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138화 (135/361)

138. 동거

"아, 맞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자.

그는 공들여 찍은 디저트 사진을 SNS에 사진을 올린 뒤, 손뼉을 쳤다.

방금 전 마트에서 삼피를 만나 사진을 찍었던 게 떠올랐다.

[마트에서 삼피랑 같이]

유명인과의 투샷!

좀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 사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호응을 얻으리라.

남자는 기대에 미소짓길 잠깐.

"맞다."

미튜브에 '권지현'을 검색해 본다.

구독자 10만 후반대.

절대로 낮은 수는 아니지만-

'음….'

그 얼굴에?

채널을 자세히 살펴보니 경력도 긴데, 납득이 안 됐다.

남자는 호기심에 권지현을 조사해보았다.

"어, 어…."

이내, 권지현이 낮은 구독자를 보유하게 된 '그 사건'을 알게 되고는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하는 느낌.

그는 일단 단체샷에서 권지현 부분을 편집했다.

그리곤 미튜브에 숨컷을 검색.

"음…."

이번에도 '그 얼굴에?' 였다.

그는 좀 더 자세한 까닭을 파악하기 위해 채널을 둘러봤다.

"헤엑…."

그리고 경악한 뒤, 이해한다.

그의 채널은 '정상'이었다.

이내, 그는 신나서 방금 올렸던 [마트에서 삼피 씨랑 같이] 게시글을 지우고.

대신 '숨컷이랑 삼피와'함께 찍은 단체샷을 올렸다.

[그 '숨컷' 님 맞음 ㅋㅋ]

평일, 방송 외적으로 같이 있는 삼피와 숨컷을 한 화면 안에 담은 사진이 첨부된 그 글은.

향후 남자의 기대보다 훨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거리는 두 봉지를 묵직하게 채웠다.

최재훈은 계산이 끝나자 곧장 그것들을 들고, 튀었다.

"야, 뭐 해. 내놔."

"재훈 씨! 이리 주세요!"

대신 들어주려고 대기하던 두 여자가 기겁을 하며 따라붙었다.

주변 사람들이 남자에게 짐을 들게 하는 두 여자에게 비난의 시선을 보냈다.

"오우예."

당황하는 둘의 모습에 최재훈은 희열을 느꼈다.

'둘한테 들게하는 것도 좀 그렇고….'

아직은 '여자'에게 자신이 할 육체 노동을 떠맡기는 게 불편한 그였다.

하지만 결국 따라잡고 만 두 여자를-

"님들 나보다 힘 쎔?"

"…."

"…."

다소 잔인한 방법으로 일축시키고 기어코 차에 도착해서 좌석에 앉은 최재훈.

"허억!"

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또 뭐!"

"뭐 빠뜨리셨어요!?"

"재은이 불러서 같이 먹어야딩."

"…."

"…."

장을 보다 보니 식사는 만찬이 되어 있었다.

동생 바보가 자기 여동생을 빠트릴 리가 없었다.

* * *

집에 도착한 최재훈은 곧바로 요리 준비에 착수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걷어 올린 최재훈의 모습에 여자들은 벌써부터 반쯤은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한…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 혹시 도와드릴 거라도 있나요?"

"아이, 괜찮아요. 눈치 보지 말고 편히 쉬세요, 저 혼자면 충분하니까."

최재훈이 새우를 손질하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모습에, 두 여자의 가슴이 뛰었다.

"그러면-"

권지현과 제나는 기다리는 동안 미뤄뒀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스토커였다.

제나는 사무소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CCTV 확인을 요청했고.

더불어, 개인적으로 CCTV 설치 허락을 구했다.

권지현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법적인 스토커 대처 방침을 들었다.

둘은 꽤 열성적으로 임했다.

최재훈이 아무리 힘이 세고 씩씩하다 해도, 둘에겐 결국 남자일 뿐이었다.

둘은 치밀하게 스토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았음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자이루!"

그때 최재은이 등장했다.

"자이루? 그게 뭐야."

요리하던 최재훈이 반갑게 받아줬다.

"자황 가조쿠들 인사할 때 쓰는 말임."

"아, 자이루~"

최재훈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줬다.

"짭조쿠 주제 가조쿠인 척 하지 마셈."

"뭐래는 건지."

두 여자는 그런 알 수 없는 대화를 주도하는 최재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갤 끄덕였다.

