 그대로지]
[리치TV][옐로TV 채팅창은 왜 얼렸던 거임?]
[옐로TV][옐로TV에선 이미 몇 번 해 가지고 다 알거든 ㅋㅋ 즙 짜는 연기인거]
[옐로TV][에혀 ㅄ들 말해줘도 ㅋㅋ]
정신을 못 차린다.
딱 내가 원하던 상황.
지금이 휘어잡을 때였다.
***
"자, 여러분! 주목!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최재훈이 짐짓 경쾌하게 말했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미친놈아 ㅋㅋㅋ]
[아니 ㅋㅋ 너무 뻔뻔해서 화도 안 나네]
"지금 중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그는 방금 캡처해 뒀던 채팅 내역을 가져왔다.
-우리 숨아가 하고 싶은 거 다해 ㅠㅠ
"지금 중요한 건 이거죠. 여러분들이 제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다는 거!"
[미친놈 아니야ㅋㅋㅋㅋㅋㅋㅋ]
[와 ㄹㅇ;;; 살인 마렵네]
[어디살아 ^^ㅣ발아]
[ㄹㅇ;; 미팅권 꼭 따서 현피 깠어야 됐는데 천추의 한이다]
[걔 혼자서 허락한 건데? ㅋㅋ]
"아, 맞아요. 사실. 별 의미 없긴 해요. 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니."
그가 피식 웃었다.
"여러분이 허락 하든 말든 그렇게 할 거거든."
[아 ㅋㅋ]
[너무 뻔뻔해서 이쯤되면 호감이네 ㅋㅋ]
[그래 ^^ㅣ발 숨아가 ㅈ대로 해]
"솔직히 1주일 동안 게임만 해서. 사실상 이게 리치TV에서 첫 방송 같은데, 이 참에 제대로 짚고 넘어갑시다. 편한 방송 분위기! 편한 채팅! 다 좋습니다. 그런데, 선은 지킵시다. 응? 나 걱정돼서 그래. 우리 시청자 여러분, 다른 방송 가서 똑같이 해가지고 욕먹을까 봐."
[캬 ㄷㄷ]
[이 ㅈㄹ을 했는데도 우리를 걱정해 주네 ㅠㅠ]
[우리 아빠도 날 놨는데 이걸 걱정해 주네 ㄷㄷ 숨컷 파파]
[응애 나 아기 엠생 맘마조]
"응? 아니. 너네 말고 나요. 너네 다른 곳가서 욕하면 내가 시청자 관리 못 했다고 욕먹을까 봐 걱정된다고요."
[아니 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네 ㅋㅋ]
[디졌다 지금 당장 닉 앞에 숨컷 붙이고 다른방 테러 다닌다]
"지금 당장?"
[ㅇㅇ]
"나 방송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 간다고? 아, 그건 좀 섭섭한데."
분위기를 탄 걸까.
최재훈이 저도 모르는 새에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방송할 땐, 내 방송만 봐주면 안 돼요?"
그 무의식적인 행동의 위력은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