'이거다!'

"야, 동생."

"재은 학생."

"넹?"

"잠깐 나와서 대화 좀 하자."

"뭐야!!! 우리 재은이 가져가지 마!!!"

"오빠!!!"

"엔다이아~~~윌 얼웨이스~"

"뻒유~~~우우우우우~아~~"

만난 지 1분 만에 불세출의 명곡이 능욕당하고 오디오가 꽉 찬다.

최 남매의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둘은 최재은을 가까스로 집 밖으로 데려와 시너지를 끊었다.

"어?"

그때, 계단을 오르고 있던 이린과 마주한다.

"…."

무표정한 얼굴의 이린은 한쪽 손엔 샴페인을, 한쪽 손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이야~ 로맨티스트 납셨네. 프로포즈라도 하려고?"

제나가 특유의 조소로 비아냥댔다.

술과 꽃다발을 준비했던 또 한 명이 떠오른 권지현이 제나를 쳐다봤다.

제나가 입 모양으로 욕을 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둘이었다.

"다들 모여계셨군요."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그녀는 어딘가 아쉬워 보였다.

"어, 아! 마침 잘 됐다. 편집자 님!"

"네?"

"편집자 님도 잠깐 따라와주실래요."

"???"

그렇게 네 여자는 계단을 올라 권지현의 집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 유명 스트리머 집! 어, 잠깐. 저거 뭐야!"

최재은이 책상 구석에 세워진 '저거'를 가르켰다.

Choi 'M spear' Dil Do Jeol Dae Anigo Anmagi Ym

이라는 창대한 이름을 가진 물건이었다.

세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멸의 시선이 일제히 향해졌다.

"아, 아니에요!!!!!!"

권지현이 식겁해서 손을 절래절래 내저었다.

"미친년…."

"뭐가 아니시라는 건지…."

"와, 실물 처음보네. 쩐다."

권지현은 다급히 해명했다.

"아니, 저거! 방송할 때 쓴 거예요!"

너무 다급해서 문제였다.

"…미친년."

"방송하실 때, 저걸 쓰셨다고요…?"

"헐, 언니 옥수수TV 방송인이었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저, 저-"

시청자가 장난으로 보내준 물건이다.

어제, 방송을 하는데 얘기가 나와가지고 시청자들한테 보여주느라 잠시 꺼낸 것뿐이다.

"지, 진짜! 하늘에 맹세코!!! 저런 거 사용한 적 없습니다! 확인해 보실래요!?!"

당황해서 거의 반쯤 광란 상태가 된 권지현이 말했다.

도대체 뭘 확인시켜주겠다는 건가.

여자들이 "으." 얼굴을 찡그리며 불가항력으로 그녀의 결백을 믿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사태가 일단락되자.

둘은 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최재훈에게 스토커가 달라붙은 것 같다고.

해결하기 위해 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두 여자의 표정은 험악하게, 또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어떤 미친년이…."

"…."

"일단 우리가 지금 알아 놓은 건-"

제나는 이린과 차후 방침에 대해 논하고.

"그, 재은 학생?"

권지현은 최재은에게 조심스럽게 주제를 꺼냈다.

"네, 언니."

"그 혹시… 이 일 해결될 동안 재훈 씨네 댁에 묵어 줄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여자가 같이 있어 드리면 재훈 씨도 훨씬 더 안전하고 안심이 되실 것 같아서."

최재은은 주저 없이 고갤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오빠는 제가 설득해 볼게요."

"고마워요."

권지현이 진심으로 안도하며 최재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그녀들이 비밀 회의를 마치고 최재훈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

"와…."

"음~ 스멜띠."

가히 살인적인 음식 냄새가 그녀들을 반겼다.

"오셨어요들? 어, 이린 씨. 안녕하세요. 재은아, 와서 세팅 좀 헬프."

"오키도키."

"아, 저도-"

"아뇨, 손님 분들은 편히 계시고요."

"나도 손님인데?"

"매우 흥미로운 견해구나."

"아니, 제발 와달라고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난 먹을 거 많다고밖에 안 했는데?"

"그게 그거지."

"매우 흥미로운 견해구나."

최재은이 테이블 위로 첫 번째 접시를 날랐다.

안심 스테이크였다.

버터 향기가 가득 입혀진 안심 스테이크는 이미 레스팅이 완벽하게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로 썰려 있는 상태였다.

테이블이 없는 환경에서 먹기 편하도록 배려된 것이었다.

"오…."

그런 배려를 가장 먼저 눈치챈 이린이 감탄했다.

"…."

"와…."

그리고, 그런 배려를 느끼지 못해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내는 자태였다.

완벽에 가깝게 미디엄으로 익혀진 스테이크의 단면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햄버거처럼, 갈색의 표면 사이에 붉은 층이 끼어 있었다.

두 번째 메뉴는 초밥이었다.

새우와 연어는 잘 손질되었는지, 보는 것만으로 그 탱탱함과 촉촉함이 다 느껴질 정도였고.

뭉쳐진 밥은 형태를 예쁘게 유지하고 있었다.

세 번째 메뉴는 새우 머리 버터 구이.

네 번째는 메뉴는 연어와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

다섯 번째는 치즈가 얹어진 토마토.

최재은을 제외한 세 손님은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개별적인 비쥬얼으로나, 전체적인 구성으로나 흠잡을 데가 없는 만찬인 건 둘째치고.

최재훈의 요리실력이 너무나도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너, 요리… 자주 해?"

"뭐, 자주한다면 자주했지?"

"얘, 거의 중학교 때부터 매일 요리했어요."

"네?"

"저희 부모님이 밤낮으로 바쁘셔가지고. 얘가 두 분 대신에 아침 저녁 준비했었거든요."

"아니, 뭔 그런 것까지 얘기해."

앞치마를 두른 채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는 최재훈이, 쑥스럽다는 듯 쓰게 웃었다.

평소의 이미지 때문에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가정적인 일면.

그것도 보통 가정적인 게 아니다.

부모를 대신해서 가사일을 대신하고 어린 동생을 돌보다니.

세 여자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 * *

겉모습뿐이겠지.

그렇데 생각한 제나가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집어넣더니-

"…."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스테이크를 노려봤다.

안심 스테이크는 하기는 쉬워도 '잘'하긴 힘든 요리였다.

후라이팬의 열기 조절, 기름의 온도 조절, 불 조절, 시간 조절.

요리를 하는 매 순간이 요리의 퀄리티가 갈리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려면 상당히 숙달되어 있어야 했거나, 운이 좋아야 했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재훈의 스테이크는 제나가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수준-까지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일반 가정집에서 나온 퀄리티로는 충분히 훌륭했다.

"아, 이 초밥 왠지 편집자 님한테 대접하긴 부끄럽네요. 그런 일식당을 단골로 다니시는 분인데."

"아닙니다. 스, 니기리도, 샤리도. 가정에서 만든 걸로는 충분히 훌륭한 퀄리티입니다."

"…뭐요? 닝기리?"

"…충분히 잘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찬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때.

최재은, 제나, 권지현, 이린.

넷 사이에 눈빛이 오갔다.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최재은이 최재훈의 집에 묵으며 일이 해결될 때까지 스토커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셋이 알기로 최재훈은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며 자립적인 남자였다.

최재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컸다.

관건은, 최재은이 어떻게 그를 설득하느냐였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괜찮겠냐는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답했던 최재은이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중요한 이야기."

'''오.'''

최재은이 단번에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다.

평소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 여자는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뭔데?"

뭔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최재훈이 진지하게 답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최재훈이 진지하게 끄덕였다.

세 여자의 염려와 달리 최재은은 아주 잘-

"나 임신했어."

또라인가.

세 여자는 얼탱이가 오체분시 되는 것을 느끼며 최재훈의 반응을 확인했다.

"…."

그는 예상 외로 차분했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저런 걸 믿을 리가-

"이름, 주소."

믿는다.

심지어 무섭다.

"오빠, 지금 심정이 어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최재훈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 장난이 아니라 진짜 무섭다.

가만히 놔두면 무슨 사달이 일어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뭘 들어도 아무렇지 않고,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최재훈이 텅 빈 눈동자로 최재은을 응시했다.

미칠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가 싶었다.

"오빠."

"응?"

"구라야."

"…."

"나 대신, 한동안 오빠네 집에서 좀 살게."

"세상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지금 최재은의 방식은 '세상에' 그 자체였다.

저런 논리도 뭣도 없는 정신 나간 방법이 통할 리가-

"콜."

"뭐 이딴."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녀들은 이해하길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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